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9년 ‘7·20’ 이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다. 아래에 최근 몇 년간 ‘진’을 닦는 것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을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악당 문화 속 ‘거짓’의 영향
나는 ‘문화대혁명’ 이후에 태어났고 중공 악당에 가입한 적이 없어, 악당 문화가 내게 미친 영향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수련의 장애를 더욱 크게 느꼈고, 정진하려는 마음도 점점 약해졌다. 자신의 수많은 집착을 찾았지만 바꿀 동력이 부족했다. 한편으로는 수련을 돌파하지 못해 괴로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착심에 지배당해 마음이 괴롭고 지쳤다.
A 수련생을 만났다. A가 수련하며 기울인 노력은 나를 감탄하게 했지만, A와 실제로 대법 실증 항목을 함께 할 때 드러난 수련생 간의 갈등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고, ‘진’을 닦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마음속 생각 다르고, 입으로 하는 말 다르고, 실제 행동이 다른’ 현상이 내게도 고스란히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 당문화(黨文化) 속의 ‘거짓’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줄곧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 여겼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얕보며 거짓말을 하찮게 여겼는데, 어째서 내게도 ‘거짓’된 모습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공산사령(共産邪靈)이 생활환경을 이용해 내게 주입한 ‘공산당 당문화(黨文化)’ 관념이며, 집착심이 내 생각 속에서 나를 속여 자신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핑계를 찾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언행을 미화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악당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은폐된 사유는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하며, 오직 스스로 법에 대조해 보아야만 똑바로 인식하고 타파할 수 있다. 그것은 수련인에게 극심한 해를 끼치며 수련을 성취하지 못하게 만든다.
2. 진실하지 못한 은폐된 모습
사람이 생활 속 사소한 일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종종 진정한 심성을 반영한다. 나는 나 자신이 많은 일에서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진실하지 못함은 곧 거짓이고 기만이다. 아래에 내가 체득한 진실하지 못한 은폐된 모습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1) 대충대충 얼버무리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타인을 위하며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든 몹시 무관심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법에서 핑계를 찾으며 ‘이 집착이 없어져서 상관하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이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조차 없는 이기적인 모습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라면 안일한 마음에 이끌려 미루고 미루다가,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일을 서둘러 끝냈다. 일을 날림으로 대충 하면 종종 결과가 좋지 않았고, 겉보기에도 이것저것 빠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한번은 수련생을 도와 연공 음악을 복사해준 적이 있다. 나의 미루는 버릇 때문에 만나기 직전에야 이 일을 했다. 당시 정신이 흐리멍덩해서, 수련생이 원한 것은 한 시간짜리 제2장 공법 파일이었는데 나는 30분짜리를 복사했다. 수련생에게 전해주고 또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서둘러 수습했다. 두 번이나 달려가서야 수련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행히 그녀도 잘못 복사된 카드를 아직 다른 곳으로 보내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이것은 집착심을 없애지 않아 초래된 번거로움이다. 나는 본래 이 기회를 잘 이용해 안으로 찾아 안일심을 버리고 제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 일단 일을 잘못하면 ‘구세력의 교란’을 핑계로 삼으며 안으로 찾는 것을 소홀히 했다. 실수를 수습하고 나면 자신이 이 일에서 제고했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거짓’이 수련인의 제고를 가로막는 것이며, 더 심각하게는 수련생의 오해와 간극을 만들어 법 실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중공사당(中共邪黨)의 사악한 당문화(黨文化)는 수십 년간의 주입으로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미 일부 대법제자를 포함한 대륙 중국인의 성격을 왜곡되게 하고 문제를 생각함에 모두 극단적이게 했으며, 나아가 국제사회 사람의 생각 및 전통적인 고대 중국인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대륙의 십 몇억 사람들이 서서히 주입 당하는 가운데 느끼지도 못한 채 변이되었는데, 모두 ‘다 똑같은데 무슨 문제 될 것이 없다. 사람은 곧 이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때론 매체에서 당신들을 쓰고, 때론 항목에서 당신들을 쓰는데, 당신들의 생각, 그런 당문화의 극단적인 작법ㆍ거짓말ㆍ대충대충 하는 업무 작태는 정말로 그들로 하여금 못 견디게 한다. 만약 당신들이 미국인 및 세계 각 지역 자유국가의 이런 사람들과 접촉하면 그들은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각지 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법공부를 통해 나는 사령이 주입한 ‘거짓’을 닦아 없애고 ‘진’을 닦아내는 것이 얼마나 관건적인지 더욱 체득했다.
