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전편에 이어)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저는 예전에 성격이 매우 급해서 무슨 일이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큰소리로 질책하고 일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저를 좀 어려워했습니다. 나중에 제 몸에 문제가 생겨 몹시 초조해지고 성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나중에는 형제자매는 물론 이모와 외삼촌의 사촌동생들까지도 무슨 일을 하거나 제 생각과 다른 농담을 하다가도, 제가 오는 것을 보면 바로 누군가 “말하지 마, 말하지 마. 큰언니 왔어”라거나 “큰언니가 알게 하지 마”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부터 저는 모든 면에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성질을 부리지 않았고,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됐습니다. 저희 직장 경비 할아버지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는 어쩌면 저렇게 성격이 좋을까. 웃지 않고는 말을 안 한다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해 제 마음가짐이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지니 친척들도 자연히 이를 보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대법을 꼭 친척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이모가 몸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을 받고 몹시 허약해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건강식품을 갖고 이모 댁에 찾아가 이모와 집안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빨리 회복시키는 좋은 공법이 있는데, 바로 파룬궁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이모는 글자를 모르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해 연공할 방법이 없다고 하기에, 저는 이모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껏 외우라고 했습니다. 이모는 이모부에게 적어달라고 하면서 열심히 외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모부는 중국공산당(중공) 당원이었는데 그는 “이건 미신이야. 공산당이 수련을 못 하게 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모가 말했습니다. “우리 큰조카딸이 좋다면 좋은 거고 효과가 있을 거야.”
저는 ‘마침 이모부에게 진상을 알려 머릿속 무신론을 깨뜨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모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제 예전 몸 상태와 성격이 어땠는지 이모부도 아시잖아요. 저도 예전에는 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어요. 병을 고치려고 그렇게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다 고치지 못했고요. 이모부는 의사시잖아요. 이모부도 제 병이 고치기 어렵다고 하셨죠. 그런데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지 보름도 안 돼 온몸의 병이 다 사라졌는데, 이모부가 현대 의학으로 제게 설명 좀 해주세요.”
이모부가 말했습니다. “그 일은 참 설명하기가 어렵네.” 그래서 저는 파룬따파가 불가(佛家)의 고차원 공법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중공이 어떻게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지까지 말했습니다. 이모부는 듣고 있더니 말없이 종이와 펜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적었습니다.
저는 그들 집 벽에 아직도 마오쩌둥 마귀의 초상화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서 두 분께 말했습니다. “마오 마귀가 죽은 지 벌써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집에 그런 걸 붙여두는 건 좋지 않아요. 어느 집에 죽은 사람 그림을 붙여둬요? 얼마나 음침해요! 어쩐지 이모가 그런 병에 걸려 그렇게 큰 고생을 하셨네요!”
이모부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오 아무개가 사람을 보우해준다고 하던데.” 제가 말했습니다. “이모, 이모부, 두 분 속으신 거예요. 이 마오 마귀는 사람이 신을 믿지 못하게 하고 무신론을 말하는데, 그가 어떻게 두 분을 보우해줄 수 있겠어요? 예로부터 신이 사람을 보우해준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무신론을 말하는 죽은 사람이 사람을 보우해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모가 조급하게 이모부에게 말했습니다. “얼른 떼어내요. 저런 건 뭐 하러 둬요?!” 떠날 때 저는 두 분께 각각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하나씩 드렸습니다.
이모의 몸은 차츰 좋아졌습니다. 이후 저를 만나면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큰조카딸이 날 살렸어!” 저는 얼른 바로잡아줬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이모를 구해주신 거예요!” 이모는 연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줄곧 우리집에 사셨으며 돌아가실 때도 우리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 집은 그의 작은 손자(큰아버지의 작은 아들)가 새집으로 개축해 자기 집과 하나로 이어 총 10여 칸이 됐습니다. 집을 개축할 때는 할아버지를 달래며 다 지으면 할아버지가 넓은 방 큰 집에 살게 해드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 짓고 나자 할아버지가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제 아버지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아파트에 사셨는데 이미 80여 세인 할아버지는 적응하지 못하시고, 온종일 답답하고 하늘도 볼 수 없다며 자주 혼자 몰래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알고 나서 예전에 우리집이 살던 단층집을 치워 할아버지가 들어가 사실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몹시 기뻐하셨으며 부모님도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이곳은 아버지 댁과 매우 가까웠고 하루 세끼를 모두 어머니가 준비해 아버지가 가져다 드렸습니다.
