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춘시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60세인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1992년, 고질병을 앓던 부모님이 대법 안에서 정화돼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되셨고, 그로 인해 저 역시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30여 년의 수련 속에서 제가 목격한 대법의 신기함과 새롭게 태어난 재생의 과정은 제 수련 여정 전체를 관통하며 대법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다져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천장을 바라볼 때면 두 번 정도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어쩌다 사람이 된 걸까?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모든 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결국 무서워서 더는 생각하지 못했고 매번 두려움 속에서 힘겹게 잠들곤 했습니다. 사부님 설법을 들은 후, 사람이 수련을 통해 생명의 경지를 높일 수 있고 더는 윤회하지 않으며 사람의 생로병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 오랜 의문이 풀렸고 비로소 제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1. 첫 번째 다리 부상
아마 1993년 봄쯤이었을 겁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저는 수련의 엄숙함을 전혀 몰랐습니다. 수련하면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법리가 명확하지 않아, 사부님께서 이곳저곳 법을 전하시느라 늘 창춘(長春)에 계실 수는 없으니 사부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수련을 성취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기공으로 수련할 수 있다면 기공사를 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촌 언니를 따라 우리 시에 있는 이른바 기공사라는 사람의 집에 갔습니다. 가보니 그에게는 설법할 만한 어떠한 법도 없었고, 게다가 방 안의 사람들은 바닥에서 비틀거리거나 구르거나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도 가발을 쓴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연공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겨우 3일 갔고 4일째 되던 날, 집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 발밑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 왼쪽 종아리 두 곳이 골절됐고 저는 그만 아파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는 수련에서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는 큰 금기를 범해 크게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발견했을 때 제 다리는 바지조차 벗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고, 아버지는 가위로 바지를 잘라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습니다. 입원 기간은 정말 하루가 1년 같았는데, 다리도 아팠지만 침대에 누워 있으니 허리가 너무 아파 잠조차 잘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넓은 천으로 허리를 감싸 저를 끌어올려 주셨고, 저는 그렇게 앉아서야 통증을 조금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0여 일 입원해 있다가 사부님께서 다시 창춘으로 돌아오시어 설법 학습반을 여신다는 소식을 듣고 퇴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자전거에 태워 밀어주시며 학습반에 참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다리에 부목을 대고 목발을 짚고 갔습니다.
아마 3일째였을 겁니다. 사부님께서 학습반에서 포륜(抱輪)을 가르치셨는데, 제가 포륜을 할 때 팔 사이에서 아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저희 집 건물 앞에 20개 정도 되는 긴 계단이 있었는데 저는 목발을 짚지 않고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때 헤이룽장(黑龍江)에서 큰외할머니가 저희 집에 놀러 오셨다가 제가 혼자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시더니 기뻐하며 제 이름을 부르시며 “다리가 다 나았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을 잘 때 다리 부상 때문에 늘 똑바로 누워 잤는데, 꿈결에 왼쪽 종아리 위에서 무언가 도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잠시 후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옆으로 누워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리에 부목을 댔는데 어떻게 옆으로 누워요?’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오른쪽을 향해 옆으로 누웠습니다. 그러자 왼쪽 종아리 바깥쪽에서 무언가 도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잠시 후 어떤 목소리가 “다 됐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똑바로 누운 자세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다리에 댄 부목을 떼어냈고, 왼쪽 다리를 끌며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됐으며 며칠 안 돼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습니다. 뼈나 인대를 다치면 백 일은 간다는데 저는 10여 일 만에 목발 없이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창조한 기적입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제자를 위해 신체를 정화해 주신 것이니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이후 진지하게 법공부를 하면서 제가 마주쳤던 번거로움과 문제들을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다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늘 당신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다면 당신의 신체는 아마 副意識(푸이스)나 외래정보ㆍ부체류의 것들에게 통제당해 일부 위험한 거동(擧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련계에 대한 파괴력도 극히 크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 조성된 것으로서, 집착하여 자신을 과시한 것이지, 이것은 주화입마가 아니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이른바 기공사라는 곳에서 본 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말씀하신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는 이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 진수(眞修) 제자가 될 것이며 앞으로 반드시 진지하게 법공부를 잘하겠습니다.
