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박해했던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50년대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저는 자주 같은 꿈을 꾸었는데, 제가 공중에 있다가 제가 태어난 곳인 작은 강 옆 진흙 수렁으로 뚝 떨어지는 꿈이었습니다.

1998년 섣달그믐 무렵, 저희 세 식구는 택시를 타고 고향으로 설을 쇠러 갔습니다. 이미 해가 저물었는데 차가 매우 빠르게 달리다가 급커브 길에서 갑자기 길 옆 깊은 도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아래는 강이었는데 차가 한 그루의 큰 나무에 걸려 멈춰 섰고 강으로 굴러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와 운전기사 네 사람 모두 기어 나왔는데 사람들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고 나중에 차는 폐차했다고 들었습니다.

1998년 6월,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사존께서 생생세세 저희를 보살피고 보호하고 계셨음을 알게 됐습니다. 연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몸의 모든 병이 다 나았으며, 걸을 때 몸이 가벼워 늘 종종걸음을 쳤는데 마치 누군가 저를 미는 것 같았습니다. 수련 28년 동안, 중공의 박해로 단식할 때 침대에 묶여 강제로 몇 번 주사를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저는 단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았고 주사도 맞지 않았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속에서 저는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으며, 여기에서 중생을 선하게 대한 몇 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긴 경찰을 선하게 대하다

2000년 초, 저는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수감됐습니다. 그 악명 높은 수용소에서 저는 절대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한 번은 감옥경찰 대장이 두 개의 전기봉으로 저를 지졌는데, 하나의 전기봉은 제 얼굴에 대고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제 온몸을 지졌습니다. 전기봉에서는 불꽃이 튀면서 동시에 ‘지지직’ 소리가 났으며 매우 오랫동안 저를 지졌습니다. 당시 저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감당해 주셨음을 알았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녀는 두려워져서 전기봉으로 저를 세게 두 번 때리고는 “빨리 와서 끌고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이미 얼굴이 훼손돼 흉터가 남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눈이 실눈만 남았고 온몸에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를 전기봉으로 지졌던 감옥경찰 대장이 저를 복도로 불렀습니다. 저는 증오심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대했고 그녀는 “당신은 이 지경이 되고도 웃을 수 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그 대장은 저에게 그렇게 한 것이 그녀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선량함이 그녀를 통제하는 사악한 마귀를 해체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악한 것은 진선인(眞·善·忍)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정념으로 마굴을 걸어 나왔습니다. 2003년에 저는 그녀에게 권선(勸善,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저는 편지에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저는 한 번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당신이 그때 저에게 매우 사납게 굴었지만 저는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라고 썼습니다. 저는 문화대혁명 후 793명의 경찰이 윈난성으로 끌려가 비밀리에 총살당한 일과, 진회(秦檜)가 영원히 악비(岳飛) 발밑에 무릎 꿇고 있는 일 등 많은 진상을 썼으며, 마지막에는 “당신이 진상을 깨닫고 당신과 가족을 위해 좋은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녀가 사악함을 고치고 바르게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날 감시했던 노동수용소 수감자를 선하게 대하다

노동수용소에서는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들에게는 전담 바오자(包夾, 감시하는 수감자)를 배치해 감시하게 했으며, 두 사람이 좁은 침대 하나를 함께 썼습니다. 저를 감시하도록 배치된 이 수감자는 감옥경찰이 무술을 조금 한다고 말했는데, 정말인지 아니면 저를 위협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파룬궁을 이해하지 못해서 저를 매우 엄격하게 감시했으며 제가 밤에 일어나 연공하면 저를 억눌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걸을 수 없게 됐고 아파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그녀를 업고 위생소에 갔습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갈 수 없어서 방에서 대야에 용변을 봤고 제가 그것을 가져다 버렸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좁은 침대 하나를 함께 썼는데 제가 안쪽에서 자면서 그녀에게 자리를 더 내주기 위해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잤습니다. 추운 날에는 등 뒤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그녀를 배려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에게 버려져 입양된 아이라 친척이 없었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비용은 제가 모두 대신 지불했고 여름에 계절이 바뀔 때 바지를 사주었습니다. 나중에 노동수용소가 새 건물로 이전했을 때 그녀는 제 옆자리에 배치됐고 혼자 침대 하나를 쓰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제 침대에 깔려 있던 이불을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는 두껍게 깔았으며, 저는 얇은 요 하나만 남겨두고 잤는데 잘 때 몸 밑이 매우 차가웠습니다. 점차 그녀는 파룬궁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제가 마치 자신의 엄마 같다고 말했으며, 저를 따라 《홍음(洪吟)》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노동수용소가 저와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한 것을 폭로하는 편지를 두 통 썼는데 노동교양국에 보낼 편지 한 통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곧 출소할 때가 됐는데 그녀가 “저에게 주시면 제가 나가서 우편으로 보내 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정말로 진상을 이해했음을 알았습니다. 그 환경에서 나가는 사람은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하기에 보통 사람들은 감히 이런 것을 가져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저는 그녀의 안전을 고려해서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당신 생일이 언제예요? 그때 제가 큰 케이크를 사 드릴게요”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 두 통의 편지를 노동수용소 소장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녀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도 마굴을 걸어 나왔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는 늘 그녀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그녀가 대법 속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했습니다.

