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자료를 제작하며 자신을 제고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 6월에 법을 얻었습니다. 자료점이 곳곳에서 꽃피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작은 꽃’ 하나를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때는 기술 수련생과 접촉할 수 없었기에, 먼저 컴퓨터를 배워 기초를 다진 후 기회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컴퓨터를 사 달라고 했더니, 아이가 “나이가 그렇게 많으신데 배울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네가 가르쳐주면 배울 수 있을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딸이 컴퓨터를 켜는 것부터 끄는 것까지 단계별로 적어주어 저는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처음엔 마우스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자꾸 잘못 클릭했지만, 한동안 연습하니 능숙하게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명혜망에는 어떻게 접속해야 할까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우리 지역에 한 수련생이 이사 와서 기술 수련생을 찾아 인터넷 시스템을 설치해 주었고, 드디어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명혜망 글을 읽었는데 심성 제고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 자료는 모두 외부 수련생이 공급했습니다. 최근 우리 지역 자료점의 한 수련생이 박해로 세상을 떠난 후, 수련생들이 “놀고 있는 프린터가 한 대 있는데, 새로 온 수련생이 우리도 작은 꽃을 피워볼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라고 했습니다. 듣자마자 ‘정말 좋다, 내 뜻과 딱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작은 꽃을 피우고 싶었지만 기술을 몰라 어려웠는데 이제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 프린터를 다룰 줄 몰랐기에 협조인 수련생이 “못하면 배우면 됩니다. 기술 수련생을 불러 가르쳐 달라고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기술 수련생이 인터넷 접속법, 파일 다운로드법, 자료 인쇄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엔 알았지만 기술 수련생이 떠난 후 또 잊어버려 매우 조급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는데, 집에 돌아오니 기술 수련생이 가르쳐 준 모든 기술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습니다. 곧 기술을 익혀 프린터를 조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료를 인쇄하자 마음이 매우 벅찼습니다. 마침 남편이 큰 수술을 받고 막 퇴원한 때라 밖에 나가 자료를 배포하거나 진상을 알릴 수 없어, 수련생 집에서만 자료를 인쇄했고 기계를 집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2001년부터 2003년 사이에 제가 두 번 체포되고 가택수색을 당해 가족이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겁이 많아 소위 ‘민감한 날’만 되면 극도로 긴장했습니다. 저도 두려움이 있어 박해로 세상을 떠난 수련생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올라왔습니다. ‘반드시 두려움을 돌파하고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자’고 다짐하며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말씀을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 그리고 《시드니 법회 설법》 말씀도 외웠습니다.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 그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내려놓기만 하면 당신의 난(難)은 작게 변하고, 당신은 크게 변해 한걸음에 넘길 수 있게 되는바, 그 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저는 당당하게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람을 구하는 기계를 집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먼저 남편에게 조금씩 알렸습니다. “당신은 내가 요 며칠 왜 늦게 들어왔는지 알아요? 컴퓨터로 다운로드하고 인쇄하는 걸 배우러 갔어요. 다들 내가 똑똑하고 빨리 배운대요.” 인쇄한 간행물도 집에 가져와 보여줬습니다. 남편이 두려워하는 걸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반인이지만 대법이 좋다는 건 알았습니다.

학생들이 방학하면 수련생 언니 집 두 손자가 돌아올 텐데, 아이들 쉬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그 집은 원룸이었습니다). 빨리 기계를 집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상의할 게 있어요”라고 했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언니네 손자들이 방학해서 돌아오는데, 프린터를 우리집으로 가져오고 싶어요. 그러면 자료 만들기도 편하고 당신 돌보기도 편하잖아요.” 남편이 말이 없기에 웃으며 “어때요? 된다 안 된다 의사표시 좀 해봐요”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뭐라 하겠어. 단 안전에 주의해”라고 했습니다. “지지해줘서 고마워요. 대법 일을 지지하면 복을 받을 거예요”라고 하니 쑥스러워했습니다. 수련 전 저는 매우 강한 성격으로 집에서 독단적이었고 일을 그와 상의한 적이 없었는데, 제가 변하니 그도 변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기계를 집으로 옮겼습니다. 이 일을 통해 심성도 제고되고 수련 환경도 느슨해졌습니다.

작은 꽃을 피우면서 여러 수련생과 접촉하게 되어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심성도 끊임없이 제고됐습니다. 작은 꽃은 우리 정체(整體) 제고도 가져왔습니다. 수련생들이 서로 협력해 간행물, 전단지, 붙이는 자료, 주보, 호신부(護身符) 등을 인쇄했고, 연말에는 탁상달력, 벽걸이달력, 연화(年畫) 등도 인쇄했습니다. 수련생이 필요로 하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협조인 수련생은 수련생 간 정보와 수요를 전달했고, 매주 정시에 메모리카드를 교환했습니다. 각 수련생은 카드 두 개씩 준비했고, 저는 명혜 라디오, 명혜 간행물, 수련교류, 사부님 은혜, 선악은 일념 사이, 수련 이야기 등 여러 방송 내용을 다운로드해 카드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하니 수련생들이 듣기에 훨씬 편리했습니다. 우리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팀 수련생들에게도 공급했습니다. 수련생이 필요로 하면 아무리 바빠도 했고, 필요한 만큼 인쇄했습니다. 우리는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법공부, 연공, 자료 인쇄 외에도 시간을 내어 밖으로 나가 사람을 구했습니다. 바쁘지만 충실했고, 함께 모여 프린터 사용법과 유지보수 지식도 자주 교류했습니다. 기술 수련생의 지원과 도움으로 자료 품질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인쇄한 탁상달력과 벽걸이달력을 중생들이 특히 좋아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평온하게 8년을 지나 오늘까지 한 걸음씩 걸어왔고, 정체적으로 협력하며 정체적으로 제고했습니다.

사존의 제도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의 지지에도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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