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유랑 생활 중 법을 외우고 마음을 닦은 과정

글/ 지린 대법제자

[명혜망] 그것은 2013년, 제가 대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꾼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하늘에서 끊임없이 큰 불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저는 계속 앞으로 달렸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와 불덩이는 저를 맞히지 못했고, 저는 늘 무사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너는 사부를 따라 함께 법으로 인간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한 농가에 들어갔는데, 그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함께 법을 배웁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는 대법 서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크게 후회하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법 시기에 수련하는데, 왜 대법을 외우지 않았을까?’ 바로 그때 꿈에서 깼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법을 외우도록 일깨워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그런 바람은 있었지만, 일이 바빠서 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다만 ‘논어’만 외웠습니다. 그 후 『전법륜(轉法輪)』 제1강 앞부분 몇 쪽을 띄엄띄엄 외우다가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 중국 신년 무렵, 저의 안일한 마음과 정 등의 요인으로 인해 수련이 해이해져 구세력에게 틈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집을 빌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직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만 난을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법공부에 정진하고, 많이 배우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3월부터 9월까지 저는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웠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정념은 점점 더 강해졌고, 법에 대한 이해도 점차 깊어졌으며, 많은 집착심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법을 외우는 중에 저는 종종 눈물이 솟구쳤고, 사부님을 각별히 그리워하며 사존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이 마무리되는 이 마지막이자 가장 귀중한 시간 속에서 제자는 반드시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해내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역사적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중생의 억만년의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 몇 년 동안 난 속에 있는 일부 수련생들은 정법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랐고, 정진하지 못한 일부 수련생들은 부족함을 만회할 시간이 더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수련에 정진한 수련생들은 시간에 집착하지 않게 됐습니다. 정법이 언제 끝나든, 사부님께서 엄청난 감당을 통해 대법제자와 중생을 위해 이어주신 이 시간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아래에 제가 법을 외우며 수련한 체험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법을 외우며 정념을 강화하다

저는 2024년 3월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3개월 안에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우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제 계획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발견했고, 또한 허영심, 독단, 경쟁심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은 제가 점차 법 속에 융합되어 가며 온갖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은 제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 매 한 구절을 더욱 명확하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제가 공산당 당문화 사유를 제거하고 점차 사부님 설법의 논리를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법을 외우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신체를 정화해 주시고 관념을 바꾸어 주시며, 끊임없이 사상 업력을 제거해 주시는 과정이었고, 더 높은 층차의 법리가 점차 드러나고, 법 속에서 정념이 형성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법을 외우면서 대법은 끝이 없으며, 오직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첫 번째 단계, 마음을 향해 수련하다

저는 3월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계획에 따라 약 10일 만에 『전법륜』 제1강을 다 외웠습니다. 제가 법을 외우는 방식은 단락에 따라 외우는 것으로, 한 단락을 정확히 암송한 뒤에 다음 단락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1강을 다 외운 후, 단락과 단락 사이, 작은 부분과 부분 사이가 아직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반복해서 외워 결국 한 달을 꼬박 써서 제1강을 다 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며 집착을 닦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원망심, 질투심, 쟁투심, 안일심, 상사에 대한 정, 과시심, 환희심, 그리고 자아에 대한 집착, 고집, 오만, 잘난 체하는 마음 등 많은 사람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수련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매번 집에 갈 때마다 며칠만 머물다가 방학이 끝나면 떠나곤 했습니다. 물질적으로 조금 살펴드린 것 외에는 지난 몇 년간 깊은 교류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생활 속에서 자연히 마찰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아버지가 각지 설법을 보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하여 늘 제 생각대로 요구하려 했는데, 그 결과 도리어 역효과가 났습니다. 몇 번은 아버지가 화를 내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매일 책 본다고 뭐가 달라지냐? 실천하는 게 수련이다. 나한테 왜 참견하냐? 누구도 날 간섭할 수 없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반성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아버지의 입을 빌려 저에게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라고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련 길이 있으며,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돌보고 계십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안으로 찾고, 제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차례 아버지가 작은 일로 화를 내어 저와 어머니에게 크게 소리쳤지만, 우리는 모두 참고 심성을 지켜냈습니다.

