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인연을 다시 잇고 원망심을 수련해 없애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 집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머릿속에 갑자기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에 왜 나라는 존재가 있는 걸까? 왜 내가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나는 내 몸으로 날씨가 가져다주는 춥고 따뜻함이나 습하고 건조함을 감지하고, 주변의 부드럽고 딱딱하고 차갑고 뜨거운 물건들을 만지고 있는데… 왜 내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고 다른 곳의 누군가가 아닐까? 나는 왜 다른 곳이 아닌 여기서 태어났을까? 사람은 결국 모두 죽는데, 왜 이 한 단락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문제들은 한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기간에 미간에서 때때로 시큰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물어보며 토론해 보려 했지만, 그녀는 애당초 제 질문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 대법과 인연을 맺다

1998년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외삼촌과 이모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그들이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그들이 어머니에게 남기고 간 책 ‘전법륜(轉法輪)’을 집어 들고 무심코 펼쳐 보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저와 대화하는 것처럼 마음속 의문 하나하나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당시 무신론의 영향을 받았기에 비록 해답을 얻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 채 ‘정말 이런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와 함께 수련생 집에 가서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보고 정공을 연마했으며, 일찍 일어나 광장에 가서 동공을 연마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어머니와 함께 신체를 단련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전에도 어머니와 일찍 일어나 광장에 가서 춤을 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광장무는 아주 순수해서 춤을 출 줄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채춤이나 몽골족 젓가락춤 같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비록 저는 마음이 넓고 많은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긴 했지만, 부모님의 갈등,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 사이의 갈등 속에 빠져 인생이 그저 그렇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책에 쓰인 대로 좋은 사람이 되고 남을 배려하며, 좋은 학생이 되고 나쁜 버릇을 고치자 마음이 한결 밝아졌고, 한동안은 종종 저 자신이 마치 작은 새처럼 언제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도 변해서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일들에 대해 더는 투덜거리지 않게 되셨습니다. 수련한 지 수년이 지나서야 저는 당시 아주 평범해 보였던 일이 사실은 아득한 옛날부터 맺어진 인연이자 사부님의 보살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듬해 ‘7·20’을 앞둔 어느 날, 어머니는 시내에서 새로 구매한 대법서적 ‘홍음(洪吟)’을 압수당했다는 수련생의 말을 듣고 함께 책을 돌려받으러 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전거 뒷자리에 저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 후 출발하려 했고, 제게 몇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뒷자리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으니 나도 대법제자잖아! 나도 가야겠어.’ 제가 어머니에게 “저도 갈게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래, 그럼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대법서적을 압수한 기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수련생이 뜰 밖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시는 마침 여름이라 맑고 몹시 더웠으며 햇볕이 따갑고 건조했습니다. 뜰 밖에는 그늘진 곳이 많지 않았지만, 점차 하늘에 커다란 구름 덩어리들이 나타나 때때로 태양을 가려주며 공기를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오후 3~4시경이 될 때까지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속속 뜰 안으로 들어가 가지런히 줄을 서서 가부좌를 하고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구름 한 점이 줄곧 태양 주위를 맴돌며 대법제자들을 위해 햇빛을 가려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점차 날이 어두워지자 각 지역 기관 책임자들이 사람들을 데리러 왔고, 아버지와 학교 교장 선생님이 함께 와서 저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당시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이후 저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수련생들은 박해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진상 알리기와 진상 자료 배포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이 일들에 저를 참여시키지 않았고 제게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했던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2000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한밤중에 일어나보니 어머니가 커다란 보따리에 든 진상 자료를 보며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동이 트기 전, 사람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자료를 배포하려 했지만 어두운 밤에 외출하는 것이 몹시 난처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둠을 무서워했고 저도 어둠을 무서워했습니다. 예전에는 날이 어두워졌을 때 혼자 집에 있으면 모든 방의 불을 다 켜놓고 등을 벽에 기댄 채 앉아 최대한 자리를 옮기지 않고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어디서 솟아난 용기인지 “제가 같이 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즉시 용기를 내며 “그래!”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자료를 챙겨주고 각자 책임질 아파트 동 번호를 배분해 주셨습니다. 동이 트기 전에 저희는 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아파트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았고 복도에도 센서등이 거의 없었습니다. 불이 없는 복도에 들어가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감각에 의존해 위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저는 나이가 어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아주 빨리 올라갈 수 있었고, 더듬거리며 진상 자료를 집집마다 문가에 놓아두었습니다. 각 동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구하러 온 것이니 모두 달콤하게 자고 나를 교란하지 마세요.’ 당시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었고 사명감이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개를 키우는 어떤 집에서는 멍멍 짖기도 했는데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너를 구하러 온 것이니 짖지 마.’ 또 한 아파트 동의 꼭대기 층 몇 가구는 자체적으로 문을 달아 놓았는데,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다 빨리 올라가다가 ‘쾅’ 하고 문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철문이라 고요한 밤에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저는 즉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계속 자라.’ 위치를 더듬어 세대수에 맞춰 자료를 놓아둔 후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모든 자료를 다 배포하고 나니 날이 이미 밝아 있었고,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집 아래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위층에서 저를 바라보며 웃고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경찰의 납치 시도로 집을 떠나 떠돌게 되셨습니다. 한번은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해주지 않으셨지만, 저는 어머니에게 일이 생겼음을 눈치챘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든 첫 번째 생각은 ‘어머니는 무사하실 거야, 사부님께서 계시잖아!’였습니다. 저희 지역 경찰 두 명이 아버지의 연락처를 추적해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저를 찾아왔고, 어머니가 저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우리 회사 상사를 찾아갔습니다. 이후 상사가 저를 찾아와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저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안심하세요, 그들은 우리 어머니를 찾지 못할 거예요. 만약 이 일이 회사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사직하겠습니다.” 상사는 의아한 듯 저를 쳐다보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된 여직원이 이런 일을 대할 때 이토록 차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습니다. 다음 날 경찰 두 명이 제 거처까지 추적해 왔지만 저는 그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으며 그들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두 경찰은 저를 한바탕 협박하다가 저의 단호한 태도에 화를 내며 가버렸습니다.

