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지금까지 걸어오며 수많은 비바람과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기 속에서 자비롭게 제도해 주시고, 갈등 속에서 자비롭게 일깨워 주시어 제자가 길을 잃고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나는 남편과 얽힌 천년의 은원(恩怨)과 정한(情恨)이 수련의 사다리로 승화된 과정을 서술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나와 남편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기이하지만, 가시밭길로 가득한 진실한 경험이다.
1997년, 나는 크나큰 영광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들어서며 나의 수련 길을 시작했다. 99년에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한 후, 나는 먼저 구치소에 두 달 넘게 불법 감금됐고, 2001년에는 또 세뇌반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남편은 매일 세뇌반에 나를 보러 왔고, 줄곧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곁을 지켰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내게 너무 잘해준다고 칭찬했다. 정(情)과 색(色)은 수련인의 마음을 가장 잘 교란할 수 있다. 수년간 몸과 마음으로 감당했던 거대한 압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심신이 극도로 지쳤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았지만, 정신이 무너져 한 걸음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했다. ‘사부님, 더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피곤합니다.’
나는 타협했고 며칠 후 세뇌반을 떠났다. 그 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을 집에 가둔 채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예전의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1998년 어느 깊은 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남편은 곁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그의 사유와 연결됐다. 그는 먼저 나에 대한 깊은 원망심을 서술했는데, 마지막 한 마디는 지금까지도 뼈에 사무친다. ‘나는 반드시 이 수련인을 끌어내리고 말 거야!’ 나는 당시 깜짝 놀랐다.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편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는데, 방금 전 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예지하시고, 내가 고비를 넘기지 못할까 봐 미리 이 모든 것을 알게 해주신 것인데, 나는 여전히 정과 색에 미혹돼 넘어가고 말았다. 구세력은 틈만 나면 파고든다. 혹형과 고통만이 고비와 시련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각종 관심, 보호, 사랑 등은 더욱 또 다른 형태의 시련이다. 날뛰는 악인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부모 형제, 남편과 자녀, 친척과 친구 역시 수련인의 의지를 무너뜨리고 언제든 수련인을 끌어내릴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의 말 중 절반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부부 사이가 화목한 편이었고 아무런 큰 갈등도 없었는데, 그의 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이 문제는 나중에야 점차 알게 됐다.
2020년경 남편의 사업에 위기가 나타났고,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사면초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이 파산했고, 우리에게 돈을 빚진 사람 중 어떤 이는 외국으로 도망쳤으며, 어떤 이에게는 재판에서 이겼지만 그가 재산을 빼돌려 집행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 가정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이어진 날들 동안 은행의 빚 독촉, 한밤중에 찾아오는 채권자들, 설날에 집으로 찾아와 임금을 요구하는 인부들로 시달렸다. 나는 온종일 전전긍긍하며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긴장했고, 한동안 휴대폰 벨 소리를 무음 모드로 해두었으며, 한순간 온 세상이 캄캄해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수련의 일부분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속이 원망심으로 가득 찼다. 내 권고를 듣지 않은 남편이 미웠고, 많은 일을 내게 숨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원망했으며, 제때 손실을 막지 못한 것과 나를 불안에 떨게 한 그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고, 내 몸이 등잔불 기름처럼 안팎으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초조한 감정 속에서 내 몸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나를 챙겨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에게 성을 냈다. “다 당신이 화나게 한 거야, 다 당신이 내 속을 뒤집어 놓은 거라고!” 당시 나는 이 말이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이것이 구세력이 내 몸을 박해하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화를 냈기 때문에 내 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수련 중의 시련을 생활 속 불공평으로 여기고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소리치며 무제한으로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기간에 나는 연달아 생사 고비를 겪었다. 사악은 맹렬한 기세로 다가와 매번 병업 형식으로 내 육신을 빼앗아가려 했고, 매번 더없이 위험해 생사의 기로를 헤맸지만, 나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 하나에 의지해 억지로 뚫고 나갔다. 지금 회상해 봐도 여전히 눈앞에 선하다.