두 번째 단계,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

부모님은 1997년에 대법을 얻으신 오래된 대법제자이십니다. 그때 저는 아직 어렸는데, 부모님께서 법을 배우신 후 심신이 변화하시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모님을 따라 사부님 설법 녹음을 여러 번 들었고, 어려서부터 생각해 오던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법을 깊이 배우지는 못했고, 학업이 끝나고 한가해진 뒤에 수련해야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부모님은 점차 대법에서 멀어지셨고, 저 역시 대법을 접할 기회가 더욱 적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법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에 부모님께서는 다행히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셨습니다. 2013년, 한 수련생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법을 배우거라!”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도 대법이 좋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사업에서 한번 분투해 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영향을 주지 않아. 수련하면서 일도 잘할 수 있단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짧은 대화였지만 사실은 크나큰 인연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의 중대한 장애들을 하나하나 없애 주시고, 제가 대법 속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대법의 광대한 법광 속에 젖어 들게 됐습니다.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수련의 과정에서 정진할 때도 있었고, 해이할 때도 있었습니다. 관을 넘을 때는 뼈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있었고, 중생이 구원될 때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 드리는 끝없는 감사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2023년 말, 저는 안일한 마음과 직장에서의 많은 명리(名利)에 대한 집착을 제때 제거하지 못했고, 그 틈을 구세력이 파고들었습니다. 어느 날, 십여 명의 악질 경찰들이 저의 거처에 난입하여 사부님 법상과 수십 권의 대법 서적, 컴퓨터, 태블릿, 휴대폰 등을 압수하고, 저를 강제로 끌고 가 심문했습니다.

저는 이런 박해를 처음 겪어서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때 확고한 일념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반드시 끝까지 대법을 굳건히 수련하겠다. 구세력의 안배는 전부 원치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오직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걷겠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서, 저는 그날로 마귀의 소굴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휴가 때 고향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많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언제든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쳐 부모님과 가족들을 연루시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나 자신을 잘 수련하여, 돌아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래서 저는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을 학습하고 외우는 것 외에도, 저는 매일 각지 설법을 한 권씩 학습했습니다. 저는 오직 법 속에서 자신을 바르게 해야만 철저히 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휴가가 끝난 뒤, 저는 근무하는 도시로 돌아가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수련생을 만나 현재 제가 겪은 박해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그는 엄숙하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돌아가면 안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때 약간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음속에 정념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일을 보러 나가서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제가 과연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돌아가야 합니까? 돌아가지 않으면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합니까?”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가게 앞을 지나는데 문 앞의 감시카메라에서 갑자기 전자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신은 이미 감시 구역 안에 있습니다. 떠나지 마십시오!”

저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감시카메라가 어떻게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바로 내가 막 지나가는 그 순간에….’

이것은 사부님께서 ‘떠나지 말라, 돌아가면 위험하다’고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말아야겠다.’

저는 순조롭게 새로운 거처를 찾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장을 보러 나갔는데, 슈퍼마켓에 드문드문 놓인 오래된 물건들을 보고 과거 자유롭고 여유 있던 생활이 떠올라 마음이 우울해졌습니다. 슈퍼마켓을 나서서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속에서, ‘앞으로 나는 유랑하며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이건 진정한 내가 아니다. 이 일념을 붙잡아 제거해야 한다.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그 시기 저는 종종 후회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 구세력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면, 나의 수련길은 이렇게 좁아지지 않았을 것이며, 나는 더 큰 책임과 사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했습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손안에 있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경찰의 괴롭힘을 겪고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이것이 바로 정사의 대전이다. 사(邪)는 결코 정(正)을 이길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정념을 굳게 세우고, 법을 잘 배우고, 난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그때 저는 『전법륜』 제2강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생활상의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해서 마음도 억눌렸고, 매일 꾸준히 법을 외울 수는 없었지만, 외우는 상태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의 교류 글을 보면서 계속 정념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마음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저는 몹시 긴장했습니다. 때때로 한밤중에 거리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깨어나고,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야 비로소 마음이 차츰 안정됐습니다. 저는 이 두려움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매우 답답하여 정말로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사부님, 이 길을 제가 어떻게 걸어가야 합니까?’ 저는 반드시 법을 잘 배워야 하고, 정념은 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을 외우는 가운데 저는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졌다면 언제까지나 엎드려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전 세계 대법제자들이 사존께 축복을 올렸을 때, 명혜망에 ‘옥중에서도 법이 있으니 사부님 안심하소서’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저는 크게 고무됐고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감옥 속에 있는 수련생들조차 그렇게 굳건하게 정념을 지킬 수 있는데, 제가 잘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결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전법륜』 제2강과 제3강을 외울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저는 혼자서 셋방에 틀어박혀 매일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외우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속인 친척과 친구들이 제 사정을 알게 된 후 저를 매우 걱정해 주었기에, 저는 그 기회를 이용해 사악한 당의 박해의 사악함을 폭로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제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차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또한 고독심과 외로움의 마음을 제거했습니다. 때로는 일주일, 혹은 반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고, 휴대폰도 없이 말 상대도 없이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외롭게 느꼈지만, 곧바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정말로 귀중한 시간이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이런 길을 안배해 주신 것은, 제자가 정진하지 않아 너무나 많이 뒤처졌기 때문이니,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여 뒤따라 잡도록 하기 위함이다.’ 매일 법광 속에 젖어 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던가!

