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미혹되지 않고, 생사를 내려놓고 신을 향해 나아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법 속에서 수련한 지 곧 30년이 됩니다. 사존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감사, 대법에 대한 비할 데 없는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22회 중국 온라인 법회의 좋은 기회를 빌려, 제가 70세 가까이 되면서 겪은 시련 속에서도 미혹되지 않고, 생사를 내려놓고, 자신을 수련하며 사람을 구하고, 신을 향해 나아가는 제고 과정을 사존께 보고드립니다. 사존께서 기뻐하시기를 바라며 수련생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정말 업(業)이 겹겹이 쌓여 왔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끊임없이 목숨을 앗아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눈보라 치는 추위 속에서 어머니의 솜바지 속에서 태어나 양수에 질식해 죽을 뻔했습니다. 6~7개월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굶어 죽을 뻔했습니다. 8~9개월에 가축 우리에 기어 들어가 소에게 밟혀 죽을 뻔했습니다. 세 살에 오빠가 놀 때 파놓은 깊고 좁은 흙구덩이에 머리부터 처박혀 질식해 죽을 뻔했습니다. 같은 해에 오빠가 손에서 놓쳐버린 큰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5~6세에 십대 초반의 바보 사촌 언니에게 이끌려 강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는데, 그때의 기침과 질식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7세에 승강장에서 밀려나 기차에 깔려 죽을 뻔했습니다….

대법을 얻고 나서야 사존의 보호 덕분에 제가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대법제자가 될 기회를 얻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련 후 사존께서 저의 신체와 사상을 정화해주시고, 도덕이 승화되어 목숨을 앗아갈 병이든 그렇지 않은 병이든 모두 나았습니다. 25년간의 체력과 활력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 것입니까? 사람에서 신이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수련할수록 편안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70세 가까이 되면서 피와 불 같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저의 신체는 갑자기 위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적시(赤施)’가 생겼는데, 이는 《황제내경》의 17가지 죽음 중 가장 흉험한 것으로, “열흘 안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약 7kg의 체중이 빠졌습니다. 왼발의 족근골이 골절됐고, 오른 손목뼈는 골절돼 반불구 상태가 됐습니다. 당뇨병의 모든 가상들이 번갈아 나타났고 발이 두 번이나 썩었습니다. 시력, 청력, 체력, 미각이 급격히 저하됐습니다. 두 눈은 이미 3년 동안 맞은편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후각은 어린 시절에 상실됐고, 손과 발의 통각은 사라지고 마비, 냉기, 부종이 있었습니다. 늘 만성 변비가 있었습니다.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어 허리를 펼 수 없었고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주 넘어지면서 무릎과 팔꿈치의 헌 딱지가 십수 번, 20여 번 떨어져 나갔습니다. 간혹 입이 벌어지지 않거나, 신발을 신지 못하거나, 안면 마비 등의 뇌경색 가상도 있었습니다.

‘늙음, 병듦, 불구’가 닥쳤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죽음의 관(關)을 넘기도 했습니다. 장적시 외에도 당뇨병 등의 가상을 겪었고, 급성 심근경색도 갑자기 발생했습니다. 숨이 막히고, 현기증이 나고,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또 격렬하게 기침하다가 구토하고, 오줌을 싸고, 질식하기도 했습니다. 8월 중순에 한 수련생이 법공부하러 와서 제가 2월에 발이 썩고, 격렬하게 토하고 설사했으며, 걸을 때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법을 읽을 때 발성이 어려웠고,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사악이 목숨을 앗아가려고 왔던 것입니다. 제가 정념(正念)을 가졌기에 사존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그날 저는 심근경색, 격렬한 기침으로 인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없었기에 전혀 몰랐습니다. 아마 제가 모르는 일이 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저는 법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파룬따파(法輪大法) 보도원을 위한 설법) 저의 신체는 사존께서 이미 완전히 깨끗하게 청리(淸理)해주셨기에, 저는 이 가상들을 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돈을 저축하지도 않습니다. 혼자 사는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외지에 있는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련생들에게 발정념(發正念)을 도와달라고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이 계십니다.

