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수련생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대법을 믿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명혜망 ‘제22회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모집 공지’와 명혜망의 글을 본 후 저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바치는 답안지이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7년 세월을 되돌아보니,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가 아니었다면 저는 진작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 글은 이러한 죄악의 형성, 과정, 결과를 기록하여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시간 순서대로 제 이야기를 서술하겠습니다.
1. 유치원 시절
저는 대법제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 모두가 수련인이었고 당시에는 모두 정진했습니다. 1999년 대법이 모함을 받고 박해를 당하자, 부모님과 다른 수련생들은 함께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현수막을 펼치기로 결정했고, 외할머니가 집에서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돌아온 후 그들은 도시와 농촌으로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아버지가 납치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어머니는 저와 외할머니를 데리고 타향을 떠돌았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나오셨을 때 가족들은 예전만큼 정진하지 못했는데, 법공부가 깊지 못한 원인도 있었고 당시 어른들은 어떻게 심성을 닦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유치원 작은 반에 다닐 때 저는 세 살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 언니가 놀러 왔습니다. 제가 반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언니는 그를 엄하게 꾸짖고 저를 도와주었는데,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여자인 제가 뜻밖에도 그 언니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로서의 그런 좋아함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했지만, 당시 어린 제가 어떻게 사랑을 알았겠습니까? 나중에야 저는 이것이 구세력이 일찍이 저에게 심어놓은 죄악의 씨앗인 동성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대여섯 살 때, 입에 담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는데 처음으로 공유합니다. 또렷이 기억하는데, 당시 외할머니 댁에서 놀고 있을 때 낯선 손님이 왔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저는 방 안에서 심심해서 온도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옆 방을 훔쳐보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제 뇌리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당시 몹시 난처했지만 이런 생각은 너무나 강렬해서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저를 강요하는 것 같았습니다(지금은 이런 생각이 제가 아님을 알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수치심, 한편으로는 이런 나쁜 생각이 저를 핍박해 식은땀이 가득 났지만, 결국 저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저는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색욕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영문을 모른 채 창가에 서서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했는데 이때 그것이 말했습니다. ‘괜찮아! 본다고 또 어쩌겠어!’ (잠재적인 승리감을 전달하며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잠시 서 있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머릿속은 후회, 공포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잠깐의 휴식 후 나쁜 생각이 또 왔습니다! 당시 저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저는 이런 생각이 없었는데, 강렬한 어떤 생각이 이렇게 저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신을 포기한 그 순간은 사악이 더욱 기승을 부린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쁜 생각은 계속 저를 박해하며 저를 쏘아붙였습니다. ‘너 담력 크다며? 설마 못하는 거야?’ 어린 저는 승부욕,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 철저히 정념이 없어졌고, 사악에게 통제되었습니다.
일곱,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저는 ‘황제’ 같은 생활을 하며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집에서 매일 사줬고, 밥을 먹을 때 콜라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으며, 놀러 가고 싶으면 바로 떠났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매일 밤늦게까지 저와 놀아주며 각종 장난감 세트를 만들어주셨는데, 전등이 있는 작은 집, 연기 나는 기차 헤드, 가마(모두 안에 앉아서 놀 수 있는 것으로, 근처 이웃들도 구경하러 올 정도였습니다) 등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장난감은 다 사주셔서 제 장난감은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는데, 무엇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집에서 다 키우게 해주었습니다. 가장 심했던 때는 동시에 여섯 종류의 동물을 키웠고, 아파트에서 양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제 성격도 제멋대로가 되어 저는 매일 이런 ‘설탕 입힌 폭탄’ 속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셔서 저를 돌봐주셨는데, 매일 저녁 우리는 함께 법을 외웠고 주말에는 연공을 하여 생활이 다시 조금씩 궤도로 돌아왔기에, 그런 나쁜 일들은 모두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이미 말을 잘 듣고 착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고, 외모도 매우 건강하고 맑은 사람으로 변해 ‘선머슴’에서 뜻밖에도 외모가 예쁜 소녀로 변했습니다.
2. 중학교 시절
6학년 때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셨습니다. 저에게 알려주던 그 순간, 저는 세상의 종말 같은 느낌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지만 왜 그런지는 몰랐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제 생활도 천지개벽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어른들은 형식적인 방식으로 저에게 “너는 다 컸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셨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모두 저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저는 더 이상 저에 관한 어떤 일도 듣지 못했고, 들리는 것은 설교, 책임, 남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저는 ‘나(이 딸)’는 어디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분명히 내가 여기 앉아있는데 부모님 눈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각종 일을 겪으면서 저는 유쾌한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고 내면에 깊은 공포가 퍼지기 시작했으며, 마치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이 비현실적인 말, 저와 아무 상관 없는 말들을 하시는 것 같았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화내지 않았고 그저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저는 단지 누군가 적어도 저를 이해해주기를 바랐을 뿐, 무턱대고 그런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그분들이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일종의 자비였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때때로 법공부를 했기에 저는 제 선량함에 의지해 조금씩 버텼습니다.