이 시기 저는 심성에서의 파동을 겪었고, 예전 일과 생활의 여러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전법륜』 제2강과 제3강은 띄엄띄엄 외워서, 앞뒤로 약 4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3강을 다 외운 후, 저에게는 큰 돌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사업심과 명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고, 좋은 생활에 대한 추구와 동경도 내려놓았으며, 안일한 마음도 내려놓았습니다. 인간은 법을 위해 온 것이며, 인간세상은 대법제자들의 수련터에 불과합니다. 수련의 매 걸음마다 사부님의 안배가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법의 강대한 힘 속에서 이 난을 돌파하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가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 두려움을 제거하다

가장 어려운 날들을 지나자 모든 것이 환해지고, 저 역시 점차 안전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됐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기에 집을 옮기게 되어, 속인인 친척이 이사를 도와주었고, 저는 매일 그 집에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막 도착했을 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빨리 가요, 내가 경찰에게 미행당하고 있어요.” 저는 그녀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틈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아주 평온했고, 모든 것은 허상이며,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법을 배우고 외우는 것을 느슨히 하다 보니, 불평, 질투, 안일함, 조급한 마음, 이기심들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환경이 조금만 느슨해졌다고 해서 수련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항상 법 속에 용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슈퍼마켓에서 일정 기간 먹을 음식을 사 두고, 방에 틀어박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우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8월의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기 힘든데, 세를 얻은 집의 에어컨은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방에 앉아 있으면 땀이 물방울처럼 흘러내렸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수련을 하고, 아침 식사 후에는 법을 한 강 배웠으며, 시간이 있으면 각지의 설법을 더 배우거나 법을 한 부분 외우기도 했습니다. 점심에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공중명혜(空中明慧)’, ‘9평 공산당’ 시리즈 사설, ‘사부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등의 오디오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법을 외우는 동안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 글자 한 글자 진지하게 외워 머릿속에 새겨 넣었습니다. 네 차례 정시에는 정념을 발하여,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공안·검찰·법원 체계와 파출소의 악질 경찰들을 겨냥하여 다른 공간의 사악한 것들을 제거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각지의 설법을 배우는 데 전념했고, 잠들기 전에는 잠시 명혜망과 동태망을 보았습니다.

저는 계획에 따라 한 달 동안 『전법륜』 제4강, 제5강, 제6강을 다 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려움이 점점 약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귀가 쫑긋해져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논어’를 외우고 정념을 발하여 사악한 것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늘 좌우를 살피며 누가 미행하는지 관찰하곤 했습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두려움의 요소도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법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사부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점점 더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제 사부님은 이 거대한 천체의 주재자이시며, 제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의 대법입니다. 누가 우주의 근본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는 대법제자를 누가 박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길만 따라가면 그것이 가장 바르고 가장 좋은 길입니다!

넷째 단계, 정념을 더욱 강화하다

어느 날, 저는 명혜망에서 중국법회 원고모집 공지를 보았습니다. ‘만약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 단계의 완전한 답안지를 사부님께 올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법륜』 제7강과 제8강을 외우는 것은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마음에 새겨졌고, 기본적으로 몇 번만 정독하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용한 방법은 주어·술어·목적어의 문법 구조에 따라 외우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문장의 구조와 단어 배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강대한 가호(加持)를 느낄 수 있었고, 많은 법리들이 점차 드러나며 정념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매일 『전법륜』 한 강을 정독할 때도 이전처럼 마음이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다른 데로 흐르면 즉시 깨달아 그 뿌리를 찾아내고 곧바로 바르게 했습니다. 각지 설법을 배우면서 대법의 방대하고 심오한 법리에 깊이 감동됐고, 제 몸에 짊어진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큰지도 더욱 알게 됐습니다. 제 몸과 마음은 하루하루 더 가볍고 투명해졌습니다.

