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충성스럽고 용맹하게 사부님을 도와 정법의 길을 걷다

글/ 중국 창춘(長春) 지역 대법제자 법지(法志)

[명혜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명혜망이 우리 중국 대법제자를 위해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법회(法會)가 벌써 22회째가 됐습니다. 정법의 마지막 순간에, 저는 제가 본 지역에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몇 가지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목숨을 걸고 나를 잊은 채 법난(法難)에 뛰어들다

저는 창춘 외곽 현(縣)의 대형버스 운전기사입니다. 1997년 어느 날, 저는 대형버스를 운전해 성(省) 정부 소재지 기차역 광장을 지나다가 하늘에 있는 아주 큰 회전하는 파룬(法輪)을 보았는데, 태양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 아주 신기해했는데 이것이 제가 처음 파룬을 본 것입니다. 한번은 아내의 ‘전법륜(轉法輪) (권2)’를 집어 들고 보는데,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불도신(佛道神)을 말씀하시고 종교의 결점을 지적하시는 것을 보고, 저자가 참 큰소리를 친다고 느끼며 의혹이 들어 배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사부님의 설법에 대해 가진 첫인상이었습니다.

1998년, 아내의 ‘전법륜’을 집어 들고 보는데, 책 속에 있는 ‘상(像)’ 자에서 양복을 입은 실제 사람 같은 분이 저를 보고 웃고 계신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부님의 모습이 아주 선명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법을 보았는데 한 페이지를 다 읽어갈 무렵 ‘어떻게 글자에서 사람 모습이 나왔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사부님의 모습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상’ 자만 남았습니다. 저는 ‘이건 천서(天書)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부터 천서를 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는데 오늘 정말로 본 것입니다. 그 후로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운전하다가 남는 시간에 책을 보았는데 책이 온통 금빛으로 번쩍였고, 금빛이 많으면 더 보고 싶었고 금빛이 적으면 좀 덜 보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책 속의 글자가 도는 것이 보였는데, 도는 글자가 많으면 보고 싶고 글자가 적으면 보기 싫었습니다. 달빛 아래서도 글자가 아주 잘 보였습니다. 일반인들은 제가 뭘 보는지 몰라 저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전 며칠 동안, 천목(天目)으로 많은 사람이 버스에 비집고 타는 것을 보았는데 법공부 팀 수련생들에게 말했지만 다들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중공(중국공산당)이 사람을 붙잡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7·20’ 전날 밤, 우리 일행은 차를 빌려 100km 떨어진 성 정부로 갔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니 마침 ‘7·20’ 당일이었고 새벽 연공 시간에 맞춰 포륜을 하고 있었는데, 하늘에 있는 각종 형상의 신(神)들이 제 앞에 와서 합장하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자신감이 더해졌습니다.

7월 21일, 저는 차를 타고 성 정부 소재지로 가서 법을 실증하려 했습니다. 현지 역에 도착했을 때 파출소 사람들이 지키고 서서 파룬궁수련생은 차에 타지 못하게 했습니다. 버스 기사가 제 이름을 부르며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네 사람은 얼마나 되든 제가 다 태워드립니다. 태워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돈도 한 푼 안 받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차를 타고 성 정부 소재지에 도착했는데 성 정부 앞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저는 얼른 택시를 타고 돌아와 수련생 두 명을 태우고 창춘으로 갔습니다.

