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샤오추이(曉翠)
[명혜망] 1950년 저는 농촌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우리집은 악당에 의해 ‘부농’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저는 악당이 정권을 찬탈한 뒤 일으킨 모든 정치운동을 겪었습니다. ‘검은 5부류[黑五類]’ 분자였기 때문에 악당이 박해할 때마다 조상 4대가 탄압, 굴욕, 불공정 속에서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당시 어렸던 저는 몸과 마음에 아주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비판과 투쟁을 당했고,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우리집이 미친 듯이 가택수색을 당했습니다.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라는 장부’를 찾는다며 아버지를 납치해 비판 투쟁 대회를 열고 죽도록 때려, 아버지는 결국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의식을 차린 뒤 아버지는 스스로 조금씩 집으로 기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누구도 감히 나서서 돕지 못했는데, 마음씨 좋은 한 사람이 몰래 우리에게 알려줘서 오빠가 아버지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른이 된 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트랙터를 몰며 남의 벽돌을 실어 나르는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40세가 되던 해 그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런 날벼락은 저희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시부모님은 모두 70대셨고, 남편은 제게 딸 둘, 12살밖에 안 된 막내아들까지 세 아이를 남겼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대법을 얻어 새로운 희망을 찾다
두 딸이 모두 대법을 수련했는데, 법을 얻은 시점부터 제게 대법을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희와 달라, 안팎의 일이 모두 나 혼자 해야 할 일이라 시간이 없어.” 1999년 4월 초, 둘째 딸이 제게 귀중한 책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줬습니다. 밤에 한가해졌을 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럼 한번 펴서 봐야겠다.’ 뜻밖에도 제가 보서를 집어 들자마자 첫 페이지부터 푹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가슴이 뛰었는데 이것이 바로 제가 평생 찾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법을 얻은 것이 너무 늦은 게 한스러웠습니다. 낮에는 안팎으로 바빠 시간이 없어서 밤에 읽었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자정 무렵까지 보곤 했습니다.
저는 병을 없애고 건강을 얻기 위해 대법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신기했던 점은 수년간 저를 괴롭혀온 경추 신경압박증이 나은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했고, 침, 온열 치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 두 팔이 아프고, 저리고, 부어올랐습니다. 매일 밤 고통을 견디기 힘들 때면 일어나 앉아 스스로 주무르고, 움직여본 뒤 다시 누워야 해서 항상 수면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전법륜’을 막 읽기 시작했을 뿐, 아직 연공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다 나았습니다! 다른 몇 가지 증상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입는다
예전에는 집에 성가신 일이 자주 생겼고 가족들이 이 병, 저 병에 시달려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제가 연공을 한 이후로 집안이 무척 순조로워졌습니다. 중공 악당이 대법을 박해한 이후 어떤 속인이 말했습니다. “댁 아들이 어떻게 장가를 가는지 두고 봅시다. 온 가족이 다 연공을 하니 원!” 그러나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제 아들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23살에 결혼해 귀여운 남매를 낳았다는 점입니다. 생활도 넉넉해져 집, 차가 생겼습니다. 바로 대법이 제 운명을 바꿨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주 밝아져서 늘 웃고 싶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한 이후로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매 순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습니다. 한번은 밭에 일하러 가다가 길에서 휴대폰을 하나 주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휴대폰 잃어버린 분이 없냐고 물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웃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휴대폰 잃어버렸는지 아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뭘 그렇게 외치고 다녀요! 유심칩을 바꾸고 본인이 쓰면 그만이죠. 이 휴대폰은 7~8백 위안은 할 거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사람들에게 사심이 없고 이타적이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웃이 휴대폰 안의 전화번호를 본 뒤에야 주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정말 좋은 분을 만났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대법의 은덕을 입으신 겁니다. 제가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감사 인사를 하시려거든 우리 사부님께 하세요! 사부님께서 제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빈 술병을 팔았는데, 술병을 사들이는 아저씨가 제게 2위안을 더 줬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게 2위안을 더 주셨어요. 술병 하나에 고작 몇 푼인데 얼마나 많은 병을 팔아야 2위안을 버시겠어요. 저는 파룬궁을 연공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요즘은 이런 사람이 너무 드물어요.”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미친 듯한 박해를 일으켰습니다. 전체 중국의 모든 매체,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등은 하늘과 땅을 뒤덮는 거짓말, 모함으로 민중을 속이고 선동해 증오하게 만들었으며, 파룬궁을 헐뜯었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듯했고, 저는 법을 얻은 지 겨우 3개월이 되었기에 당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공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굳건하게 끝까지 수련할 거야.’ 저는 사부님, 대법을 굳게 믿었고, 만고에 만나기 힘든 이 인연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님 말씀을 들으며, 사부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그대로 따랐습니다.