법공부를 하지 않고 세 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바로 속인입니다. 한창 사춘기일 때라 저는 제 이미지에 매우 신경 썼는데, 걷는 자세, 말하는 표정까지 수시로 잘 유지해야 했고 헤어스타일은 더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에서 저는 공부도 상위권이었고 외모도 전교 3위 안에 든다고 공인받았는데, 제 마음속에서는 헤어스타일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2 개학 전에 머리카락이 잘못 잘렸습니다. 본래는 심성 테스트였지만 저는 매우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이해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꾸중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결정타가 되어 그때부터 저는 자신을 폐쇄하고 우울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나쁜 일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그 1년의 세월 동안 저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빛을 보지 못했으며 방 안에 세 사람 이상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못했고 탈모가 시작되었으며 피부가 특별히 나빠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았고 서서히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으며, 그저 살아있으니 숨 쉴 뿐이라고 생각하며 비정상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저에게 휴대폰을 주셨습니다. 집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저는 휴대폰을 갖고 놀았습니다. 당시 막 위챗이 시작되었는데 그 안에는 주변 사람을 보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기능이 좋다고 생각했고 근처의 친구를 좀 사귀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상태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너무 단순했습니다. 저는 제가 먼저 주변 사람을 추가했지만 여자만 추가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의 환경 상태와 같지 않아 사기 같은 것이 없었고, 모두 근처 주민이나 대학생 같은 사람들이어서 간단하게 채팅하고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저를 추가했는데 관심을 받는다고 느껴 기뻐서 남녀를 따지지 않고 추가했지만 예전의 채팅 경험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남자는 저에게 어떤 일을 하게 했는데, 예를 들면 셀카를 찍어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했고, 이어서 더 나아가 다리 사진을 찍게 했으며, 지금 생각하면 매우 역겨운, 하지만 사람을 통제하는 온갖 말로 저에게 하도록 시켰고, 마지막에는 사귀자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라 ‘사귀다’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 약점은 거절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고, 그를 직접 삭제하기 미안해서 휴대폰(소셜 앱)상에서 이런 남자를 아주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량함과 천진함에서 벗어나, 저는 늘 사람과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며 한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어떤 굴레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는 잊고 있었습니다! 결국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이런 더러운 채팅은 서서히 제 마지노선과 선량함을 없애버렸고, 그에 따라 색욕심이 또 왔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한번은 인터넷 채팅에서 또 소위 사귀자는 강요를 받았는데, 점심에 그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저도 갔습니다. 제가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그가 뒤에서 저를 안고 키스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저는 시간이 다 되어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그를 삭제했습니다.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친구에게는 말했는데, 그 이후 제 평판은 아주 나빠졌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저도 신경 쓰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같은 반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나중에 점차 중독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중학교 1학년 첫날 저에게 고백했던 남학생이 또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당시 저는 만약 수락하면 매일 저만 있어 줄 사람이 생기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도 기회가 올지 모르는 그런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백 편지가 주머니에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심리에 통제되어 결국 저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이 남학생은 확실히 많은 시간을 들여 저와 함께해 주었지만, 저는 제가 원하던 그런 가족의 보살핌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마음이 여전히 매우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그때부터 동성에 대한 호감도 ‘저절로 생겨’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감정이 조금도 없었지만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왜 제가 이렇게 동성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좀 찾아보았는데, 인터넷에서는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알고 싶으면 이성과 관계를 가져보고, 만약 좋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방법 중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 세계는 정말 더럽기 그지없는 마굴입니다.
당시 중3이었던 저는 그 글을 보고 마침 사귀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집에서 저를 일본으로 유학 보낼 계획이 있었는데, 저는 이를 핑계 삼아 남자 친구를 설득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일본 가면 못 만날 수도 있으니, 우리 그전에 한번 관계를 가져보자.” 그는 저에게 정말 괜찮겠냐고 재차 물었고 결국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약속된 어느 주말, 그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이상하게도 바로 그날 엄마가 갑자기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얼른 그를 숨게 했는데 엄마가 “집에 사람 숨겼니?”라고 한마디 물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계획은 계속 진행되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외부 요인과는 아무 관계 없이 분명 사부님께서 제자를 관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쓰니 제 마음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 후 큰외삼촌에게 우리가 함께 걷는 것을 들켰고, 또 사촌오빠가 제가 저지른 큰 잘못을 분석해 냈습니다(그는 남자 친구가 우리집이 어디인지 안다는 것만으로 이 점을 생각해냈습니다). 저는 집에서 꼬박 한 달 동안 근신 당했고 휴대폰도 압수당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모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삶이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더 끔찍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저를 질책하고 원망하며 저에게 너무나 많은 비판의 말을 했습니다. 저는 변명하지 않았지만 제 삶에는 빛이 하나도 없고 온통 어둠뿐이었습니다. 근신 환경 속에서 제가 아무것도 접할 수 없어서인지, 그들이 저에게 했던 그 말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점차 이 말들을 제가 다 받아들였고, 슬픔과 상심에서 불공평하다는 생각, 다시 원망과 증오, 마지막에는 행동으로 자신을 고문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변이된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부러 잠을 자지 않고 겨울에 옷을 아주 얇게 입었으며, 낙서는 온통 욕설이나 죽음 같은 글자 등을 그리는 등 신체 표면에서 마음까지 모두 변화가 생겼지만, 저에게는 마지노선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절대 자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날을 견뎠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촌오빠가 와서 저를 위로하며 자기 부모님이 이혼한 경험을 저에게 들려주었고, 이런 행동이 모두 제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약간의 우울증이 있었는데, 사촌오빠가 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큰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껏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해, 나도 너와 같아”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이런 변이된 행동에 부를 수 있는 명칭이 있다는 것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줄곧 저는 제 느낌을 형용할 수 없었고, 또 제가 너무 형편없어서 이미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사촌오빠가 뜻밖에도 그의 방법대로 하면 분명 걸어 나올 수 있고 그것도 아주 빠르다고 말해준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지난 2년의 참혹하고 어두웠던 날들이 뜻밖에도 광명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저는 순식간에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고 아직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세 가지 일도 잘하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자비롭게 저를 지켜봐주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당일 오후 저는 매우 흥분했고 집에 돌아와서 한 첫 번째 일은 자발적으로 대법 책을 꺼낸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1강을 다 보았는데,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고 드디어 회귀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정진하지 못했는데 마(魔)가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촌오빠가 저에게 말했는데, 그가 당일 저녁 집에 가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거대하고 비할 바 없이 큰 귀신이 있었는데 너무 커서 머리만 보이고 전체 공간을 가득 채웠으며 그는 아주 작았다고 합니다. 그 거대 귀신이 그에게 흉악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구나!”