저는 인민(人民) 광장 제일 앞줄에 있었습니다. 경찰이 사람들을 차로 끌고 가는데, 류청쥔(劉成軍)이 윗옷을 벗고 상체에 기름을 발라 경찰이 잡을 수 없게 하고는 그곳을 막아 서서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팔짱을 꼈고 경찰은 떼어놓을 수도 끌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차에 끌려갔고 다들 파룬을 보았습니다. 오후에 우리를 난링(南嶺) 체육관으로 끌고 갔는데, 차에서 내린 후 우리는 그곳에서 연공을 했습니다. 경찰이 한 겹 에워쌌고 무장경찰이 실탄을 장전하고 경찰 뒤에서 또 한 겹 에워쌌습니다. 류청쥔은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내 사부님의 결백함을 회복시켜달라!”라고 큰 소리로 외치다 경찰에게 끌려갔습니다. 류청쥔은 ‘우리 사부님은 가장 바르시고 법은 가장 바르며, 우리가 정법(正法)의 일을 하는 것도 가장 바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창춘 경찰이 저를 현지 파출소로 데려갔고 이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7·20’ 이후 현지에는 명혜망에 접속하는 사람이 없어, 저는 기차를 타고 진저우(錦州)로 가서 명혜망 글을 가져왔습니다. 진저우에 두 번 가서 명혜망 정보를 현지 수련생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후 현지에서도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되어 명혜망의 글과 정보를 제때 돌려볼 수 있었습니다. 명혜망을 자주 봐야만 현지의 정법을 사부님의 정법 노정과 연결해 노정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명혜망이 생긴 후부터 저는 전심전력으로 정법에 뛰어들었습니다. 잠잘 때 옷을 벗지 않았고, 법공부를 하고 싶으면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고 싶으면 연공했습니다. 명혜망에 무슨 정법 항목이 떴다 하면 저는 기다릴 새도 없이 바로 했고, 하고 싶으면 일어나서 바로 나갔습니다. 명혜망의 글에서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사부님께서는 밤새 포륜하고 계신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저는 가장 추운 날 포륜을 했는데 나중에는 손이 얼어 감각이 없었고 방에 들어와서도 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연공한다고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하신 법이 생각났고, 손 위에서 파룬이 돌더니 1분 만에 손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법 일을 하면 사부님께서 격려해 주셨고, 정법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방안 가득 파룬이 있었습니다. 몸의 땀구멍마다 파룬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법으로 제게 베이징에 가서 정법하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한번은 꿈에 큰 대법 배(船)를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검은 양복을 입고 뱃머리에 서 계셨고 흰옷을 입은 노인 형상의 신이 제게 어서 타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눈을 뜨고 있는데 누군가 어서 베이징에 가서 정법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구들을 지도 모양으로 깔았는데, 다 펴고 나니 광경이 변해 천안문이 되었고 기차에서 내려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천안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라고 재촉하신 것입니다. 저는 수련생들 사이에서 베이징에 가는 일을 교류했는데 성과가 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제가 누구를 찾느냐고 묻자 그는 후웨싼(胡約三)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누구를 찾아도 아무도 베이징에 가지 않기에 저는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 없이 혼자 베이징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날 저녁, 아내와 구들에 앉아있는데 아내의 몸이 큰 산으로 보였고 심장 부위에서 소머리 하나가 나와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큰 산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넘어진 후 보니 아내의 몸이었습니다. 아내의 병은 원래 제가 베이징에 가서 정법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가라고 해서 저는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들고 파룬 배지를 달고 차에 타자마자 ‘전법륜’을 보았는데, 기차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전법륜’을 한 번 다 보았습니다. 저는 천안문 광장에 도착해 천안문으로 들어갔는데 경찰이 파룬궁을 연마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했고 경찰은 저를 차에 태워 천안문 파출소로 보냈습니다.

파출소에는 파룬궁 접대처가 있었는데 경찰은 “당신들 사부를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온 거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서명부를 제게 던져주며 왜 베이징에 왔는지 쓰라고 해서, 저는 ‘내 사부님은 가장 바르시다, 내 사부님의 결백함을 회복시켜달라’라고 쓰고 제 이름과 주소를 적었습니다.

주재 베이징 지린(吉林)성 사무소 사람이 저를 사무소로 데려갔는데, 그곳에 있던 수련생이 제게 수기(手記) 경문 ‘도법(道法)’을 주었습니다. 경문은 우리 본성(本性)이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소 사람은 베이징에 간 우리 10여 명의 창춘 제자들을 데려왔고, 저는 현지 경찰에 의해 현지 구류소로 보내져 하룻밤을 묵고 다시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며칠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와 설을 쇠었습니다. 원래 베이징에 갈 때 가져갔던 파룬 배지와 ‘전법륜’, 단편 경문을 모두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셨고 법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현지 정법에 뛰어들었습니다. 중공은 TV, 라디오, 신문 등 모든 선전 도구를 동원해 민중에게 속임수와 거짓말을 주입했고, 대법제자는 각자 사부님을 보위하고 대법을 수호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나와 각종 방법으로 중국 민중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사악의 일방적인 악독한 선전을 뒤집었습니다. 이것이 정법이고, 진상의 힘으로 사부님의 결백함을 회복시켜 드리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운 진상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각종 조건을 이용해 법을 실증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 방법과 자료를 현지에 소개하고 저 스스로 몸소 실천했습니다. 진수(眞修) 제자라면 따라서 하게 됩니다.

