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집착을 버리고 길을 바르게 걷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줄곧 제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들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해하며, 그것이 높은 경지의 표현이자 관계가 화목한 증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이런 마음가짐을 들여다보니 그 뒤에는 명리심이 숨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모두 뛰어나거나 권세 있는 가정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친구의 부모는 고위 간부였고, 또 어떤 친구의 부모는 대학의 지도자였으며, 어떤 친구는 성적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겉으로는 서로의 장점이 마음에 들어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명리심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집안 배경과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과 절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나 역시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야. 게다가 그들과 어울리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볼 거야. 이렇게 하면 내 명성이 올라가겠지!’

이 점을 깨달았을 때 저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줄곧 제 명리심이 성적이나 순위를 다투는 데서만 나타난다고 여겼는데, 사실 이 집착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명리심에서 파생된 ‘추구하는 마음’도 발견했습니다. 속인의 ‘자원’이라는 관념에 영향을 받아, 저는 동창들을 좋은 자원으로 여기며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얼마나 추한 마음입니까! 속인 사회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저는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지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이런 생각을 꼭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수련 체험을 통해 저는 수련에는 결코 작은 일이 없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으면 세속에 쉽게 오염되어 그릇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어머니(수련생)와 어떤 동창이 최상위 대학에 합격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놀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 그 동창이 원래 너보다 성적이 못했잖아? 어떻게 너보다 더 잘했지?” 제 마음은 곧바로 뒤흔들렸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입시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점수가 발표된 후 한동안 긴 수련 과정을 거치며 명리심, 쟁투심, 질투심을 이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험에 닥치자 저는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전에 저는 진정으로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소위 ‘담담히 내려놓는다’라고 한 것은 속인의 무력감으로 자신을 위로한 것일 뿐, 전적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속인 마음에 끌려 과거의 학습 과정을 거듭 떠올리며 실패의 교훈을 찾으려 했습니다. 사실 그 시련은 이미 끝났는데도 저는 그 안에 매여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집착심이 죽지 않으려는 교란이었고, 저를 승화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고통과 자책 속에 빠져 정념을 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입시를 앞두고 저는 속인의 말 중에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덜 맞은 그 점수는 모두 당신이 만나야 할 인연을 위해서다.” 그러나 당시 저는 전혀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집착하며 ‘왜 점수를 더 받으려 하지 않지? 이건 자신을 위로하려는 변명일 뿐이야!’라고 여겼습니다. 지금 승화된 시각에서 보니, 그것은 분명한 쟁투심과 명리심, 무신론의 표현이었습니다. 곧 하늘의 뜻을 부정하는 무의식적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특히 남성 청년, 그는 여전히 속인사회 중에서 한번 분투해 보려 하고, 또한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전법륜)를 그때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당연히 분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뭐가 잘못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저는 여전히 수련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속인의 욕망을 수련보다 앞세웠던 것입니다. 사실 속인의 분투는 결국 허망한 것이고, 수련을 통해서만 생명의 도약과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수련자로서 자신의 직책을 성실히 다해야 하지만, 그 기점이 위사위아(爲私爲我), 명리 추구여서는 안 되며, 담담하고 추구함이 없어야 하고 수련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또래 청년 제자들에게 속인의 뜬구름에 시야를 가리지 말고, 파룬따파를 얻은 성스러운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더욱 착실하게 수련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안배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집착, 그리고 매우 뿌리 깊었던 집착들을 점차 버릴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의 향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수련생들이 말한 것처럼, 사부님의 모든 안배는 제자들의 제고를 위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집착을 버리고 인간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저는 자신의 길은 사부님께서 이미 세세히 안배해주신 것이며, 결코 제멋대로 상상하거나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인연으로 인한 것이고, 인연이 다하면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야 하며, 사부님의 안배를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부님의 모든 안배를 받아들이며, 온갖 집착을 버리고 집착이 없고 청정한 수련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수련 교류문장을 쓰는 것 자체가 훌륭한 수련 방식이라는 것도 체득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집착의 껍질이 한 겹씩 벗겨지며 본성으로 돌아감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글을 쓰는 중에 문득 깨달아 제가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집착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글이 발표된 후 원고를 정정하면서, 제가 세부적인 부분을 중시하지 않는 집착도 알게 되었습니다.

현 단계에서 체득한 작은 인식일 뿐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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