제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할아버지가 사실 집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여자아이를 무시하고 유난히 큰어머니네 가족만 편애하셔서, 선량한 우리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구박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큰어머니는 아들 둘을 낳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늘 우리 어머니를 업신여겼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할 때면 저 역시 큰어머니에게 자주 맞고 욕을 먹었고, 할아버지에게 옷깃을 잡혀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 직장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이 도시로 오게 됐으며, 저와 어머니는 큰어머니와 연을 끊고 지냈습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사촌동생이 할아버지 집을 속여 빼앗았을 때, 저는 할아버지에게 우리집을 내드리기는커녕 사촌동생에게 따지러 갔을 것이고, 나아가 할아버지에게 평생 편애했던 큰어머니네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우리 두 집안의 원한과 원망은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한 후 법리상에서 어머니와 교류했습니다. 어머니는 사리에 밝은 분이시라, 한번은 고향의 장례식에서 우리 두 집안은 화해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우리의 원망스러운 인연을 선해(善解)해준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집에 오신 후 자주 작은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나가 사람들과 장기를 두셨습니다. 그는 자주 마당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예전에 남아선호 사상을 가졌던 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어. 친손자가 내 집을 속여 가져가서 늙그막에 내가 머무를 거처조차 없게 됐지. 이 손녀는 어릴 때 하도 평범해서 눈여겨보지도 않았는데, 평생 이 아이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저는 할아버지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드렸는데 할아버지는 귀가 너무 어두워 잘 듣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형 녹음기에 이어폰을 꽂아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려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아흔두 살 되던 해에 편안히 돌아가셨으며 마치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는 고향 시골로 돌아가 치렀습니다. 대법이 우리 대가족의 원망스러운 인연을 선해해주었기에 고향에 돌아간 후 우리는 대가족의 남녀노소,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조금의 서먹함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평소에 일가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 만남의 기회를 꼭 잘 파악해서 알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장례 기간에 집에서 묘지까지는 아주 긴 거리였고, 매 구간마다 의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제가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해 진상을 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는 3일간 치러졌습니다. 이 3일 동안 친척들과 한담할 시간이 많았는데, 저는 자주 서너 명, 일고여덟 명에게 함께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따파가 불가의 고차원 공법이라는 것과, 어떻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지, 중공 악당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의 의문점, 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야 하는지 등을 말했습니다.
제 마음가짐은 매우 좋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를 무척 지지해주셨습니다. 심지어 큰어머니네 큰오빠와 남동생도 알아들은 후 즉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줬으며, 선량하고 순박한 친척들 모두가 매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3일 동안 큰어머니가 중공 악당에서 탈퇴하지 않은 것 외에는,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모두 악당의 각종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초기에 진상을 제대로 알렸기 때문이었고 저는 수련생과 협력해 고향 친척들 집집마다 위성 수신기를 설치해줬으며, 친척들은 모두 NTD TV 프로그램을 특히 즐겨 봤습니다. 한번은 고향에 돌아갔는데 사촌동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누나, 다음에 올 때 자료 좀 많이 가져다줘. 우리 부부가 4일장에 가는데, 그 장터 사람들이 모두 누나네 자료를 보고 싶어 해. 지난번에 내가 다 본 소책자를 그들에게 줬는데, 다들 부족하다고 했어.” 이후 저는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사촌동생에게 진상 자료를 한 상자씩 가져다주었고 사촌동생은 늘 기쁘게 받아 갔습니다.
어머니 입원 기간 중 같은 병실 환자들을 자비로 대하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가 병이 나 수술로 입원하셨을 때 제가 내내 간병했습니다. 병실에서 저는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같은 병실 환자들과 간병인들을 대하면서, 실제 상황에 맞춰 적절한 시기에 진상을 알렸습니다.
위암에 걸린 60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시골 분이고 아들이 셋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20여 일 입원해 계셨는데, 수술 당일 큰아들이 한 번, 셋째 아들이 잠깐 들른 것 외에는 줄곧 할머니가 곁을 지켰습니다. 할머니는 밤낮으로 간병하느라 지쳐 다리와 발이 딴딴하게 부어올랐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도와 물을 떠다 드리고 링거를 봐드리며,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시게 했습니다.
수술 전날 아침, 의사가 헐렁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는데, 할머니네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고 물건도 사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방법이 없자 그녀는 제게 말했습니다. “새댁(현지에서 잘 모르는 아랫사람 여성을 부르는 통칭), 이따가 할아버지가 주사 맞기 시작하면 나 대신 좀 봐줘. 내가 나가서 잠옷 한 벌 사 오게.” 저는 병원 외에 시장은 병원에서 멀다는 것을 알았기에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어디 가서 사시게요? 병원 거 쓰시나요? 자녀분들한테 전화해서 사 오라고 하시죠. 길도 못 찾으실 텐데, 시장은 여기서 멀어요.”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병원 건 안 써. 너무 비싸. 애들은 내일이나 오는데 의사가 오늘 사 오라고 하니 내가 나가서 어디 파는 데가 있는지 봐야지.”