나를 박해한 구치소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다

2003년, 저는 농촌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에게 고발당해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구금됐습니다. 제가 있던 감방에는 20여 명이 있었는데 저만 파룬궁수련생이었습니다. 제가 밤에 연공하자 구치소에서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옥경찰과 소장에게 우리가 단지 진선인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박해를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위에서 규정이 있으니 우리는 명령에 따라 일할 뿐입니다. 저희 구치소에서는 제도를 준수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죄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으로 항의했습니다.

셋째 날, 감옥경찰은 수감자들에게 저에게 야만적인 강제 음식 주입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7~8명이 저를 억누르고 코를 막고 숟가락으로 입을 벌리고 혀를 누르며 억지로 먹였습니다. 제가 삼키지 않자 때로는 코로 역류하기도 하여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얼굴, 코, 입이 모두 상처를 입었고 양 볼이 심하게 부어올라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 감방장이 소장이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는데 제가 계속 밥을 먹지 않으면 감방의 모든 사람이 함께 벌을 받고 앉아 있어야 하며 휴식도 외출도 금지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수감자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여 저에게 압력을 가중시키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엿새째 되는 날, 저는 하루 밤낮을 벌을 서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게 됐습니다. 수감자들이 화가 나서 저를 때렸고 저는 맞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저에게 비위관을 삽입하여 박해를 가중시켰고 잠도 못 자게 했습니다. 제가 바닥에 쓰러지자 그들은 제가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밤낮으로 감시하며 비위관을 뽑지 못하게 했고 제가 몰래 관을 뽑자 당직 수감자가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계속 단식으로 항의하자 하루는 구치소의 정(正)·부(副) 소장이 모두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신앙은 무죄이며 우리는 단지 진선인을 수련하려는 것이고, 수련하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죄가 있으며 모든 사람은 대법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만남 후 그들은 파룬궁에 대한 태도에 큰 변화를 보였습니다. 하루는 한 당직 과장이 감방을 점검하러 왔는데 제가 밖에 앉아 있었고 좌판(坐板, 딱딱한 널빤지 위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벌) 위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판자 위에 앉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웃으며 미처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당신이 바로 파룬궁수련생이죠? 당신은 움직일 필요 없어요. 아무 데나 앉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수감자들은 처음에는 저에게 매우 사납게 굴었지만 저는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며 구치소에서 매일 방송하는 것이 모두 가짜 뉴스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그들을 선하게 대했고 대법이 사람들에게 선을 향하도록 가르치는 법리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들 대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맞고도 맞서 싸우지 않고 욕을 먹어도 되받아치지 않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모두 저에게 매우 잘해주었습니다.

한 형사 피의자 수감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고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그녀를 보살펴 주었고 옷이 없자 제 옷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점차 그녀의 정신 상태가 좋아졌고 저를 친한 사람처럼 여겼으며 저를 따라 대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열하루째 되는 날, 파출소에서 저를 데리러 왔는데 그녀가 저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 감옥경찰이 와서 말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말 진선인입니다. 제가 오늘 정말로 체험했습니다. 사실 당신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잘못이 없어요.” 경찰은 복도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 씨, 당신은 석방됐어요!”

이번에 경찰은 저에게 불법적으로 2년의 강제노동을 부과하려 했지만, 사존의 보호 아래 노동수용소는 단호하게 수용을 거부했고 저는 또다시 박해를 면했습니다.

