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사부님의 법은 내 정념의 근원

—세뇌반은 해체되고, 노동수용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69살이며 농촌에서 살아온 평범한 여성입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뒤, 저는 극도로 이기적이던 사람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스승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셔서, 저는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밝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20여 년 동안 제가 가장 깊이 체득한 점은 다음 한 가지입니다. 법은 수련자가 정념을 얻는 근원이므로, 법공부를 잘해야만 크고 작은 모든 난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아래에는 저의 작은 수련 체험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파룬따파가 날 변화시키다

수련하기 전 저는 성질이 불같고 매우 고집스러웠습니다. 부모, 친척, 이웃과도 자주 다투었고, 어떤 일이든 제가 반드시 앞서야만 했습니다. 싸움이 나면 끝까지 이겨야 직성이 풀렸고, 밭두렁이나 작은 이익이라도 손해 보면 절대 참지 못했습니다.

싸울 때는 더 심했습니다. 어느 날은 올케와 다른 친척과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졌는데, 저 혼자 두 사람을 동시에 때릴 정도로 거칠었습니다. 저는 싸움도 잘 하고 욕도 잘 해서 사람들은 모두 저를 두려워했고 뒤에서는 “저 사람은 너무 사나워서 건드리면 큰일 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그런 말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대단한 ‘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1998년 8월, 파룬따파가 우리 고장에도 전해졌고 저도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러 갔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배우면서 저는 마치 눈이 환하게 트이듯 깨달았습니다. 원래 이 우주는 ‘법’이 있는 곳이며, 우주의 가장 근본 특성은 ‘진선인(眞·善·忍)’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대법의 법리에 따라 선한 사람이 돼야만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나도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 대법이 요구하는 대로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그때부터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이 생겨도 선하게 대하고, 다투지도 화내지도 않게 됐습니다.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기꺼이 다른 이들을 도왔습니다. 이웃 관계가 좋아졌고 가정도 화목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변화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니 정말 달라졌네.”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고 수련할 수 있도록 저는 적극적으로 법을 알렸고 우리집은 단체 법공부와 연공, 그리고 공법교육 장소가 됐습니다. 누구든 찾아오면 문을 활짝 열고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가까운 곳, 먼 곳에서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아무 대가 없이 식사까지 준비해 모두가 편하게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시기 사람들은 법공부와 연공에 열정적이었고 많은 이들이 고질병이 나았습니다. 저도 다년간의 중이염, 위장병, 류머티즘, 빈혈, 부인과 질환 등이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 아예 다른 사람이 됐네.”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가운데 저는 ‘불광이 널리 비추는(佛光普照)’ 자비롭고 평화로운 느낌을 진실하게 체험했습니다.

지난 20여 년의 정법 수련 길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저는 법에서 오는 정념을 바탕으로 모든 크고 작은 난관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노동수용소의 ‘전향’ 강요를 깨뜨리다

2000년 11월, 저는 1년 반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지방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노동수용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강제로 ‘전향’을 시키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바오자(앞잡이 재소자)’라는 자들은 갖은 회유와 꾀임으로 말했습니다. “여기 온 사람 수백 명 전부 다 전향했어. 당신도 빨리 전향해. 전향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있고, 교류도 하고, 법공부도 할 수 있어.” 그들은 이성을 잃고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하며 욕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은 그렇게 좋으신 분이고 파룬따파는 그렇게 좋은 법인데, 도대체 어디로 전향하라는 거지? 사부님을 배신하고 대법을 배신하는 것은 곧 파룬궁을 박해하는 악한 무리와 한패가 되는 일이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저는 시비를 분명히 하고, 선악을 똑바로 구분했으며, ‘전향’은 절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서 강제로 전향을 강요하는 이 박해를 어떻게 맞서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저는 사부님의 법을 떠올렸습니다. “어떠한 어렵고 힘든 환경 하에서도 여러분은 모두 마음을 온건히 가져야 한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미국 중부법회 설법)

“당신들의 수련은, 대법(大法)에 대한 견정한 그 마음이 반석같이 단단하여 대법을 강력하게 안정시켰다.”(뉴질랜드법회 설법)

