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음’에 대한 재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샤오디(小菂)

[명혜망] 나는 1999년 ‘7·20’ 이전에 입문한 대법제자로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다. 최근 2년 동안 사부님의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 중의 한 단락 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내가 향상하고 승화해야 할 방향도 보게 됐다. 비록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느낌을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에 적어본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에서 말씀하셨다. “속인의 선량함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취하는 업을 짓지 않는 데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다른 사람의 악(惡)에 대해 따지지 않으며, 마음속에 증오를 품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고의로 보복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으며, 무고한 것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고의로 생명을 손상하지 않는 데 있다.”

이 20여 년의 수련 중에 이 단락의 법을 너무나 많이 배웠지만 줄곧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스스로 비교적 선하게 수련했다고 여겼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갈수록 선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친척과 친구들도 실제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히려 이 법을 충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원인이 됐다. 특히 예전에는 뜻밖에도 줄곧 이 법 중의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음’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음’으로 착각하고 휙 지나쳐버리기도 했다.

그 당시 법공부를 하며 나는 깨달았다. 연공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먼저 따지지 않아야 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할머니의 옷이 걸렸던 일과 빠르게 달리던 운전기사에 관해 말씀하신 사례처럼 말이다. 이 사례는 수련의 문에 갓 들어선 나에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게 해줬다. 또한 갈등 속에서 수련인은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우리의 수련을 돕고 선함을 닦아내도록 성취시켜 주는 것임을 나도 알고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줄곧 너그러움을 닦아내고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 정도면 선함을 닦아낸 것이라고 여겼다.

2년 전 다시 한번 이 단락의 법을 읽었을 때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음’이라는 구절의 ‘악(惡)’ 자가 눈에 확 띄며 나에게 강렬한 충격을 줬다. 나는 그제야 이 법에 대한 내 이해가 편파적이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의식했다. 뜻밖에도 나는 사상업력의 눈가림 속에서 사부님의 법에 대한 개념을 슬그머니 바꿔치기했던 것인데 슬프게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알지 못했다. 과거에는 줄곧 스스로 법공부가 마음에 닿았고 법 안에서 제법 정진하며 수련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악’ 자는 내 수련의 부족함을 보게 했고, 최근 몇 년간 내 수련이 병목 현상에 빠진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자아를 전부 내려놓지 못한 채 진정한 선함을 닦아내지 못한 데 있다는 것을 갑자기 보게 했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완고하고 미련한 날 일깨워주시며 이 구절을 보여주신 것으로 나는 마땅히 향상해야 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음’에 비해 선의 경지가 훨씬 높다. 무슨 원인이든 간에 어쩌면 당시 내가 있던 층차의 한계에 부딪혔을 수도 있고 법공부를 충분히 정성껏 하지 않아 사상업력이 빈틈을 타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로 인해 나는 당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음’이라는 층차에 머물러 있었으니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음’이라는 방면에서는 수련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

젊었을 때 나는 몹시 독단적이었고 말재주가 좋았으며 이치에 맞으면 남을 봐주지 않았기에 참으로 선량하다고 볼 수 없었다. 수련 후 법 안에서 점차 자아를 내려놓고 점차 어느 정도의 선함을 닦아냈다. 하지만 악의적인 상처를 받을 때 자신이 연공하는 사람임을 알고 선과 인(忍)을 닦아야 함을 알면서도 흔히 속인의 인(忍)에 머물렀다. 표면적인 감정은 굳이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파문이 일곤 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내 자신이 선함을 닦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인식했다. 사실 이 역시 내가 층차를 제고해야 할 때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악에 대해 따지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계속해서 제고해야 할 방향이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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