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안에서 수련하며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억울함을 못 참는 마음을 없애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단지 수련 중의 작은 깨달음을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자아를 내려놓고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2015년, 나는 5년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원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친척 수련생 집에 얹혀살게 됐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 집의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불쾌해하며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낮에 그가 집에 있으면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들고 공원에 나가 종일 앉아 있었다. 여름방학 때 친척 수련생 소개로 한 수련생의 여동생인 A 선생님(이미 은퇴한 일반인)을 알게 됐다. 우리 두 사람은 협력해 보습 학원을 차렸고 비용은 균등하게 부담하며 각자의 수입은 각자 가져가기로 합의해 마침내 나에게도 다시 수입이 생겼다. 나는 아예 보습 학원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낮에는 교실로 쓰고 밤에는 접이식 침대를 펴고 잘 수 있었다. 비록 1층이고 커튼조차 없었지만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어 매우 만족했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법공부를 했는데, 그 시기 비록 생활은 다소 힘들었지만 사부님의 법이 한 글자 한 구절 내 마음속에 스며들어 마음이 비약적으로 변하고 대법에 씻겨 내면이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여름방학이 지나자 동업하던 A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갑자기 더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매우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학원을 열어 원생이 없을 때는 저와 협력하시더니 이제 원생이 생기니 저와 협력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저는 수련인이니 선생님께서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저는 어떻게 하든 다 괜찮습니다.”

친척 수련생을 만나 이 일을 말하자 친척은 다소 화를 내며 그녀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녀 자신에게도 좋지 않으니 A를 찾아가 잘 말해봐야겠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고 그녀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전법륜’을 펼쳤을 때 이런 구절이 보였다. “그것은 慈悲心(츠뻬이씬)에서가 아니다. 그는 그 명리심(名利心)을 전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慈悲心(츠뻬이씬)이 아예 생길 수 없다.” 나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며 단번에 깨달았고 마음이 활짝 열려 친척에게 말하러 가지 못하게 했다.

월말에 급여를 지급할 때 또 작은 뜻밖의 일이 생겼다. 원래 밤에 지내는 것은 월세를 받지 않기로 했었고 실제로 수업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청소도 나 혼자 도맡아 했는데 이제 와서 월세와 수도 요금, 전기 요금 명목으로 곧장 900위안 정도를 공제한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내 수입은 1천여 위안이었는데 이제 내 손에 들어온 것은 200여 위안밖에 되지 않아 생활비조차 부족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녀가 고등학생은 가르치지 못하니 내년에는 내가 고등학생 원생을 맡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생을 맡아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오래전에 인터넷에 올렸던 구직 이력서는 줄곧 소식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연달아 원래 직장이 있던 지역에서 제의가 들어와 나는 두 지역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기 시작했다. 10월의 몹시 춥던 어느 날로 기억하는데 A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을 대신할 선생님이 이미 왔으니 수업 진도를 인수인계해 주시고 다음 주부터는 안 오셔도 됩니다.” 이때가 돼서야 나는 A가 진작부터 내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원래 직장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쳤고 수입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금의 남편(수련생)을 만나 따뜻한 가정을 꾸렸다. 모든 것이 마치 이미 안배된 것처럼 나는 진작 돌아왔어야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사람의 논리로는 나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으니 이 모든 것은 질서 있는 안배였다. 나중에 A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침대를 보관해 주었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 달라며 완곡하게 사과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고 수련인은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보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진작에 안배해 놓으신 것이므로 자연스러움에 따른다는 것은 법의 기준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 일반인의 논리적 추론에 따라 집착하고 유위(有爲)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내가 남편에게 농담했다. “당신은 A 선생님에게 감사해야 해요. 그녀가 거절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나를 이렇게 순조롭게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2. 오해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마음을 내려놓다

한번은 역시 수련하는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시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연공할 때의 느낌을 말씀하셨다. 나는 시어머니가 기분 좋은 틈을 이용해 예전에 시어머니가 가족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아들이 병업 고비를 겪을 때 나에 대해 오해했던 일을 말씀드렸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여겼던 부분에 대해 시어머니가 관념을 바꾸시기를 바랐다. 뜻밖에도 시어머니는 즉시 안색을 바꾸며 내가 분명 무슨무슨 일을 했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내 마음도 단번에 평정을 잃었고 당시 우리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져 마침 집에 있던 두 아주버니가 모두 달려와 싸움을 말렸다.

