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아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진수제자가 되자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퇴직 후 집에 있는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중학교 시절 외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신체에 장애가 생겼고, 이후 심한 불면증과 저혈압까지 겹쳐 어린 나이에 이미 병약한 몸이 됐습니다. 1998년 하반기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들을 수 있는 인연을 얻었고, 1999년 초부터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수련에 진정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불과 한 달여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를 하기 전, A 수련생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줄곧 그녀의 앉는 자세가 다소 경직돼 보인다고 생각했고, 연공 동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B 수련생이 방금 제 앉는 자세를 교정해 줬어요”(제가 십 대 시절 목 부분에 외상을 입어 어깨와 목을 늘 이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라고 말하며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A 수련생이 참고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A는 그 말을 듣고 별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때 정념을 발할 시간이 됐습니다. 그 무렵 수련생들은 줄곧 베이징의 사악한 소굴에 대해 정념을 발하고 있었는데, 15분간의 정념이 끝난 후 저는 한마디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향해 정념을 발하셨나요?” 제 본의는 베이징을 향해 정념을 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옆에 앉아서 정념을 발하는 내내 졸고 있던 A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습니다. “당신은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예요?!”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내가 모두에게 물어본 건데, 당신한테만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저는 놀라서 이 수련생을 보았다가 저 수련생을 보며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내가 그녀한테 한 말인가요?’ 그녀는 이어서 또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군요!” 자리에 있던 다른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분이 원래 말이 그렇거든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마침 체면도 제거할 수 있고요.” 보아하니 자리에 있던 수련생들 모두 오해한 것 같아 저는 설명하지 않기로 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 가르치기 좋아한다’는 말에 저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상에 A이야말로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교사 출신이라 직업병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째서 남 가르치기를 좋아한다는 것인가요? 저는 자신이 수련을 잘하거나 깨달음이 높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남 가르치기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당시에도, 그리고 한동안 안으로 찾을 때도 이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명혜주간’을 받지 못했는데 제 손에 있는 다른 자료가 많아서 그것부터 배포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다음 날 시간이 있어서 한 연로한 수련생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내일 수련생 집에 가서 주간지를 가져오세요, 저는 시간이 없거든요”라고 하면서, 몇 시에 가면 좋을지도 일러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제가 수련생 댁에 들어서자마자 그녀가 물었습니다. “주간지 가져왔어요?” 저는 “아니요, 당신이 가져온 줄 알았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제가 가니 수련생이 또 물었습니다. “주간지 가져왔어요?” 저는 “당신이 가져온 줄 알았어요!”라고 했고, 수련생은 “저는 당신이 가져온 줄 알았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당신이 가져오기로 하지 않았나요?”라고 하자, 수련생은 “잘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 제가 가져올게요”라고 했습니다.

이후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저는 분명하게 말했는데 수련생은 못 알아들었습니다. 무조건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요? 저는 ‘내 손에 다른 자료가 많고 당신 것은 적고, 집안일도 적으니 이번엔 당신이 시간 내어 가져오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수련생 손에 자료가 많든 적든 수련생이 짊어진 압박은 같으며, 그 연로한 수련생의 압박도 결코 작지 않고, 그분도 능력이 있다면 더 많이 배포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요? 제가 그 수련생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그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거짓 자아가 아닌가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자료를 많이 배포했다고? 잘하는 수련생과 비교하면 훨씬 적지 않아? 자료 좀 배포한다고 주변 수련생들이 널 중심으로 돌아야 해? 정말 시간이 없어서 주간지를 가져올 수 없었어?’ 수련에는 큰일 작은일의 구분이 없고 오직 심성의 높고 낮음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사람 마음이니 당연히 제거해야 합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되짚어 보았습니다. 제가 A의 동작을 교정해 줄 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을수록 저는 더욱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말로 B 수련생이 제 연공의 20여 년간 습관이 돼버린 잘못된 앉는 자세를 짚어줬다고 느꼈고, 사부님께서 ‘허리를 곧게 펴고 목을 바르게 하며 아래턱은 약간 당기고’(대원만법-2. 동작도해)라고 요구하셨기에 가슴을 폈는데 사실 어깨와 목이 이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A가 받아들이지 않을수록 저는 더 많이 말했고, 어느새 말투도 좋지 않아지면서 쟁투심도 꿈틀거리기 시작했으며, 마음속으로는 ‘이건 좋은 일인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뿌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았고 오히려 밖으로 찾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약간의 낙담이 들었는데, 사람 마음과 집착을 찾은 후에 느끼는 환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그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에 시어머니 댁에 가야 했는데, 도착하니 시어머니께서 남편이 사온 과일이 맛없다고 투덜대셨습니다. 사실 남편은 식품을 살 때 줄곧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고,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비싸다고 투덜대는 경우였는데, 오늘은 유달리 사례를 들고 비교해가며 과일이 얼마나 맛없는지를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점심 때도 그 얘기를 하시더니, 저녁 식사 전에도 또 말씀하시고, 급기야 제 방까지 찾아오셔서 그 얘기를 또 하셨습니다. 이거야말로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A와의 그 장면이 그대로 재현됐습니다. 다만 제가 맡은 역할이 바뀌었을 뿐, 시어머니께서 열심히 제 역할을 연기하셨고, 저는 A처럼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언짢은 말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몹시 억울해하시며 혼잣말로 “내가 널 이렇게 화나게 할 줄 몰랐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시어머니에게 화를 낸 것이 스스로도 매우 후회스러웠습니다. 어른에게 너무 무례했고 전통적인 생각이 너무 부족한 것만이 아니라, ‘진선인’의 기준과도 훨씬 더 거리가 멀었으며, 대법제자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으니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왜 화가 났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화가 난 이유는 과일이 맛있고 맛없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께서 저에게 그분의 인식과 의견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A가 화를 낸 이유를 찾은 것이 아닌가요?! 저는 남에게 저의 인식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며, 이는 명백히 공산당 당문화 속의 ‘통제’입니다. 마침내 뿌리를 파헤쳤고, 이번에는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사부님, 자비로우십니다! 제자는 감사할 뿐입니다! 제자가 너무 어리석어 너무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수련생과 가족 여러분, 저를 높여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안으로 찾는 동시에, 법(法)도 저에게 ‘허리를 곧게 펴고 목을 바르게 하며 아래턱은 약간 당기고’(대원만법-2. 동작도해)는 또 다른 차원의 법리를 보여줬습니다. 하루 안에 사람 마음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의 그 고통, 집착을 내려놓은 후 법리가 드러날 때의 그 기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말후(末後)에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후에 세상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대법 내부도 청리(清理)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이 경문을 막 받아들었을 때 팀에서 법공부를 하면서 한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고, 가짜로 수련하는 게 아니에요.” 제 개인적인 이해로는, 수련인으로서 안으로 찾지 않는다면 진정한 수련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곧 가짜 수련 아닌가요?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사상에서 행동까지 모두 우주의 특성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이 말법 최후의 순간에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착실히 수련하고, 대법으로 자신을 정화해, 자신에게 유감을 적게 남기고 사부님께 더 많은 위안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이상은 저의 최근 수련 체험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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