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며 사람 마음을 버리고 정념을 세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약 4년 전부터 인터넷 봉쇄 돌파가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도 중국공산당(중공)의 ‘민감한 날’이나 특별한 시기에는 인터넷 봉쇄가 심해지긴 했지만, 이번처럼 장기간 지속하고 점점 심각해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 수련생들은 우리집 인터넷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여러 번 점검했지만, 나중에 다른 수련생들도 오랫동안 인터넷 봉쇄를 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이것이 전반적인 현상임을 알게 됐습니다.

봉쇄를 빨리 뚫기 위해 우리는 기술 담당 수련생의 말대로 전원을 끄거나 통로를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을 계속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효과가 있었지만 갈수록 그 효과가 미미해졌습니다. 정념(正念)을 강화해 발정념(發正念)도 많이 했지만 역시 가끔 효과가 있을 뿐, 대부분 시간에는 ‘자유문(自由門, 프리게이트)’의 검색 아이콘이 계속 깜빡이기만 하고, 겨우 한 서버에 연결돼도 신호가 없거나 웹페이지가 열리기도 전에 끊겨버리곤 했습니다. 요컨대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봤지만 봉쇄를 뚫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습니다. 우리집 수련생들은 매일 명혜망의 교류문을 습관처럼 읽고 있었는데 그조차도 보장할 수 없게 됐습니다. 며칠씩 명혜망에 접속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 이어졌고 기록을 갱신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상황을 마주하며 완전히 멍해졌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수련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니 이것이 바로 법(法)에서 말씀하신 시험임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시점이든, 심지어 원만(圓滿) 직전까지도, 수련자가 법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굳건히 믿는 것에 대한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전부터 ‘마지막이 되면 정법의 형세는 반드시 대법제자들이 압도적으로 강해지고 사악한 세력은 너무 약해서 손도 못 쓸 것이다’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사악한 봉쇄가 심각한데 대법제자들이 봉쇄를 뚫기 어렵게 된 상황을 마주하자 그 관념이 충격을 받았고 마치 삼관(三觀: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상황 속에서 과연 굳건히 믿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을 깨닫고 나서 법공부를 통해 인식을 바로잡고 정념을 굳게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중의 일이고 당시에는 저와 가족 수련생들 모두 막막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또다시 “봉쇄가 안 뚫린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가족 수련생이 “자유문이 벌써 새 버전이 안 나온 지 꽤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봉쇄를 빨리 뚫고 싶은 마음에 우리 모두 새 버전이 어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유문이 자주 업데이트됐고 봉쇄가 심할 때는 빠르게 새 버전이 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리만큼 오랜 기간 업데이트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업데이트가 무려 2021년 7월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봉쇄를 뚫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오히려 소프트웨어가 장기간 업데이트되지 않는 이 비상식적인 현상은 저와 가족 수련생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해외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우리가 발정념으로 도와야 하나?’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쇄를 뚫지 못하자 감정이 올라와 ‘도대체 왜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야?’ 하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법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문이 이렇게 오랫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은 과거와 다르며 게다가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심한 봉쇄 상황인데도 업데이트가 없다면 그 속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가 오늘날 이 단계까지 수련해 왔는데 어찌 아직도 일반적인 기술에 의존하려 하는가? 대법제자는 초월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아닌가!’