그 사악한 검은 소굴 같은 노동수용소 속에서, 사부님의 법은 제 마음에서 대법제자가 갖추어야 할 정념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바오자’들이 아무리 헛소리를 해도 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협박하고 위협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쓰라고 해도, 무엇에 서명하라고 해도 제 마음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때리고 욕해도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오자들이 말했습니다. “전향하지 않으면 신장(新疆)의 인적 드문 고비사막으로 보내 버릴 거야. 앞으로 파룬궁을 하나도 남김없이 말살해 버릴 거야.” 저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저 한 사람이라도 수련하고 있는 한 파룬궁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혹독한 고문, 감옥경찰, ‘바오자’, 감시자들은 저를 전향시키기 위해 잔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매일 벽을 마주하고 10여 시간씩 서 있기,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서 있기,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기 등입니다. 어느 날은 도저히 참지 못해 허락 없이 화장실을 갔다가 감옥경찰에게 전기고문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제 손 호구(虎口,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그때 생긴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유 없이 작은 감방에 가두고 모기와 벌레에 뜯기게 하기, 세뇌 영상 시청을 거부한다고 감옥경찰 부대장에게 뺨 맞기, 과중한 생산량을 못 채우면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벌서게 하기 등 끝없는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자는 정념(正念)을 말해야 하고, 사부님의 법이 바로 제 정념의 근원이라는 것을. 그래서 고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도, 어떤 회유가 얼마나 달콤해 보여도, 저는 항상 사부님의 법으로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사부님의 법을 묵송했습니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홍음-위덕).

“대법을 굳게 수련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니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 앞에서 진성을 보나니 공성원만 하여 불도신이 되도다”(정진요지2-진성을 보다)

저는 법의 위력이 무한하고, 법에서 나오는 정념은 절대 깨뜨릴 수 없음을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가지(加持) 아래, 저는 끝까지 바른 신념을 지키고 사악한 전향 박해를 완전히 깨뜨렸으며, 2002년 3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서명하다

2001년 5월 13일, 노동수용소는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들에게 대법을 모독·비방하는 영상물을 강제로 보게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사부님의 생신이다. 우리 제자들이 사부님을 가장 그리워하고 감사드리는 특별한 날이다. 어떻게 이런 사악한 것들을 순순히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정념이 치솟아 저는 벌떡 일어나 영상 보던 작은 의자를 발로 걷어차며 크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사부님의 생신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라고요? 저는 보지 않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에 모두 이름을 서명하게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나는 오직 대법이 좋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데에 서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는 그 현수막에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감시자들은 말했습니다. “이 현수막은 이제 제출할 수 없게 됐구나. 이 글자를 검게 칠해 없애야 해. 상부에서 보면 큰일 나. 추궁이라도 들어오면 우리는 책임질 수 없어.” 누군가 허겁지겁 악명 높은 잔혹한 감옥경찰 대장을 부르러 갔습니다.

잠시 후 감옥경찰 대장이 오더니 오히려 제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 잘했다.” 그 순간 박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악한 세뇌 비디오테이프를 폐기하다

어느 날 큰비가 내렸습니다.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들은 처마 아래에 앉아 있었고, 발 앞쪽 도랑에는 물이 가득 차 흘렀습니다. 한쪽 책상 위에는 세뇌 내용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여러 개 쌓여 있었습니다. 감시자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러 간 틈을 타, 저는 테이프를 모두 안아 물이 가득 찬 도랑에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수련생 한 명과 함께 다시 건져 올려 테이프를 한 조각 한 조각 찢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감옥에서는 우리에게 테이프 값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배상하든 말든, 보복하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두려움도 내려놓았고, 걱정도 내려놓았고, 심지어 생사도 내려놓았다.’ 결국 이 일은 흐지부지 끝났고 그 중대(中隊)에서는 다시는 그런 세뇌 비디오를 틀지 않았습니다.

정념으로 세뇌반을 해체하다

2010년 8월 어느 날, 저는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던 중 거리사무소 직원과 정체불명의 7~8명이 길거리에서 저를 가로막고 강제로 납치해 승합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웃 현의 산속, 한 숙박업소에 차린 세뇌반으로 끌고 갔습니다. 저희 지역의 다른 두 명의 수련생도 동시에 납치돼 있었습니다.

