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부합하면 길이 열린다

글/ 한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원에서 수련하는 교포 수련생입니다.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면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수없이 자비롭게 보호해주시고 가지(加持)해주신 덕분입니다. 비록 비틀거리며 오늘까지 걸어왔지만 제가 대법을 첫 자리에 놓았을 때, 생각이 법에 부합됐을 때 고난 속에서 광명을 찾은 신의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을 찬양하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법회 기회를 빌려 제 수련 중의 작은 체득을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니 부족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 살아가는 의미를 찾다

제가 17살 되던 해 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그때부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셨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하며 생활 자립 능력을 거의 상실했고 지능도 어린아이처럼 퇴화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이리저리 돈을 빌려 병원도 찾고 민간요법도 써봤지만 여전히 어머니 병세의 악화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생활고 때문에 아버지는 제가 17살 때 멀리 러시아로 일하러 떠나셨고, 집에는 종일 울고불고하는 어머니,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남동생과 고등학교 1학년인 저만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 집의 가장이 됐고,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학업도 병행하면서 시간을 내어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해서 집안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학교 수업이 끝날 때 폭우가 쏟아졌고, 저는 평소처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또 몰래 나가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빗속에서 어머니가 갈 만한 곳을 다 찾아다녔고, 마침내 한 두부가게 문 앞에서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간신히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오니 남동생이 또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다시 남동생을 찾으러 길을 나섰습니다. 이런 일은 저에게 흔한 일이었고, 또한 저는 어머니가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밤에 잘 때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으면 항상 코앞에 손가락을 대 숨결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왜 사는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늘 의문을 가졌고, 교회에도 가봤고 성경도 읽어봤습니다. 비록 교회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저를 따뜻하게 해줬지만 그것은 단지 사람 이 층차에서일 뿐이고 제 내면의 의혹은 늘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01년 말, 한 친척이 파룬궁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다가 박해를 받아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저희 집으로 오게 됐습니다. 친척은 저에게 그가 법을 얻은 과정을 들려줬습니다.

친척은 원래 확고한 무신론자였고, 신불(神佛)의 일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친척은 다른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상대방은 자신이 이 가문의 500년 전 조상으로, 이 가문이 덕을 쌓았기 때문에 계속 친척을 따라다니며 인도하고 있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친척은 조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조상의 도움으로 친척은 몇 년간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일을 했는데, 보러 온 사람이 무엇을 물으면 조상이 답을 친척에게 알려줬습니다. 너무 정확하게 맞춰서 점차 멀리까지 입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이 기간에 친척의 무신론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인과응보, 숙명통(宿命通), 천목(天目), 부체(附體), 다른 공간의 생명, 살해당한 후의 고혼야귀(孤魂野鬼), 원신(元神), 죽은 후의 거처… 등 일일이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당시 일부 실종자도 조상이 알려줘서 찾았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기공 열풍이 일고 있었고, 친척도 몸이 좋지 않아서 어떤 기공을 연마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조상은 계속 친척에게 연마하지 못하게 하면서 이것은 그가 연마할 것이 아니니 좀 더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1994년 6월, 친척은 거리에서 전단지를 하나 받았는데 내용은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8월에 현지에 오셔서 설법반을 개최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척은 파룬궁이란 이 세 글자를 듣자 연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상에게 이것을 연마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조상이 말했습니다. “이번 생에 자네가 살아있는 의미가 바로 이것을 기다리기 위해서고, 자네가 생생세세 겪은 고생도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서네. 내가 자네를 그렇게 오래 따라다니며 점을 보게 하고 무신론을 깨뜨린 것도 바로 자네가 이 법을 얻게 하기 위해서네. 자네는 자신이 연마할 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들도 모두 연마하게 하게. 이 가문 사람들은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 함께 모인 거라네.”

그래서 친척은 이 소식을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이 사부님이 현지에서 개최하신 설법반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친척을 파룬궁 수련으로 인도한 후 조상은 떠나갔고, 떠나기 전에 그는 친척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점을 보지 말게. 자네를 파룬궁 수련으로 인도했으니 내 사명은 이미 완수했네. 떠나기 전에 한마디 해주지. 이 수련의 길은 가시덤불로 가득할 거라네. 하지만 끝까지 견지하기만 하면 자네를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탄탄대로일 것일세.”