저와 가족 수련생이 교류를 하면서도 같은 인식을 나누게 됐습니다. 교류문에서 어떤 수련생이 인터넷을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봉쇄를 뚫고 자료를 다운로드했다는 사례를 보고 이번 일이 아마도 중국 대법제자들에게 정념으로 봉쇄를 뚫으라는 일깨움일 수 있음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은 이미 최후의 최후 시기입니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대법제자의 상태를 보여야 합니다. 더 이상 모든 것을 기술 수련생이나 세속적인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인류의 이 층(層)에서 이치의 제약을 받지만 대법제자는 이미 초월적인 존재이며 신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이번 사악한 봉쇄를 통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들이 더 높이 제고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더는 자유문이 업데이트되느냐 마느냐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정념으로 봉쇄를 뚫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명혜망을 한 번 열 수만 있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오랫동안 뚜렷한 돌파가 보이지 않자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정법 일을 마치고 나서 인터넷 연결을 시도해 보려 했습니다.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피곤하기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침대에 잠깐 누워 있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막 누운 순간 자유문이 연결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급히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보니 무려 7개의 서버가 연결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두 개 서버 이상 연결된 적도 거의 없었는데 신호가 너무 강력해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명혜망 내용을 모두 다운로드한 뒤에도 여전히 7개 서버가 유지됐고 속도는 마치 봉쇄가 전혀 없는 것처럼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감히 자유문을 종료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순간의 신기한 봉쇄 돌파를 통해 저는 즉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정법 일을 한 것에 대한 격려이며 사부님께서 직접 도와주신 것이다.’ 그 신속하고 신기한 돌파는 대법제자의 정념은 인간의 그 어떤 기술 수단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정념으로 봉쇄를 돌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는 다시 봉쇄가 잘 뚫리지 않았고 이전처럼 어렵게 됐습니다. ‘그날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지 나 혼자서는 안 되는 거야.’ 마치 아비보(愛博)TV로 션윈(神韻) 공연을 볼 때 사부님의 가호로 매끄럽게 재생되지만 평소에는 아무리 정념을 발해도 연결이 잘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여겼습니다. ‘사부님은 하실 수 있지만 제자는 할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법공부를 계속하면서 저는 이것이 잘못된 인식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극단적인 공산당 당문화식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론이었고 또한 조급함과 의존심이 섞인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대법제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대법제자들에게 상응하는 능력(신통)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해야 하며 모든 것을 사부님께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법에서 법을 바르게 인식한 후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관념을 완전히 바꾸고 봉쇄 돌파를 인간의 방식으로 보지 않고 사부님께서 주신 신통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게 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인터넷도 연결하지 않고 프로그램도 켜지 않고 그냥 손을 들면 자유문이 자동으로 실행되고 자료가 저절로 받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인간 사회의 형식에 부합해야 합니다. 다만 더 이상 ‘봉쇄 돌파는 기술력의 문제이고 봉쇄 기술보다 뛰어나야만 가능하다’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대법제자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사악한 봉쇄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그것은 고작 외계 기술 수준의 것에 불과합니다. 대법제자의 정념과 대법에서 수련을 통해 얻은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악한 기술 수단으로는 결코 대법제자의 능력을 봉쇄할 수 없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명혜망의 교류문을 안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체험했습니다. ‘사악한 세력이 아무리 인터넷을 봉쇄하려 해도 명혜망은 결코 봉쇄될 수 없다!’ 명혜망에는 문제없이 접속할 수 있게 됐지만 전체적인 봉쇄 돌파 상태는 여전히 예전처럼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안으로 찾기’를 실천하며 인식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사람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기술 수련생이 제공하는 기술적 지원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봉쇄가 뚫리는’ 상태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무슨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사람의 상태이지 대법제자가 가져야 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대법제자로서의 상태로 정념으로 봉쇄를 돌파하자!’

그 뒤로 저는 단순히 ‘봉쇄 돌파를 위한 발정념’이나 ‘손을 들고 정념을 유지하는’ 외형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고 근본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즉 제가 봉쇄를 뚫으려 할 때 저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모든 사람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대법제자의 상태, 초월적 상태, 즉 대법 속에서 수련돼 나온 신(神)의 상태에 도달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법 일을 하는 컴퓨터와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인 자유문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인간의 기술 산물이나 외계 과학의 대결로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문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작은 비둘기(小鴿子)’로 불리지만 저는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는 무한한 위력을 지닌 거대한 신조(神鳥)라고 느꼈습니다. 봉쇄를 뚫을 때 그것은 엄청난 위세로 사악함의 층층한 장벽을 뚫고 장엄하게 날아오르는 신성한 새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식과 상태를 바꾼 후 실제로 봉쇄 돌파의 진행이 점점 더 원활해졌습니다.