한번은 고성능 스피커를 읍내 중심의 TV 송신탑에 걸어두고 아침 7시 30분에 울리게 설정했는데, 큰 스피커가 1시간 동안 울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 라디오 방송국 방송이 나왔어, 파룬궁이 누명을 벗었대”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조건이 열악해 직접 현수막을 제작했습니다. 직접 판을 파서 처음에는 솔에 안료를 묻혀 칠하다가 나중에는 뿌리는 방법을 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지지하시고 대법제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제가 수련생 집에서 현수막을 만들었는데 200여 개를 만들자 방안 가득 페인트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우리가 막 방을 치웠을 때 경찰이 왔는데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갔습니다.

저는 현수막을 사악이 떼어낼 수 없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걸었습니다. 한번은 현수막을 아주 높은 송전탑에 걸었는데 사악은 전혀 방법이 없어 전기를 끊어야만 현수막을 떼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TV 송신탑에 현수막을 걸자 아무도 감히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근 현에도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한번은 현수막을 다 걸고 진상 소책자를 경찰차 위에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런 잡념도 없었고 마음속에는 오직 사부님의 결백함을 회복시켜드리고 대법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현에 가서 두 달도 안 돼 새로 개원한 병원의 구급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들이 전단지를 돌리며 광고하러 차를 타고 나갔는데, 그들이 전단지를 돌리면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듣자니 그쪽은 진상 자료가 드물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상 자료를 수백, 수천 장씩 가지고 가서 날이 어두워지면 날이 밝을 때까지 배포했습니다.

한번은 위생국 부국장이 현 정부 회의에 가느라 원장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저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진상 자료를 가지고 차에 탔습니다. 이때 국장이 탔고 과장 몇 명도 탔습니다. 저는 진상 소책자를 꺼내 국장에게 주면서 “국장님, 이 소책자 내용 보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국장이 받아 보더니 다 외지 것이고 우리 지역에는 파룬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국장님 한번 보세요”라고 하자 국장은 다 보고 나서 뒤에 있는 과장들에게 “당신들도 좀 봐, 이건 파룬궁 진상이야”라고 했습니다. 과장 몇 명이 다 달라고 했고 어떤 이는 집에 가서 본다고 했으며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나중에 원장은 겁이 나서 저에게 운전을 맡기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저와 수련생 2명이 창바이(長白) 중선(中線) 다리 주변에 글자를 스프레이로 뿌렸습니다. 글자를 막 다 뿌리고 나니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곧장 우리 쪽으로 달려오기에 두 수련생은 옆으로 피했습니다. 저는 제가 혼자 감당하고 수련생에게 위험이 닥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한 손에는 페인트통을 들고 한 손에는 솔을 들었습니다. 경찰차가 급정거하자 저는 곧장 경찰차 쪽으로 달려갔는데 경찰차가 왼쪽으로 핸들을 꺾더니 가버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경찰차가 간 후 우리는 계속 글자를 뿌렸습니다.

