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시골 아낙네로 올해 59세이며, 2002년에 진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1999년 이전에 이미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당시 장터에 가면 연공하며 법을 알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대법이 무엇인지 저는 전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결혼한 지 7~8년 됐고, 오로지 돈을 벌어 살림을 꾸리는 데만 마음을 쏟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같은 마을 사람과 읍내 장터에 갔다가 때마침 파룬궁수련생들이 단체로 연공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큰언니가 맨 앞에 서 있었고 어머니도 그 안에 계셨습니다. 저는 함께 간 사람에게 “저분이 우리 어머니예요”라고 말했습니다. 큰언니도 그곳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저는 큰언니가 그 안에서 연공하는 것이 매우 창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일은 안 하고 병도 없으면서 거기서 연공하고 있으니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연공하시는 어머니는 아주 정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60대이시니 연공으로 몸을 단련해 온갖 병이 다 나으셨으니 오히려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 느낌은 이랬습니다. 두 사람은 제게 법공부를 권하지도 않았고 책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둘 다 제 성격을 알고 있어서, 제가 인정하지 않는 일은 누가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짜 이유는 제 인연이 아직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친정에 갔을 때 침대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펼쳐진 페이지를 무심코 읽었는데, 말하는 이치에 매우 공감됐고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는 책 읽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어째서 당시에는 책 전체를 다 읽지 않았을까요? 결국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1999년 2월 28일 밤 7시 반, 저는 저녁 식사 후 남편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교대하러 갔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새집을 지으려 했는데, 새집 터는 도로 동쪽에 있었고 헌 집은 도로 서쪽에 있었으며 남편은 새집 터 쪽에서 자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가에 도착해 길을 건너려 할 때 남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조등이 아주 밝았는데(전조등이 밝다는 것은 차가 이미 제게 아주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땐 도로에 가로등이 없어 차 속도를 똑똑히 볼 수 없었습니다. 제 느낌엔 차가 오기 전에 건널 수 있을 것 같았고, 당시엔 옛날 도로라 그리 넓지도 않아서 속도를 내어 돌진했습니다. 갑자기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 누군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곧이어 제 몸이 바닥에 쿵 하고 세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고, 왜 나를 치었지.’ 이것이 당시 제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바닥에 엎드린 채 멀지 않은 곳에 자동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나 좀 일으켜 달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는데 차는 곧장 가버렸습니다. 제가 보니 보건소 문이 동쪽에 있었습니다. 평소엔 분명 서쪽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들었습니다. 충돌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보건소 의사가 저를 알아보더니 기겁해서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먼 친척 아주버님이 제 신발을 주워 마을 서기와 함께 저를 맞은편 보건소로 부축해 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 바지 무릎 부분이 동그랗게 닳아 구멍이 났고 그 주위는 불에 그을린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남편도 불러왔습니다. 당시 그들이 저를 부축했을 때 저는 스스로 잘 걸었지만, 잠시 앉아서 120구급차를 기다린 후에는 일어설 수 없었고 다리로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들것으로 저를 차에 실었고, 읍내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복사뼈가 부러진 것으로 나타나 그날 밤 바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철심으로 고정하고 깁스도 했습니다.