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고, 사신(死神)이 강림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자비롭게 보호해 주시어 나로 하여금 매번 놀라기는 해도 위험하지 않게 당당히 걸어 나오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사악이 감히 경제적으로 나를 박해하는 것은 분명 내가 경제적인 면에서 허점이 생겼기 때문임을 의식했다. 나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기 시작해 불의한 재물을 탐하고, 신용카드 돌려막기, 대출 등 수많은 사람 마음의 집착과 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찾아냈다. 하지만 나는 뿌리까지 캐내지는 못했고, 이 원망심이야말로 수차례 시련의 근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원망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장기간 시련 속에 처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계속해서 일깨워 주셨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소파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작은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아 내 구두를 닦아주는 것을 보았다. 이 구두는 오랫동안 신어서 굽 한쪽이 닳아 일부분이 깎여나가 이미 평평하지 않았다. 그는 구두 굽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내가 말했다. “진작 그랬는데 백화점에 여러 번 갔지만 아까워서 차마 못 샀어요.”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구두 굽을 보니 그동안…….” 그가 말을 잠시 멈췄을 때, 나는 그가 내심 미안해하며 내가 수년간 그를 따라다니며 고생한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글자 하나하나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이 구두 굽을 보니, 그동안 내가 당신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네.” 나는 놀라 그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남편이 아니라 매우 잘생긴 젊은 남자였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이고, 남편은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이자 나의 중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발이 삐뚤어졌다는 것은 내가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해 중생도 덩달아 고통받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세간의 이치는 반대로 되어 있다. 나는 일찍이 모든 비바람과 시련이 남편이 가져온 것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모두 내 마음이 바르지 않아 초래한 것이었고, 중생은 그저 나를 대신해 감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며, 이것이 수련 중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비임을 알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를 끊임없이 부정했고, 대법제자가 설령 누락이 있다 해도 그것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한번은 내가 수련생에게 말했다. “남편은 바로 내 수련 길을 가로막는 하나의 산 같아요. 만약 언젠가 내가 그를 좋게 볼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승화한 거겠죠.”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은 왜 그를 수련 길의 계단으로 여기지 않나요?” 나는 사고방식을 바꿔 생활 속 고난을 모두 좋은 일로 여겨야 함을 알게 됐다.
서서히,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았다고 여겼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제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게요, 좋은 아내의 본분을 다할게요.’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노발대발하지 않았고, 그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챙겨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 내게 또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원래 이미 사라졌던 종양이 다시 나타났고, 통증 때문에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 증상까지 나타났다. 나는 단번에 경각심을 가졌다. ‘내 수련에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나는 사부님께 자비로운 가르침을 청했다. 밤에 발정념을 할 때, 나를 해치려던 그 생명이 아주아주 작아져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고 내 마음에 연민이 생겼다. 나는 명혜 라디오를 켜고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들었는데, 마침 원망심을 제거하는 이야기였다. 내 통증은 많이 줄어들었고, 나는 그 생명도 함께 듣고 있으며 그것의 원망도 사그라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며,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이라고 느꼈다. ‘내게 아직도 원망심이 남아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누구도 밉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마음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나는 안으로 찾았다. 최근에 남편과 더는 다투지 않고 이전 일로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그가 내게 빚을 졌다고 여겼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일을 처리할 때 억지를 부리고 독단적이었으며, 그가 내게 잘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 또한 보답을 바라는 마음을 품고서 나의 너그러움과 사심 없는 헌신을 과시하며 상대가 고마워하기를 바랐다. 이 좋지 않은 마음의 이면에는 여전히 그가 먼저 잘못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고, 겉으로는 따지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계속 그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원망심이 여기에 숨어 있었다.