친척이 저에게 이 말을 해줄 때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생에서 살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 법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할 때, 제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고 오랫동안 바라왔던 답이 제 앞에 뚜렷이 펼쳐졌습니다. 그래서 2002년 3월, 현지에서 박해가 가장 심할 때, 저는 단호하게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2. 남동생이 법을 얻다

제가 법을 얻은 후,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대법의 소중함과 수련 인연의 소중함을 점차 알게 됐습니다. 저는 남동생에게 거듭 수련을 권했지만 매번 그는 그냥 웃기만 하며 저보고 잘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11월 어느 날, 저는 아주 뚜렷한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남동생의 뼛속이 모두 새까만 것을 보았고, 그는 어둡고 음산한 장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이때 한 목소리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동생은 골암(骨癌)에 걸렸고 석 달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가족이 착실하게 수련하기 때문에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거야. 만약 이 석 달 동안 그가 마음을 다해 수련할 수 있다면 희망이 있을 거야.”

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 꿈속에서 저는 통곡하며 남동생을 불렀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세 번 절한 후 잠에서 깼습니다. 깨어난 후에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흐느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에게 최근 몸 상태가 어떤지 물었습니다. 남동생은 “요즘 온몸의 뼈가 너무 아파서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고, 때로는 아파서 잠도 못 자. 다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꿈의 내용을 동생에게 알려줬고 그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동생은 고3이었고, 몇 개월 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어 매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0시였습니다. 돌아와서도 숙제하고 복습을 해야 해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담임선생님께 야간자율학습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자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동생은 집에 돌아온 후 매일 우리와 함께 ‘전법륜’ 한 강을 읽은 다음 제1장에서 제5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그는 아파서 계속 땀을 흘렸고 온몸이 다 젖었지만 여전히 견지했습니다.

동생의 영어 성적은 줄곧 좋지 않았는데 그의 말로는 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수련을 시작한 후 야간자율학습에도 참가하지 않고 과외 지도도 받지 않았지만 성적이 쑥쑥 올랐습니다. 머리가 마치 트인 것처럼 영어 단어가 그의 머릿속으로 날아 들어와 확실하게 기억된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입시 전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동생은 고등학교 시험 중 제일 높은 성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줄곧 그가 과외선생님을 모셔서 보충수업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입시가 가까워지자 많은 교란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저는 남동생에 관한 꿈을 여러 번 꿨는데, 한번은 그가 공원 뒷산에 묻힌 꿈을 꿨고, 또 한번은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꿈을 꿨는데 꿈에서 누군가 동생의 수명이 다해서 대학에 갈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대학입시를 보는 날, 어머니는 실수로 그의 안경을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첫날 시험이 끝난 후 동생은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며 정신이 흐릿하고 교란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 목숨은 사부님이 주신 것이고 사부님이 연장해주신 거야. 너에게 복이 없으면 사부님이 주실 것이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다른 안배는 승인하지 않는 거야.” 그러고는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습니다.

둘째 날 시험에서 동생이 시험장에 들어간 후 저는 근처에서 조용한 PC방을 찾아 계속 그를 위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가 정상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무리를 제거했습니다. 남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이유는 대학에서 필요한 지식을 배워서 나중에 법을 더 잘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후 이틀간의 시험에서 동생은 초범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최종적으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고, 대학 4년 학비 전액 면제와 매달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지원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시 우리집 상황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대학 학비를 전혀 낼 수 없었고, 합격해도 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긴다면 모든 것이 고난 속에 광명이 도래하듯 밝아집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한국에 오다