밤에 친정 언니, 형부, 여동생, 제부도 모두 왔고, 시댁의 셋째 삼촌, 둘째 삼촌도 모두 왔습니다. 남편은 마음이 여려서 작은 일에도 마음을 못 놓습니다. 결혼 후 제가 그의 기둥이었고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제가 결정했습니다. 제가 수술실에서 수술받는 것이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아 그는 계속 문틈에 엎드려 지켜보았습니다. 수술을 마치니 이미 10시가 넘었는데 셋째 삼촌이 가기 전 남편에게 당부했습니다. “아내 배를 잘 살피게. 만약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 의사를 불러.” 저는 저녁으로 큰 전병 하나를 먹고 좁쌀죽을 두 대접이나 마셔 배가 든든하게 부른 상태에서 막 밥그릇을 놓자마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바닥에 엎드린 채 떨어졌기에 위장이 터졌을까 봐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저는 다리가 아파 밤새 한숨도 못 잤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저는 당시 차에 치여 19.5m나 튕겨 나갔습니다. 수련한 후에야 비로소 그때 사부님께서 이미 저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온몸의 마디가 다 어그러져 보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병원 매트리스는 울퉁불퉁해 누워 있으면 몸이 배겨 죽을 지경이었고, 다리에 깁스를 해 몸을 뒤척이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야말로 형벌을 받는 것 같았고 정말이지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후 생각해보았습니다. ‘온종일 바쁘게 분주히 움직여 무엇을 하려 했던 걸까? 만약 교통사고가 났을 때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퇴원하면 다시는 예전처럼 미련하게 일만 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큰 재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퇴원 후 시어머니는 자신이 모시는 신령인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가 도와주어 안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전 우리 어머니가 파룬궁을 연공하신 덕을 본 거예요.” 비록 그때는 아직 대법 서적을 보지 못했고 파룬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저는 어머니가 파룬궁을 연공하신 후 온몸의 병이 다 나으셨고, 시어머니는 이미 두 번이나 반신불수가 되셨다는 것(증상은 비교적 가벼웠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1999년 ‘7·20’ 이후, 위에서 갑자기 파룬궁을 더 이상 연공하지 못하게 했고 잘못 연공했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에게 “어머니, 텔레비전에서 그러는데 파룬궁 연공하는 사람들이 다 잘못 연공했대요. 이제 연공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승낙하시며 연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정말로 연공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어머니의 오성은 정말 별로였습니다. 법공부도 하셨고 사부님께서 몸도 정화해주셨는데 어째서 곧바로 안 하셨을까요? 제가 어머니보다 먼저 대법을 얻었고 어머니가 연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면 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1년 여름 어느 날, 어머니가 마당 동쪽의 작은 화단에 물을 버리러 가셨다가 무심코 석류나무 아래 이끼를 밟고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4~5일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친정에 어머니를 보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구들장에서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한 채 양손을 뒤로 돌려 구들장 바닥을 짚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괴롭다며 각종 약을 먹었지만 모두 소용없고 밤에 잠도 못 주무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대신해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틀이 지나 저는 다시 어머니를 보러 갔는데, 집 문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마당에 서 계신 것이 보였고 고통스러운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얼른 “어머니, 다 나으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다 나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빨리 어떻게 나으셨는지 말씀해 보세요.” 어머니는 “역시 파룬궁 덕을 보았지!”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돌아간 다음 날, 오빠가 전화를 걸어 둘째 언니를 불러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려 했습니다. 둘째 언니가 집에 옷을 갈아입으러 간 그 틈에 마을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왕씨 둘째 형수가 어머니를 보러 왔습니다. 그녀는 “약 드시는 게 효과가 있나요?” 하고 물었고, 어머니는 소용없다고 하셨습니다. 왕씨 둘째 형수는 “소용없으면 드시지 마세요. 우린 보살펴 주시는 사부님이 계시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얼른 “나 안 먹을 거야. 나 다시 파룬궁을 연공할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사부님께서 다시 어머니를 보살펴 주시어 어머니는 바로 나으셨고, 둘째 언니가 옷을 갈아입고 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쓸고 계셨습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제게 “내가 또 파룬궁 덕을 봤으니, 너 다시는 파룬궁 반대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얼른 “어머니, 안심하세요. 저 앞으로 다시는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을게요. 어머니가 덕을 보신 게 바로 제가 덕을 본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친정에 갈 때마다 어머니가 진상 전단을 보여주셨는데,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었습니다. 원래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고, 공산당은 너무 나빠서 뜻밖에도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특히 ‘예언 중의 오늘’이라는 소책자를 아주 즐겨 읽었습니다.