저는 ‘이 할머니가 혼자 나가서 시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택시도 탈 줄 모르고 자전거도 없으니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그냥 할아버지 곁에 계세요. 시장 찾기 힘드실 테니 이따 제가 자전거 타고 도매시장에 가서 사 올게요. 거기 옷은 비싸지 않고 할아버지 쓰시는 데 지장 없을 거예요.” 할머니가 울면서 주머니에서 100위안을 꺼내 제게 줬습니다. 저는 “사 오면 그때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링거를 맞기 시작하자 저는 아버지에게 봐달라고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도매시장에 가서, 품질이 조금 더 낫고 헐렁한 잠옷을 한 벌 샀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빨고 탈수해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 말린 후 병원으로 가져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몹시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새댁은 정말 좋은 사람이네. 우리 아들 셋보다 훨씬 낫구먼.”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데요, 대법은 제게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어요. 대법은 불법(佛法)이라 믿는 사람을 보호해줄 거예요.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많이 외우시면 부처님께서 두 분을 보우해주실 거예요.”
두 분은 얼른 제게 잘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그들에게 가르쳐드렸습니다. 저는 그들이 몹시 어려운 것 같아서 잠옷 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매우 소박하셔서 이후에 꼭 서로 왕래하며 지내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전화번호를 받아두고 퇴원한 후에 다시 그들 집을 방문해 제대로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계셨으며, 그동안 주변 환자들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 환자들과 간병 온 가족들과 서로 도우며 각자 휴대폰 번호를 남겼습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신 후 저는 진상 자료와 대법 진상 호신부를 챙기고 선물을 사서 환자들 집을 일일이 방문했습니다. 집집마다 갈 때마다 환자분들은 가족들을 불렀는데, 저는 그들이 모두 진상을 들으러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든 가족이 웃음꽃 속에서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됐습니다.
운전기사 “하마터면 공산당에 속을 뻔했네요”
직장, 가정생활 등 고정된 환경에서 계획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 외출해 쇼핑하거나, 친구들과 잠시 모이거나, 차를 타고 외출하는 등의 일 중에도 저는 기회가 닿는 대로 진상을 알립니다. 가장 자주 하는 것은 쇼핑인데, 저는 두 곳에서 쇼핑합니다. 하나는 슈퍼마켓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입니다. 슈퍼마켓에 가는 것은 시장에서 사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인데, 주로 큰 단위의 돈을 작은 단위의 지폐로 바꾸기 위한 것으로, 진상 지폐를 만드는 데 쓰기 위해서입니다. 시장에 가서는 많은 물건을 사는데, 친척이나 친구들이 모두 일로 바빠서 구매할 것이 있으면 제가 모두 기꺼이 사다 주어, 그들의 생활도 편해지고 제가 진상을 알리기도 편했습니다.
저는 어느 시장이든 다 가며 주로 진상 지폐를 씁니다. 시장에서는 진상을 알리기 좋은데 어떤 계기든 쉽게 진상을 명백히 알릴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저는 대법을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한번은 쇼핑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퇴역 군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조금 망설여져, 잠시 정념을 발해 이 사람이 진상을 아는 것을 가로막는 교란을 제거했습니다. 저는 5위안짜리 진상 지폐 한 장을 꺼내 그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방금 제가 장을 봤는데, 다른 사람이 글자가 쓰인 돈을 거슬러줬네요. 파룬궁에 대해 쓰여 있어요.” 운전기사가 고개를 살짝 돌려 무표정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글자인데요?” 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껏 외우면, 위난이 닥치기 전에 생명을 보우할 수 있다”라고 읽어드렸습니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물었습니다. “믿으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안 믿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왜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믿어요?!” 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글자 그대로만 봐도 진선인 세 글자는 좋은 거잖아요! 지금 이 사회에 부족한 것이 바로 진선인이고요.”
그가 저를 힐끗 보더니 말했습니다. “믿어서 뭐해요? 공산당이 믿지 못하게 하는데, 믿다가는 공산당에 손해만 보죠!” 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바로 공산당이 믿지 못하게 해서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거예요. 사람 사이에 신뢰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천재지변도 많고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당신도 파룬궁 수련하죠?” 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운전기사가 말했습니다. “당신 말하는 투나 표정이 우리 둘째 누나랑 너무 닮았어요. 우리 둘째 누나도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공산당에 3년간 갇혀 온갖 고생을 다 했어요. 돌아와서도 여전히 수련하고 누가 뭐래도 듣질 않아요! 어느 날 정오에 둘째 형님이 나더러 자기 집에 와서 누나 좀 옮기라고 전화를 했어요. 가봤더니 밥이 한상 차려져 있는데 아무도 안 먹고, 누나는 침실에서 가부좌하고 이러고 있더라고요.”