3. 사범 전문학교 시절
반에는 11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적어도 9명이 대법 진상을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지 않았고, 적대감이 있거나 매우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한 반에 모인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님을 설명하지만 저는 오히려 아주 못했습니다. 담배는 더욱 심하게 피웠고 저와 함께 피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성격은 180도 대반전되어 털털해지고 운동을 좋아하며 남자아이 같은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반에서 동성애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했는데 서로 물었습니다. “너는 그러니?” 저에게도 물었는데 저는 말하지 않았지만 집에 가서 이전의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모두의 앞에서 제가 동성애자인 것 같고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정은 악마에게 빌미를 주어 제가 이번 생에서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동성애가 폭발한 원인은 한 사람에 의해 야기되었는데, 바로 제 과외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매우 예쁘고 몸매도 특별히 좋아서 저는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사람도 서서히 제 생활에 나타났는데, 2년 동안 한 번도 교류가 없었던 동창이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첫 마디를 했는데(“우리는 어떤 인연인지”), 그 한 마디가 제 마음 깊은 곳에 퍼졌습니다. 친절함일까? 따뜻함일까? 아니면 감동일까? 아무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고 마치 감전된 것 같았습니다!
만약 계속 법공부하고 수련하며 가장의 올바른 지도가 있었다면, 외부에서 오는 사악한 유도를 식별하고 배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춘기 소녀로서 저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가족의 따뜻함, 관심과 보살핌, 그리고 친구 사이의 순수한 우정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과외 선생님을 좋아하는 일을 부모님이 알게 되셨고, 엄마는 즉시 과외 선생님을 그만두게 했지만 제 그 새로운 친구는 서서히 제 생활로 들어왔습니다. 원인은 우리가 알게 된 후 그 친구가 애인과 헤어졌고 함께 놀던 친구도 그녀를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학기 말, 우리는 햄버거 가게에 있었는데 그녀가 저에게 이런 일들을 이야기해 줄 때 저는 사실 속으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드디어 저와 함께 놀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때의 친절함과 묘한 감동 이후로 저는 그녀에게 특별히 접근하고 싶었고, 심지어 누군가 그녀를 험담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서 반드시 그녀를 위해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과외 선생님 일을 엄마에게 들킨 것을 알고는 농담 삼아 가짜 채팅 기록을 만들었는데, 마치 우리가 사귀는 사이처럼 말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저 웃기다고 생각했고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내가 만든 이 그림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거야, 못 믿겠으면 봐.”
저는 당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것이 정말 현실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미래에 관해 말한 모든 마디가 늘 실현되자,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인연일까?’ ‘과외 선생님은 안 되는데 친구랑 한번 해보면 안 될까?’ 저는 정말로 그녀에게 “우리 같이 있을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저에게 말하길, 당시에는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계속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마의 길로 들어선 셈이었습니다. 저의 반쯤 강요로 인해 우리의 변이된 관계는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이 일은 금방 전 반에 알려졌고(우리 둘이 사귀는 일만 알려짐),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관할하시어 얼른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친구는 전 반 친구들이 다 알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저와 헤어지자며 많은 결별의 말을 했고, 그저 재미와 호기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싸우고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었으며 울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무절제하게 감정을 발산하며 매일 그녀와 싸우고 다시 그녀를 달래며 그녀에게 매달렸습니다. 저는 주변 친구들에게 그녀가 화가 나서 한 말들을 이야기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그녀를 상대하지 않게 되어 매일 등교가 특별히 힘든 일이 되었고 모두 그녀를 따돌려 그녀는 매일 울었습니다.
사범 전문학교 2년 동안, 정신적으로나 주변 환경 등 각종 방면에서 저는 그녀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녀도 계속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며 우리가 이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듣지 않았고 무작정 죽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기 시작했는데 매일 샀고, 그러고는 그녀의 집에 가서 머물며 그녀를 애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녀는 계속 제 ‘호의’를 거절하며 저를 친구로 대했습니다. 환경적으로 그녀가 저와 함께 놀도록 강요했고, 수단적으로도 계속 물건을 사주면서 안 받으면 안 된다고 화를 냈으며 통제욕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채팅하면 해도 저는 즉시 펄펄 뛰며 화를 냈는데 온통 마성이었습니다.
대학 입시 기간에 큰일이 발생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도 저에게 헤어지자며 친구로 지내자고 했지만 저는 제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사실 진정한 제가 아니라 외래 교란과 업력에 통제된 것입니다).
4. 대학교 시절
우리는 같은 대학교에 갔고 저는 또 전철을 밟아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해서, 결국 몇 년간 그녀가 이런 그늘 속에서 살게 했습니다. 저는 또 그녀에게 립스틱을 사주기 시작했는데 화장품은 다 브랜드였고 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싸고 좋은 것을 사주며 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매번 거절했지만 저는 여전히 제멋대로였고 계속 그녀를 애인으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줄곧 정상적인 애인이 있었기에, 이 기간 저는 무한히 큰 원망심, 보복심, 변이되고 변태적인 사상과 행위가 생겨났고 담배 중독은 더 심해졌습니다. 마성이 팽창하여 총, 무기, 권투를 좋아하게 되었고 저를 완전히 남자로 여겼습니다.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습니다. 그녀는 제 곁에 더욱 있기 싫어했지만 저는 여전히 그녀에게 매달렸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녀가 마침 ‘해피벌룬’(마약의 일종)을 흡입하고 있어서 저에게도 권했고,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흡입했는데 총 대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마지막 학기는 학교 실습이었는데, 그곳에서 렌터카 사고가 나서 많은 돈을 물어주었습니다. 절벽 위에서 운전하다가 차를 돌리지 못해 떨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엄중한 경고였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미혼탕(迷魂湯)을 마신 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친구와 싸우고, 인터넷 대출 빚을 갚지 못해 연체되었으며, 생활은 갈수록 곤궁해졌고 체중은 115kg까지 폭증했습니다. 친구는 계속 제 곁에서 우리가 본래 맺었어야 할 정상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저는 번번이 반대되는 일을 하며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결국 동성애, 마약, 마성, 싸움, 빚 등 십악(十惡)을 다 갖추었습니다. 이미지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매일의 생활은 대량의 음식 섭취와 대량의 흡연, 그리고 자극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량의 귀신 이야기와 대량의 가장 변이되고 변태적인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었고, 또한 거대한 마성, 색욕심, 원망, 싸움을 즐기고 잔인하며,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온몸의 업력이 있었습니다.