얼마 후 즉 2022년 10월, 자유문이 마침내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됐습니다. 가족 수련생은 무척 기뻐하며 ‘이제 드디어 고생스러운 시절이 끝났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며칠 뒤 가족 수련생으로부터 들은 소식에 따르면 새로운 자유문은 처음에는 아주 잘 작동했지만 곧 다시 어려워졌고 속도도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옛 비둘기’는 전장을 수없이 누비며 단련된 노장이니 당연히 능숙하지, 새로 나온 ‘새 비둘기’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초보니까 아직 단련되지 않은 거야.’ 하지만 새 버전의 자유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봉쇄는 여전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 문제를 계기로 저는 다시 ‘안으로 찾기’를 실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여전히 사람의 관념과 이론, 의존심, 안일심, 귀찮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여전히 ‘기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었구나. 이제는 정말로 완전히 내려놓고 오직 정념으로 봉쇄를 돌파해야 한다!’ 그 후부터 저는 봉쇄를 돌파할 때 사람의 사고 상태를 전부 버렸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정념만 가득 채웠습니다. 자신을 신의 상태로 이끌어가며 자유문을 실행할 때마다 강력한 정념을 발해 ‘자유문이 사악한 인터넷 봉쇄를 뚫고 힘차게 날아가라!’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 뒤 명혜망의 특집 라디오 방송 ‘인간을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자’를 듣게 됐습니다. 그 방송을 통해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념으로 봉쇄를 돌파하는 것 또한 대법제자가 ‘사람을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수련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제자들의 제고를 위해 자비롭게 배치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렇다! 나는 봉쇄를 돌파하는 과정 자체를 ‘사람을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는 수련의 과정’으로 삼자!’

매번 인터넷을 돌파할 때마다 저는 스스로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 신의 상태로 나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이치가 올라올 때마다 곧바로 배척하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떠올리며 끊임없이 정념을 강화했습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 크게 동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조급해지면 재부팅하거나 예전 버전의 우회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등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정념으로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훈을 얻고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사람의 면은 점점 약해지고 대법제자로서의 정념, 신과 같은 초월적 상태는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정념으로 인터넷을 돌파하는 것도 하나의 수련 과정임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정했지만 점차 익숙하고 자유로워졌는데 그 속에서 조급한 마음, 질투심, 과시심, 환희심,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마성적인 요소들이 한 꺼풀씩 벗겨졌고 ‘사람의 껍질’을 깨면서 법 위에서 자신을 높여 갔습니다.

이렇게 ‘사람에서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인터넷도 점점 더 순조로워졌습니다. 션윈예술단 공연이나 NTD TV의 각종 대회도 한 번도 지연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爲神)’의 다운로드 링크를 보게 됐을 때입니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기술 수련생에게만 의존하면 안 된다. 기다리고 의지하고 요구하는 마음을 버리자’고 생각하며 혼자서 시도한 결과 아주 순조롭게 다운로드해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천지행(天地行) 포럼에서 영화 ‘침묵의 외침(沉默的呼聲)’의 링크를 보고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서 역시 아주 원활하게 다운로드를 마쳤습니다.

‘션윈쭤핀(神韻作品)’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션윈쭤핀 사이트가 나왔을 때 영상은 1080P 초고화질밖에 없었고 중공의 봉쇄가 심해 거의 재생이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360P, 480P, 720P, 1080P 등 다양한 화질을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봉쇄가 심할 때는 최저 화질인 360P로도 버퍼링이 심해 영상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션윈이 세상에 나온 것은 사부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려는 자비의 표현이며 경건과 감사의 정념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바르게 되자 시청이 점점 원활해졌고 나중에는 고화질이나 초고화질로도 막힘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가 혼자 볼 때는 초고화질로도 아주 부드럽게 재생되지만 가족 수련생을 불러 함께 보면 그 수련생의 사람 마음과 바르지 못한 사념 때문에 낮은 화질에서도 버퍼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상태가 다르면 그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문득 제 자신 안의 감춰진 사람 마음과 바르지 못한 생각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션윈 사이트가 초고화질만 제공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봉쇄가 심한데 초고화질만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다양한 화질이 생겼지만 여전히 360P가 막힐 때는 ‘사이트의 기술력이 아직 부족하니 어쩔 수 없겠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그 모든 생각이 다 ‘사람 마음’이었고 전부 장애였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의 정념이 바르다면 사악한 봉쇄 속에서도 초고화질의 션윈 영상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부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며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제자가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임한다면 사부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원만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중국 내 시청자들은 낮은 화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화면이 흐릿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거나 품질이 낮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션윈 영상이 흐릿하게 나오면 시청자들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생 제도가 영향을 받습니다. 이처럼 대법제자가 ‘이건 안 된다, 저건 불가능하다’는 사람의 이치에 매여 있다면 사부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을 원만하게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고통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며 저는 더욱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사람의 관념과 인간 세상의 이치를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진심으로 원만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돌아가면 제가 더 이상 사람의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순조롭게 인터넷을 돌파할 수 있게 됐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대법제자처럼 정념으로 할 수 없는데 그들은 사람의 기술에만 의존해야 하잖아. 사악한 봉쇄가 이렇게 심한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진상을 알 수 있을까?’ 곧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는 각자 맡은 구역이 있지 않은가. 내가 정념이 강하고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상태에 도달한다면 내가 담당한 구역 안의 사악한 요소들은 억제되고 제거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역의 사람들도 순조롭게 인터넷을 돌파하고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더욱 의식적으로 자신이 ‘사람을 벗어나 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뒤 수련생들의 교류 글을 통해 대법제자 각자의 마음가짐과 상태가 얼마나 사악함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중요한지 더 깊이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법륜(轉法輪) 중의 ‘에너지장’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했고 ‘자신을 잘 닦고 늘 정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새해가 됐습니다. 션윈예술단 공연을 시청할 때가 됐고 당연히 정념을 발해 세인들이 션윈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예전에는 션윈 생방송이 시작되는 저녁 8시 무렵이면 ‘아이보’ 프로그램이 갑자기 신호가 끊기곤 했습니다. 그 뒤에는 연결을 회복하는 데 한참이 걸려 저도 모르게 ‘이 시기에는 션윈을 볼 수 없다’는 관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그 관념도 돌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혜망의 안내에 따라 데이터 케이블을 구입해 드디어 대형 화면으로 션윈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섣달그믐 밤,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보를 켰는데 오! 단번에 연결이 됐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 마우스를 빠르게 더블클릭했습니다.