2. 두 번째 다리 부상
대략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6년의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오토바이를 타고 딸을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버스가 떠난 후 제가 막 오토바이에 올라타 방향을 돌리려는데 승합차 한 대가 다가와 저를 넘어뜨리고는 제 오토바이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오토바이가 제 왼쪽 종아리를 세게 짓눌렀지만 당시 다리가 별로 아프지 않아 저는 오토바이를 일으켜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해서야 다리가 부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신께서 보호해 주시어 저에게 닥친 큰 재난을 하나 없애 주셨음을 마음속으로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련의 길에서 일부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일들이 나타날 때 당신은 두렵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신에게 진정한 위험이 나타나지 않게 할 것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확실히 별로 무섭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 안을 간단히 정리한 후 양로원에 계신 큰이모를 뵈러 갔는데 주된 목적은 큰이모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큰이모는 가입했던 공청단에서 순조롭게 탈퇴하며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셨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서둘러 일했는데 당시 제가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날 판매할 케이크를 만들어야 했고 손님들이 케이크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평소처럼 하교하는 딸을 데려와 저녁 식사를 준비했고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는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가 되니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신이 안쪽에서 자고 내가 바깥쪽에서 자겠다고 말했고 이유는 말하지 않았으며 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날 밤 한참이 지나서야 잠이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연공했고 제5장 공법을 할 때도 가부좌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저와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목욕하러 갔는데 어머니가 제 등을 밀다가 왼쪽 다리를 문지르자 저는 ‘앗’ 하고 아파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된 일인지 묻자 저는 그제야 일의 전말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도 수련생이었으므로 이것이 소업(消業)이고 제고하는 것이며 모두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큰 부분을 감당해 주셨고 남은 일부분은 제자가 심성을 제고하고 공을 자라게 하는 데 쓰도록 남겨두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팠지만 오래지 않아 다 나았습니다. 지금 왼쪽 종아리 안쪽 근육이 아직 뭉쳐 있는데 그것은 그때 다리 부상으로 남은 것입니다.
3. 세 번째 다리 부상
2018년 3월 11일에 마지막 눈이 내렸을 때 저는 남동생이 운영하는 아침 식당에서 식자재 구매를 돕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도매시장에 채소를 사러 나갔는데 계단을 막 내려가 차에 다가가기도 전에 한 발짝 내디딘 오른발이 미끄러지면서 다리가 바깥쪽으로 꺾여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른쪽 무릎이 가로로 비틀리고 연부 조직을 삔 데다 오른발이 너무 아파서 좌우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는데, 이런 다리 부상은 골절보다 더 회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아픔을 참고 손으로 오른쪽 다리를 끌어당기며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데, 제가 구매한 물건을 배달하지 않으면 오늘 장사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당까지 운전해 가서 오전 내내 일하면서도 동생에게 다리를 다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돌아와 다리를 질질 끌며 계단을 올라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부어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집에 있었고 저는 다시 내려가서 차를 운전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운전은 할 수 있었지만 평행 주차를 할 수가 없었는데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로 올라가 남편에게 다리 부상을 말하고 차를 잘 주차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돌아와서 제 다리가 그렇게 부은 것을 보고 “이 지경이 됐는데도 일을 한 거야? 앞으로는 아침에 물건 싣는 걸 도와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1시간 반 동안 가부좌를 했습니다. 다리를 다친 지 3일째 되던 날, 저는 소파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바깥으로 빼서 종아리를 허공에 띄워 놓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제 곁에 앉아 친근하게 굴며 다친 다리 위에 자기 다리를 올렸습니다. 저는 그때 큰소리를 질렀고 너무 아파서 땀까지 났습니다. 그 이후로 연공할 때 가부좌를 할 수 없었고 5~6분 정도만 구부릴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쉬면서 출근하지 않았지만 저는 자신을 부상자로 여기지 않고 연공인으로 여기며 매일 꾸준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집안일도 대부분 직접 해냈고 단지 조금 느릴 뿐이었으며 매일 사부님께 향을 올렸습니다. 향을 올리며 무릎을 꿇을 때 다리가 퉁퉁 부어 처음에는 무릎이 굽혀지지 않았고 의자를 짚고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굽힐 때는 너무 아파서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날 때는 더욱 힘들었는데 몸을 의자에 엎드린 채 조금씩 오른쪽 다리를 움직였습니다. 정말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으며 이 간단한 동작을 마치는 데만 몇 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저를 설득하며 “뼈를 다친 건 다른 거랑 달라서 병원에 가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나는 일반 사람이 아니에요. 나한텐 사부님께서 계시니 금방 좋아질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그러지 말고 내가 완바오(萬寶)에 데려다줄 테니 한번 가보자. 거기에 뼈 부상 전문 병원이 있는데 자체 조제한 약인 데다 먹는 약도 아니고 바르는 외용 약인데 엄청 잘 들어. 1000위안 정도면 되니 비싸지도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딸도 “엄마, 가봐요. 큰외할머니처럼 나중에 진짜 다리를 절게 되면 어쩌려고요! 한번 가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가 다리를 벌써 두 번이나 다쳤는데 그때마다 연공해서 다 나았어. 틀림없이 괜찮을 테니 안심해, 괜찮아, 며칠 지나면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3월 16일, 수련생이 자기 집에 와서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책 표지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저는 제 상황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코팅지 한 롤을 요가 매트 가방에 넣어 등에 메고 수련생 집에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버스를 타려고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 다리로 버스에 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차를 몰고 가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천천히 차 앞으로 걸어가 마음속으로 ‘사부님, 저 오늘 운전해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힘겹게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 천천히 운전해 수련생의 집에 도착했고, 우리는 서로 협력해 수련생들에게 급히 필요한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40여 권을 완성했습니다.