그때 파출소 경찰들은 많은 대법 일을 제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민감한 날만 되면 저를 잡아 가둬 며칠씩 가뒀습니다. 경찰은 “너를 집어넣어야 우리가 편안하게 명절을 보내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직접 전시판도 만들었습니다. 1m 너비에 2m 길이의 두꺼운 종이 위에 대법 진상 소식지를 가득 붙였습니다. 나중에는 천으로 전시판을 만들어 사람이 있는 곳이면 다 붙였는데 눈에 잘 띄는 곳일수록 더 붙였습니다. 외지 현 수련생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정부 청사 문 앞에 붙이려는데 벽에 붙지 않아 붙일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찾다 보니 정부 청사 문을 여는데 벽 쪽에 광고 게시판이 있어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고 경비원은 자고 있어 저는 솔을 들고 풀칠을 시작해 전시판을 붙였습니다. ‘이건 제대로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차주가 정부 청사에 출근했다가 제게 말해주기를 “파룬궁이 진상 전시판을 정부 청사 게시판 알림란에 붙여놨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은 비서가 당직이었는데 비서가 경비원에게 “봤어, 못 봤어?”라고 하자 경비원이 겁이 나서 얼른 떼려고 했습니다. 비서는 “떼면 안 돼, 손대지 마. 이따 출근하는 사람들 다 오고 파출소에도 알려서 오게 해. 당신들 경찰은 현지 정부를 보호한다면서? 파룬궁이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하는 걸 좀 보라고 해. 오늘 정부 청사 모든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보게 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시장에 전시판을 붙이려고 하는데 파출소 경찰이 마침 PC방 아이들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와서 저를 붙잡았는데 저는 풀을 경찰 얼굴에 들이밀며 “배고프면 이거 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제게 춥지 않냐고 묻기에 “춥긴 뭐가 추워요?”라고 했더니 그는 “이거 바보네”라고 하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저는 진상 활동을 할 때 집집마다 빠뜨리지 않고 다 했습니다. 다 같이 협력할 때 저는 거리를 맡아서 했는데 거리에는 행인이 많고 경찰도 많고 잠복근무도 많았지만, 제가 할 때는 골치 아픈 일을 겪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골치 아픈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경찰 두 명을 마주쳤습니다. 제가 진상 자료가 가득 든 큰 가방을 들고 있는데 경찰이 뭐 하냐고 물어서 “방금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소변 좀 보려고요”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그냥 갔습니다. 저는 좀 겁이 나서 진상 자료를 담장에 던져두고 집으로 뛰어가다가 몇 걸음 가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상 자료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려다 다시 생각해보니 ‘안 하면 안 되지’ 싶어 되돌아가 진상 자료를 다 배포하고서야 집에 갔습니다.

2003년, 명혜망에서 현지 대법제자를 박해한 악인을 고소한 글을 보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현지 민중에게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박해받은 경과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고 외지로 가서 수련생을 찾아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했는데, 현지에는 감히 글을 쓰지 못하는 수련생이 있었고 어떤 수련생은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가 하지 못하게 막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사악이 우리를 찾으려 해도 못 찾는데, 감히 실명을 사악에게 알려준단 말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사악을 폭로하는 것이 바로 사악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명혜망 앞부분 4~5편의 글이 모두 우리 지역 수련생 박해를 폭로한 생생한 사실이었고, 당시 우리는 현지 ‘명혜주보’도 있어 매일 소식을 내보냈고 자료점에 대량으로 만들라고 알려 매주 큰 자루 하나씩 만들었으며, 다 만든 후 저는 수련생들과 전면적으로 배포해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했습니다. 이는 사악을 공포에 떨게 하는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지역 파출소장은 현지 사람인데 장사하는 수련생을 찾아가 “그들에게 제발 (폭로)하지 말라고 전해줘요. 하도 해대서 내가 길 가다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2. 중공 악당을 폭로하고 ‘9평’을 널리 전하다

2004년 11월 19일, 에포크타임스는 사설 시리즈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발표해 중공의 실제 역사를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부하고, 중공이 한 세기 동안 퍼뜨린 거짓말과 저지른 범죄를 폭로했으며, 하늘과 땅과 싸우고 반(反)인류, 반우주적인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제시했습니다. 중국 인민에게 중공 악당을 폭로하는 것은 정법 노정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9평’이 길을 열었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의 큰 물결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9평’ 배포하는 일을 현지 수련생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처음 ‘9평’을 전할 때 저는 창춘에서 ‘9평’ CD 9천 장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어떤 수련생은 ‘9평’을 전하는 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9평’을 받았다가 심지어 배포한 것까지 다시 달라고 해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9평’ CD 9천 장은 거의 다 제가 배포했는데 꼬박 1년 넘게 배포했습니다.

다른 수련생과 함께 ‘9평’ 책 약 5천 권을 만들었습니다. 페이지 추리는 것부터 완제품 만드는 것까지 주로 제가 했는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때 낮에는 버스를 운전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9평’을 만들며 피곤한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운전할 때 자주 졸려 차가 기우뚱거렸지만 늘 놀라기만 했을 뿐 위험은 없었고 교통사고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외지 수련생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들에게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는 제가 외지에 가서 싣고 와 현지 수련생에게 주었습니다. 수련생 수요를 넘어서 남은 것은 다 제가 배포했습니다. 저는 ‘9평’을 배포할 때 마을 하나하나를 돌며 거의 한 집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여섯 명의 수련생은 자주 차를 몰고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한번은 5개 현이 접경한 곳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9평’ 2천여 권을 가져갔습니다. 두 명씩 한 마을을 맡아 목에 걸고 손에 들고 등에 지고 한 마을을 다 할 만큼 가져갔습니다.