폭음, 폭식, 폭력 숭배, 자포자기, 향락주의, 폭력 환상, 폭력 발산, 입만 열면 욕설 등, 저는 청순하고 예쁜 소녀에서 노인이나 변태 살인마 같은 그런 사람으로 변해, 온종일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온몸에 담배 냄새, 불만 가득한 얼굴, 험악한 눈빛을 발산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양말과 옷을 한 번도 빨지 않았고 신발도 닦지 않았으며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도 빨지 않았는데, 모두 제 두 룸메이트(한 명은 그 친구, 한 명은 좋은 룸메이트)가 이런 일들을 처리해 주었습니다.
다시 귀신 이야기를 하자면, 어릴 때부터 이런 것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 몇 번의 영적 사건을 겪은 후 뜻밖에도 미치도록 좋아하게 되었는데, 너무 자극적이라고 느꼈고 매일 귀신을 부르고 귀신을 찾고 귀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대학교는 제 인생이 궤도에서 벗어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정 갈등 면에서 동성애, 의심, 질투, 싸움, 열등감을 일으켰고, 가정 면에서 집안은 매일 싸웠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가장 깊이 정을 느끼는 분인데 그분의 건강이 조금씩 악화하는 것을 가족들이 저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에 가시던 분이 누워만 계시게 되고, 건강하던 몸이 조금씩 전신 근육 위축으로 변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예전에 저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어떤 장소에서든 영원히 제 마음속 1위였는데 “나는 이제 네 남동생에게 잘해줄 거야, 집도 다 남동생에게 줬어”라는 우정을 배신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방학에 집에 가면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싸웠는데 마치 공연 같았지만,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실제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늘 외할머니를 때리셨습니다. 매일 저는 압박 속에서 살았고 방 안에서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으며 늘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는데, 불안해서 잠도 편히 자지 못했습니다. 외할머니가 걸으실 수 있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실까 봐 잠을 못 잤고, 외할머니가 걷지 못하실 때는 외할아버지가 밤에 외할머니를 때리실까 봐 늘 귀를 세우고 들었습니다. 낮에도 제 시간이 없었고 매일 남동생을 학원에 데려다주느라 그의 몇 개 수업이 제 하루 시간을 다 차지했습니다.
방학 내내 엄마와 온전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기에, 엄마가 남동생 수업 일로 저에게 많이 하시는 그 말씀들이 저를 몹시 질투 나고 혐오스럽게 했으며, 제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외할머니조차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한번은 방학 때 집에 갔는데 가족들이 다 저를 데리러 나가고 외할머니 혼자 집에 남겨지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식구들에게 슬리퍼를 꺼내주려다 머리를 신발장 모서리에 부딪히셨고, 머리에 아주 큰 상처가 났는데 집에 와서 본 첫 장면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밤새 울었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고 그런 후회, 원망(저는 가족들이 다 데리러 오는 그런 장면은 필요 없었고 그저 외할머니가 무사하시길 바랐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개학 후 선생님이 방학 때 다들 잘 놀았냐고 물으셨을 때, 친구들이 왁자지껄 토론하는 소리가 저에게는 가장 귀에 거슬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선명한 대조는 저를 철저히 다른 사람, 다른 이미지로 변하게 했고, 이 모든 것을 마음 밑바닥에 누르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건들거리는 사람, 제멋대로인 사람, 무관심한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결국 재산 문제로 엄마와 아주 큰 앙금이 생겼는데, 다섯 채의 부동산 중 네 채를 모두 제가 서명해 포기하게 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팔 때 편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남동생은 18세 미만이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법과 올바른 부모의 지도가 없는 하에, 저는 그때부터 강력한 증오, 질투, 불공평, 마성이 생겼고 심지어 살인 욕구까지 일어났습니다.
5. 직장 생활 시절
졸업 후 심리적으로도 좀 성숙해졌는데, 주로 싸울 만큼 싸웠기에 저와 친구는 앞으로 다시는 싸우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우리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끊임없이 그녀에게 돈을 썼지만 그녀의 집안일이 점점 많아져서 제가 매번 갔고, 결국 악순환이 되어 우리는 만날 때마다 어디 가서 밥 먹고 노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그 집의 이 일을 도와주고, 내일은 저 일을 처리해 주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지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왜 그런지 몰랐고 즐겁지도 않았으며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그 집 식구들의 성격도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집에서 직장 두 곳을 소개해 주었는데 총 6개월 3일을 다녔고(하나는 3일, 다른 하나는 6개월), 그 후에는 집에서 원망만 늘어놓으며 큰 장사를 하고 싶어 했지만 온종일 빈둥거렸습니다. 매일 밤을 새우고 새벽 4~5시에 자서 저녁 4~5시에 깨면 차를 몰고 나가 친구를 찾아 놀고 친구에게 밥을 사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돈을 물 쓰듯 썼고 PC방, 야시장에 가고 먹는 것에 절제가 없었으며 음식을 너무 많이 낭비했습니다.