이것들을 깨닫고 나자, 내 마음은 자비로 가득 찼고 그 생명과 선해(善解)하자 통증이 완화됐으며, 며칠 뒤 몸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됐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우리 둘은 도대체 어떤 인연일까? 내가 어느 생에 그에게 빚을 졌을까? 도대체 그에게 무엇을 빚진 것일까? 어느 날 낮에 조금 졸려서 비몽사몽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황홀경 속에서 나는 나의 과거 생으로 들어갔다. 나는 황궁 안에 용모가 수려한 청년이 금관을 쓰고 가슴과 소매에 금실로 용을 수놓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복장 양식은 위진(魏晉) 시대의 풍모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전생의 나임을 알았다. 누군가 10살 된 소년을 데려왔는데, 푸른 옷을 입고 희고 야위었으며 용모가 아주 청수했다. 내 머릿속에 즉시 ‘평생의 사랑’이라는 네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비록 기질과 용모의 차이는 컸지만, 나는 한눈에 그가 바로 이번 생의 남편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나의 남총(男寵, 역주: 황제나 권력자와 동성애적 관계에 있는 남성)이 되어 끝없는 총애와 부귀를 누렸고 도성에서 권세가 대단한 인물이 됐으며, 사람들에게 ‘공자’라 불렸다. 위진 시대의 공자란, 평범한 부잣집 도련님이 감당할 수 있는 호칭이 아니라, 제후의 아들이라야 사람들에게 공자라 불릴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사람들도 참 세속적이라 일개 남총에게 뜻밖에도 공자라고 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 사이에 이런 악연이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내가 도대체 어느 생에 그에게 빚을 진 걸까요?” 수련생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이미 당신에게 그 생을 보게 하셨으니, 분명 그 생에서 빚진 걸 거예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록 악연이긴 하나, 그 생에서도 나는 그에게 섭섭하게 대하지 않았고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한평생 진정한 정(情)을 주지 않았던가.
나는 매달 월급으로 그를 대신해 빚을 갚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였고 턱없이 부족했다. 채무 분쟁으로 인해 남편이 누군가에게 기소당했고, 내 은행 카드도 동결됐다. 내 원망심은 다시 튀어나와 마성에 통제됐고, 한번은 내가 히스테리를 부리며 남편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도대체 당신한테 뭘 빚졌기에 나를 이렇게 대해? 목숨 하나 빚졌다고 해도 벌써 다 갚았겠다. 전생에 내가 당신 온 가족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럴 순 없어!”
그날 밤, 나는 명혜망의 신전문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전진(前秦) 황제 부견(苻堅)이 전연(前燕) 정권을 멸망시켰고, 14세의 청하공주가 아름다운 미모로 입궁하게 되어 이렇게 망국의 공주가 총애를 받는 비빈이 됐다. 남동생 모용충(慕容沖)이 누나를 보러 황궁에 왔는데, 부견은 이 10세의 미소년에게 첫눈에 반해 남총으로 거두었다. 남매는 후궁에서 으뜸가는 총애를 받았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부견은 모용씨 가문 사람들을 아주 선하게 대했다. 민간에서는 일찍이 ‘암컷 하나 수컷 하나, 쌍쌍이 황궁으로 날아들었네’라는 동요가 널리 불렸다.
모용 남매가 받는 총애는 조정 대신들의 공황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남매의 세력이 갈수록 커져 전연 세력이 다시 부활할까 봐 두려워했다. 대신들은 남매를 처형할 것을 거듭 건의했다. 온갖 방법이 없게 된 상황에서 황제 부견은 모용충을 변방으로 수비하러 보냈고, 모용충은 도성을 떠났다. 부견은 재회할 날을 기대했는데, 모용충의 아명이 봉황이었기에 부견은 훗날 봉황을 불러올 수 있기를 바라며 오동나무 숲을 직접 심었다. 부임지에 도착한 모용충은 즉시 군사를 모집하고 말을 사들였다. 그의 숙부와 형도 앞다투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형이 황제를 칭하다 죽기 전에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모용충이 즉위한 후 첫 번째로 한 일은 바로 부견을 찾아 복수하는 것이었다. 부견은 모용충에게 여러 날 성안에 갇혀 있다가 배신한 장수에게 살해됐다. 모용충은 성에 입성한 후 대대적인 살육을 저질렀으나 여전히 원망이 가시지 않았다. 모용충은 즉위 2년 후 몹시 황음하고 잔인하고 포악하여 부하에게 살해됐으니 향년 28세였다.
