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올해 초 몸에 불편한 가상이 일부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수련인에게 있어야 할 상태가 아님을 잘 알았기에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계속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은 채 대법제자라는 이름만 걸고 그럭저럭 날을 보낼 것인가?’ 수련은 보호우산이 아닙니다. 반드시 착실하게 수련해야만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뼈저리게 반성한 끝에 반드시 노력해서 수련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 법공부 상태를 바꾸고 법 암기를 견지하다
저는 9살 때 부모님을 따라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수년간 법공부를 하면서 늘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많은 경우 법이 사람의 이 층차에서 지닌 글자 표면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도 책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깨달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랜 기간 책을 볼 때 눈앞에 흔히 무언가 가로막혀 있는 듯했고 때로는 책을 덮으면 방금 읽은 내용조차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도 법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요. 명혜망에서 갈수록 많은 수련생이 법을 외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고 사부님의 일깨움 아래 저도 법 암기를 시작해 법공부 장애를 타파하고 진정으로 법에 용해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법을 외우는 느낌은 너무나 신묘했습니다. 법 암기를 통해 통독할 때는 깨닫지 못했던 많은 법리를 깨달았고 종종 문득 환히 깨닫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 암기 외에도 통독할 때 되도록 속도를 늦춰 한 글자 한 구절을 머릿속에 새겼습니다. 책에서 잘 알지 못하는 일부 명사에 대해서도 글자 표면의 의미를 최대한 이해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임독(任督) 두 맥이 무엇인지 옥침혈(玉枕穴)의 위치가 어디인지 등을 알아가며 법을 더 잘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20여 년 만에야 비로소 법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갓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2. 관념을 타파하고 연공을 견지하다
연공에 대해 저는 줄곧 별로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늘 며칠 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심지어 오랫동안 연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찾았습니다. ‘수련’ 두 글자에서 ‘수’가 더 중요하니 시간이 나면 책을 더 많이 보겠다며 연공에는 늘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일반인도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다고 느낍니다. 하루가 지나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몹시 피곤해합니다. 저는 시간이 너무 빨리 밀려가 이미 사람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는 초범적이지만 만약 연공이 따라가지 못해 본체 변화가 충분하지 않으면 역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겉으로는 매우 피곤하거나 불편함을 느끼고 심지어 정신을 차려 정진하며 착실하게 수련하기조차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염병 기간 주변 일부 수련생들에게도 정도는 다르지만 ‘인후통’, ‘발열’과 같은 가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수련생인 제 아버지는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고, 또 다른 80대 수련생은 온 가족이 전염병에 걸린 상황에서도 아무런 방호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런 수련생이 적지 않았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그들은 대부분 다년간 매일 연공을 견지해 온 분들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을 견지하는 것 역시 제가 관념을 타파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밤 12시에 발정념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이후 새벽 3시가 넘어 일어나 연공하고 낮에는 출근하며 아이를 돌봤습니다. 때로는 ‘잠이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참지 못하고 수면 시간을 계산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또한 ‘○○ 수련생은 그렇게 정진하는데도 나보다 더 많이 자는데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하는 생각도 끄집어냈습니다.
사부님께서 ‘북미 제1기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이 공을 어떻게 전하라면 당신들은 그렇게 따라서 하라. 보증하고 해로운 점이 없고 오로지 좋은 점만 있을 뿐이다.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연공하니 온몸이 가벼워져 하룻밤 자지 않아도 피곤한 감이 없고, 온몸에 힘이 솟는다고 말할 뿐이다. 하루 일을 끝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이렇지 않은가?”
대법제자는 사람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매일 적어도 몇 시간은 자야 한다는 것이 사람의 관념 아닙니까? 이른바 졸리고 피곤하다는 느낌은 교란이 아닙니까? 정진하는 다른 수련생이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있는 걸까요? 정말로 확고히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이토록 명백히 말씀하셨는데 가장 기본적인 연공조차 견지하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수련인은 고생을 낙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관념을 바꾸지 못하고 사람 속의 안일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점을 깨닫고 나니 연공을 견지하는 것은 더 이상 돌파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사부님의 격려와 보호도 자주 느꼈습니다. 때로는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시간이 되면 저절로 잠에서 깼습니다. 가부좌할 때는 이따금 마치 달걀 껍데기 속에 앉아 있는 듯 느껴져 손발이 어디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이 따라가자 발정념의 변화도 매우 뚜렷했습니다. 예전에는 15분 동안에도 자주 마음을 고요히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발정념 효과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염력을 집중해 ‘멸(滅)’ 자를 염할 때면 이마가 팽팽해지고 시큰한 느낌이 자주 들었으며 온몸이 에너지로 감싸여 사상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는데 아들이 제 주위에 덮개 같은 것이 있고 그 덮개 위에서 큰 원이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아이의 입을 통해 저를 격려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3. 휴대폰 중독을 끊다
저는 한때 오랫동안 휴대폰 보기에 집착해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몰아보곤 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관련 앱을 지우겠다고 수없이 결심했으나 얼마 못 버티고 다시 설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뻔히 알면서도 좀처럼 돌파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구세력은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 이 방면에서 많은 배치를 해놓았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만화도 즐겨 봤습니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서점을 운영해 많은 순정만화와 연애소설을 읽었는데, 이것들이 저의 색욕과 각종 사람 마음을 가중시켰고 머릿속에 강대한 사상업력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교란하고 가로막았으며 저를 인터넷이라는 마굴에 빠지게 해 정진하려는 의지를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명혜방송의 ‘휴대폰 중독을 끊고 수련의 초심을 되찾다’를 진지하게 들은 이후 저는 다시 한번 휴대폰 속 앱을 삭제하고 반드시 휴대폰 중독을 없애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결심을 보셨는지 참으로 신기하게도 좀처럼 버리기 힘들다고 여겼던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몰아보는 중독이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있던 아주 커다란 물질 한 덩어리를 없애주셨음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4. 근본 집착을 깊이 파헤치다
예전에도 저는 여러 차례 제 근본 집착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근본 집착이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삶을 동경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법 암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수련에 들어선 과정을 처음부터 차분히 되짚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대법에 들어선 때부터 훗날 저 스스로 수련을 결심하기까지 과정을 돌이켜보며, 저는 제 근본 집착이 대법 수련을 통해 내면이 강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포륜을 할 때 머릿속에 문득 ‘평온을 구하다’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알고 보니 저의 근본 집착은 법 속에서 보호받으며 평온을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을 통해 인간 세상의 고해에서 벗어나 명·리·정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기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으면 매우 평온하고 안심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대법이 사람의 지혜를 열어줄 수 있음을 알기에 수련을 통해 자신이 더 지혜로워지기를 바랐습니다.