당시 집 문제로 집안에 대해 철저히 낙심했기에 인생의 유일한 신조는 ‘친구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건 다 소용없다’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나날을 이 두 친구가 함께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제 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든 절대적으로 친구들에게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쓸 수 있었고, 심지어 제가 사는 동력을 친구들에게 의탁했으며 그리고 제 고양이 아홉 마리도 의탁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고양이 한 마리를 사서 집에서 키웠습니다. 나중에 또 한 마리를 샀습니다. 나중에 어미 고양이가 임신해서 새끼 고양이 일곱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이 아홉 마리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제 남동생이 심각한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키웠으며, 누가 이 고양이들을 건드리면 누구와도 목숨 걸고 싸우려 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유년기부터 성년기까지 십악을 다 갖추게 된 인생입니다. 제1악: 동성애와 색욕, 제2악: 마약(해피벌룬)과 흡연, 제3악: 빚 연체, 제4악: 방종, 제5악: 빈둥거림. 제6악: 무절제한 유흥. 제7악: 귀신을 부르고 찾고 좋아함, 제8악: 마성, 제9악: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 제10악: 질투. 잘못에 잘못을 거듭하고 통탄하고 또 통탄했습니다.
6. 변화와 거듭남
다행히 정법이 끝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24년 10월 어느 날, 엄마가 집에 수련생 한 분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A 수련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수련생’이라는 단어는 저에게 정말 친근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저녁 무렵, A 수련생이 우리집 문을 두드렸는데 야윈 노년 수련생이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의 깊은 곳의 깊은 곳에서 격동하는 감정이 있어 지난 몇 년간의 일을 봇물 터지듯 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표면적으로 표현할 때는 한 가지 일도 표현해 내지 못했고 논리도 매우 혼란스러워 그저 건들거리는 나쁜 아이의 이미지만 드러냈습니다.
A는 우리가 대법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천목으로 그녀가 짐을 싸서 우리집으로 오는 장면을 미리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1) 방 청소
그 후 첫 주, A의 도움으로 우리는 대청소를 시작해 제 방의 많은 물건을 버렸습니다. 제가 샀던 각종 모형 총, 무기, 장난감, 친구가 준 장난감, 쓴 편지 등 제 이전 생활을 대표하는 모든 물건을 전부 버렸습니다. 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를 악물며 모두 동의했는데, 심지어 별로 고통스럽거나 아깝지도 않아서 참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다 치우고 나니 제 방은 순식간에 매우 조용하고 엄숙해졌으며, 그 안에 있어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습니다! 이런 몸소 느낀 진실한 감각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2) 단체 법공부
그와 동시에 A는 우리를 데리고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얼마 만에 발정념을 하는 것인지, 처음으로 A의 도움과 격려하에 꼬박 1시간 동안 발정념을 했습니다! ‘전법륜’도 드디어 일주일 만에 우여곡절 끝에 1번 다 보았습니다(마지막 1강은 거의 반수면 상태에서 보았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고, 또 5가지 공법을 새로 배웠습니다. 약 1개월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다시 법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3) 반려동물 보내기
제 고양이 아홉 마리에 관해서입니다. 저는 어미 고양이와 아빠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를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막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무척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는데, 어미 고양이와 아빠 고양이가 서로 기대어 있었는데 그들은 절대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자주 다락방에 가서 데이트했는데 아주 멋졌습니다. 나중에 어미 고양이가 임신했고 의사는 우리에게 새끼가 여섯 마리라고 했습니다! 초음파도 세 번 했는데 모두 건강했습니다. 저는 매일 출산 영상을 복습했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저를 특별히 의지했는데, 제가 담배 피우러 방을 나갈 때마다 어미 고양이는 초조하게 문앞에서 저를 부르며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고 저는 성공적으로 여섯 보물을 받아낸 후 부엌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며 쉬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 때 어미 고양이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어미 고양이가 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9마리의 고양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일곱 마리 새끼 고양이는 모두 펄펄 날고 생기발랄하며 매우 건강했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일곱 아이를 매우 자애롭게 대하는 모습은 저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그사이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태어난 지 이튿날 침대 밑으로 뛰어내렸는데 힘이 장사였고,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소리를 내면 제 뒤를 따라 기어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에 대한 제 감정은 점점 더 깊어졌고 점점 더 그들을 의지하게 되어 가족을 훨씬 넘어섰습니다.
이 한 달간 A의 도움으로 법공부를 통해 저는 살생하지 않고 기르지 않는 법리를 배웠고, 게다가 남동생의 심한 알레르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해야 하며, 만약 고양이가 계속 집에 있는 것도 업을 짓는 것이라 그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몇 년간 키운 고양이들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A의 도움으로 저는 이 아홉 마리 고양이에게 대법에 동화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30분 동안 말하고 나서야 그들을 모두 보냈습니다.
4) 엄마와의 화해
이 한 달간의 단체 법공부 후, A는 또 우리 가족을 데리고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하고 교류했습니다. 점차 저의 거대한 질투심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 밖으로 밀어내 주시어 제가 그것을 제거하게 하시는 것임을 알았지만, 이미 습관이 된 극도의 불평불만, 승부욕 등의 정서는 제가 진정한 나와 가짜 나를 분별할 수 없게 했고, 결국 저는 또다시 수련생들 속에서 이탈해 집에 와서 어두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휴대폰을 했습니다.
하지만 곧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수련생들과 엄마의 토론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행동이 저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깊이 깨달으셨고, 그래서 바로 그날 엄마는 진심으로 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중대한 변화는 제가 그 몇 년간 아무리 싸워도 얻지 못했던 것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인생의 중대한 돌파구이자 변화였습니다. 그 순간 부동산 문제에서 드디어 존중과 화해를 맞이했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고 제자의 삶에 광명을 가져다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이 사는 곳과 거리가 좀 멀어서 우리집은 집 하나를 임대해 우리의 법공부와 연공 장소로 삼았습니다. 집을 구하는 과정도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련 장소를 갖게 되었습니다.