그는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손을 세우는 동작(입장)을 해 보였습니다. 저는 보자마자 그의 둘째 누나가 낮 12시 정각에 정념을 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습니다. “온 가족이 밥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누나 혼자 가서 연공하는 게 정상이에요? 나랑 둘째 형님이 다가가서 양쪽에서 한 사람씩 잡고 그녀를 다른 방으로 옮겨 놨는데, 내려놓은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연공하고 있더라고요! 눈도 안 뜨고, 사람 화나게 하죠?!”
저는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운전기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한상 가득한 밥은 누가 차렸는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둘째 누나가요.” 제가 물었습니다. “누나가 집에서 집안일은 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해요. 무슨 일이든 다 그녀가 해요. 손자도 봐야 하고, 큰애 보고 나면 작은애 보고, 온 식구 밥도 다 그녀가 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누나 몸이 감당할 수 있대요?” 운전기사가 말했습니다. “그건 또 말도 마세요. 그녀는 예전에 골골하는 환자여서 집안 돈이 다 그녀 주사 맞고 약 먹는 데 들어갔어요. 빨래하고 밥하는 것도 다 둘째 형님 일이었죠.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는 못 하는 일이 없고 늘 기운이 넘쳐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거 참 좋네요. 파룬궁을 수련하고 약 먹고 주사 맞을 필요도 없고, 둘째 형님이 빨래하고 밥할 필요도 없고, 손자 둘도 돌볼 수 있으니, 이게 얼마나 큰 복이에요!” 운전기사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누나가 밥을 다 차려놓고 가족들 먼저 먹으라고 한 거고, 그녀는 단지 15분 동안 가부좌하러 간 거잖아요. 가부좌가 끝나면 그녀도 밥 먹고 설거지했을 거고요. 만약 기다리고 싶으면 15분 기다리면 되고, 기다리기 싫으면 먼저 먹으면 되는데, 왜 그녀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긴 거예요?” 운전기사는 순간 말이 막혔습니다.
제가 또 말했습니다. “당신 누님은 정말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거네요. 생각해보세요. 그녀가 집안팎을 모두 깨끗하게 정돈하고, 노인을 돌보고 아이도 잘 돌보고, 당신들이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게 하잖아요. 이게 다 대법이 그녀에게 좋은 몸을 줘서 할 수 있게 된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녀에게 뭘 더 바라는 거예요? 만약 그녀가 정말 대법을 배우지 않게 돼 예전처럼 골골하는 환자가 된다면, 그녀에게나, 당신들 온 가족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겠어요?”
운전기사의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한참 후에야 제게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돌아가서 둘째 형님과 잘 이야기해봐야겠어요. 우리가 더는 이렇게 어리석게 굴면 안 되겠네요. 하마터면 공산당에 속을 뻔했어요. 그럼 내가 탈당하는 게 소용이 있을까요? 둘째 누나가 나더러 탈당하라고 몇 번이나 권했어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사람을 통해 돈까지 써가며 입당했는데, 말 한마디로 탈당한다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연히 탈퇴해야죠. 공산당이 얼마나 나쁘게 변했는지 보세요. 하늘이 조만간 반드시 그것을 멸망시킬 거예요. 당신이 그 조직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당신도 그 일원이 되는 거잖아요? 우린 다 선량한 사람인데 그것과 함께 순장당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요?” 그가 즉시 말했습니다. “탈퇴할게요, 탈퇴할게요. 제 이름은 리 아무개예요. 실명으로 탈퇴할래요! 나 좀 탈퇴시켜줘요!”
제가 말했습니다. “좋아요! 시간 될 때 둘째 누나에게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을 한 권 구해달라고 해서 읽어보시면 더 잘 아시게 될 거예요.”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누나가 벌써 줬어요. 계속 안 봤는데, 돌아가서 바로 볼게요!” 제가 차에서 내릴 때 운전기사는 기쁘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맺음말
수련의 길에는 평탄한 길이 없습니다. 이 길을 걸어오면서 저는 비틀거렸지만,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굳게 명심하고, 대법이 제게 주신 지혜로 진상을 잘 알리며,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도왔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주심에 감사드리고, 수련생 여러분의 신뢰와 격려,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촉박한 시간 속에서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삼가 받들어 용맹정진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해내, 역사 이전의 대원(大願)을 완성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6/50243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6/50243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