그런데 어라? ‘중국 채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NTD TV와 아태방송은 잘 열리는데 션윈 공연은 방송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재시작해도 ‘중국 채널’은 뜨지 않았습니다. 이미 공연이 한참 진행 중이라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혹시 아이보에서의 방송이 취소된 건 아닐까?’ 급히 자유문으로 접속해 보니 정말 그렇게 돼 있었습니다. 서둘러 동태망(動態網) 첫 화면의 링크를 눌렀습니다. 이상하게도 속도는 빠른데 영상이 조금 재생되다가 멈춰 버렸습니다. 껐다 켜도 늘 그 짧은 부분만 반복 재생됐습니다. 자유문을 다시 켜도 컴퓨터를 재부팅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도무지 정상 시청이 안 됐습니다. 그때의 저는 마치 상대의 모든 공격 패턴을 연습해 갔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상대가 전혀 다른 수로 나와 당황한 권투 선수 같았습니다. 하필 그때 가족 수련생이 짜증 섞인 말투로 “그만 좀 해, 안 되잖아”라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정념도 안 더하면서 도리어 이런 부정적인 말만 하다니!’ 결국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화를 내 버렸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인터넷이 완전히 끊겨 버렸습니다.

그제야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기’를 실천했습니다. 조급한 마음, 원망심, 션윈을 꼭 봐야겠다는 집착심을 내려놓고 정념을 세웠습니다. ‘션윈예술단 공연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마음을 바로 세우고 손을 들어 발정념을 했습니다. 정념을 발한 후 ‘이제 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시 자유문을 통해 동태망에 접속하니 온 가족이 대형 화면으로 션윈 공연과 음악회, 그리고 다음 날의 재방송까지 순조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밤, 아이보에서 션윈 공연이 재방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아이보로 시청했습니다. 작은 화면에서는 괜찮았지만 대화면으로 연결하니 영상이 다소 번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상반부가 끝난 뒤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보를 끄고 동태망으로 전환했습니다. 그 결과 하반부의 선명한 화질 덕분에 가족 모두가 션윈의 예술적 감동 속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이미 동태망이 더 선명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여전히 아이보를 선택했을까?’ 그것은 예전부터 션윈을 아이보로 봐왔고 동태망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경험 때문에 ‘아이보로만 볼 수 있다’는 관념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올해는 션윈이 단 한 번만 방송되니 혹시 놓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지’ 하는 이기심, 그리고 현대 과학이 만든 분석적 사고 방식이 작용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사유와 관념’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인터넷 돌파’ 같은 일 같지만 그 속에는 수련의 요소가 가득합니다. 모든 순간이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을 저는 그 일을 통해 더욱 깊이 느꼈습니다.