한 수련생이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방에서 나오더니 “뭐 하는 거야!”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수련생을 붙잡았습니다. 소리를 듣고 저는 얼른 그쪽으로 뛰어가 ‘9평’ 한 권을 꺼내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구하러 왔습니다. 공산당이 어떤지 모르십니까? 지금 천재인화(天災人禍)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원인인지 아십니까? 이 책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건 당신의 복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편안하게 잠이나 자지 뭣 때문에 이러겠습니까? 가져가서 잘 보시면 알게 됩니다.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자 그가 멍해지더니 “아” 하고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갔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위험을 풀어주시고 중생을 구하셨습니다.

진상 자료를 줄 때 자주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진상 자료 한 권을 주면 고맙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중생은 모두 진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후의 진상 알리기에서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리는 것 외에도 악당의 사악함을 알리고 또 삼퇴를 권해야 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다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관리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버스를 운전할 때 자주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승객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9평’이 발표된 후 저는 전문적으로 9평을 배우고 9평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중공이 얼마나 사악한지, 큰 관리는 크게 탐오하고 작은 관리는 작게 탐오하며 탐오하지 않는 관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근 시의 정법위 서기가 제 차를 탔는데 그가 내렸다가 제가 말을 다 하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내렸는지 아시오? 나는 내려서 공평함을 되찾으러 왔소.” 제가 “무슨 불공평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 말은 확실히 아주 좋소.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시오? 나는 정법위 1인자 자리에 있소.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았는지 아시오?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았소. 어머니가 아주 힘들게 뒷바라지해서 공부시켰고, 대학에 간 후 나는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며 돈을 벌어 어머니를 모셨소.”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효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 앉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시오? 나는 남에게 돈 한 푼 안 주었소. 이 자리에 앉고 나니 내게 돈을 보내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소”라고 했습니다.

또 한번은 여성 경찰관을 만났는데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제가 승객을 태우고 지린의 성모산(聖母山)에 갔는데 그녀는 대형버스 맨 뒷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모산에 도착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가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가가 왜 안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제가 뒤에 앉아서 봤는데, 우리 차에 탄 이 모든 사람이 당신이 차를 몰고 앞으로 가면 따라가고, 왼쪽으로 돌면 따라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면 따라 오른쪽으로 돕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중에 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당신들의 신앙을 위해, 당신들의 사부님을 위해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 차에 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겁니다.”

저는 그제야 웃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당시 법을 전하실 때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확고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2천 년이나 지났는데 여러분은 참 대단합니다. 다만 대법제자는 당시 예수님의 제자보다 더 크게, 더 넓게, 더 신속하게 법을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수련생들이 협력해 ‘9평’을 전하며 주변 각 현과 읍을 다 돌았고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료는 네이멍구(內蒙古)까지 전해졌습니다. 다른 공간의 신이 제 앞에 나타나 합장했습니다! 대법제자를 신들이 부러워하는데 이것은 절대 확실한 것입니다.

3. 지역에 NTD TV 설치를 시작하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위성 안테나를 말씀하셨기에 분명 제일선의 정법 항목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항목을 꼭 해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초기 자금 2천 위안을 들여 수련생과 협력해 민중에게 큰 안테나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항목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고 원가만 받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집에 큰 안테나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일반 마을 주민 외에도 마을 간부에게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보급을 위해 우리는 마을 간부들에게 모두 무료로 설치해 주었습니다. 진상을 인근 농가에 널리 전했고 인접한 현과 읍에도 많이 설치했습니다.

본 민중은 대개 즐겨 보았고 다들 좋다고 했습니다! 진상을 명백히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발휘했습니다. 대체로 NTD TV 프로그램을 설치한 일반인들은 다 잘 따라왔고, 일반인보다 진상을 더 명백히 알았으며 대법에 대한 태도가 더 직접적이고 선명했습니다.