이것은 두 왕조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파탄 난 비참한 역사이자, 두 황제의 천고의 가학적인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바로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었다. 내가 전생에 들어가 보았던 금관을 쓰고 용포를 입은 그 사람이 바로 전진 황제 부견이었고, 10세의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바로 후연 황제 모용충이었다. (이 신전문화 이야기는 내가 당시 명혜 라디오에서 들은 것으로,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낭독하던 여성 수련생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오디오에서 앞뒤로 10여 차례나 찾아보았지만 다시는 찾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아마도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일 거로 생각한다.)
알고 보니 우리는 전생에 정말로 피바다 같은 깊은 원수였다.
모든 것은 다 인과였다. 내 마음속 원망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주원신(主元神)을 향해 한 일념을 내보냈다. ‘우리 전생에 어떤 은원이 있었든, 우리는 이번 생에 오직 선연(善緣)만 맺읍시다. 나는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할 것입니다.’ 내 마음은 감사로 충만해졌고, 자비롭게 제도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나를 성취시켜 준 모든 생명에게 감사드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모든 것은 전부 우리를 위한 것이고, 각종 집착심을 수련해 버리는 것을 포함해 모두 우리 자신이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원망심을 수련해 버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감사함을 알게 됐고, 주변의 많은 사람이 줄곧 내게 잘해주었음을 발견했다. 원망에 두 눈이 멀어 어떤 은혜는 내가 모두 잊어버린 채 일부 좋지 않은 일들만 기억하며 남을 원망하고 동시에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원망을 내려놓아야만 햇빛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우리가 살던 집이 법원 경매로 넘어갔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내가 심성을 지키지 못할까 봐 미리 나를 일깨워 주신 것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잠시 친척의 빈집에 살았다. 나는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마주하며 반대로 남편을 권고했다.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기만 하면 어디 살든 다 똑같아요.”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새 거처를 정리했고, 낡은 집을 깨끗하게 치웠다.
남편은 현재 아주 특별히 대법을 지지하며, 대법 덕분에 자신이 이 가정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누이는 몰래 말했다. “난 새언니처럼은 할 수 없어요. 만약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무조건 이혼했을 거예요.”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는 정말 착하구나. 사실 네가 그 애와 이혼한다 해도 우리는 다 네 편에 섰을 거란다.” 나는 법 속에서 수련해 낸 자비로운 선념으로 시댁 식구들의 탄복을 얻어냈고, 대법을 실증했다.
남들은 모두 내가 참 고생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보살핌이 있으며, 대법의 가지(加持)가 있는, 신마저도 부러워하는 생명이다. 예전에 나는 오직 경제적 궁핍이 일종의 박해라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 제고를 위해 깔아주신 계단이라는 것을 안다. 예전에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는 말을 들으면 그저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지만, 오늘은 그 속의 함의를 철저히 깨달았다. 고생은 그저 속인의 느낌일 뿐이며 수련인에게 고생을 겪는 것은 도리어 좋은 일이다. 사실 어디에 산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는 그 어떤 것도 나의 정법 수련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찬란한 미소가 자주 내 얼굴에 넘쳐흐른다. 나는 마침내 ‘고생을 낙으로 삼는도다’(정진요지-경지)는 것이 시련 속에서 피동적으로 고생을 겪으며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생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매일매일이 모두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은 바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며, 이곳에 며칠 잠시 머물다 사명을 완수하면 우리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6/5047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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