얼마나 강렬한 추구하는 마음입니까! 수련에서의 표현은 한결같이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고생을 겪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두려운 마음과 부정적인 사유가 아주 심해 작은 일에도 크게 당황하며 무의식적으로 나쁜 쪽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심지어 일반인보다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연공할 때 두려운 마음이 영문도 모르게 솟구쳤는데 무척 강렬했습니다. 제가 노력해 배척하던 중 갑자기 한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사(私)’였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전하지 못한 행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했고 저 자신이 평온한 생활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근본 집착을 인식하고 제거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그것이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집착심과 각종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를 키워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강렬한 구하는 마음을 품은 채 어떻게 진정으로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진정으로 근본 집착을 제거해야만 사람 관념을 타파할 수 있습니다.
5. 어린이 대법제자를 이끄는 과정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아들은 올해 9살로 제가 예전 수련에 들어섰던 바로 그 나이이며 역시 한 명의 어린이 대법제자입니다. 오늘날 중국 사회의 교육제도는 왜곡돼 초등학교 때부터 누구나 치열한 경쟁에 내몰립니다. 이런 격류 속에서 만약 법의 요구에 따라 대하지 못하고 이성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쉽게 휩쓸려 일반인의 불안감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는 매주 아이와 함께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주중에도 되도록 매일 밤 온 가족이 함께 법공부를 합니다.
전염병 때 아들이 한밤중에 고열이 났습니다. 당시 제 마음이 별로 안정되지 않아 머릿속에 일반인의 각종 간호 지식과 안마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깨어 물을 마시는 틈을 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우리 안마받으러 갈까?” 아들은 침대에 기댄 채 아주 또렷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대법제자가 어떻게 보통 사람의 말을 들어요!”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난 학기에 아들은 한 학기 내내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마음속에 어렴풋이 한 가지 일념이 떠올랐습니다. ‘학기가 곧 끝나가는데 제발 어디 아프면 안 될 텐데.’ 이 바르지 않은 일념 때문에 아들은 기말고사 전날 밤 고열이 났습니다. 아이는 밤새 사부님 설법을 들었는데, 사부님께서 고생을 겪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눈을 감은 채 갑자기 아주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아이의 체온이 몹시 높을 때 저는 또 참지 못하고 수건을 가져와 물리적으로 열을 내려주었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깨어나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 병에 걸린 거예요?” 저는 “아니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몹시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저는 즉시 제가 잘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아침 7시가 넘도록 아들의 열이 내리지 않았는데, 제가 다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아이는 몹시 확신에 차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전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몇 분 뒤 아이 열이 내렸고 정상적으로 등교했습니다. 저는 어린이 대법제자의 순수함과 오성에 기뻤고, 저 자신의 부족한 오성과 무거운 사람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아이에 대한 아주 무거운 정, 문제에 부딪혔을 때 바른 사유로 대하지 못하는 점, 사부님과 법을 충분히 믿지 못하는 점 등 저 자신의 수많은 집착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어린이 수련생 수련마당’을 듣다가 흥분해 제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이야기 하나를 들었는데 예전에 제가 들려준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조용히 듣다가 그것이 알고 보니 20여 년 전 제가 아직 어린이 수련생이었을 때 썼던 학교 내 진상 알리기 이야기임을 알게 됐습니다. 많은 세부 내용은 제가 이미 잊고 있었는데 오늘날 뜻밖에도 제 아이와 함께 듣게 되니 수련 초창기 법에 흠뻑 젖어 있던 순수했던 마음가짐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신묘한지요! 저와 아들은 모두 조금 감격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수련을 잘하고 어린 대법제자를 잘 이끌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이가 대법제자 가정에 태어난 것은 바로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니, 아이가 성장하도록 곁을 지키며 대법 속에서 함께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6. 맺음말
수련의 길에서는 단 한 치의 느슨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20여 년 동안 저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때로는 제가 신수련생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제자는 오로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착실한 수련을 다그치며 법공부를 잘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부님의 성은에 머리 조아려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1/5087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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