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70대 여성 대법제자이고 직업은 변호사다. 2012년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는데, 초기에는 그저 병을 고치고 건강해지기 위해서였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몸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고, 20여 년간 맞았던 인슐린 주사를 끊게 됐으며, 초고도 근시였지만 안경도 더는 쓰지 않게 됐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비범함과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다.
1. 수련생 구출에 참여하다
비록 늦게 법을 얻었지만, 정법의 거대한 흐름은 나를 정법 수련 속으로 이끌었다. 2013년부터 수련생 구출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노수련생의 협조를 받아 직업적 특성을 살려 박해받는 수련생 구출 사건을 대리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저 수련생을 접견해 구출 소식을 전하고 사건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이었다. 이를 통해 곤경에 처한 수련생이 자신의 누락과 집착을 찾아 제때 바로잡고 수련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도록 일깨우고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으며, 가족들이 구출에 동참하도록 격려했다. 사건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담당 경찰에게 변호사 의견서를 썼고, 박해받는 수련생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실제 사례를 들어 사건 담당자에게 알렸으며, 담당자의 양심을 일깨워 박해에 가담하지 않도록 했다. 나쁜 짓을 하면 응보를 받고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것은 천리다.
당시 환경에서 변호사의 개입은 경찰에게 경고와 제약의 역할을 했으며, 심지어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2017년 섣달, 한 수련생의 위임을 받게 됐는데 그녀의 아들이 수련생의 재판을 방청했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됐다. 한 달 뒤 함께 불법 구류됐던 수련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녀의 아들만 돌아오지 못했다. 이유도 몰랐고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건을 맡은 후 즉시 대리 수속을 밟았고 그녀와 함께 관할 파출소로 가서 접견을 요구했다. 서류를 받은 경찰은 말하는 태도가 아주 좋았고 당장 안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자리를 뜬 후 감감무소식이었고 우리를 그곳에 방치한 채 나 몰라라 했다. 여러 번 재촉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섣달 날씨는 몹시 추웠고, 나와 70대 수련생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노인은 방한화조차 신지 않은 채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의 행태를 보고 신속하게 변호사 의견서를 작성해 그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당신들의 행위는 이미 형법을 위반했고 불법 감금죄에 해당합니다. 만약 오늘 접견을 안배하지도 않고 사람을 풀어주지도 않는다면, 가족은 고소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번 일은 내게 큰 격려가 됐다. 정의로운 변호사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나는 당당하게 수련생을 구출하고 경찰이 대법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일을 했다. 수련생을 대리하는 사건은 하나같이 무죄라는 대리 의견을 냈고, 신문출판서의 50호령 문건과 공통자(2000) 39호 문건 복사본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적절한 시기에 담당 경찰과 판사에게 제공해 파룬궁 서적과 자료가 불법이 아니라는 근거를 알려주었다. 파룬궁은 사교(邪敎)가 아니며, 신앙은 자유롭고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경찰은 다들 이해했고 가혹하게 굴지 않았다.
또한 대법제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수련인의 권리를 지킬 신심과 용기, 능력을 갖춘 것은 속인 변호사에게는 없는 것임을 깊이 체득했다. 내가 하는 말에는 파룬따파의 자비와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2. 생사의 고비와 사부님의 보호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조금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법이 부여한 정념과 사부님의 보호, 그리고 수련생의 도움과 가족의 협력 덕분이었다. 나는 그저 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니 절대 하늘의 공을 탐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그마한 기쁨이 있었다. 많은 변호사가 파룬궁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 감히 맡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의롭고 가치 있는 ‘권익 수호’이며, 변호사의 정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 세상 이 한 층차의 법률적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온전한 수련인으로 여기지 못하고 단지 일을 하는 데만 머물러 있었다. 문제에 부딪히면 여전히 속인의 사유와 속인의 관념으로 인식했고, 마음을 닦고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시간이 길어지자 구세력의 독수(毒手)가 뻗쳐왔다.
한번은 한 수련생을 접견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바닥에 고름집이 생겨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됐다. 게다가 이 고름집은 급속도로 커졌고 열흘째 되던 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가족들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혈당 수치가 측정 불가할 정도로 치솟아 케톤산증 진단을 받았고, 두 번이나 위독 통지서가 내려졌다(의식을 회복한 후 가족이 알려줌). 현지 병원에서는 입원을 받아주지 않아 베이징 병원으로 이송됐다.
혼수상태 속에서 나는 목숨을 앗아가려는 귀신 떼를 보았다.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것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고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것들이 사라졌고 나도 안정을 되찾았다. 사부님께서 이 난귀(爛鬼) 무리를 쫓아내시어 내 육신을 지켜주셨고, 다리를 절단하지 않도록 발도 보존해주신 것이다.