저는 법을 외우는 것은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고, 속도만 중시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법을 외우고 법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단락을 다 외우고 나면 여러 차례 정독하고 반복해서 외우며 사부님의 설법을 이해했고, 한 글자도 틀림없이 정확히 외워냈습니다.

저는 수련이란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저항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저도 모르게 환희심, 조급한 마음, 과시심, 경쟁심, 비교심 등의 사람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제9강을 외우는 것도 순조로울 줄 알았는데, 매일 8쪽을 완수하는 계획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 조급해졌고, 때로는 조급해하다가 스스로 웃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조급한 마음을 반드시 버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정해진 시간 안에 외우기 계획을 마쳐야 하지만, 반드시 질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글자 한 글자씩 외우며, 더 이상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매 단락과 매 글자가 정확히 마음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법이므로, 한 글자도 틀려서는 안 됩니다. 한 단락을 외운 후에는 반복하여 복습하며, 성급히 이루려 하지 않고 정확하고 유창하게, 막힘없이 이어질 때까지 했습니다.

이때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명혜망의 특집 ‘꾸준히 법을 외우다’ 프로그램에서 수련생들이 자신들의 법 외운 체험을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저는 법을 잘 배우는 것은 법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법을 외우는 것을 고수했습니다.

법을 외운 기간은 반년이 넘었고, 마침내 첫 번째로 『전법륜』을 다 외웠습니다. 이 과정은 제가 난을 벗어나 끊임없이 정념을 강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법을 외우는 가운데, 제 층차에서 점차 사부님의 설법을 이해하게 됐고, 정법시기의 많은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제 몸과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울했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투명해졌으며, 다른 공간에서 누르던 업력도 모두 제거됐습니다. 재작년에 저는 한동안 머리가 갈라질 듯이 아팠는데, 저는 그것이 좋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업을 소멸해 주시는 것이거나, 혹은 공을 키우는 상태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현관설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머리가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었지만, 결국 사부님의 가호 속에서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법을 외우는 동안, 제 뇌의 왼쪽 부분에서 자주 ‘끼익끼익’ 소리가 났는데, 법을 외울 때는 소리가 나고, 외우길 멈추면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법 외우기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고, 마치 제 뇌가 가볍게 떠 있는 듯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은혜는 제자가 영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며, 사부님의 큰 은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분발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생생세세 보살펴 주시고 구해주신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비록 속세에 몸담고 있으나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대법은 우리로 하여금 층층의 미혹을 벗기고, 층층의 사람마음을 제거하여 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세인이든, 경찰이든 모두 구원받아야 할 생명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대법제자가 오직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수련을 누락 없이 하여야만 금강불괴가 되어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우리가 어찌 생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2. 법을 외우는 가운데 명리를 내려놓다

제가 이 난을 겪는 동안 가장 끊기 어려웠던 것은 이른바 ‘꿈’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수년간 분투해 온 도시를 떠나고, 자유롭고 소탈한 생활과 이별하려니 마음에 아직 미련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미련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 대도시의 화려함인가, 맛있는 음식의 유혹인가, 음악회와 연극을 볼 때의 낭만인가, 아니면 여행할 때 세상을 접하는 신기함인가? 직장에서의 성취감인가, 아니면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부심인가?’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이 명리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미식은 단순히 입과 배를 위한 욕망일 뿐이고, 사업은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며, 향락은 허무한 느낌에 불과하며, 현대 예술은 도덕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삶에는 더 이상 집착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법을 외운 뒤, 저는 대법제자는 이 생에 오직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기 위해 온 것이며,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게 됐습니다.

제가 유랑하던 이 시기에 제 앞에는 생존의 문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생활 수입이 없으면 사람은 불안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저에게는 조금의 저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의 프로젝트 확장 과정에서, 원래 회사가 저에게 갚아야 할 빚이 무려 백여만 위안에 달했습니다. 사정을 아는 일반인 친척은 꼭 지도자에게 가서 빚을 받아내라고, 설령 일부라도 먼저 받아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원래 회사의 지도자에게 채권을 요구했지만 마침 회사의 경제 상황이 나빠져 상환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불평했습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 그렇게 많이 기여했는데, 내가 가장 어려운 때에 지도자가 빚도 갚지 못하다니. 설령 몇만 위안이라도 먼저 보내주면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텐데, 그것조차 해주지 못하는가?’