대학 졸업 후 저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학교에 남아 강의를 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면서 어머니를 돌보았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일을 했습니다. 한 친척은 저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건의하며 제가 한 것이 이미 충분히 많으니 더는 자신의 앞날을 지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통문화를 배우며 저는 효도가 모든 선행의 으뜸임을 알았고, 모든 것에는 인연 관계가 있으므로 제가 해야 할 일은 회피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일을 잘해 유감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 줄곧 하던 항목이 있어 이 항목에 대해 책임져야 했기에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귀국하셨으며,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하던 대법 항목을 이어받을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즈음 교수님은 저에게 한국 유학을 추천하셨고, 동창들도 마침 정책이 바뀌었으니 서둘러 한국 비자를 신청하라고 권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짊어졌던 부담과 책임들이 하나하나 줄어들면서 제 길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한국에 있는 수련생 언니와 곧바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때 수련생 언니는 마침 집 인테리어를 마쳤으니 제가 오면 함께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2011년 5월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에 온 후 저는 한 가지 선택에 직면했습니다. 계속 학업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일자리를 찾을 것인지였습니다. 저는 강의하는 것을 좋아하고 학생들의 반응도 모두 좋았기에 교수님은 제가 석사·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장래에 교수가 되어 계속 강의하기를 희망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의 대퇴골 괴사가 급속히 악화돼 빨리 수술을 해야 했고, 8만 위안의 수술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는 학업을 이어가지 않고 일자리를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올 때 저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고, 한국에 온 데는 분명 제가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찾을 때, 저는 자신에게 요구를 정했습니다. 반드시 매주 목요일 현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야 하고, 저녁에 야근하지 않고 주말에 쉬는 일자리를 찾아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할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서 장래에 배운 것을 활용해 수련생을 도울 수 있고, 중생구도에 더 잘 쓸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여태껏 저는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고 절대 가난하고 궁핍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위의 친척과 친구를 포함한 세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을 수련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그들이 대법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선한 일엔 복이 오고 악한 일엔 화가 따른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점으로 저는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빠르게 몇몇 회사에서 면접 통지를 보내왔습니다. 한 회사는 면접 후 저를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얘기를 나눠보니 그 회사는 매일 저녁 7시 넘어서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거의 저녁 9시였으며,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했습니다. 막 한국에 온 저에게는 급여 등 각 방면이 모두 괜찮았지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나와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릴 때 다른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대방은 내일 오전에 면접하러 올 수 있는지 물으며 내일이 그들 회사 마지막 면접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튿날에 그 회사로 갔고, 가서야 이곳이 한국 대기업의 자회사이며 면접 참가자가 매우 많고 제가 막차를 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지원한 자리는 단 한 명만 뽑았고, 면접이 끝난 후 면접관은 제게 비자 등 상황을 물으며 먼저 다른 일자리를 찾지 말고 그들이 최대한 빨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틀 뒤,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제가 정식으로 채용됐으니 와서 계약서를 체결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천 명의 직원을 보유한 이 회사에서 저는 유일한 외국인으로 채용됐고, 그들은 저에게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을 채용하고, 처음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부서를 개설했으며, 제가 마지막 면접자로서 이 기회를 잡았다고 알려줬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 그들은 저에게 수습 기간 없이 바로 정직원이 되고, 모든 보너스와 성과급 등 대우를 누리게 될 것이며, 유독 제 부서만 야근이 없고 주말과 공휴일도 모두 쉰다고 알려줬습니다. 또한 업무상 필요로 이 회사 각 제품 방면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약 몇 개월간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법을 첫 자리에 놓았을 때, 기점을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에 놓았을 때,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세세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모두 안배해주셨습니다. 이 여러 해 동안 저는 늘 제 시간, 수입, 기술을 포함해서, 심지어 제 목숨까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되고, 잘 사용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일깨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진상 알리기 항목에 참여하다

대학 때 제 전공은 컴퓨터였고, 대학 졸업 후 학교에 남아 6년 반 동안 대학입시 컴퓨터 등급 방면의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한국에 온 뒤, 제가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이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였음을 깨달았고, 이는 한국에 와서 기술을 활용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준비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컴퓨터 기술 지원과 번역 항목을 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련생을 접했고 심성을 수련할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컴퓨터 기초가 없는 수련생을 대할 때 인내심을 수련해야 했고, 조급함과 짜증 내는 마음을 제거해야 했으며, 컴퓨터를 잘 알고 제 해결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부정하는 수련생을 대할 때는 오만함과 남의 지적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을 수련해 없애고, 겸손함과 평온함을 수련해 내야 했습니다. 칭찬 앞에서 과시심과 환희심을 수련해 없애고, 갈등과 간격 앞에서 눈을 밖으로 향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찾고 되도록 상대방의 기점에서 문제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오직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지속적으로 법공부를 견지해야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저는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본 뒤 항목 일을 시작해야 해서 법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회사에서 법공부할 시간을 갖게 해주셨고, 저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법을 공부하고 외우고 베껴 쓰면서 법 속에서 자신을 개변하고 바로잡았습니다.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많은 기술 난제나 갈등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하는 데만 치우쳐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하지 못할 때는 법의 힘을 잃어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고, 노력에 비해 성과는 절반도 안 돼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습니다.