사부님의 새 경문 ‘심자명(心自明)’, ‘북미 대호수지구 법회 설법’이 발표된 이후, 수련생들과 함께 모여 교류했습니다. ‘박해를 반대하고, 진상을 전하며, 중생을 구하자.’ 초기에 중공의 박해가 유독 심해 모두에게 진상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펜, 종이를 사서 직접 썼습니다. 낮에는 집에서 쓰고, 밤에는 나가서 주변 마을에 붙였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전부 걸어서 갔지만 한 번도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이후에 자료점이 생기자, 우리는 나가서 인쇄된 진상 자료를 배포했고 때로는 배포하면서 붙이기도 했습니다. 2003년 보리 수확 전 어느 날 밤, 우리 수련생 6명이 일행을 이뤄 한 마을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 두 사람씩 한 길을 맡아 배포하고, 배포가 끝나면 지정된 장소에 모이기로 정했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과 짝을 이뤄 배포를 거의 다 마쳐갈 무렵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어느 집 문틈에 자료를 넣자, 그 집의 큰 개가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고, 이어서 한 젊은 남자가 뛰어나와 큰 개를 이끌고 우리를 향해 쫓아왔습니다. 그 개는 매우 사나워서 펄쩍펄쩍 뛰며 우리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남자는 곧바로 수련생의 손을 잡고는, 자기 개에게 저를 물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사이 그가 저마저 붙잡아버렸습니다. 그는 한 손에 한 명씩 우리 둘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은 한 손으로 입장(立掌)해 정념(正念)을 발하고 정법 구결을 외우며, ‘홍음’ 중의 ‘대각(大覺)’을 암송했습니다. 이때 한 여자가 나왔는데 아내인 듯했습니다. 그에게 옷을 가져다주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웃통을 벗고 하의는 속옷만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의를 돌린 틈을 타 손이 느슨해졌고, 수련생은 지혜롭게 빠져나갔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전화를 걸려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속으로 청하며 정념을 발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나쁜 일은 하지 않아요.” 그는 저를 끌고 가며 자료를 줍게 했습니다. 제가 하나를 줍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더 주우면 안 되겠다.’ 그는 술에 몹시 취한 상태로 저를 끌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아마 그도 정신이 좀 들었는지,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물을 한 잔 따라주었고 저는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가보시오, 일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알고 보니 그는 마을 당 지부 서기였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놀랐지만 위험은 없었습니다. 수련생들을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2004년 ‘9평 공산당’이 나온 이후, 우리는 ‘9평’을 배포했습니다. 2005년 초봄 어느 날 밤, 우리 수련생 네 명은 각자 ‘9평’ 한 보따리씩을 메고 이웃 마을로 배포하러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상의한 끝에 우리는 다짐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어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렸고, 마을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9평’ 책이 비에 젖지 않게 처마가 없는 곳에는 놓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다 보니 배포 속도는 느려졌습니다. 비가 몹시 쏟아졌고, 길도 미끄러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 흙길이어서 진흙, 물웅덩이투성이였습니다. 다 배포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르고, 입고 있던 솜옷도 흠뻑 젖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이렇게 신성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고생을 겪어도 고생스럽다거나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맺음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이것은 저희가 해온 일들 중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중공 악당의 잔혹한 박해 통치하에서, 가정의 압박 속에서,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하는 길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귀로에서 줄곧 부딪히고 넘어지며 기쁨, 슬픔을 겪는 동안 꼬박 27년의 낮과 밤을 걸어왔습니다. 저희는 줄곧 평온하게 사부님께서 맡기신 세 가지 일을 하며 각자의 사명을 이행해왔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이든 찌는 듯한 더위든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고비를 넘는 과정, 특히 심성 고비를 넘을 때는 온갖 사람 마음의 교란으로 인해 질질 끌며 넘겼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가지(加持)가 없었다면 결코 넘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매번 사부님께서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 물론 이런 소모는 당신들이 이해하는, 그런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인간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진실하게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뿐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3/5154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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