5) 금연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저는 기본적으로 매일 담배 반 갑을 피웠습니다. A는 제가 이러는 것을 보고 금연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법을 많이 배웠고 발정념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A 수련생이 전문적으로 저의 흡연 문제에 대해 발정념을 할 때 큰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는데, 제가 빚진 목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신’이라며 제가 담배를 피우게 하는 것은 제가 빚진 목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A 옆에 있었고 그들은 대화 중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 매우 충격적이고 격동되었습니다. 저는 듣는 과정에서 끊겠다고 결심했고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몇 달을 거치며 또 세 번 재발했지만 지금 저는 진정으로 수련인의 태도로 진정하게 끊었습니다.
6)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더는 열중하지 않다
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저에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강화해주었고, 커서 자유로워지자 더욱 마지노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친구의 정까지 더해져 매일 향락에 빠졌고 친구가 제일이었습니다. 저는 늘 식탐, 놀이 때문에 제멋대로 방종했습니다. 저는 앱으로 돈을 많이 빌렸고 갚지 못하면 할부로 했습니다. 저는 다 놀이공원, 먹는 것에 썼으며, 한턱내고 먹고 싶은 건 다 사고 햄버거를 매일 샀으며, 하루에 담배 두 갑, 야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건 다 샀고 흥정도 하지 않았으며, 게임기를 사고 게임을 사고 기숙사에서 작은 동물을 키웠습니다. 남에게도 씀씀이가 컸습니다. 제가 돈을 좀 써서 친구들이 기쁠 수 있다면 저는 원 없이 썼습니다. 주로 친한 친구에게 사주었는데 원하지 않아도 샀고, 체면을 사랑했으며 소위 친구의 우정, “너 참 좋다”라는 그 한마디를 사랑했습니다. 갚지 못하는 돈은 점점 많아졌고 엄마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방법을 생각해서 자기 아빠를 통해 엄마에게 알렸고, 그때 엄마는 화내지 않고 제 빚을 한번 갚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들켜서 호되게 사상 교육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출근해서 일하면서도 돈을 빌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하신 법을 깊이 명백히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법률이 점차 완비되어 가고 점차 완벽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여전히 나쁜 짓을 하는가? 법이 있어도 따르지 않는가? 바로 당신이 그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나쁜 일을 할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내심을 향해 수련한다면, 그럼 확연히 달라진다.”(전법륜)
빚진 일은 이번에 법으로 복귀한 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감히 털어놓지 못했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는데, 단체 법공부 때 늘 빚 대출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어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일이 저절로 탄로 나면 좋겠다….’ 저는 분명 다시는 돈을 빌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도 잘못된 줄 알았으니 다 바로잡아야 하며, 게다가 대법제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엄마의 입을 빌려 저에게 여러 번 물어보셨지만 저는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법공부 팀 안에 있어서 체면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짐나 어느 날 뜻밖에도 엄마가 공교롭게도 제 빚 독촉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또 한바탕 호된 비판과 교육을 받았지만 저는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자의 이 일이 드디어 매듭지어졌고, 제자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대법제자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제자가 잘못을 알았으니 앞으로 일할 때 절제하고 모두 바로잡겠습니다.
7. 생사의 고비
이 1년여의 시간 동안 제 친구(앞서 언급한, 제게 동성애를 강요받았다가 나중에 제가 포기하고 친구가 된) 집에 늘 일이 있어서 저는 늘 정의감에 불타 도움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제가 그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이런 감정이 이미 우정을 넘어섰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게다가 저는 자주 단체 법공부와 연공 시간에 친구와 나가서 산책하고 놀았으며, 늘 그녀를 찾아가는 것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지지난 달, A 수련생이 저에게 동성애에 관해 말하며 정(情)이 저의 생사관(生死關)이 될 것이고, 저와 그 친구는 다시는 만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몇 년간 저질렀던 일들을 지금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말 지나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몇 년간 저는 큰 업을 지었고 이미 현실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A가 보았는데, 만약 제가 다시 그녀를 찾아가면 교통사고가 나서 생명을 위협받을 것이고, 찾아가지 않더라도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구세력이 저에게 병업이 생기게 할 거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제가 예전에 늘 휴대폰으로 채팅하고 통화하며 입을 단속하지 않고 늘 수련에 관한 단어를 언급했는데, A는 제 휴대폰이 도청당해 큰 누락이 생기기 쉽다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동성애라는 성질은 그 자체가 너무 변이되어 대도태에서 첫 번째로 도태될 부류입니다! 만약 제가 다시 돌이키지 않는다면 저는 가장 공포스러운 도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숨이 막혔고 거대한 압력으로 숨쉬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는 무너져서 통곡하고 화를 내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심 제 상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하루 전부터 제 뇌리에는 죽은 사람이 장례식장에 갈 때 트는 그런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고 떨쳐버릴 수도 없었는데, 이제야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정말 닥쳤습니다. 임대 주택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번이나 겪었습니다. 앞의 두 번은 오토바이가 제 차로 파고들었고, 세 번째는 우리집에 거의 다 왔을 때 검은색 차 한 대가 전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저를 향해 가속해서 돌진해 왔습니다! 다행히 모두 진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는 제자를 위해 이 세 번의 교통사고를 막아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결심하고 자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8월 15일부터 반드시 생사관을 넘기고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일을 멈추기로 결정했습니다(왜냐하면 저는 이미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으며 함께 ‘전법륜’ 두 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5일 저녁, 저는 법공부 팀 수련생들에게 제가 반드시 정념으로 생사관을 마주하겠다는 결심을 표현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드디어 진정으로 이 집단에 들어왔음을 느꼈는데, 그 아름다운 느낌은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줄곧 배타적이고 저 개인만을 추구하여 조성된 앙금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법공부 팀 수련생들은 모두 기뻐했고 이어서 다 함께 저를 도와 발정념을 했습니다. 발정념을 하는 과정에서 매우 확고했고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이때 뇌리에서 한마디 말이 나왔습니다. ‘생사를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된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격려임을 알았고 감동하여 울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저는 깊은 공포와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다시는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 대폭발하듯 감정이 일어났고, 눈을 뜨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얼른 수련생을 찾았는데 마음이 죽을만큼 괴롭고 신체적으로는 질식할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으며, 마음속에 죽음에 임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울지 마, 슬퍼하는 건 네가 아니야. 모든 것은 구세력의 교란이고 모두 구세력이 강요한 요소야. 구세력의 모든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고 확고하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걸어. 반영되어 나오는 일체 좋지 않은 마음이나 생각은 모두 구세력이 강화한 것이니 전부 원치 말고, 역사상부터 현재까지 구세력의 모든 안배를 철저히 부정해!”