한번은 가을 수확 전에 친정에 갔다가 돌아가려고 마당 대문에 다다랐을 때, 어머니가 제게 ‘전법륜(轉法輪)’ 책 한 권을 주시며 “집에 가서 이 책을 보거라. 보기 전에 꼭 손을 씻고 입을 헹궈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이것은 불법(佛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알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2~3일 만에 이 ‘전법륜’을 다 읽었는데, 이 책이 너무나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 읽은 후 어머니에게 책을 돌려드리러 가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책 너무 좋은데 왜 진작 제게 안 보여주셨어요?” 어머니는 “진작이라고? 네가 여태 반대했는데 어떻게 보여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는 이 ‘전법륜’을 제게 주셨고, 저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장쩌민을 고소할 때 사악이 가택수색을 하러 와서 제 모든 대법서적 40여 권을 모조리 빼앗아 갔지만, 이 책만은 당시 다른 사람 집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남편에게 “나 파룬궁 연공할래요. 우리 아들 하나뿐인데 요새 아이들은 다 외동이라서 남은 둘째치고, 나중에 내 몸이 안 좋아져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면 번거로워져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반대하지 않으며 “당신이 연공하고 싶으면 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사부님의 공법교육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왔고, 이렇게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집 텔레비전을 켜고 사부님을 따라 연공을 배웠습니다. 처음 30분 동안 포륜을 할 때, 막 절반쯤 하자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고 설사가 나올 것 같아 끝까지 다 마치지 못하고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제 만성 위장염이 깨끗이 다 나았습니다. 예전에는 물을 마실 때 입이 델 정도로 뜨겁게 마셔야 했고, 물이 안 뜨거우면 마신 후 배가 아팠습니다. 하지만 수련한 후에는 여름에 수박을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아팠습니다. 저는 8~10년 동안 여름에 수박을 감히 못 먹었는데, 먹자마자 바로 배가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제가 매일 밤 연공을 했기 때문에 남편은 침대에서 듣기 좋은 연공 음악을 들으며 곧바로 꿈나라로 빠져들곤 했습니다. 남편은 불면증이 있어서 평소 잠들기 아주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 한참 누워 있다가 제게 “당신 왜 아직 연공 안 해?” 하고 물었습니다. 어느새 남편의 불면증이 완전히 나아 그도 혜택을 본 것입니다.
제가 진정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랫입술에 갑자기 하얀 종기가 가득 났습니다. 당시 자신을 진정한 연공인으로 여기지 못해 약을 쓰기 시작했는데, 온갖 소염제를 다 마시고 외용약을 바르고 민간요법까지 썼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게다가 입술이 헐기 시작해 종기 구멍이 아주 깊어졌고 밥 먹기도 무서웠으며 물을 마셔도 아파서 정말 큰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에야 병원에 있을 때 큰언니와 다투며 사부님 성함을 함부로 불렀던 것이 업을 지은 것임을 떠올렸고, 저는 얼른 엄정성명을 써서 사부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효과가 있어 사부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셨고, 며칠 안 지나 입이 다 나았습니다. 제자를 대신해 감당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저는 이렇게 좋은 법을 얻었으니 저 혼자만 혜택을 볼 게 아니라 남에게도 알려야겠다고 깨달았고, 이에 저는 친한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마을의 한 부녀자가 인후염에 걸렸는데 약물 알레르기가 있어 일도 안 하고 집에서 요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매우 총명하니 어쩌면 법을 얻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밤에 남편을 시켜 그녀 집에 진상 소책자를 가져다 두게 했으며, 그녀가 틀림없이 볼 거라고 여겼습니다. 며칠 뒤 길에서 그녀가 진상 소책자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녀가 책자를 봤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녀 집에 찾아가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하는 데 기적 같은 효과가 있으니 파룬궁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읽어보고 만성 위장염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 약도 안 써요.” 인연이 닿았는지 그녀는 ‘전법륜’을 읽겠다고 승낙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책을 보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 하고, 첫 번째 읽을 때는 반드시 멈추지 말고 이어서 읽어야 하며 누워서 봐선 안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현재 그녀 역시 확고한 대법제자가 됐고 우리는 다 함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빛나는 대도를 걷고 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결국 그 교통사고 덕분입니다. 큰 업을 소멸했고 전화위복이 되어 만고에 만나기 힘든 이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얻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막 법을 얻었을 때의 상태를 되찾아 이 마지막 길을 안정적으로 잘 걸어가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제자를 내내 보살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1/5070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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