이후 업무에서 상사는 제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저를 매우 신임했습니다. 한번은 상사 사무실을 지나가다가 그가 다른 부서장에게 “돈을 그녀에게 맡겨도 문제없어요. 허튼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전문적인 구매 부서가 없었고 회사가 확장되면서 많은 물건을 사야 했습니다. 상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제게 물건을 사오게 했고, 저는 이를 기회로 짐을 싣는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도 별도의 대기 구역이 없어 우리 사무실에 배치했는데, 저는 그 기회를 이용해 면접 보러 온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당시 저는 매우 정진했습니다.

2. 대법 인연을 다시 잇고 원망심을 닦아 없애는 과정

어머니와 멀어지고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는 온갖 사람 마음의 집착을 품은 채 퇴근 후 동료들과 쇼핑하고 밥을 먹으며 놀러 다녔고, 속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서서히 법공부와 연공을 느슨히 해 속인의 학습과 생활 속에 섞여버렸습니다.

그렇게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2019년 연말에 전염병이 폭발했습니다. 더는 이렇게 나태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저는 비교적 안정을 찾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전심으로 수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동시에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제 인생에서 원망심을 닦아 없애는 가장 큰 고비를 겪게 됐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몇 살 위였고 역시 수련생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가 저를 보살펴주며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이끌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게 그런 의존심이 있었기에 일은 모두 반대로 돌아갔습니다. 시부모님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시부모님이 유독 그만 편애했기에 그는 매우 이기적이었습니다. 집안일은 전혀 할 줄 몰랐고 생활 습관도 좋지 않았으며 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결혼 후 제가 그의 흠을 잡는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임신한 기간에 신혼집 인테리어 공사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남편은 인테리어를 몰랐고 배우려 하지도 않아서 매 단계를 제가 지켜봐야 했습니다. 후반부에 가전제품을 설치할 때, 설치 기사는 배가 부른 저를 보고 아주 놀라워하며 “집에 아무도 없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우리집엔 정말 아무도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생활의 소소한 일에서 비롯된 갈등부터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돌보며 생긴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이르기까지 남편에 대해 쌓인 원망은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저는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매일 연공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온몸이 늘 피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원망심이 일어날 때는 마음속으로 거듭 무조건 안으로 찾았습니다. 매일 남편 흠을 잡으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론 남편이 분명 내게 관심이 없고 아이와 우리집에도 관심이 없어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내가 그를 틀리게 분석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이 움직였으니 이것은 틀린 것이며 분명 찾지 못한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틀렸을까?’ 저는 이 부분에 막힌 채 오랫동안 돌파하지 못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당시 저는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분명 우울증에 걸렸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미칠 것 같은 상태를 바꾸고 싶었고 명혜망에 들어가 가정 갈등 속 수련에 관한 교류 글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수련했는지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읽어봐도 하나같이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남편에 대한 원망심이 사라져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고 적혀 있었는데, 어떻게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중간에 어떤 과정이나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수련생의 글을 읽게 됐는데 그녀가 연공만 하면 남편이 때렸고, 몇 번 그런 일이 있은 후 한번은 연공 중에 수련생이 남편의 매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수련을 위해 남편이 감당하는 모든 것을 느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의 대략적인 뜻은 그러했습니다. 저는 줄곧 막혀 있어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을 갑자기 이해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나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남편에 대한 제 모든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점차 집안일을 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게 됐고, 그가 밥을 할 때 옆에 붙어 이것저것 불평하지 않게 됐으며, 때때로 채소를 씻어주거나 물건을 건네주기도 하고, 남편이 밥을 다 한 후 전쟁터 같아진 주방을 아주 자연스럽게 치울 수도 있게 됐습니다. 저는 남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를 배려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우리집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억울함, 원망, 이기심, 오만, 허영심을 닦아 없애도록 남편이 줄곧 도와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인터넷 글에서 수련생의 수련 과정이 왜 보이지 않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수련의 길이고, 저는 저만의 수련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스스로 진정으로 깨달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수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저는 제게 아직 닦아 없애야 할 수많은 집착심이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정법시기가 마지막에 이르렀으니 저는 더욱 정진해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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