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이고 올해 72세입니다. 수련 속에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사상이 승화돼 제자는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사부님의 시시각각 변함없는 보살핌 아래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으니 제자는 더없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수년간 병업 가상을 벗어난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하오니 편파적인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 중생 구원은 제자의 책임
2004년 4~5월경, 저는 컴퓨터 사용법과 인터넷 접속 및 다운로드, 자료 인쇄 기술을 배웠고 간단한 기술도 몇 가지 익혔습니다. 중생을 구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기뻤고, 정법 수련 중에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돼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시간을 꽉 채워 배치했습니다.
어느 날 오전, 법공부를 하는데 대법을 읽는 것이 유창하지 않고 물을 마시면 자꾸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평소와 달랐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입과 눈이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이를 본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속인(일반인)의 이치로 말하면 중풍인가요?” 저는 그 즉시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수련생이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원하지 않기에 소멸시킬 것입니다.” 저는 아예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상관하지 않았으며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매일 해야 할 일을 했고 수련생과 함께 대도시에 가서 CD나 필요한 물품을 사는 일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거의 20일이 되자 완전히 나았으며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배포하는 등 정법과 관련된 중생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척 즐겁고 기뻤습니다.
2004년 연말 어느 날, 저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자료점으로 가져가 복합기와 연결하여 출력된 인쇄판이 쓸 만한지 확인했습니다. 한 장을 출력해서 확인하고 또 한 장을 출력했는데, 이동 시간을 줄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복합기로 한 번 작업하면 1000세트나 수천 세트를 찍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인쇄판을 잘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밤에 오른쪽 무릎이 아픈 것을 느꼈지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인쇄판을 두 세트 만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해야 할 일을 계속하면서도 다리가 불편하다고 느꼈고 걷기도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나중에 보니 오른쪽 다리가 아주 굵게 부어올라 가부좌를 할 수 없었고 굽혀지지 않아 다리를 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 사상 속에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환희심과 과시심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복합기로 인쇄하는 용지 양이 많았고 ‘9평’, 진상 소책자를 만들었으며 때로는 ‘전법륜(轉法輪)’도 만들었습니다. 책 인쇄판도 출력해야 했는데, 출력 후 교정을 봐야 했고 조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잘 만들어야 했습니다. 만드는 양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제가 아는 대도시 수련생을 찾아 용지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한 번에 20상자를 보내오면 제가 나가서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또 수련생이 받으러 갔으며 이미 만들어진 ‘9평’ 몇 상자를 싣고 오면 저는 용지를 실은 차를 타고 읍내 수련생에게 가져다줬는데, 그때가 제가 가장 바쁜 시기였습니다. 다리가 심하게 부어 걸을 때 매우 아팠고 걷지 않으면 아프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정법 관련 일은 잠시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고 또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책임이 있기에 저는 누구한테도 다리가 부은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는 대법제자이고 법 속의 한 입자이므로 그 어떤 생명도 날 교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이것은 결코 병이 아니며 사부님께서 제 업력을 없애주시고 공을 자라게 해주시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고 또 중생을 구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나의 책임이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더욱 잘해야 한다. 조금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리가 어떠한지 걱정하지 않았고 아예 생각지도 않았으며 매일 세 가지 일을 했고 다리가 하루하루 좋아졌습니다. 2005년 3월이 되자 제 다리는 완전히 나았고 가부좌를 하고 연공할 수 있게 돼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2. 어떤 생명도 제자가 중생 구원하러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법시기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모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료점을 세우고 자료를 배포했는데 아무리 먼 길이라도 우리는 갔습니다. 때로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가기도 했으며 때로는 삼륜차를 타고 갔습니다. 몇 명의 수련생이 함께 갔다가 함께 돌아왔는데 매번 순조로웠습니다.
2007년 7월 어느 날 점심, 한 수련생이 우리집에 왔습니다. 둘이서 잠시 교류를 나누는데 제 배가 아픈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심하지 않아 말하지 않았지만 수련생이 빨리 갔으면 했습니다. 수련생이 간 후 통증이 더욱 심해졌는데 복강 안이 온통 아픈 것이 마치 여러 개의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것 같았고 너무 아파서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외손녀가 저를 데리고 거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저는 앉아서 발정념을 하려 했지만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다. 다년간 법공부를 해오면서 사부님께서 제 몸을 여러 차례 청리(淸理)해주셔서 병이 전혀 없다. 내 몸은 건강하다! 이것은 병업 가상이다. 나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게 수련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법으로 바로잡을 것이고 사부님께서 보살피고 계신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 넘게 아팠습니다. 저는 문득 오늘 저녁에 ‘9평’과 소책자를 배포하러 가서 중생을 구원해야 한다는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제 몸에 이런 통증 상태가 나타나게 하는 것은 명백히 사악이 제가 중생 구원하러 가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즉시 말했습니다. “너희가 구세력이든 사악한 교란 요소든 너희는 나를 교란할 수 없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내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러 온 것이기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여 진상을 모르는 중생을 구하러 갈 것이다.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신다. 사악은 어서 사라져라.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라면 내가 감당하겠지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일체 감당하지 않겠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걸을 것이다. 네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주의 정법 또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당시 저는 많은 생각을 했는데 모두 정념이었고 조금의 부정적인 요소도 없었습니다. 저녁 6시 발정념을 할 때가 되어 저는 자리에 앉아 발정념을 했습니다. 몸이 훨씬 좋아져서 앉아 있을 수 있었고 몸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발정념을 마치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몸이 훨씬 가벼워져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딸이 퇴근해 돌아왔을 때 저는 이 일을 말해줬습니다. 딸은 “엄마, 이거 너무 신기해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손자도 ‘파룬따파하오’를 염했습니다. 7시쯤 저는 수련생 집으로 갔고 9시쯤 우리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중생을 구원하러 나갔습니다. 밤 1시가 넘어서 우리는 돌아왔고 그날 저는 수련생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제가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하자 수련생도 너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너무나 감사드리며 이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결과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3. 제자에게는 중생 구원이 첫째
2013년 4월, 제가 마굴(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서둘러 법공부를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 읍내 수련생에게 자료가 매우 적어서 저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먼저 대도시 수련생에게 가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보니 수련생이 막 자료 인쇄를 배운 상태라, 저는 그에게 우선 낱장 진상 편지를 인쇄하게 해서 제가 우편 발송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소책자를 인쇄할 줄 알게 되어 저는 편지도 부치고 소책자도 배포했습니다. 저는 그와 일주일에 한 번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시내까지 걸어가서 편지를 부치고 다 부치고 나면 수련생 집에 가서 자료를 가져왔는데, 처음에는 저 혼자 몫의 자료와 우편 발송용 낱장 자료를 좀 더 가져오곤 했습니다.