저는 지도자가 제1주주로서, 회사가 상환하지 못하면 그 모든 압력이 그의 어깨 위에 놓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그와 개인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회사에서 여러 차례 압력을 가하며 제게 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는 그 압력을 버텨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를 위한 마음 때문인지 모르지만, 저는 불평은 있었으나 차마 빚을 독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속인인 친척은 저에게 큰 압력을 주었습니다. “너는 그를 생각해주는데, 그는 너를 생각해주니? 말라죽은 낙타가 말보다 크지. 지금 이때에 그가 돈을 갚지 않으면 나중에도 네게 돈을 갚을 거라 기대하지 마라.”

제 마음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이 돈을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받는 것도 잘못은 아니지, 어쨌든 회사가 내게 진 빚이니까. 그러나 계속 요구하면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은데 지도자에게 압력을 주게 되니 차마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법의 기준에 따르면, 받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내려놓음이다.’ 저는 속인인 친척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내 손에 아직 돈이 좀 있어.” 그러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쓰면 안 돼. 지금 경제 형세가 이렇게 나쁘니, 네 자신을 위해 대비해야 해.” 저는 지도자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우선 조금 빌려 제게 보내 당장의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도자가 돈을 제게 보내준 뒤 제가 각지 설법을 학습할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돈을 받으려 했던 것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집착의 뿌리를 깊이 파보니, 그 안에는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제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가 과연 최선을 다해 제 문제를 해결해 주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몇 년 동안 저는 직장에서 늘 명리정에 얽매여 좀처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지도자가 제 일과 생활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된 더 복잡한 감정이 있었고, 저는 늘 스스로를 억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질투심, 쟁투심, 의존심, 불평심 등 여러 가지 사람마음이 생겨났고, 지도자에게는 온갖 요구를 했으며, 동료들에게는 선하지도 너그럽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법을 증명하고 진상을 알리는 데에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명예에는 이익이 있고, 이익에는 정이 있었으니, 이 수년간 명리정이 뒤엉켜 저를 크게 괴롭게 했습니다. 이런 난을 겪고 나서야, 저는 반드시 명리정을 수련하여 없애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법을 외우는 것은 저의 정념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회사가 저에게 진 빚은 점점 늘어났는데, 저는 그것이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라고 보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노력하여 얻은 대가이므로 당연히 갚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을 깊이 외우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빚이 겉으로 보기에 제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진정 이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사부님께서 계시니, 제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애써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백만 위안의 빚을 내려놓으면 어떻습니까? 수련인은 세상의 얻고 잃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법입니다.

저는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생활비는 당분간 생활을 지탱할 만큼은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어려우시다면, 당장은 갚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았고, 상황도 나아졌습니다. 지도자는 최근 회사에 프로젝트 수입이 있어, 시간이 좀 지나면 돈을 제게 송금해 줄 수 있으니 은행카드를 확인하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저는 여러 번 은행카드를 확인했지만, 그 돈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매우 평온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 지도자가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송금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불평이 솟아오르기도 했지만, 저는 곧바로 그것을 붙잡아 없앴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부님이 마련해주신 길을 걸어야 하며,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지금 저의 생활은 청심과욕(淸心寡慾)으로 가득 차 오히려 가볍고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저는 저와 지도자와의 관계를 바로잡았고, 이제는 예전처럼 의존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깊이 진상을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구원과 피구원의 관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압력 앞에서 대법제자를 보호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 구원받은 생명을 위해 마음속 깊이 기뻐했습니다!

3. 법을 외우는 가운데 자비심이 생겨나다

십여 년 동안 수련하면서, 저는 늘 스스로 자비심을 수련하지 못해 안타까워했습니다. 모든 일을 타인을 위해 생각하지 못했고, 모든 중생을 구원받아야 할 생명으로 여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경지의 한계 때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법을 외우면서, 가끔 창가에 서서 아래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법을 위해 온 사람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부님의 가족이며, 대법의 구원을 기다리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장의 전단을 뿌려 모든 사람이 진상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가 막 이사했을 때, 어머니는 자주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때로는 찐빵을, 때로는 만두를, 또 때로는 한 상 가득한 식사를 가져오셨습니다. 저는 매번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출입을 줄이세요. 지금은 아직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매번 외출 전에 정념을 발하여 사악을 해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법에서 어머니와 이야기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정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흔쾌히 동의하시며, 다음에는 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작은 봉지를 들고 또 오셨습니다. 매번 어머니가 오실 때 가져오신 음식을 바라보면 저는 묘하게 화가 나고, 법을 따르지 않는다며 꾸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시길, 다음에는 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들이 내 안전보다 더 중요할까?’ 자연스럽게 원망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내가 화를 내는 마음은 무엇일까? 어머니께서 올 때마다 마치 제가 처한 어려움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생활용품을 가져오시면 저는 그것이 너무 소박하다고 여겼고,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보러 오지 못하게 한 것은, 겉으로는 ‘정을 내려놓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제 안전을 걱정하는 사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져온 음식을 먹을 때는 마음이 따뜻했지만, 오시지 않으실 때는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정이었습니다. 저는 수련 중 난이 발생하는지는 어머니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수련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모든 일을 법에 따라 한다면 사악은 감히 경찰을 보내지 못합니다. 만약 이 공간이 바르다면 이 환경은 사악에게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발견한 이후 어머니께서는 자주 음식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다시 어머니를 떠올릴 때, 한 대법제자의 기준으로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어머니이십니다. 이런 일을 겪는 것도 어머니에게는 하나의 단련이자 시련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어머니로서 가진 마음을 이해하고 잘 대하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해야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련 중에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것은 곧 하나의 자비로운 장(場)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整體)이므로 함께 이 시련을 잘 넘어가야 합니다.