파룬궁수련자로서 ‘인간을 벗어나 신으로 향하기’를 체험하며 정념으로 인터넷 검열을 뚫는 것은 제게 이미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대규모 악성 인터넷 차단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원활하게 접속하는 일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서 자만심이 생기거나 마음이 느슨해진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채기 어려운 습관이 형성돼 은밀하게 인간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션윈쭤핀’을 시청할 때는 먼저 DRM 활성화 아이콘을 클릭하고 이어서 ‘Firefox 설치 중…’이라는 안내가 나타나 설치가 완료되면 시청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설치가 빠르고 인터넷 속도가 느려도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9월 말에서 10월 초쯤 설치가 계속 멈추어 아무리 기다려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속도도 좋은데 왜 이럴까 싶어 ‘천지행’을 확인해 보니 이 문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누군가 이미 피드백을 남겼으니 곧 해결될 것이라 판단하고 저는 일단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한 번 설치가 완료돼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방송 당일 링크를 클릭했더니 속도는 좋았지만 다시 ‘Firefox 설치 중…’ 상태에서 멈춰 시청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조급해졌으며 20분 정도 시도했지만 화면은 여전히 검게만 나타났습니다. 마침 가족 수련생이 말투가 거칠게 “그만 좀 해”라고 하자 순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안으로 찾기’를 실천했습니다. 왜 내 마음에 이런 마성이 생겼는가? 발견한 것은 이전 션윈 공연 때 드러났지만 완전히 없애지 못한 마음, 즉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반드시 봐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었습니다. 파룬궁수련자는 ‘무사무아(無私無我)’해야 합니다. 저는 그 ‘사심’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꼭 봐야 한다고 했습니까? 법에서 그런 말이 있나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나요? 없습니다. 만약 사부님이 제가 봐야 할, 얼마나 봐야 할지를 이미 정해두셨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부님이 정하지 않으셨다면 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바로잡고 프로그램을 다시 열자 설치가 바로 완료돼 초고화질 영상도 순조롭게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첫 시청 때는 너무 급하게 본 탓에 나중에 무료 방송이라 또 보고 싶어 클릭했지만 이번에는 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안으로 찾으며 사심을 제거했습니다. 션윈 프로그램의 무료 공개의 본질은 사람들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발정념을 하며 ‘세상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시청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생명과 요인을 제거하라’고 했고 곧바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션윈쭤핀’의 설치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천지행’에서는 브라우저를 바꾸면 된다고 안내돼 있었습니다. 기술을 모르는 수련생이나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일을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도 인터넷 검열을 뚫는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파룬궁수련생이 인터넷 검열을 뚫도록 돕는 능력 있는 생명입니다. 저는 정념을 발하여 ‘파이어폭스’를 움직이게 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했습니다. 곧 설치가 완료됐고 정상 시청 상태가 복원됐습니다.

순조롭게 션윈쭤핀을 시청하는 습관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느 날 마음이 뒤숭숭하고 번잡한 상태에서 또 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손을 들어 정념을 발하자 설치가 바로 완료됐습니다. 그러나 영상을 열자 계속 로딩만 하고 재생되지 않았습니다. ‘깐징월드(GJW, 깨끗한 세상)’ 사이트로 시도해보니 속도는 충분히 빠른데 ‘션윈쭤핀’만 계속 로딩됐습니다. 두 번 연속 이러자 저는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경계심이 생겼습니다. 내면을 살펴보니 문제의 핵심은 ‘정념으로 인터넷을 뚫는다, 션윈을 볼 때도 정념이 필요하다. 왜 바로 보지 못하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제가 처음 정념으로 션윈을 볼 때 이미 나타났지만 당시 붙잡지 못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 생각 뒤에 있는 인간적인 마음과 좋지 않은 요소를 제거하고 내면을 계속 살펴보니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겠는가? 단지 나만 즐겁게 보고자 하는 마음,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는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이것은 결코 파룬궁수련생이 갖추어야 할 경지와 맞지 않습니다. 그 순간 이전 션윈쭤핀 초창기 시절 영상이 계속 로딩되지 않았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다시 인간적인 기술 사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악이 션윈쭤핀을 통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작용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이 결국 대법 수련생의 정념과 바르게 수련하는 상태를 시험하는 일임을 이해했습니다. 수련생 각자가 정념을 유지하고 정체적인 힘을 모을 때 악이 션윈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도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를 통해 제도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인터넷 검열을 뚫는 과정은 곧 ‘사람에서 벗어나 신으로 향하는 과정’입니다. 매번의 체험은 저에게 상기시킵니다. 문제를 만나면 사람의 사고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수련자로서 정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요. 이를 통해 사부님의 법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 깊어졌고 제 자신이 아직 사부님 요구에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이상은 제가 최근 몇 년간 인터넷 검열을 뚫으며 얻은 체험과 깨달음입니다. 층차가 제한적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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