항목을 할 때 저는 늘 아래 경문을 외웠습니다. “당신이 한 일 중에서 당신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도 되지 못했는가?”[각지 설법9-엔티디(NTD) 방송토론회 설법] 저는 스스로에게 제가 잘하지 못해서 중생이 구원받지 못하거나, 수련생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금생에 사부님께서 저에게 컴퓨터를 배우고 번역일을 하게 배치해 주신 것은 조사정법과 중생구도를 더 잘하기 위함이지, 저 자신을 실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외계인의 컴퓨터 기술과 현대지식, 현대과학이 우주대법 앞에서 얼마나 표면적이고 저급한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이것은 제가 맹목적으로 재주 있고 능력 있고 학력 있는 수련생을 숭배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것은 대법이야말로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신불(神佛)께서는 사람 마음만 보시니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고, 법을 가장 크게 여기고 첫 자리에 놓으며, 속인이나 수련생 사이의 명성이나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고 일깨워줬습니다.

번역할 때는 되도록 순정한 마음으로 번역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정보가 있고, 특히 대법제자는 에너지를 갖고 있고 하는 모든 것에 다 에너지가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 일 욕심, 임무를 완수하려는 마음, 비교심, 명예욕, 과시심 등등 사람 마음을 갖고 번역한 문장은 순수하지 않은 정보와 물질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읽는 수련생과 세인을 교란하며, 중생이 진상을 알아가는 것을 교란하고 중생이 구원받는 데 교란 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번역 과정에서 제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음을 발견하면 우선 마음을 바로잡은 후에 계속했습니다.

사실 이 2~3년간 저는 비교적 소침하고 해이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회사에서의 각종 불공평함과 첨예한 갈등, 자폐증이 있는 아이, 병이 위중한 아버지, 늘 무거운 무언가가 저를 짓누르고 있고 저를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거기에 신체에 병업 가상까지 나타나 심신이 모두 지쳤습니다.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이 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심신의 무력감에 정념을 잃었고, 속인의 영상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했습니다.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했지만 이전의 그런 용맹정진하는 느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하반기에, 한 수련생이 난관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수련생과 함께 매일 법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점차 다시 정념이 나왔고, 나중에 제 주변 몇몇 수련생들이 온라인 단체방을 만들어 매일 함께 법공부를 견지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법공부하고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들으면서 차츰 무력하고 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제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회사 환경, 집안 환경, 아버지의 병세에 모두 뚜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저는 만난 모든 동료를 인연 있는 소중한 중생으로 여기고 그들을 선하게 대했으며, 문제가 생기면 되도록 먼저 그들을 고려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만들어준 모든 갈등과 난은 저를 제고시키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기회를 잡아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합니다. 오직 제가 제고해야만, 오직 제가 대법제자다워야만 진정으로 이 소중한 생명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아이는 더 명랑해졌고 부모의 말도 더 잘 알아듣게 됐으며, 선생님들은 모두 이 아이가 비록 말은 못하지만 매우 착하다고 말했습니다. 대법 진상을 몹시 거부하고 무신론과 공산당을 옹호하던 아버지는 혈액암 판정을 받고 우리와 함께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상태가 끊임없이 좋아지셨고, 최근 검사를 갔을 때 의사는 진단 결과에서 혈액암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법공부하며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여 발생한 변화입니다.

맺음말

가끔 속인의 눈과 생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숨이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의 기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사람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고, 또 다르게 바라보는 그 일념으로 인해 제 상황도 극적으로 호전됐습니다. 길이 없어 보일지라도 사부님과 대법을 향해 한 걸음 내딛기만 하면 길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앞으로 저는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법의 기점에서, 신의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대법의 한 입자가 되어 인간세상에서 대법을 실증하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5년 한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5/50290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25/5029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