저는 고통을 겪는 것은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덕(德)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수련 제고의 좋은 기회라고 인식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병의 가상들은 그에 상응하는 병과 달랐습니다. 열흘 안에 죽는다는 악성 종기인 적시는 약을 쓰지 않았는데도 일주일 만에 나았습니다. 당뇨병으로 발이 두 번 썩었을 때도 의사를 찾지 않았는데, 각각 4일과 10여 일 만에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앉았습니다. 저의 안색은 분홍빛이고 희며, 피부는 곱고 윤택하며 탄력이 있고 주름이 없으며 화장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온몸이 가볍고 깃털처럼 떠서 병색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어떤 연공인들이 늙고 죽을 때까지도 마음을 병마 제거 및 건강 회복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으로 돌리지 못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속인이라면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합니다. 저의 편협한 이해에 따르면, 자신을 환자로 여겨 병원에 가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수련생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제가 왜 이런 상황을 겪었을까요? 법 위에서 수련하고 미혹 속에서 깨닫습니다. 아마도 사존께서 저의 업을 소멸시켜 주시는 것일 수도 있고, 아마도 저의 공(功), 공능, 생명체가 자라고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본체(本體)를 변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마도 제가 구원한 사람들이 가져온 죄업을 소멸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배후의 생명들을 위해 감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덕이 커서 신체적으로 더 많이 감당하며 공이 자라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사존께서 저의 심성이 제고되고 안정됐으며, 깨닫고 수련할 수 있다고 보시고 난관과 시련을 설정하여 제가 층차를 올리게 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역사적으로 ‘늙고 병들고 불구인 몸으로 대법을 얻어 고통스럽게 수련하겠다’는 서약을 세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법을 배울 때 일심불란하지 못하고 법을 존중하지 않아 징벌을 받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좋아하는 고서(古籍)나 잡서를 읽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을 불러들여서, 이 집착 때문에 눈이 나빠져서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의 본성적인 면이 법을 바로잡지 못하여, 사악이 방임하는 틈을 타 끝없이 저를 박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구세력이 저의 난(難)을 이용하여 수련생들을 수련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어떤 수련생은 제가 수련을 이루지 못하면 그들 누구도 수련을 이룰 수 없다고 한 번 이상 말했습니다). 아마도 구세력이 제가 수련하여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과 소멸시키지 못한 죄업을 이용하여 사악한 교란과 시험 및 박해를 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제가 역사적으로 구세력과 계약을 맺어, 말세에 늙고 병들고 불구인 상태로 법을 얻어 정법(正法)을 교란하고 중생이 구원받는 것을 막는 것에 동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바로 부작용을 일으키도록 배치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원인은 만 가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존께 말씀드렸습니다. “정법 구원을 교란하는 것은 구세력입니다. 제자는 구세력을 위해 죄책을 감당하지 않겠습니다. 사존께서는 제자를 위해 주재해주십시오.” 저는 사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존의 제자로서, 제자의 모든 것은 사존께서 배치해주십시오. 제자는 오직 사존께서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만을 걸을 것이며, 그 외의 다른 배치는 원치 않습니다. 만약 제자가 역사적으로 구세력과 그 계약을 맺은 것이라면, 만약 제자가 바로 부작용을 일으키도록 배치된 것이라면, 사존께서 제자를 구원해주십시오. 제자는 몸이 산산조각 나고 형신전멸(形神全滅)되어도 그 약속과 배치를 원치 않습니다. 제자는 오직 사존을 따르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만을 원합니다. 만약 제자의 정념이 강하지 않고 큰 착오가 없다면, 사악의 배치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면, 정신(正神)께서는 정법에 사용되도록 배치된 제자를 소멸시켜주십시오.”

왜 이전에는 이런 난관이 없었을까요? 저는 법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저의 심성이 높지 않고 불안정해서, 대법과 수련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부족하여 이런 난관이 나타나면 제가 깨닫지 못하고 수련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 제거해야 할 집착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구원한 사람이 많아져서 감당하는 업력도 많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구세력이 제가 나이가 많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집착을 겨냥하여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됐든 저는 사존의 배치가 자비롭고 질서 있고 절묘하며, 정말 제자를 위해 생각하고 계심을 체득하며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구세력은 질투하고 방자하여 틈을 타서 박해하는데, 정말로 우리를 훼멸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법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7·20’ 이후 개인 수련은 전면적으로 정법 수련으로 전환됐고, 사존께서는 제자에게 개인 수련의 난관을 설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인체 변화의 반응도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큰 난관은 구세력의 사악한 교란, 박해 및 시험입니다. 사악이 저를 교란할 수 있고, 저를 교란했다는 것은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줄곧 안으로 찾고 있으며 수련생들도 제가 찾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제거해야 할 많은 집착을 찾았습니다. 질투심, 쟁투심, 선량함과 인내심 부족, 말하는 어투가 좋지 않은 것,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체면을 중시하는 것, 다른 사람의 단점을 잘 보는 것, 입을 수련하지 않는 것, 급하게 표현하려는 것, 자신을 과시하고 실증하려는 것, 게으름, 동공(動功) 연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 의존심이 강한 것, 컴퓨터의 모든 조작을 수련생에게 의존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한 가지 특수한 색욕심도 있습니다. 욕망은 아니지만 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중에도 불쑥 튀어나오는 것으로, 제가 이전에 알았던 성폭력 범죄 사건이나 소설의 성적인 묘사 등입니다. 가짜 자아(假我)는 또 다른 가지를 펼쳐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교란은 제가 대법을 얻기 전에 7편의 성적인 내용을 포함한 짧은 소설을 지은 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소설을 읽은 독자들에게 죄송합니다. 저는 발정념으로 제거하는 동시에 사존께 진정한 제가 원치 않는, 참된 저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의 집착과 죄업을 씻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법에서 올바르게 찾았고 바로잡았기에 죽음의 관도 사존께서 저를 도와서 해결해주셨습니다. 시력, 청력, 체력, 오른손 기능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올바르게 찾지 못했거나 올바르게 찾았더라도 법에서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빚은 한동안 시련을 겪어야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심성을 제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법 속에서 자신을 환자나 노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저를 환자로 여기지 않지만 늘 자신을 노인으로 여깁니다. 때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저의 해이함을 스스로 용서합니다.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설 때, 일을 할 때도 모르게 끙끙거립니다.