2019년 10월 말에 퇴원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사의 큰 난을 넘겼고, 대법이 내게 새 생명을 주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저승문턱에서 인간 세상으로 끌어당겨 주셨으니, 역사는 현대 의학이 해내지 못한 이 기적을 영원히 기록할 것이다!
2022년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수련생에게 듣자니, 우리 지역 A 수련생이 타지에서 일하던 중 2021년 말 사람을 구하다가 현지 경찰에게 납치돼 그 지역 수련생들이 전력을 다해 구출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지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B 수련생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A 구출에 참여해, A의 남편과 함께 사건 발생지로 가서 상황을 파악했다. 구세력은 두 지역 수련생들이 협력해 A를 구출하려 강력한 정념의 장을 형성하는 것을 보고, A의 남편을 겨냥해 흑수(黑手)를 뻗쳤다. A의 남편은 B와 사건 발생지에 다녀온 그날 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A를 구출하는 데 어려움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구세력은 더욱 미쳐 날뛰어, A의 남편이 사망한 직후 적극적으로 구출에 나섰던 B마저 납치됐다.
이처럼 몹시 놀랍고 두려운 정사대전(正邪大戰)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A와 B 두 수련생을 구출해야만 했다. 이 막중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이 내 어깨에 떨어졌다.
하지만 내 나이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고 체력과 기력은 여전히 회복 중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했다! 첫 단계로 A가 수감된 구치소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찾아내, 그녀의 언니를 설득해 A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게 했다. A가 여러 번 사악에게 박해를 받았기에 아들은 감히 어머니를 인정하지 못했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언니뿐이었다. A의 언니는 농촌 사람으로 배운 것이 별로 없어서,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를 데리고 150km 떨어진 구치소로 가서 A에게 돈을 넣어주고 동시에 구출 문제를 상의했다.
현지 C 수련생이 그곳에서 합류해 주었고, 수련생의 협력이 있어 우리 두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구출의 정체를 이루고 악을 제거하는 정체를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돈을 쓰게 하지 않아, 가족이 대법의 좋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했다.
두 번째 단계는 재판 반(反)박해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먼저 A의 언니를 설득해 그녀가 친족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서 동생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해주길 바랐지만, 중공 악당의 위세가 두려웠던 노인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도 동생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랐기에 반복적인 설득 끝에 방청하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그녀의 신분 관계 증명을 돕고 판사에게 연락해 방청을 신청했다. 재판 당일 우리는 함께 방청석에 앉았다.
사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재판은 그저 형식일 뿐이었다. 재판 시작부터 증거 심문까지 모두 시늉만 냈을 뿐 변론은 없었고, 진술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휴정해 버렸으며 오후에도 재판을 속개하지 않았다. 사실 휴정한 이유는 재판이 열릴 때 법원 주변에 많은 대법제자가 발정념을 해 사악이 견디지 못하고 휴정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이었다. 그것들이 기운을 차린 후에야 재판을 이어갔지만, 사악은 우리의 방청 권리를 박탈했다.
현지 공검법(공안·검찰·법원)은 공을 세우려 A를 ‘중대 사건’으로 취급하고 가중 처벌해 9년형을 억울하게 선고했다. 심지어 2022년 설이 지난 후 A를 감옥으로 보내 박해할 때 구치소는 가족에게 통지조차 하지 않았고, 감옥 역시 인수한 뒤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4년이 지났건만 가족은 끝내 A를 면회할 수 없었다.
3. 제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도록 사부님께서 성취시켜 주시다
A는 구치소에서든 감옥에서든 처음부터 끝까지 사악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A는 대법제자이므로 사악이 마음대로 박해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4년 동안 A가 일하던 지역의 수련생들은 꾸준히 노력하며 그녀의 행방을 찾았다. 우리는 함께 협조해 감옥과 감옥관리국에 연락했지만, 사악은 A의 이름을 듣기만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회피하고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A를 찾기 위해 그녀의 언니에게 연락해 파출소로 데려가 친족 관계 증명 수속을 밟게 했고, 준비된 개인 정보를 감옥 측에 보내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과정은 말로는 무척 간단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과정은 내 조급한 마음을 없애는 과정이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내가 A의 언니를 데리고 가야만 했다. 마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휴대폰 실명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녀가 쓰는 휴대폰은 커다란 벽돌 같은 구형이라 유심 카드를 두 개 꽂을 수 없었고, 사용 중인 통신 카드마저 자기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효도폰을 하나 사주고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유심 카드를 사라고 일러주었다. 대리점에서 기다리기로 약속했는데 그녀는 대리점을 찾지 못했고, 연락하려 해도 전화가 먹통이었다. 사실 그녀가 일하는 곳에서 대리점까지는 불과 몇백 미터 거리였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그녀를 데리러 갔고, 카드를 개통한 뒤 요금까지 충전해 주었다. 그러고는 이 휴대폰은 오직 감옥 측 전화를 받기 위한 전용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녀가 평소에도 그 폰을 자주 써버리는 바람에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요금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결국 내가 요금을 더 충전해 주어야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그르치는 것이 문제였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녀를 여러 번 찾아갔지만, 매번 장소와 시간을 미리 정해두어도 제때 만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 먼저 가버렸거나, 약속 시간에 이미 자리를 떴거나, 제시간에 오지 않아 꾹 참고 기다려야 했다.
