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2001년에 기쁘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은 여성 대법제자이며, 올해 75세다. 이 25년의 수련 여정을 돌아보면 사부님의 보호와 자비로운 일깨움하에, 크고 작은 심성을 제고하는 고비를 지나왔다. 25년 동안 병원에 간 적이 없었고, 약 한 알 먹은 적 없이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셨기에 비로소 오늘의 나, 즉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성취할 수 있었다.
1. 남편은 내 수련 전진에 ‘길을 닦아준’ 사람
남편과 나는 동창이자 이웃으로, 남편이 성실하고 후덕해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결혼 후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함께 양가 부모님께 효도했다.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을 때, 나를 아끼고 사랑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다(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뱃속의 아이를 돌보지 못한 채 너무나 상심해 통곡했고, 이로 인해 아이마저 잃고 말았다. 이중의 충격으로 정신이 붕괴됐고, 몸은 갈수록 나빠져 온갖 병이 다 찾아오면서 직장에서 유명한 환자가 됐다.
질병의 고통 속에서 20여 년이 흘러 어느덧 2001년이 됐다. 당시 나는 이미 50세였는데, 친구의 소개로 “파룬궁을 연공해 봐, 이 공법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특별히 좋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막상 내가 진정으로 수련하려 하자, 성실하고 후덕하던 남편이 반대하며 줄곧 고난을 만들었다. 대략 2011년 어느 날 저녁, 법공부를 하러 갔다가 출근하는 수련생을 배려해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대문을 잠가버렸다. 이웃을 놀라게 할까 봐 당시 60세의 나이로 2미터 높이의 대문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또 한번은 우리 두 사람이 각자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가다 공안국 앞을 지날 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큰 소리로 “빨리 와서 사람을 잡아가요! 이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합니다!”라고 외쳤다. 당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단숨에 자전거를 몰아 바람처럼 집에 돌아왔고 며칠 동안 남편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날 밤, 법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화를 내며 더는 못 살겠다면서 망치를 집어 들고 밥 먹는 둥근 상판을 부숴버렸다. 당시 나는 정말 눈물을 머금고 참았으며, 예전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던 남편이 어쩌다 이렇게 이성을 잃고 변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 당신 배후의 사악한 영의 요소는 나를 교란할 수 없어. 이 대법을 나는 끝까지 수련할 거야!” 남편의 태도는 단번에 변했고 화도 가라앉았다. 내가 자신을 수련할 줄 몰라서, 남편의 입장에 서서 감당하는 압력을 고려하지 않았고, 소통하며 대법이 바른 법이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편을 내 수련을 가로막는 나쁜 사람으로 여겨 미워하고 귀찮아하며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너무 괴롭다고 느껴 남편에게 원망심이 생겼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면서, 원망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선량해져야 하고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명혜망의 수련생 교류 글을 따라 남편에게 선을 권하는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 우리 화내지 말아요. 내가 대법을 수련하니 얼마나 좋아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병이 다 나았잖아요.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에요. ‘천안문 분신자살’은 장쩌민 집단이 민중을 속이려고 자작극을 벌인 것이고,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러 온 거예요. 나는 이것이 당신 본성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내 원망심이 초래한 것임을 알아요. 앞으로 수련을 잘할게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면서 내 선한 마음은 갈수록 커져 남편을 배려하고 보살피게 됐다. 남편은 이가 좋지 않아 뼈를 뜯지 못해, 내가 고기를 발라서 주고 나는 뼈가 있는 것을 먹었다. 한번은 남편이 병으로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의 간병인이 내게 “아주머니, 아저씨한테 정말 잘하시네요.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아저씨를 돌보시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이전의 생각을 바꿨다. 남편의 본성은 선량하지만, 단지 중공의 사악한 선전에 속고 세뇌를 당했을 뿐이었다. 남편의 입장에 서서 남편을 대신해 생각해주자 남편도 변했다. 날씨가 더울 때 내가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 잔을 가져다줬다. 아침에 내 연공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남편은 밥을 안쳐놓고 “당신은 연공해, 나는 밖에 나가서 걷고 올게”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감동해 고맙다고 말했다.
어느 날 밤 12시 전,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내가 작은 광장으로 걸어가자 앞에는 붉은 벽돌이 새로 깔려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벽돌을 까는 인부가 남편이었다. 잠에서 깬 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그동안 내가 수련할 줄 몰라서 당신을 오해했어요. 사부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나를 일깨워주셨어요. 당신은 내 수련을 위해 ‘길을 닦아준’ 사람이고, 당신 역시 대법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세상에 내려와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는 생명이에요.”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께 무릎 꿇어 절하며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에 감사드렸다.
2. 나와 딸 시어머니의 이야기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는 가운데, 수련인은 선(善)해야 하고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나중에 생각해야 함을 깨달았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더 좋은 사람이 돼, 실제 행동으로 주변 세상 사람을 감화해 세상 사람이 대법 수련인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보게 해야 한다.