세뇌반은 숙박업소 2층에 설치돼 있었고 큰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불법으로 감금된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단독 방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고, ‘감시자’가 하루 24시간 밀착 감시했습니다. 매일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비방‧모독하는 영상과 음성을 강제로 들려주고, 세뇌반이 요구하는 대로 이른바 ‘경험서’를 쓰라고 강요하며, 다시는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종용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학습’이었습니다.

시‧현‧구‧향진의 각급 정부와 정법위 사람들이 차례로 와서 ‘재교육 한다’는 명목으로 세뇌를 시도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으로서의 정념으로 대응했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생의 사명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한 가지, 진상을 말해 그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저는 반복해서 진상을 알렸고,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이 조작이라는 사실과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신체와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날, 현 정법위 ‘610’ 책임자가 왔습니다. 저는 이 모든 해 동안 저희 집이 겪은 박해와, 중공의 거짓‧악‧투쟁[假惡鬪]이 인민에게 끼친 재난을 조목조목 말했습니다. “공산당이 인민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지금은 또 파룬궁을 박해해 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우리 가정도 이렇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듣기만 했고, 그 이후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정념을 발해 세뇌반의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제가 감금되면서 동시에 불법적인 가택수색도 이뤄졌습니다. 아이는 제 소식을 듣자 외지에서 급히 돌아와 저를 납치한 향‧진 정부 책임자를 찾아가 강하게 항의하며 즉시 석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세뇌반에 끌려갔을 때, 구 ‘610’ 책임자가 호텔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납치자들은 저를 끌고 밀며 결국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구 ‘610’ 책임자는 다가와 제 등 가운데를 꿰뚫을 듯이 발로 세게 걷어차고, 그들에게 저를 억지로 안으로 들여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 후 응보를 받아 중병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제 가족이 항의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법기관에 근무하는 저희 친척에게 “당신네 ○○에게 전해라. 지금 풀어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뇌반에는 다른 현의 수련생들도 불법 감금돼 있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정념으로 박해에 맞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세뇌반은 파룬궁수련생 ‘전향’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저희는 13일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노동수용소 “이 사람은 안 받습니다. 데리고 돌아가세요”

2010년 10월 어느 날, 구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610’ 경찰이 제가 일하던 은행의 청소 작업장에서 저를 납치했습니다. 이어서 병원으로 끌고 가 강제로 건강검진을 시켰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건강검진은 왜 합니까? 장기적출하려고요?” 경찰은 “1년 반 강제노동을 시키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진 후 저를 구치소에 불법 수감했고, 저는 항의하기 위해 단식했습니다. 사흘 뒤, 구 국보 ‘610’ 경찰 몇 명이 저를 노동수용소로 끌고 갔습니다. 사흘째 단식 중이었지만 저는 배고픔에 개의치 않고, 가는 길 내내 계속 진상을 말하며 선하게 권했고, 그들이 박해를 멈춰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복을 쌓기를 바랐습니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하자 다시 강제로 건강검진을 했고, 결과가 모두 정상이 나오자 저를 노동수용소 접수실로 데려갔습니다. 서류 몇 장을 처리한 후 제게 서명을 강요하고, 서명하면 바로 안에 던져 넣으려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노동수용소는 파룬따파 수련생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이것은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다. 나는 절대 악의 박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박해를 반대하고,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안배를 부정해야 한다.’ 저는 불법 강제노동을 단호히 거부하며 주먹을 꽉 쥐고 서명도, 지문 날인도 거부했습니다.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달려들어 제 몸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제 손을 비틀며 강제로 지문을 찍으려 했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며 인주통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노동수용소는 인간 세상의 지옥입니다! 여기서 우리 많은 파룬따파 수련생이 박해로 죽었습니다! ○○○, 61세, 똑똑하고 능력 있고 참 예쁜 분이었는데 이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받아 죽었습니다. 또 ○○○도 여기서 죽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박해로 죽었으니 억울하기도 억울한 것이며, 이는 천리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곳의 밥을 먹지 않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겠습니다!” 국보 ‘610’ 경찰들은 기진맥진해 숨을 헐떡였고,서명과 지문 강요는 끝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제 접수를 거부한 것입니다. 경찰이 접수실에서 노동수용소 내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안 받습니다. 데리고 돌아가세요.” 경찰들은 하는 수 없이 저를 되돌려 태웠지만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고 노동수용소 책임자를 찾아가 여러 차례 다시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수용소 측은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마침 제복을 입은 경찰(수용소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 달려가 다시 요청했지만 그 노동수용소 경찰은 말했습니다. “위에서 이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받지 않습니다. 누가 감히 받습니까? 돌아가세요.” 제가 차 안에서 그들이 계속 교섭하는 동안, 저는 내내 정념을 발했습니다.