성미가 급한 탓에 번번이 약속을 어기는 그녀를 더는 참을 수 없었고 원망심이 치솟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최소한의 신용도 존중도 없다니! 전생에 무슨 빚을 졌기에 이렇게 사람을 들볶는 걸까?’ 손을 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이런 사람 마음은 A의 구출을 포기하지 않는 C의 이타적인 정신에 완전히 부서졌다. 작년 8월, C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A의 항소를 도우려 한다며, 친족인 언니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항소장은 이미 다 써두었으니 언니를 찾아가 서명과 지장을 받도록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뻗대던 내 사람 마음은 수련생의 사심 없는 경지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수련생을 구출하고 중생을 구하며 정법에 책임지려는 금쪽같은 사명감은 파룬따파의 위덕을 보여주고 있었다. C가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개인의 안위도 돌보지 않으며 수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사심 없이 헌신하는 정신에 나는 깊이 감동했고, 수련의 격차를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당장 A의 언니에게 연락해 항소장을 빨리 마무리해서 서둘러 변호사에게 보내기로 했다.
아마 내 심성이 아직 부족했는지, 이틀 내내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전화를 받지도, 나중에 콜백을 해주지도 않았다.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다. 낮엔 일하고 밤엔 집에 있을 테니 택시를 타고 집으로 찾아갔다. 밤에 나갔다가 문을 잘못 찾는 바람에 결국 허탕을 쳤다. 나는 그 누구도 대법제자가 해야 할 바른 일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낮에 다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저녁에 발정념을 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간청했다. ‘제가 하는 일은 바른 일이고 좋은 일이며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큰 방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가 수련생의 가족을 순조롭게 찾을 수 있도록 사부님, 가지해 주십시오.’
다음 날 낮에 다시 택시를 타고 A의 언니 집으로 갔다. 그녀는 손자 학교에 돈을 내러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묻자, 일터에는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그녀를 현(縣) 시내로 데려가 수속을 밟았는데, 이렇게 오후에 일이 아주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초조했던 마음이 놓였고, 그녀를 격려하기 위해 선물을 사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내주었다.
사부님의 가지하에 일이 기가 막히게 풀렸다. 이를 통해 내가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이 스스로의 사람 마음에 가로막혀서 일이 꼬였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A의 항소가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A 자매가 만날 날도 머지않았다.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하고 나니 단박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맺음말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4년을 되돌아보았다. A가 박해받기 시작해 가족 면회를 쟁취하고 행방을 수소문하며 항소를 돕기까지, 그 과정에서 한 행동과 생각, 느꼈던 복잡다단한 감정들 속에는 심성이 제고되는 수련이 배어 있었다.
이 수련의 여정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조급함을 버리고 무슨 일이든 냉정하게 대법 수련의 입장에 서서 처리하게 됐다. 원망심을 버리고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며 나 자신의 집착과 사람 마음을 찾게 됐다.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일을 할 때 속인의 상태에 부합하며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경제적인 지출이 늘 앞장서야 했다. 우리는 속세에서 수련하고 있고, 수련 속에도 정상적인 왕래가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내 생명은 대법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이 육신도 사부님께서 내게 남겨주신 것이며, 내 모든 것은 대법의 것이다. 내 돈 역시 대법의 자원이니, 정법을 위해 써야 할 때는 반드시 써야만 그 돈이 가치를 지닌다. 예컨대 택시를 타면 시간과 힘도 아끼고, 기사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해 평안을 지키게 함으로써 사람도 구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거다득이 아닌가!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우주의 뭇 신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존재다. 나는 사부님께 엄숙히 약속드린다.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할 것이며, 지금 이 순간부터 심성 수련을 중시하고, 크고 작은 일과 일사일념, 일언일행의 수련에 공을 들이겠다. 대법의 기준으로 가늠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최우선에 두며,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서약을 이행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4/5123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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