2015년 딸이 결혼하게 됐는데, 시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40만 위안을 들여 아파트를 샀다. 딸이 돌아와 내게 “엄마, 어머님(시어머니를 가리킴)이 아파트를 사고 나서 길가에 앉아 우셨어요. 그래서 제가 슬퍼하지 마시라고, 저희 부모님은 아주 선량하셔서 어머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실 거라고 위로해 드렸어요”라고 말했다. 딸의 말을 듣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사돈댁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손해를 보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아도 억지를 부리며 승부욕과 체면을 중시하는 데다 유별나게 깔끔하고 억세다고 말했다. 사돈댁은 30대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혼자 아들을 데리고 살면서 먹고 쓰는 것을 아꼈다. 남자가 없으면 안 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그리고 체면을 위해 아들 결혼에 평생 모은 돈을 다 쓴 것이었다.
사돈댁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별로 이해하지 못해, 늘 우리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며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나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신 것을 떠올렸다. 선한 마음과 선한 일념으로 사돈댁을 감동시키고, 실제 행동으로 대법 수련인의 선함은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모두 좋은 사람이기 때문임을 직접 확인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은 천성이 선량해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믿었다. 그래서 딸에게 “얘야, 엄마는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인이야. 네 어머님이 슬퍼하셨다는 말을 들으니 엄마도 마음이 아프구나. 엄마는 그분을 아주 잘 이해하고 동정해. 네가 조금 서운하더라도 괜찮겠니? 그 집 예물은 받지 말자. 엄마가 5만 위안을 줄 테니 가전제품을 사렴”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사돈댁을 찾아가 말했다. “사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 결혼에 우리집에서 별로 도와드릴 게 없네요. 예전에 제 몸이 아주 안 좋아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고, 남편은 또 실직한 데다 이사해서 집을 수리하고 아이 대학 보내느라 집에 모아둔 돈이 별로 없어요. 남편과 상의했는데 아이들 결혼 예물비는 안 받기로 했어요. 그리고 결혼식 날 신부 측 식대 다섯 테이블 비용은 우리가 내고, 가전제품도 전부 우리집에서 살게요.” 사돈댁은 줄곧 딸 부부와 함께 살았는데, 사돈댁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그녀가 복이 많아서 아들이 이렇게 남을 잘 이해해 주는 좋은 집안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번은 외손녀 생일 때, 사돈댁이 우리와 그녀의 언니, 형부를 식사에 초대했다. 만나자마자 사돈댁의 형부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형님, 오늘 처음 뵙는데도 우리가 인연이 닿는 것 같습니다. 아주 다정하고 선량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사리에 밝은 훌륭한 따님을 키우셨네요”라고 말했다.
결혼 이듬해 딸이 아이를 낳았고, 그해 나는 63세였다. 사돈댁은 나와 함께 딸의 산후조리를 돕자고 했다. 하루는 사돈댁 집에 젖이 잘 나오게 도와주는 두 사람이 왔다. 요리를 할 때 내가 굴소스를 쓸 줄 몰라서 아마 좀 많이 넣었던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이를 본 사돈댁은 요리하던 뒤집개를 휙 던져버렸고, 뒤집개는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 ‘내가 잘못해서 사돈댁을 화나게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딸이 산후조리 중이니 화를 내선 안 되고 집에 손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돈댁은 며칠 동안 감기 기운이 있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사부인, 화내지 마세요. 아직 편찮으신데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딸은 속을 태우며 몹시 괴로워했다. 나중에 딸이 집에 와서 “엄마는 이렇게 성실하고 착하신 데다 연세도 많으신데 산후조리까지 도와주시잖아요. 시어머니가 엄마를 그렇게 대하시니 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앞으로 저도 시어머니한테 잘 안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얘야, 절대 그래선 안 돼. 넌 모르겠지만 그날 엄마 마음속엔 화가 조금도 없었어. 이건 엄마의 심성을 제고시켜 준 거야”라고 말했다.
점차 사돈댁이 변하면서 우리 두 집안은 아주 사이좋게 지냈다. 사돈댁은 나보다 16살 어린데, 우리 두 늙은이를 어르신으로 모셨다. 설날이 되면 우리가 외로울까 봐 자기 집으로 모셔가 섣달그믐 저녁을 함께 먹었고, 평소에도 종종 소시지나 고기 등을 보내줬다. 내 딸도 친딸처럼 대하며 딸에게 목걸이, 밍크코트 등을 사줬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사소한 일 같지만,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딸에게 예물을 받지 말라고 하고 오히려 돈을 보태 그 집에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눈물이 난다. 금생에 대법을 수련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사부님이 계셔서 참으로 좋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3/5143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13/51432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