2) 집착을 감추고 남과 자신을 속이기
‘거짓’이 부풀려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애쓰며, 극단적인 경우 진실한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 또한 무의식중에 이러한 사회적 풍조에 휩쓸려, 수련인들 사이에서 완벽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집착을 감추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이러한 집착들은 각양각색으로 모든 방면에 존재했다.
나를 예로 들자면 안일한 마음이 컸다. 안일함과 미루는 습관에서 비롯된 누락과 실수를 나는 자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고, 무의식중에 감추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수습함으로써 허위적인 ‘능력 있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감춰진 안일심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명예욕을 키웠다. 때로는 칭찬받는 중에 정말로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겨 우쭐해지며, 자신을 실증하고 오만방자한 그릇된 길로 빠져들었다. 매번 수련에서 제고될 수 있었던 기회는 이 허위적인 은폐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수련 중에서 나는 마치 잘못을 뻔히 알면서도 어른들에게 여전히 착한 아이라고 여겨지길 바라는 아이처럼, 늘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합리적인 변명을 찾았다. 서서히 나 자신도 이 사람을 속이는 변명들을 굳게 믿게 됐다.
어떤 집착이 일으킨 것이든 감추는 거짓된 일을 했다면 그것은 곧 기만이다. 거짓된 일을 한 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다면 고칠 기회가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조차 속여 은폐와 수습을 책임감이나 정진으로 여기며, 정말로 자신이 꽤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집착심을 키워놓으면 진실한 말조차 귀에 거슬리게 되니, 집착을 버리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수련인은 법의 지도가 있기에 최대한 잘못을 덜 저지르도록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자신이 어디를 보나 괜찮고 무엇을 하든 뛰어나다고 여기며, 협조가 잘 안 되는 일을 만났을 때 남이 트집 잡고 흠을 잡는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 ‘거짓’의 늪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3)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를 추켜세우고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이전에 나는 오류에 빠져 자신이 할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 ‘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이 ‘진실한’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상대를 위해서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며, 상대가 너무 나약한 것이라고 여겼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수련생은 이런 생각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악(惡)’의 일종이라고 지적해줬다. 나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식했다. 이런 직선적인 표현 방식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고 자기만족식으로 남에게 잘해주는 것이라, 상대에게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격렬한 언사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그러나 이 집착을 버리려 노력할 때 더 큰 난관이 나타났다. 갈수록 상대의 입장에 서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종종 상대가 어떤 방면에 집착하고 있는지, 상대 언행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일종의 갈등을 초래했다. 속인의 경우 그들의 속뜻을 내가 알더라도 곤란하지 않았는데, 속인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련인은 스스로 법에서 깨달아 올라가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련생이 집착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내가 본 수련생의 집착이 무엇인지, 고통을 초래한 사람 마음이 무엇인지 직접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종종 이런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이토록 복잡한 것이어서, 어떤 수련생이 늘 같은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것을 보면 처음의 동정심이 점차 냉담함과 무감각으로 변했다. 상대가 또 나와 이런 방면의 일을 교류하면 나 자신은 심지어 조금 짜증이 났다. 이럴 때면 상대를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잘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며, 비위를 맞추는 좋은 말만 하고 정작 중요한 문제는 피했다.
이런 ‘거짓’은 주변이 평온해졌다고 느끼게 만들었고, 자신도 마치 매사에 사람을 이해하고 선하게 대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여전히 ‘오만’과 ‘자만’이라는 이 두 가지 나쁜 것에 농락당했음을 발견했다. 진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상대가 안 좋다고 생각했던 점이 실은 나 자신이 이 방면에서 닦아야 할 집착이 있었던 것임을 보게 됐다. 그런데도 나는 모든 문제를 상대방 탓으로 돌렸고 자신을 잘 안으로 찾지 않았다. 수련이 제고되는 환경은 사람 마음을 드러낼 각종 기회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인데, ‘진실하지 못함’으로 일부러 만들어낸 거짓된 평온은 그저 자신과 남을 속인 것에 불과했다.