구치소를 떠난 뒤 사흘 동안 단식해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저는 끝까지 정념을 유지했습니다. 잠시라도 마음이 느슨해지면 사악한 교란이 즉시 끼어들었습니다. ‘들어가라. 안에 들어가야 친척들이 면회도 올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스치자 저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했습니다.

그들은 구 정법위 ‘610’에 전화를 걸어 사람이 와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 9시에 노동수용소에 도착해, 오후 네‧다섯 시가 되도록 몇 시간이나 끌었지만 결국 저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하다

수련 중 여러 차례의 사련을 겪으며, 저는 사부님께서 왜 거듭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하시는지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법공부의 중요성을 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어느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당신은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한 번도 늦춘 적이 없네요. 어떻게 그런 마음을 유지하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통해, 파룬따파 수련생이 세상에 온 사명이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중공은 해체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일이고, 중공의 당·단·대에 가입한 사람들은 악당과 함께 도태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구합니까? 오직 파룬따파 수련생뿐입니다.”

사람을 잘 구하기 위해 저는 교통이 편한 도시로 나가 일했습니다. 저는 동서(수련생)와 짝을 이루어, 셋방에서 직접 진상 자료를 만들어 스스로 배포했습니다. 저희는 장이 서는 곳곳을 찾아 다니며 진상 자료를 나누어 주었고, 한 사람당 한 번에 170~180부씩 들고 나갔습니다. 다 나누어 준 후 시간이 있으면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거나,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근래에는 감시카메라가 매우 많지만 저는 그것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는 파룬따파 수련생이고, 저는 사부님께서 돌보십니다. 인간 세상의 것들은 저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왔기에 저는 감시카메라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일을 늦춘 적이 없습니다.

저희가 다니는 지역은 사방으로 점점 넓어졌고, 특히 시골의 외진 지역은 진상 자료를 전하는 수련생이 적다고 들으면 저희가 갔습니다. 어떤 곳은 두세 번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 오토바이 택시를 타면 두껍게 껴입어도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어 내리면 몸이 꽁꽁 얼기도 했습니다. 수입이 많지 않고 교통비도 꽤 들어 왕복에 몇십 위안이 필요한 데다가 방세도 내야 했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 먹지는 않았습니다. 배고프면 그냥 찐빵 하나 먹고 물을 마시면 충분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집안 사정으로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시골의 교통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희는 거의 매일 새벽같이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때로는 채소를 팔면서도 사람을 구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날씨가 어떻든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나갔습니다.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반드시 수확이 있고, 누군가는 구원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농사일을 하고 집안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90여 개의 향진(鄕鎭)을 걸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저는 가끔 도시로 나가 청소 일을 했습니다. 도시로 가는 길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도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고, 그 자리에서 삼퇴하는 사람이 몇 명씩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늘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의 향락·먹고 마시고 노는 즐거움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에 몇 명을 구하든, 사람을 구했다면 저는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합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시기에는 곳곳이 봉쇄됐지만, 그것도 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늘 방법을 찾아 사람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그때는 거리와 골목이 텅 비어 더욱 다급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을 빨리 구해야 한다, 늦춰서는 안 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간 저는 동서와 짝을 이루어 자비로 사람을 구하는 마음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선연(善緣)이 맺어졌습니다. 특히 대면해서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알고 구원된 사람들은 저희에게 너무도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어이 돈을 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물건을 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꼭 음식을 사주려 하며, 연락처를 주고받고 싶어 하거나, 형제자매가 되자고 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습니다. 저희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고맙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을 구해주신 분은 대법 사부님이십니다. 파룬따파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사부님과 파룬따파가 저를, 한때 극도로 이기적이었던 사람에서 오로지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중생이 구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신의 길을 걷는 파룬따파 수련생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상은 저의 작은 수련 체험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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