그 후 우리는 대량의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 구세력은 늘 저를 위협하며 정념이 없게 했는데, 위협하는 수법은 그 몇 년간 형성된 사상업, 관념, 상상, 환상을 이용해서 제 사상 속에 불어넣어 예전에 있었던 잊지 못할 경험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정(情)으로 가득 찬 것들이었고, 저에게 ‘만약 잃으면 어떡할래?’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녀는 너를 그렇게 의지하는데, 지금 네가 안 만나기로 결정하면 앞으로 어떡해? 그녀는 생활 속에 그렇게 불행한 일이 많고 그렇게 큰 스트레스가 있는데, 네가 그녀를 떠나면 그때 그녀는 어떡해? 그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그렇게 착하며 너를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 네가 그녀를 떠나면 그녀는 어떡하라고? 예전에 네가 밤에 그녀를 집에 데려다줄 때 집에 들어갔는지 재차 확인해야 했고 그렇게 걱정했는데, 지금 네가 그녀를 철저히 안 만나겠다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때때로 튀어나와 저를 숨 막히게 하고 슬프게 하고 울게 하고 극도로 공포스럽게 했으며, 물조차 마시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법에 따라 생사관을 넘고 있고 이것은 제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공포를 느낄까?’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건 바로 구세력이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왜 공포를 느껴?! 나는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그것들이지.’
이때 제 정념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법을 원해, 나는 사부님을 따라 집에 갈 거야, 나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전(史前)의 대원(大願)이 있어, 나는 수련인이야, 나는 바로 진선인을 원해! 대법에 동화하고 진선인에 동화할 거야. 동성애, 정, 사상업, 관념, 환상, 상상, 공포는 모두 내가 아니야!’ 저는 사부님의 정법 구결을 외워 구세력이 강요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가짜 나를 부정했습니다. 이 일념은 제가 피동적으로 생사관을 마주하던 것에서 능동적으로 싸움을 맞이하는 것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식사 후 어머니가 대량으로 발정념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발정념의 중요성을 아직 몰랐습니다. 전반 30분의 저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고 호흡이 특별히 곤란했으며, 계속 울었고 내심 극도로 공포스러웠는데, 사상이 또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되어 구세력의 가상, 환상을 따라갔습니다.
이때 수련생이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이고 어느 것이 자신의 사상이 아닌지 분별해야 해. 진정한 자신은 여기 앉아서 발정념을 하고 있어!” 이 말이 저를 단번에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는 감히 눈을 감지 못하고 계속 ‘멸(滅)’만 말하던 상태에서 눈을 감을 수 있게 변했고, ‘멸’을 말하는 빈도도 줄어들어 정념이 드디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분 정도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발정념을 끝내려 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오래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수련생이 천목으로 큰 원반 아래 기둥 하나를 보았는데 기둥 중간에 큰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즉시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우리는 모두 사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념을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때 교란이 와서 어머니의 배를 아프게 했지만, 어머니는 즉시 교란을 부정하고 계속 발정념을 했으며 동시에 제 정념도 강화해주셨습니다. 이때 제 뇌리에 한마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네가 지금부터 영원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다. 나는 확고하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걸을 것이며, 만약 어떤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법 속에서 바로잡을 것이고, 구세력이 역사상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안배와 강요한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부정하고 제거한다. ‘法正乾坤, 邪惡全滅. 法正天地, 現世現報.’[정진요지2-발정념(發正念) 두 가지 수인] 멸(滅)!’
이 대답은 제 몸을 뜨겁게 했고 질식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 했습니다. 이때 그것들은 또 사상업으로 저를 위협하러 왔지만, 저는 이미 정념을 확고히 하여 더 이상 구세력이 박해하고 위협하면 눈물을 흘리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직접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나 아무개는 이 순간 바로 생사를 내려놓는다. 오늘 죽어도 이 동성애, 정, 아쉬움, 마음 아픔, 걱정은 원하지 않는다. 죽어도 나는 원하지 않아! 모두 내가 아니니 구세력이 강요한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부정하며, 나는 구세력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히 부정한다!”