2015년 읍내에서 자료를 만들던 수련생이 납치되자 다른 수련생들이 저에게 자료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아요! 제가 더 많이 짊어지고 오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주 10명이 배포할 자료와 진상 편지 60통, 그리고 스티커 표어 등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2016년 봄 어느 날 아침, 제가 정공 연마를 마치고 바닥에 내려오는데 발뒤꿈치가 너무 아파서 땅을 딛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오늘 대도시에 가야 하는데 이것은 제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것은 약속한 일인데 가지 못하면 신용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저를 교란할 수 없습니다. 시외버스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리 아파도 굳건히 집을 나섰습니다. 평소 15분이면 정류장까지 갔는데 이번에는 30분이 걸려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도시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여전히 발을 땅에 딛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正念正行)]. 저는 반복해서 계속 외웠습니다. 얼마나 외웠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멈춰 서보니 발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60분이 지났고 이미 8개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척 기뻤고 발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자료 가지러 가지 마세요. 저도 배포하지 않을 거고 명혜망도 안 볼 거예요.” 제가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파출소 사람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그녀에게 파출소로 한번 오라고 했는데 자기는 안 가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당시 별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외손녀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 걸으면서도 계속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거의 다다랐을 때 ‘꽈당’ 하고 크게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저는 발의 통증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말했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중생 구원이 첫째입니다.” 그러자 발목이 그렇게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2019년 7월까지 계속 자료를 짊어지고 와서 전달했습니다. 나중에 현지에 자료가 생겨서야 저는 자료를 짊어지고 나르는 일을 그만뒀습니다.
2018년 8월 어느 날, 저는 먼저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린 후 마트에 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왼쪽 다리 오금 부위가 특별히 불편하고 굽혀지지 않아 다리를 펴고 걷느라 꽤 힘들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바로 시장으로 가서 두 바퀴를 돌며 세 명을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시켰고 나와서 또 마트로 갔습니다. 마트에는 사람이 몇 명 없어서 두 명에게만 알렸는데 다리가 심하게 아픈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집으로 걸어갔는데 매번 20분이면 가던 길을 오늘은 30분이 걸렸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11시 반이 다 되어 서둘러 발정념 할 준비를 했습니다. 침대에 앉아 왼쪽 허벅지를 보니 무릎 뒤 오금 부위가 검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혈관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손으로 허벅지 살을 꼬집어보니 감각이 없었고 허리에서 무릎까지 살을 꼬집어도 느낌이 없었으며 전부 마비돼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또 잘 못 한 곳이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의 손자가 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그 집은 시골에서 왔고 아들은 타지에서 일하며 아파트를 샀는데 집 근처 학교를 알아봐 줄 수 있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마침 친척이 그 학교 교장인데 댁에서 멀지 않아요. 다른 학교는 다 멀죠”라고 말하며 전화를 걸어 물어봐 주겠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물어보니 그 학군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친척을 만나면 다시 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저는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청탁(뒷거래), 이것은 당(黨)문화가 아닌가?’ 또 마트에서 감자를 살 때 마트 감자가 싸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샀습니다. 먼저 간 수련생이 줄을 섰고, 나중에 간 수련생이 먼저 간 수련생과 같이 서서(새치기) 감자를 샀는데 세태에 휩쓸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수련생에게 손자 학교 입학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제 다리가 아무리 아파도 저는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20여 년 수련하면서 제자는 사부님께서 우주의 고층차 불가(佛家) 대법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 자신의 훌륭한 전통 기풍도 우리에게 남겨주셨다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제자는 금생금세에 이 십악독세(十惡毒世) 말법 시기에 사부님께서 직접 전하신 우주 불가의 대법을 얻었습니다. 수련 중에 우주 대법의 지도에 따르고 사부님의 고무와 격려, 그리고 시시각각 직접 해주시는 보살핌 아래 제자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날까지 걸어왔습니다. 제자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고 우주 대궁(大穹)을 구하시기 위해 얼마나 큰 고생을 하셨고 얼마나 쉽지 않으셨는지 깊이 느낍니다. 사부님은 위대하시고 대법은 위대합니다! 제자는 더없이 행운이고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4/50224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24/50224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