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정말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글/ 중국 동북 지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생으로, 어릴 적부터 어머니(수련생)를 따라 함께 수련했습니다. 이 십악독세(十惡毒世) 속에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사람이 세상에 사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시며,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길을 걷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제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A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 B 수련생이 저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B에게 연락해 저를 찾는다고 했다는데, B가 다시 A를 통해 제게 이 일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번거롭게 저를 찾기에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A 아주머니는 “그들이 당신에게 짝을 소개해 주려고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A는 “내가 이미 거절했는데, 그들은 그래도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해요”라며, 소개하려는 사람이 44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짝을 찾을 생각이 없으며 나이와는 무관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거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것이 제 어떤 마음을 겨냥한 것임을 인식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뒤집히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습니다. 저보다 거의 20살이나 많은 사람을 소개하다니, 이건 명백히 저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까? 짝을 찾을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설령 찾고 싶다 해도 그들의 소개가 필요하겠습니까? 온갖 사람 마음이 올라왔고 생각할수록 억울해 화가 나서 몇 번이나 울고 싶었습니다! 정말 A를 찾아가 그 두 사람을 불러내 면전에서 무슨 생각인지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 제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 두 대를 맞는 것보다 더 부끄러웠습니다. 제 존엄을 짓밟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 같아 정말 괴로웠습니다!

이전에 읽은 윤회에 관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여자가 그 생에 도(道)를 닦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산에서 내려와 일을 보던 중 장터에서 두 남자가 그녀를 보고 반해 부인으로 삼겠다며 경박한 말을 건넸습니다.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일을 마친 뒤 산으로 돌아갔지만 두 남자도 따라왔습니다. 그녀가 그들을 돌려보낸 후 사부님께 자신은 이미 도를 닦는데 어찌 이런 일을 겪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사부님은 웃으며 “만약 부처님 한 분이 그들 앞에 서 계셨다면 그들이 감히 그런 생각을 품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자 냉정해져서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 수련이 해이해지고 사람 마음이 너무 많아 그것을 겨냥해 온 것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우선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명예욕, 자만심, 남에게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 질투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하고 남의 도움을 받기 꺼리며 허세를 부리고 혼자 해결하려 했습니다. 또 치장을 좋아해 옷을 많이 사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색욕심이었습니다.

최근 수련이 좀 느슨해져 휴대폰을 보고 옷을 사는 데 집착하며 속인과 섞여 지내니, 이 일이 발생해 저를 일깨워준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이런 사람 마음과 후천적 관념을 반드시 제거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중시하지 않고 키워왔는데, 사부님께서 경종을 울려주신 것입니다. 수련생에게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일거사득(一擧四得)’의 법리가 떠올랐습니다. 제 부족함을 드러내 준 수련생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며, 수련 상태를 강화하고 수련을 엄숙히 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수련 길에서 겪는 고비나 각종 일은 작은 자갈과 같습니다. 길을 걷다 작은 자갈을 찼다고 멈추거나 방해된다고 원망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수련자 앞에서 그런 자갈은 전진을 막을 수 없으며 속도에 영향을 줘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지나가며 용맹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법에 따라 행하면 수련의 길을 막을 건 없습니다. 때론 아주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 마음이 길을 막은 것입니다. 본래 작은 자갈인데 큰 산처럼 여겨 넘으려니 얼마나 고되고 힘들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까.

매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 견딜 수 없을 때면, 사부님께서 중생구도를 위해 얼마나 감당하셨는지 누가 알까 생각합니다. 사부님의 거대한 헌신은 모두 중생을 대신해 감당하신 게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신뢰와 자비이며,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약간의 것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넘지 못한다면 사부님께서 얼마나 상심하시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제자를 성취시켜 주시는데 어찌 못나게 굴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사심 없이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고 시시각각 지켜주시며 털끝만큼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는데, 제자인 우리는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진정으로 수련해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제자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명과 책임입니다. 저는 명칭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융하고 대법에 동화된 생명이 되려 합니다! 대법제자는 성숙해야 하며 진작 성숙했어야 합니다.

수련의 길에는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맑은 정신으로 이것이 수련 향상의 기회임을 알아야 하며 배회하거나 허송세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은 속인의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신의 사자(使者)로서 반드시 책임을 짊어지고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며 수련의 길을 착실히 걸어야 합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저를 지켜주시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용맹정진해 수련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착실히 수련해 사람을 많이 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체득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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