발정념을 한 지 1시간 반이 되었을 때 광고 차량 한 대가 왔는데, 소리가 커서 마치 나팔을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정상적인 데시벨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교란임을 알았습니다. 저와 어머니 수련생은 정념을 확고히 했습니다. 마치 마(魔)가 모습을 드러내 교란하러 온 것 같았는데, 네댓 번, 나중에는 아예 집 앞뒤로 두 대의 차가 함께 틀어대어 엄청 시끄러웠습니다. 광고 차량이 가고 나자 또 음악을 트는 차들이 왔는데, 강력한 드럼 비트의 그런 세뇌하는 현대 음악이었고 역시 소리가 특별히 컸습니다. 우리는 매우 확고하게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런 교란의 출현은 바로 우리가 옳게 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2시간이 되어 수련생은 저녁밥을 하러 가야 했고 저는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질식감이 또 왔는데 이번에 저는 무서워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곁에 없다고 해서 공포스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전의 그 1시간과는 달리 저는 매우 평온했으며,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고 사상도 느려진 것 같았으며 정념도 나왔는데, 마치 만화 속 신선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지고 천천히 하는 그런 모양 같았습니다. 저는 반드시 생사를 내려놓고 확고하게, 하되 추구함이 없이 집착을 제거하고 심성을 닦으며, 일체 생사를 내려놓고 법 속에 녹아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3시간이 되어 다 하고 나서야 저는 발견했는데, 제 양쪽 귀가 다 ‘윙윙’거렸는데 공능이 가지(加持)되는 소리였고 머리가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또 공포에 휩싸이고 슬픔 속에서 깼습니다. 저는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확고하게 가짜 나를 배척하고 확고하게 그것들이 예전에 저를 망치려 했던 부패물질을 제거했습니다.
A 수련생은 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오늘 돌아왔는데, 만나자마자 저에게 휴대폰 문제를 어떻게 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멍해서 좀 몽롱하게 대답했는데 사실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지만, 저는 그렇게 확고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뜻은 저에게 휴대폰을 보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원인은 제가 저지른 대부분의 나쁜 일이 다 휴대폰을 갖고 한 것이고, 며칠 전 또 도청이 있어서 제 휴대폰이라는 이 생명은 이미 안 되기에, 제가 휴대폰 문제를 매듭을 지어야만 현재 직면한 도청과 더 좋지 않은 결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는 저에게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서 이런 일들을 잘 말씀드리고, 진정한 자신을 분별하여 앞으로 잘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휴대폰 문제에서 반드시 잘할 것이고 다시는 휴대폰을 갖고 놀지 않겠습니다. 휴대폰 속의 그런 추억의 사진들을 철저히 포기하고 아예 휴대폰도 원하지 않겠습니다. 동성애, 정을 반드시 원치 않을 것이고 반드시 잘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날 저는 총 세 번 사부님께 절을 올렸고, 생각나는 결심이 있으면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당일 밤 꿈을 꾸었습니다. 영상은 없고 오직 하나의 의식과 느낌만 있었는데 사부님이셨습니다! 낮에 제가 구세력과 대항하며 노력하여 관을 넘기는 중에 사부님께서 하나하나 합격선까지 밀어주셨고 모두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이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그 후 며칠간은 매일 일어나면 여전히 그런 공포에 휩싸이고 숨 막히고 슬펐으며, 매일 여전히 구세력에게 박해받아 울 때도 있었지만 점점 약해졌습니다. 저는 계속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일사일념을 지켜보았는데, 며칠 뒤 제 얼굴이 저리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이 제 몸 안에서 저를 통제하던 사악한 생명이 이미 저를 떠나려 하거나 소멸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저에게도 일종의 격려가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이후 또 꿈을 꾸었습니다. 전반부에는 영상 없이 의식(명백한 그 일면)으로 사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데 제가 직접 보거나 들을 수는 없고, 그저 사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신다는 것만 알 뿐 무슨 말씀인지는 몰랐습니다. 후반부에는 방 안에서 발정념을 하는데 어머니도 함께였고 우리는 무언가와 격렬하게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발정념을 했고 배경에는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현실과 똑같은 큰 거울이 있었는데, 꿈속에서 거울 안에 두 명의 제가 있는 것을 보았고 그중 한 명은 제 부원신(副元神)인 것 같았는데 저와 함께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법 속에서 정념이 조금씩 강해졌습니다. 또 한 가지 일은, 제 뇌리에 계속 장송곡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연주되기만 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노래도 함께 연주되었습니다!! 마치 전쟁 같았습니다! 한쪽은 정의, 한쪽은 악! 이는 저를 매우 격려했습니다! 나중에는 장송곡이 나오면 즉시 다른 곡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고 친구와 대면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소 연락이 너무 밀접해서 그녀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기본적으로 다 제가 참여했기에, 제가 설명을 좀 하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햇빛이 특별히 좋았고 하늘이 특별히 맑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생사관을 넘던 그 기간에 큰 폭우가 내리던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A는 오늘이 정말 특별한 날이고 오늘 반드시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사부님께서 바로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A가 한 말들을 힘껏 기억했고, 가기 전에 우리는 발정념을 했는데 과정 중에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제자의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생각이 명석해져 어떻게 말할지 종이에 가득 적었습니다.
몇 번이나 약속했다가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만남은 의외로 매우 성공적이었고 친구도 아무런 화를 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매우 가볍게 대화를 마주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표현했고 비록 그녀가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이 대화는 적어도 가볍고 유쾌했습니다. 그녀가 간 후 제 감정은 비정상적으로 파동 쳤고 남은 그 마(魔)들이 벌 떼처럼 덤벼드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제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또 울었고 특별히 상심했으며 질식감이 또 왔고, 그런 죽음에 임박한 느낌이 또 왔습니다! 결국 그래도 그날을 넘겼습니다!
이어진 나날들에 저는 분발하여 따라잡았고 일사일념을 지켜보았으며, 매일 다섯 가지 공법, 발정념, 법공부를 하며 생사를 내려놓는 마음가짐으로 매 하나의 관(關), 매 하나의 마음을 대했고 바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여기까지 썼는데 마치 저의 개인 회고록 같습니다. 사부님이 안 계셨다면 저의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과 광란을 바로잡아 주심이 없었다면 정말 제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대법 안에서 자신을 씻고 환골탈태하여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바짝 따르고 정진하겠습니다! 탕자, 십악을 다 갖춘 사람에서 지금의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해주신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무릎 꿇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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