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연향(蓮香)
[명혜망] 나는 질투심, 원망심 등 이런 사람 마음이 나 자신에게 모두 있고 또한 매우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없애고 싶었지만 분명하게 똑똑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들은 내 신체 내에 존재하면서 나를 지배하고 좌지우지하며 어떤 일에 부딪히기만 하면 이런 사람 마음에 시달려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들었다.
최근 어떤 한 가지 일을 통해 이런 마음들이 남김없이 충분히 폭로돼 그것들의 존재를 똑똑히 보고 그 모습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이런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버렸다. 다시 어떤 일과 마주쳤을 때 나는 이런 사람 마음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거나 이끌 수 없음을 느꼈고 내 마음은 평온하고 온화하게 변했다. 나는 마음이 무척 가볍고 행복함을 느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내 주변에 친척인 한 수련생이 있는데 그녀는 거짓말하기를 좋아해 생활 속의 일부 일들에 대해 숨기고 거짓말하는 것을 예사로 여긴다. 그날 나는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속인 일을 또 하나 전해 들었다. 사실 그녀는 전혀 숨길 필요가 없었고 숨겨서도 안 되는데 이런 일을 저렇게 말해버렸다. 거짓말이 이미 습관이 됐기에 그녀 자신조차 아마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당시 나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수련인이 어떻게 늘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분개했다. 나는 감정이 몹시 격동됐고 이런 행위를 원망했으며 이런 사람도 원망했다. 사실 내가 그녀를 싫어한 지도 오래됐는데 단지 지금 그녀가 폭로한 각종 좋지 않은 행위가 나에게 그녀를 더욱 싫어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녀 역시 남이 지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절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녀는 곧 지적한 사람을 괴롭히곤 했으므로 다른 친척 수련생이나 다른 수련생들도 감히 그녀에게 지적하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그러면서 자칭 수련인이라고?!’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불평으로 요동치며 말투가 격렬해졌고 잔뜩 화가 난 모습이었다. 나는 ‘왜 내 인생 중에 이런 사람이 배치됐을까’ 하고 탄식했다. 처음에 나는 내 이런 표현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모두 그녀의 문제 때문에 내가 이렇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집에 돌아온 후 가족 수련생이 나의 그날 표현에 대해 무척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나는 가족 수련생의 의견을 듣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그날의 한 장면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고 나는 그때 내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감정이 격동하고 분개하는 그 모습은 바로 질투심, 원망심의 생생한 표현이었으며 남김없이 다 드러났다. 나는 단번에 그것들의 존재를 보았고 그것들을 찾아냈다. 내가 그 수련생에 대해 품은 불만과 원망이 바로 질투심, 원망심의 진실한 체현이 아니겠는가? 그것들의 표현이 충분히 생생하지 않은가? 아직도 똑똑히 보이지 않는가? 내심은 이미 그렇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나는 동시에 또 다른 정경을 상상해 보았다. 만약 질투심, 원망심이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표현일까? 이런 일을 들은 이후 단지 한 가지 일을 알게 된 것일 뿐 내심에 어떠한 파란도 일지 않고 여전히 물처럼 평온하며 그저 이 수련생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 방면에서 잘 수련하지 못해 법의 기준과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니 수련해 제고하길 기다려야 한다고 여길 뿐, 단지 이뿐이다.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평온할 것이다.
나는 또 만약 질투심이 없었다면 신공표(申公豹)는 어떠했을까 하고 연상해 보았다. 그들의 사부님이 강자아(姜子牙)에게 신을 봉하게 한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마음속으로 그저 ‘아’라고 한 번 했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단지 이뿐일 것이다. 내심에 어떤 파동도 없고 어떠한 불만도 없을 것이다.
만약 영은사(靈隱寺)의 방장에게 질투심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제공(濟公)의 신통을 알게 된 후 그는 자신의 수행이 그에게 훨씬 미치지 못함을 생각하며 마땅히 제공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그에게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정진해 수행함은 물론 전 사찰의 승려들도 모두 그를 배우게 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제공을 위해 기뻐하고 내심으로 제공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을 것이다.
만약 ‘전법륜(轉法輪)’에서 언급한 그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한 동료에게 질투심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는 마땅히 진심으로 승진한 동료를 위해 기뻐했을 것이다. 자신이 비록 그보다 유능하지만 승진하지 못했더라도 무슨 원인이든 막론하고 흔연히 받아들이고 내심에 어떠한 불평도 없었을 것이며 그 후 즐겁게 자기가 할 일을 하러 갔을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나 자신의 질투심, 원망심을 정말 똑똑히 인식하게 됐다. 그것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또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며 사람의 내심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지 말이다. 이 일을 통해 질투심, 원망심이 폭로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나는 그것들을 찾아내 똑똑히 보았고 똑똑히 가려내 자아를 찾았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좋지 않은 생명이 내 이곳에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들은 제거되는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나는 또 생각했다. 이 친척 수련생은 행위가 좋지 않아 보이고 또 자주 내게 상처를 주어 고통스럽게 만들기에 나는 그녀를 싫어하고 원망했다. 사실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그녀는 정말로 나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바로 나를 돕고 있는 것이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은 마땅히 반대로 문제를 봐야 한다. 그녀가 매번 내게 준 상처는 바로 내가 한 가지 사람 마음을 발굴하도록 돕는 것이었고, 또 다른 사람 마음이 폭로됐음을 예시해 제거할 준비를 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는 정말이지 하늘만큼 큰 좋은 일이다! 만약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사람 마음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또 이곳에서 사람의 나날을 보내러 온 것이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지내려 하고 사람 마음이 건드려지지 않는다면 그 집착심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층차를 제고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사람 마음이 건드려져 고통을 느낄 때 또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해야 하고, 마땅히 기뻐해야 하며 그 후 진지하게 이 사람 마음을 찾아내 버려야지 어찌 좋지 않은 일로 여길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속인의 층차에 서서 문제를 보아선 안 된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배치를 깊이 체득했다. 바로 이 수련생을 배치해 나의 수련을 돕게 하신 것이다. 내 생명 속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누가 사람 마음을 버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도록 돕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시간, 생명을 소모하며 실제로 연기해 내가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만들도록 도왔다. 혹 좋은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확실히 이런 작용을 일으켰으니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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