4. 우리 지역의 장쩌민 고소

2015년, 대법제자들은 중공이 이른바 사법 개혁을 선전하며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처리한다(有案必立 有訴必理)”라고 주장하는 것을 계기로 민(民)이 관(官)을 고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 세계 각지 대법제자들이 앞다퉈 박해 원흉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했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NTD TV를 보았는데 매일 숫자가 갱신되었습니다. 400명이 된 것을 보고 저는 수련생들에게 “이제 고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런 형식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이런 기회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법 말기에 기회를 다잡아 정법 노정을 따라가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한 수련생은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했습니다. 그 후 장쩌민 고소 인원이 서서히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이후 형세는 빨리 발전해 6월 2일이 되자 NTD TV는 6월 1일 전에 최고검찰원, 최고법원이 다 접수했고 접수증을 주었다고 보도했습니다. 6월 2일부터 저항이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고소장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명혜망은 여전히 대법제자에게 장쩌민을 고소할 기회를 주었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장쩌민 고소를 늦게 한 사람은 중공의 박해를 받기도 했고 일부는 심각한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5. 사부님을 도와 법난을 끝내다

2024년 6월 5일, 사부님께서는 ‘법난(法難)’을 발표하셨습니다. 정법제자의 수련이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고 사부님께서는 전체 정법시기 우리가 법난을 대하는 태도를 보려 하십니다.

2024년 말, 중공 악당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여론전과 법률전을 일으켰습니다. 대법제자는 정법시기 수련을 대함에 있어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명혜망의 교류 문장을 선택해 현지 수련생들에게 배포했고 수련생들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앞다퉈 참전했습니다. 과거에는 발정념(發正念)을 보통 15분에서 30분 정도 했으나 참전 후 대법제자들은 보편적으로 발정념 시간을 늘렸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법난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을 눈에 띄게 늘렸습니다. 원래 우리는 사람의 활동 방식을 이용해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것을 중시했는데, 법난 이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정법이 급박하고 사부님의 정법은 많은 부분이 시공간에 구현되지 않으며 시공을 초월해 있는바, 우리가 사부님을 도와 시공을 초월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발정념을 많이 하고 발정념을 잘하는 것입니다.

자신 외에도 수련생들을 조직해 함께 발정념을 많이 하고 발정념을 잘해, 법난의 최후의 순간에 사부님께서 정법제자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진정으로 박해를 제지하며 사악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작용을 일으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지 않고 사부님의 막중한 부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부님을 따라 신성하고 영광스럽게 회귀해야 합니다!

맺음말

대법제자의 정법은 사부님께서 구세력의 배치를 이용해 장계취계(將計就計, 상대 계략을 역이용)로 대법제자의 더 큰 위덕을 성취해 주시는 것입니다. 진수 제자가 사악한 환경과 이 구간의 귀중한 시간을 잘 이용해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서약을 실현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저는 전체 과정에서 시시각각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무엇이든 했으며, 가장 큰 체험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장이 있어 대법제자가 하는 일이 가장 바른 일임을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제자가 하는 일은 누구도 참여할 자격이 없고 시험할 자격이 없으며 더욱이 박해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가장 바르시고 사부님의 법은 가장 바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하는 일도 가장 바른 것으로 오직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을 뿐입니다. 정법이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다는 정념(正念)에 의지해 저는 비로소 최대의 노력을 다해 일체 사악의 교란과 파괴를 타파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일을 가장 크게, 가장 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위에서든 정법의 일에서든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신의 기적을 보여주셨고, 우리 진수 대법제자는 정말로 신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시간과 조건을 이용해 정법 형세의 필요에 협력해 진상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법난 전 몇 년간 저는 전심전력으로 대법 진상을 널리 알렸지만, 사악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타파하고 사부님을 수호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면에서 유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9평’이 발표된 후 저는 본 지역에서 수련생과 협력해 현지와 주변 지역에서 최대 범위로 진상을 알렸고 중공 악당의 사교(邪敎)와 깡패 본질을 충분히 폭로했습니다.

NTD TV의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민중이 대법을 이해하고 중공을 인식하게 하는 데 힘을 집중한 기초 위에서, 더욱 깊이 있게 진상의 전파를 확대한 것입니다. 이런 착실한 기초 작업은 상당한 범위의 민중이 미래에 삼퇴를 선택하고 미래에 법을 얻을 기초를 닦는 데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했습니다.

미래의 매우 제한된 시간 안에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하고 처음 수련할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해 사부님의 막중한 부탁을 저버리지 않으며, 현지의 진수제자들과 함께 사부님을 도와 법난을 끝내겠습니다. 유감없이 합격 답안지를 제출해 사부님께서 안심하시게 하고, 사부님께서 우리 진수제자들의 신성한 표현을 자랑스러워하시게 하겠습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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