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해 몸과 마음이 지쳤고 건강도 아주 나빴습니다. 법을 얻은 이후 대법은 원망이 가득하고 우울했던 저를 마음이 넓고 매사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법을 얻다
저희집은 형제자매가 많았는데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저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늘 제가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고 손님에게 말했고 어렸던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사실 저는 집에서 가장 많은 일을 했습니다. 집안일은 기본적으로 제가 다 했고 온 가족의 빨래도 제가 했습니다. 특히 겨울에 석탄을 땔 때는 직접 연탄을 빚어야 했는데 차가운 연탄을 만들다 보면 손이 얼어 거의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저희집 근처에 석탄을 운반하는 하치장이 있었는데 매번 석탄이 깨끗하게 치워지지 않아 석탄을 때는 많은 집에서 그곳에 가 석탄 찌꺼기를 쓸어 왔습니다. 가족에게 칭찬을 받고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저는 매번 석탄을 가장 많이 쓸어 왔고 아무도 저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집은 밖에서 석탄을 산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가장 많이 맞고 욕을 먹는 사람은 여전히 저였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 직장이 좋지 않아 힘들고 고됐지만 저는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제 반대를 무시하고 지금의 남편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셨는데 결혼 후 생활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농촌 출신으로 이기적이고 지저분했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몰랐습니다. 저희 둘은 자주 싸웠고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딸을 낳았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에 시어머니는 딱 한번 저를 보러 왔을 뿐이었고 남편은 하루 세끼 제때 밥을 차려주지 않아 저는 자주 배가 고파 위장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원망심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사람을 돌볼 줄 모르고 돈이 생겨도 저에게 고기반찬 하나 사줄 줄 모르며 결국에는 돈마저 잃어버렸다고 원망했습니다. 시아버지는 근처 장터에서 닭을 팔다가 자주 저희집에 들러 식사를 하셨는데 저는 산후조리 중이었음에도 닭은커녕 달걀 하나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저희집에 오자 남편은 고기를 사 와 만두를 빚었습니다. 제가 힘들게 다 만들어서 내어주자 남편 식구들은 신나게 먹으면서 만두를 빚고 밥을 차리느라 분주했던 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한번은 제가 실수로 문을 밀다가 문 뒤에 있던 시아버지와 부딪혔는데 남편은 다짜고짜 다가와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제가 고의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아이를 안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음속의 분노와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자주 화를 냈고 인생이 참으로 너무 고달프다고 여겼습니다. 거기에 산후조리 기간에 생긴 위장병까지 겹쳐 제 몸은 점점 망가졌고 해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몹시 수척해 보였으며 걸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도 별 효과가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에 가 부처님께 빌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후 한 친척이 제 모습을 보고는 “책을 한 권 줄 테니 한번 읽어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법서적 ‘전법륜(轉法輪)’ 보서를 모시게 됐습니다. 절반쯤 읽었을 때 저는 속으로 ‘나는 대법제자가 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전법륜’을 다 읽고 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몸에 기운이 생겼습니다. 멀리 있는 것도 아주 또렷하게 보였고 노안도 나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법을 얻어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변화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법은 중공 악당의 박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에 가 법을 실증하다가 현지 경찰에게 끌려와 현지 파출소에 갇혔습니다. 경찰이 서명을 강요했지만 제가 서명하지 않자 그들은 제 남편을 불렀습니다. 남편은 다짜고짜 다가와 제 뺨을 세게 후려쳤습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맞아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보름 동안 불법적으로 구금됐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저를 집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저는 이불 한 채를 짊어지고 길을 나섰는데 돈 한 푼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시 제 마음속에는 법이 담겨 있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예전 이웃집의 낡은 단층집에 세 들어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이런 상황에서도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집안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엉망이 되자 저를 다시 집으로 불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저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았고 그를 관심으로 배려했습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남편의 일상을 보살폈고 문제가 생겨도 남편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몇몇 나쁜 습관에 대해서도 더 이상 탓하지 않고 안으로 자신을 더 많이 수련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동생들이 자주 집에 와서 밥을 먹었는데 저는 그때마다 열성적으로 대접했습니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병이 났는데 남편의 형제들은 모두 돌볼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평소에 출근해야 했기에 제가 시아버지를 돌보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시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시아버지는 농촌에서 혼자 살고 계셔서 생활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불편함을 극복하며 시아버지의 빨래를 하고 밥을 지었으며 밥과 세숫물을 침대 앞까지 가져다드리며 성심껏 시아버지를 보살폈습니다. 그사이 시동생이 집을 짓게 돼 동서가 밥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불렀을 때도 저는 아무 말 없이 바로 갔습니다. 그 때문에 시아버지는 마음이 편치 않아 하셨습니다. “너는 날 돌보러 우리집에 왔는데 저 녀석들은 날 돌보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너한테 밥까지 하러 오라고 하는구나!”
이후 병원 치료를 편하게 받으시도록 시아버지를 저희집으로 모셔 와 돌보았는데 여러 차례 입원하셨을 때도 늘 저 혼자서 병상을 지켰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이 남아 있어 지금처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좋다고 자주 말씀하셨고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더니 완전히 딴사람이 돼 친딸보다 자신에게 더 지극정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남편도 수련 후 달라진 저의 언행을 통해 진심으로 대법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경찰이 집에 찾아와 박해할 때 예전에는 남의 말만 무턱대고 믿던 남편이 이제는 경찰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제 아내가 연공해서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데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제가 납치됐을 때도 남편은 수련생들과 협력해 적극적으로 저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남편에게 진상을 알린 덕분에 남편도 중공의 진면목을 철저히 꿰뚫어 보게 됐습니다. 직장에서 남편에게 입당하고 간부로 승진하라고 요구했지만 남편은 거절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여전히 간부로 승진했는데 이것이 바로 대법의 위력입니다.
이후 어머니가 병이 나 세상을 떠나기 전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 계셨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통해 어릴 적부터 쌓여왔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았고 돌아가실 때까지 병상 곁에서 정성껏 보살펴 드렸습니다. 대법 수련은 제가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했고 저를 완전히 환골탈태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사람을 구하다
사부님의 법은 제가 사람 구하는 일의 중요성과 긴박함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저는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짝을 지어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자주 다녔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번은 한 어르신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어르신은 몹시 공감했습니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이전에 ‘9평 공산당’을 받아 모두 다 읽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어르신에게 다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묻자 어르신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했습니다. “정말 잘 썼어요! 어떤 대단한 분이 이 책을 쓴 겁니까? 70~80%는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그건 나머지 20~30%를 어르신이 아직 보지 못했고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또 한번은 농촌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가 진흙탕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 했는데 마침 인근 집에서 사람이 나와 진상 자료를 받아 갔기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진흙탕을 살펴보니 안의 진흙이 이미 마른 것 같았고 잡초 잎사귀도 조금 있기에 발을 내디뎌 걸어갔는데 밟으니 푹신푹신했습니다. 막 빠져나오자 그곳에 앉아 있던 마을 주민 몇 명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거기서 걸어왔어요? 거긴 진흙탕인데 거기에 빠지면 우리도 당신을 끌어내지도 못해요!” 당시 저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고 속으로 ‘신발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숙여 보니 신발 윗면이 깨끗했고 신발 옆면에도 진흙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즉시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제자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제자는 감사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16/5076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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