나중에 수련생이 나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그걸 붙잡지 못했네요. 온 하늘의 신이 다 보고 계시는데요”라고 말했다.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매우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왜 했다고 단정 짓는 건지, 그것도 말하면 안 되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생이 나에게 “션윈(神韻)의 그 프로그램 보셨어요?”라고 물었는데 (고대 한 고승이 한 여인의 아이를 대신 맡아 길러준 일을 가리킴) 나는 단번에 참음(忍)을 떠올렸다. 같은 수련자라도 각자의 인식이 다른데 시어머니의 심성이 아직 제고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억지로 시어머니를 바꾸려 한들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억지 부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참지 못했을까?! 이는 억지로 변명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병업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시어머니는 모든 걱정과 공포, 두려움을 내게 전가하셨다. 시어머니는 나를 보기만 해도 가슴을 답답해하셨고 아들 몸의 모든 좋지 않은 증상을 다 내가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하셨으며, 내가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는지 상상해내어 수련생들에게 내 험담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그야말로 시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됐다. 당시 나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시어머니도 수련자로서 평소 나에게 매우 잘해주셨고 사람을 몹시 아낄 줄 아셨다. 나는 때때로 친정어머니보다 나를 더 아껴주신다고 직접 말할 정도였으며 스스로 관계가 매우 끈끈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제 180도로 크게 달라지자 나는 마음속으로 놀라는 동시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시어머니에 대해 자라난 정 때문인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본래 아들에 대한 정이 깊었는데 아들이 위기에 처하자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며 자신도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셨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나에게 3개월 동안 연공하지 않았다며 사부님께 수련할 수 있는 곳까지만 가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전법륜)

되돌아보면 남편 수련생에 대해 자라난 내 정 역시 마찬가지로 매우 위험하지 않은가? 그 기간에 수련생들이 전해온 말도 나를 분노하고 억울하게 만들었는데 모두 근거 없는 일들이 퍼지고 있었고, 게다가 2~3년 전의 일이 이렇게 오래도록 잘못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동안 뿌리를 찾지 못해 끊임없이 법공부를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각지 설법10-맨해튼 설법) 나는 한 번 또 한 번 공부했고 구절구절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맞다, 내가 맞고 내가 하지 않았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내 심성이 제고됐는가? 내 집착을 내려놓았는가?’ 내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다.

최근 나는 줄곧 오해받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나에게 억울함을 참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아무리 큰 손해를 봐도 괜찮지만 떳떳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즉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관념을 형성하게 됐고 내가 이 문제를 명확히 인식했을 때 내면의 그 ‘떳떳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철저히 해체됐다. 무엇을 했든 안 했든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보여줄 필요 없이 사부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신께서 보실 수 있으면 그만이며 우주의 이치는 공평하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넓어지고 평온해졌으며 또한 탁 트이고 고요해졌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내성적이고 자격지심이 있는 아이였고 뼛속 깊이 줄곧 인정받고 격려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잘하려고 했다.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나는 마음을 닦는 것의 중요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됐는데, 한 가지 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고 핵심은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 순수하고 바른가 하는 것이다. 마음가짐이 순수하고 바르며 일심으로 사심이 없이 이타적일 수 있고 또 확고부동하다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신께서 사람을 위해 해주실 것이고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해주실 것이다. 일반인을 뛰어넘는 모든 능력은 사부님께서 당신이 해내도록 하신 것이거나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 이루게 하신 것이지 사람 표면의 능력과 신의 능력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심성이 승화되면 낮은 층차의 이치에 제약받지 않게 돼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다. 사실 긍정과 격려를 바라는 것을 깊이 파고들면 역시 명예욕이다. 오직 심성을 높여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진선인에 동화되면 그만이다.

현 단계에서의 작은 인식입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4/51200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8/14/512004.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