3월 24일 오후, 차를 타고 동창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거단지 정문에서 밖으로 나가는 남편과 마주쳤는데, 남편은 저를 보더니 6시 전에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결국 8시가 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틀림없이 또 교란을 받아 도박하러 갔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제가 딸 앞에서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자 남편은 통제력을 잃고 “당신은 10년 넘게 날 감시했어? 앞으로 다시는 물건 배달 도와달라고 부르지 마!”라며 저와 다투더니 문을 열고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생각을 바꾸어 ‘남편이 물건 배달을 안 도와준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다는 증명이야. 다리가 다 나았으니 당연히 그의 도움이 필요 없지’라고 생각했습니다. 3월 25일 아침 일찍 저는 정식으로 차를 몰고 물건을 배달하며 출근했습니다. 4월 말에는 1시간 동안 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고 식당에서 그 일을 통해 대법의 신기함을 증명해 여러 사람을 구했습니다!
2024년 5월 중순, 갑자기 두 다리와 양발이 모두 아주 심하게 부어올라 누르면 크게 움푹 들어갔고 한참 동안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서 있으면 발바닥의 힘줄이 모두 아팠고 일반적인 신발은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품이 넉넉한 신발이 있어서 끈을 묶지 않고 간신히 발을 밀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걸을 때면 어느 순간 갑자기 오금 부위에 쥐가 나는 것처럼 한바탕 아팠습니다. 힘든 점은 가부좌할 때 발이 아래로 미끄러지고 때로는 쥐가 나서 몸을 좀 움직여야 했으며 가부좌 시 다리 힘줄이 특히 아픈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카프로 다리를 묶었고 가장 아픈 고비만 꾹 참고 넘기니 조금 완화되어 꾸준히 제5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다리를 다친 기간에도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일에 협력해 진상 자료 만드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으며, 사실 저도 정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해야 할 일을 다 했습니다. 6월 20일부터 7월 19일까지는 수련생의 약속에 응해 한 나이 많은 언니가 큰 병업(病業) 고비를 넘기는 것을 도왔습니다. 또 한 수련생은 집의 창문을 교체하다가 급한 일로 외지에 가야 한다며 제게 와서 밥을 좀 차려주고 집안을 돌봐주면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진상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 상황을 말하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 한 명과 함께 그녀의 집에 갔습니다. 그날 진상을 알려 한 인부를 탈퇴하게 했고, 다른 한 명은 어떤 조직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또 제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에 저는 제가 아는 상황에 따라 최대한 대답해 주었습니다.
대략 7월 말까지 지속된 후 오른쪽 다리와 오른발은 모두 정상이 됐으며 왼쪽 발도 부기가 많이 빠졌습니다.
맺음말
우리는 위대하신 사부님과 함께할 수 있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요! 정법 수련 속에서 사부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빚어 신(神)이 되게 하시고 새 우주의 미래 왕이 되게 하시니 우리는 얼마나 영광스러운가요! 제자는 반드시 이 만고의 신성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법난 속에서 용맹정진해 저에 대한 천국 중생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위대하신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의 크나큰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만(圓滿)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14/49861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4/14/49861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