대법은 성명쌍수(性命雙修)이며, 늙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가상이며 구세력의 배치입니다. 저는 제가 노인임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끙끙거리는 것을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누가 젊은 사람이 끙끙거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또 다른 예로, 난관 속에서 사존께 구하고, 법을 많이 배우고, 연공을 많이 하며, 안으로 찾고, 발정념하며, 선해(善解)하고, 사악을 반제(反制)하며, 공능과 신통을 운용하는 등에서 기점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통을 해제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심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인가? 신체가 편안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박해를 반대하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서인가?’ 저의 마음은 순수하지 못했고 양면 모두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제고해야 할 점입니다. 또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서도 저는 저 자신을 원만시키려는 사사로운 속셈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법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어떤 것도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수련인은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것이 아니며, 수련의 길은 각기 다릅니다. 똑같은 표현이나 상태라도 그 배후의 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모범이 없고, 무임승차는 없으며, 다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을 스승으로 삼아, 법에서 깨닫고, 법에서 수련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순조롭게 수련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수많은 재난을 겪는다고 질투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자신도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난관이 끊이지 않는다고 대법을 의심하거나 사존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말세에 타락한 사람이 대법 속에서 수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존의 자비이며 대법의 위대함입니다. 수련을 이루지 못한 것은 자신의 근기, 깨달음, 또는 인내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수련은 늘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법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생사를 내려놓는 것이 바로 신이다.’ 지금껏 수련하면서 저는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홍음-무존)의 의연하고 침착함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생사를 담담하게 보고 내려놓는다고 해서, 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명을 지닌 대법제자로서 생명은 대법에 속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포기할 권리가 없으며 구세력이 함부로 빼앗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사느냐 죽느냐는 오직 사존의 배치에 달려 있습니다. 생사의 고비 앞에서 단지 목숨만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저는 혼자 외롭게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존의 법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에 손자 손녀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유감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았습니다.

올해 2월 어느 날, 아마도 수련생이 사악이 제 목숨을 앗아가려고 왔다고 말했던 그 며칠 동안일 것입니다. 한 젊은 수련생이 저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제 아이들에게 알려야겠다고 하면서 저의 의료보험 카드도 요구하며 언제든지 저를 병원에 보낼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의료보험 카드를 찾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병이 없으며 의료 행위는 저의 수련을 방해할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만약 저의 이 숨이 끊어질 것 같으면 당신이 저를 하룻밤 지켜보고, 원치 않는다면 다음 날 와서 저를 한번 보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면 그때 저의 아이들에게 알려주세요.” 나중에 또 저는 제게 사존의 설법을 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제가 법에서 행동하지 않은 것이며 발정념으로 제거하여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직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수명이 다 됐는지, 저의 수련 상태가 생명을 연장받을 자격이 있는지, 제가 세간법(世間法)을 수련하여 벗어났는지 아닌지는 저는 모릅니다. 저는 구세력이 저와 농담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며, 사존께서 배치하신 것이 틀림없이 가장 좋을 것이며 모든 것을 사존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저는 사명을 잊지 않고 세 가지 일을 줄곧 마음을 다해 하고 있습니다. 법을 배우고, 연공하고, 발정념하며, 사악한 공산당의 국경을 넘는 탄압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스스로 심득 체득을 쓰고, 수련생들이 심득 체득이나 각종 공모 글을 쓰는 것을 돕습니다. 우리집은 단체 법공부 및 연공 장소로, 수련생들이 션윈을 관람하도록 조직하고, 경문, 진상 자료, 명혜망 등의 시청각 파일을 전달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처리합니다. 또 진상 지폐 항목에 참여하고, 대법 책을 대량으로 보관하는 등을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면 대면으로 진상을 이야기하며 사람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법리가 명백하면 마음이 밝고 활짝 열려서 사람이 즐겁습니다. 눈이 불편하여 넘어져서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나고, 힘줄을 다치고 뼈가 부러져도, 첫 반응은 웃는 것입니다. 몸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도, 심지어 죽음을 마주해도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고 침착한데, 스스로도 놀랄 정도입니다. 이것은 대법에서 오는 지혜와 힘입니다. 수련인이 속인 세상의 좋은 일, 예를 들어 선한 보응과 복수(福壽)를 만나든, 나쁜 일, 예를 들어 업보와 재난, 질병을 만나든 모두 좋은 일입니다. 우연한 것은 없으며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수련해야 하고, 제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 진수실수(眞修實修)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존께서 고통 속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사존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법회의 원만한 성공을 기원합니다. 사존께 감사드리며 머리 숙여 절을 올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30/50286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30/5028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