지금 나는 주변에서 온갖 마음에도 없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경계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당시엔 참고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 불평한 것은 아닌가? 입으로 하는 말 다르고 마음속 생각 다른 건 아닌가? 무의식중에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주어 통제하려 한 것은 아닌가?’ 이것들은 모두 ‘진’을 해내지 못하고 악당의 ‘거짓’이라는 독에 당한 표현이다. 반드시 수련의 기점에 서서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집착이 있기에 이런 ‘진실하지 못한’ 행위가 나타나는지 잘 찾아봐야 한다.
4) 변명하고 모면하며 책임 전가하기
나는 내 어떤 방면의 집착심이 특히 강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진실하지 못함’의 또 다른 구체적 표현이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수련 중 곳곳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법 실증 일을 잘하지 못했을 때 책임을 전가하며 객관적인 원인을 찾고 자기가 노력했음을 강조한다. 심성을 지키지 못해 다른 사람과 다퉜을 때 자신을 억울하게 괴롭힘당한 것으로 묘사한다. 법공부 중 잘못 읽었을 때 늘 변명 한마디를 덧붙여 어색함을 무마하려 하는 등등이다. 만약 이것이 ‘거짓’이고 ‘진실하지 못함’의 체현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나는 그 배후의 집착에 지배당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똑바로 인식해야만 그 배후의 집착을 잡아내고 집착을 버리며 제고할 수 있다.
한번은 딸이 정오에 내 직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나는 별 신경을 안 써서 한 시간 일찍으로 기억했다. 결국 나는 11시에 맞춰 나갔고 한참을 기다려도 딸이 오지 않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딸이 시간을 안 지키는 몹쓸 버릇이 또 도졌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딸의 잘못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잘못됐음을 의식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어쩌면 문제가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돌아가 다시 확인해 보니 내 자신이 시간을 잘못 기억한 것을 발견했고, 마음속으로 나 자신이 꽤 우스웠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딸을 만난 후 딸에게 이 일을 말하자 딸이 말했다. “엄마, 이건 엄마가 잘못한 거라 가볍게 넘어가는 거잖아요. 만약 정말 내 탓이었다면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을 거예요!” 나 자신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랬고, 명분이 있으면 남을 깎아내렸다. 만약 자신에게 이치가 없으면 책임을 각종 ‘어쩔 수 없음’으로 떠넘기며 가볍게 나 자신을 용서했으니, 딸이 나에게 ‘이중잣대’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내 탓은 전혀 하지 않고 모두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여기는 이런 마음으로 어찌 내가 안으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거짓’은 매번 ‘그럴만한 사정’ 배후의 집착을 보호해주었으니, 이 심성이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는가?
3. ‘진’을 닦는 것과 참수련
수련인이 만약 ‘진’을 닦지 않고 ‘거짓’의 해악을 이성적으로 똑바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거짓’의 겉모습에 눈이 멀어 수련 제고의 강력한 걸림돌이 된다. 특히 공산당 당문화에 흠뻑 젖은 중국 사회 환경 속에서 ‘거짓’의 표현은 더욱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수련인으로 하여금 ‘가짜 진’을 ‘진짜 진’으로, ‘위선’을 ‘참된 선’으로, ‘가짜 인’을 ‘참된 인’으로, ‘거짓 수련’을 ‘참수련’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수련인의 노력이 ‘거짓’ 위에 세워졌을 때,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 수련의 홀가분함과 대자재(大自在)는 모든 것을 포기한 후 하소연할 곳 없는 억울함, 원망, 절망으로 변하고 만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사부님께서 각종 환경과 사건으로 나를 일깨워 주시고서야 나는 자신에게 ‘진’이 결여돼 있음을 깊이 인식했다. 공산사령이 중국인에게 끼친 해독과 수련인에게 끼친 해독을 깊이 절감한다.
이 글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4/5129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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