한동안 아버지께 병업 가상이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찾아뵈었을 때 아버지 상태는 매우 좋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얼마 전 뇌경색 가상이 나타나, 가족이 병원에 모시고 가서 MRI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수련이 부족함을 깨닫고 앞으로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사부님의 가호를 구해야 한다고 다짐하셨습니다. 의사는 이 수술 후에는 등 뒤가 매우 아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수술 후, 한밤중에 등 전체가 따뜻하고 매우 편안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술은 다리에 작은 절개가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병실에서 가부좌하고 정공(靜功)을 수련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후 이미 몸은 거의 회복되셨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마음이 매우 조급해졌습니다. 수련인이 아프다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업을 소멸시켜 주시거나, 혹은 구세력의 박해 때문인데 어떻게 병원에 갈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법으로 아버지의 행동을 요구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법을 얻으셨는데 어느 경지로 수련되어 어떤 선택을 하든 본인이 있는 층차에서 깨달은 바에 따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부님의 대법제자이시므로 법을 배우고 마음을 수련하는 한 사부님께서 보살펴 주십니다. 이번 난을 위해 사부님께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제자를 위해 감내하셨는지 상상이 안 됩니다! 사부님은 한 명의 진수제자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아버지와 인내심을 가지고 교류했습니다. 병원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 없으며, 이러한 업력은 수련을 통해서만 완전히 소멸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크게 공감하시며 약을 복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매일 ‘전법륜’만 배우셨고, 저와 어머니가 여러 차례 설득해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어머니가 인내심을 가지고 격려하자 아버지는 각지 설법을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번 병업 가상은 마치 강한 망치와 같아 아버지를 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가호 속에서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정념을 사용해 층층 장애를 깨뜨리셨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제가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불만과 원망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간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안타깝고 불쌍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대법으로 돌아오신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바라보면서 저는 그분들이 인생에서 겪으신 고난과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고,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선함 덕분에 대법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 감탄했습니다. 또한 제가 이러한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대법을 접할 수 있는 인연을 얻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이 가정에서 겪는 마찰도 모두 수련의 과정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셨기에 저는 과도하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수련인으로서, 그분들의 모든 과정 또한 수련의 일부입니다. 저와 부모님이 함께 수련하는 것은 하나의 정체로서, 제가 스스로를 잘 수련해야 정체가 함께 향상될 수 있습니다.

법을 배우면 정념을 강화할 수 있고,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대법제자의 지혜는 법에서 나옵니다. 법을 배우고 외우는 과정에서, 저는 점점 안을 찾는 습관을 형성했고,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이 확고해졌습니다. 중국 본토 대법제자들은 여전히 사악한 박해를 받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유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제가 이 단계에서 깨달은 바로는, 사부님께서는 저희에게 이러한 길을 안배하지 않으셨습니다. 법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구세력의 박해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박해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마음 속 마(魔)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금 유랑할 때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많은 미지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수련생이 “법을 더 배우면 사부님께서 다음 단계를 알려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저는 매 단계마다 사부님의 인도가 있었음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비록 길이 험난하더라도, 법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밝은 대로를 걸을 수 있습니다. 제가 ‘전법륜’을 한 번 거의 다 외우려 할 때, 우연히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고, 순리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십여 년간의 인생의 이상도 실현했으니,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정말 많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의 길은 바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수행하는 길입니다.

저는 모든 대법제자는 하나의 우주를 수련하는 것이며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며, 세 가지 일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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