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플로리다 대법제자
[명혜망] 많은 경우, 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버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는 모습, 짜증스럽게 말하는 모습, 함께 법공부할 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정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법공부하고 법을 외우면서 점차 깨달았습니다.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관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보이는 이런 문제들은 아마도 제 자신에게도 줄곧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저를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이건 정말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서, 아버지의 이런 행동들이 제게도 모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볼 때는 즉시 자신도 그런지 살펴보고, 있다면 노력해서 고쳐야지, 남의 단점만 붙잡고 놓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인식한 후, 저는 의식적으로 안으로 찾는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런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렇지 않은가?’ 그의 말이 듣기 싫을 때면 생각했습니다. ‘내가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문제가 나타났을 때 당신은 완충적 여지가 있으며, 사고할 여지가 있다.”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도 삼킬 수 있었고, 마음도 좀 더 평온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정진요지》에서 말씀하신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修內而安外)”는 이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련 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즉 자신에게도 이런 문제들이 있음을 발견한 후,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남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 저 자신은 잘했을까요? 이 과정에서 저는 정말로 발견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잘하고 자신에게 조금 더 높게 요구하면, 아버지의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이해지면 그도 다시 제 심성을 높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저녁 대그룹 법공부 때 비교적 뚜렷했습니다. 제가 법공부에 늘 지각하면 아버지도 꾸물거렸고, 법공부 중간에 제가 물을 마시거나 잔동작이 많으면 아버지도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가끔은 휴대폰을 보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상태가 정말로 주변 가족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래서 정말로 노력해서 안으로 찾고 진정으로 수련해야만 그들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위의 체험과 나눔은 모두 법을 외우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암기를 매우 싫어해서 대학입시 때도 문과는 외울 게 너무 많아서 이과를 선택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머니 수련생의 격려와 일부 수련생들이 나눈 법 암기 체험을 읽고, 저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법을 외우기 시작한 후, 저는 자신의 몇 가지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법공부할 때 이전보다 집중이 잘 되고, 일이 생기면 더 쉽게 안으로 찾게 되었으며, 연공도 부지런해졌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법을 외우기 전에는 잘 못했던 것들입니다. 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발견한 것은, 《전법륜》을 그렇게 많이 읽었지만 읽고 나면 잊어버려서 방금 읽은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우는 과정에서 기억하려면 마음에 새기고 이해하며 반복해서 읽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외우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은, 저는 법 속에서 승화하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표면에서 미시로 변화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변화는 마치 가랑비가 토양에 스며드는 것처럼 소리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빗방울은 비록 작지만 만물을 윤택하게 하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연공하려고 준비했는데 아버지의 시간과 제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추면 저는 먼저 가부좌하고 나중에 동공을 연마해야 했는데, 제 습관은 먼저 동공을 연마하고 나중에 가부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형성된 규율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저와 함께 연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 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먼저 가부좌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 가부좌에서 한 시간을 돌파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계속 45분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이 일을 돌이켜보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위타(爲他, 남을 위하는)’의 생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아 보이는 일 하나에서도 제 사심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순간 올바른 결정을 내렸고 기점이 타인을 위한 것이었기에, 사부님께서 가지(加持)해주셔서 가부좌 한 시간의 관문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1분을 더 참는 것도 속이 타서 초침을 뚫어지게 보며 억지로 다리를 내리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번에는 기점이 바뀌어서 법 속의 오묘함을 진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사부님께서 법을 많이 배우라고 하시고, 법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는 있었지만 저는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한 번 또 한 번 읽으면서도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매일 큰 그룹과 함께 법공부하며 매번 한 강(講)을 다 배우면 한숨 돌리며 ‘임무 완수’라고 생각했지만, 왜 자신이 제고된 것을 느끼지 못할까요? 이제야 저는 마음으로 법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진실하게 체득했습니다. 법을 많이 배워서 마음에 새기면, 법리가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왔고, 저는 마침내 수련생들이 말하던 법 속에서 제고되는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정말 너무 신기해서, 저는 마음속 깊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법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기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마치 사막을 계속 걷다가 갑자기 푸른 잔디밭을 밟은 느낌이랄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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