날 납치했던 파출소장을 선하게 대하다

2003년 6월 30일, 저와 여동생은 농촌 변두리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거의 집집마다 모두 배포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악인에게 고발당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당일 파출소 경찰은 ‘610’ 요원들도 불렀는데 ‘610’ 요원들은 저희를 보자마자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얼굴이 선하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구치소에 구금된 지 열하루째 되던 날, 파출소장이 경찰 두 명을 데리고 와서 저희를 노동수용소로 압송하려 했습니다. 구치소 사람들이 저희 편을 들어 말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며 저희가 신고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저희 둘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수용소에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그때 그 소장이 수용소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공산당의 이 짓을 더는 못 해 먹겠네.” 그러고는 저희 자매 앞에서 말했습니다. “당신들 앞으로 마음대로 배포하세요. 다만 내 눈앞에서만 하지 마세요.” 그는 화가 나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희 자매 일로 그들이 돈을 쓰고 헛고생만 했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내에 도착하자 소장이 차에서 내리려 하면서 경찰 두 명에게 저희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지시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대법서적과 사부님 법상이 모두 압수되어 없어져서 저는 파출소에 가서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소장이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서적이 이미 위로 넘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소장에게 진상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소장은 저를 보자 매우 놀라며 “왜 또 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악의가 없고 당신이 파룬궁 진상을 이해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썼는데 모두 저의 진심이니 한번 읽어보세요.” 그의 표정은 누그러졌고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는 출력된 자료는 받으면서도 “이것은 제가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그러고는 제가 친필로 쓴 편지를 다 읽더니 “당신이 저를 제도하러 오셨군요. 가세요, 저희는 지금 회의 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 소장은 그 파출소에서 다른 곳으로 전근 갔습니다.

모든 경찰을 선하게 대하다

어느 날 오후, 저는 자료점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돌아온 줄 알고 문을 열어 보았는데 여러 명의 경찰이 들이닥쳐 자료점을 바닥까지 뒤졌습니다. 저는 파출소로 납치됐는데 이 파출소는 최근 몇 년 동안 파룬궁수련생들을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어떤 증오심이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이때 제 마음이 가장 아픈 것은 제가 경찰을 들여보내 그들이 죄를 짓게 했고 자료점에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찰들은 대부분 30~40대의 젊은 경찰들이었고 제 자식뻘이었습니다. 저는 중공 악당에 속아 이용당하는 이 불쌍한 젊은이들을 보며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악의는 없었습니다. 한 경찰이 “아주머니, 어느 학교를 졸업하셨어요?”라고 물었고 제가 고등학교라고 대답하자 그는 “그때 고등학교에 다니는 건 대단했죠”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파출소에서 모든 경찰을 선의로 대했기 때문에 그는 저를 매우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고 “인터넷에서 저를 악질 경찰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매우 착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로 평안을 보전하라고 권했고 그와 다른 경찰 한 명이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파출소에 하루 밤낮 구금된 후 병원으로 끌려가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경찰이 따라왔는데 파출소 부소장이 저에게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제 컴퓨터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신체검사 결과 불합격이 나와 구치소에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이튿날 경찰은 “아주머니는 서명도 할 줄 모르니 서명할 필요는 없고 거주지 감시 15일로 하고 아주머니를 집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 같은 경우는 구치소에서 수용할 수 없고 밖에서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지 이틀 후 저는 제가 이곳을 떠나야 하며 그들이 절차를 밟게 하여 경찰이 계속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돌아와서 저는 반성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경찰들에게 진상을 잘 알려주지 못했는데 평소 법률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찰이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이라는 법률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은 진상을 알고 싶어 합니다. 비록 이번에는 잘하지 못했지만 저는 정념을 발하여 이번에 제가 접촉하고 만났던 모든 경찰을 선하게 대하고 구원하며, 그들이 파룬궁 진상을 이해하여 그들의 선념을 일깨우고 그들이 진상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른 공간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고, 공산당·공청단·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여 큰 재난을 넘기도록 했습니다. 비록 저는 여전히 난(難) 속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저는 그들을 위해 발정념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때때로 발정념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아마도 내재된 본성 그 한 면에서 흘러나오는 중생을 자비롭게 여기는 눈물일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각성하라(驚醒)》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慈悲(츠뻬이)는 속인사회 중에서 선의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나오는데”, “누구에게든 慈悲(츠뻬이)하게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은 정말로 일반인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특히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중생에게 慈悲(츠뻬이)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대법도(大法徒)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 수련은 과정이 있는 것으로 신수련생은 지금은 해내지 못하나 수련 중에서 서서히 반드시 해내야 한다. 노수련생은 지금 바로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결정된바, 신성한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서 반드시 해내야 한다!”

대법 속에서 28년간 수련하면서, 이처럼 업력이 가득하고 업의 빚을 잔뜩 지었으며 머릿속은 온통 공산당의 거짓, 악, 투쟁으로 가득 차 뒤틀린 심령을 가진 저를, 자비로우신 사존께서 구원하시고 우주의 대법 진선인으로 심령을 정화하시고 제자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는 보답할 길이 없으며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하고 완전히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하며 사명을 완성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사부님이 계시기에 오늘날 우주 만물의 장엄한 존재가 가능하며 사부님이 계시기에 수많은 생명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세간에서 정법하시며 사람들을 제도하시느라 한없는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러나 단 한 푼의 돈도 제자들에게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저희의 선량한 마음만을 원하셨습니다. 저희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제자는 사부님께 단 한 푼의 공양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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