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사악에 협조하지 않고 반(反)박해 중에서 법을 실증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대법 수련의 길에서 27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수련 체험을 글로 써서 제자를 향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신을 믿지 않으셨고 공산당 당문화의 독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지나치게 아끼셨는데, 공부만 잘하면 됐고 집안일은 거의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늘 최고라고 여기는 것을 제게 강요하셨고,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셨으며,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남보다 앞서는지를 교육하셨습니다. 거기다 부모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 자주 싸우셨기에 저는 어려서부터 삶이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1992년, 저는 매우 이상한 증상을 앓게 됐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앉아도 누워도 편안하지 않았으며, 정신적으로 억압감과 긴장, 두려움을 느꼈고, 기억이 흐려졌습니다. 매순간 고통 속에서 시달렸고, 학업과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병원에서도 제 병을 진단하지 못했고, 여러 방법으로 치료해봤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의 존재를 믿었기에 매우 무력감을 느낄 때면 자주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향해 묵념으로 기도하며 하늘의 신께서 저를 지켜주시길 간청했습니다. 1992년 음력 9월 어느 날 밤, 꿈에서 노란 가사를 입으신 사부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 이후로 제 몸의 이상한 증상이 크게 호전됐고, 음식 맛을 느낄 수 있게 됐으며,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1998년 5월 어느 날 저녁, 법공부를 하던 중 갑자기 아랫배 부위에서 파룬(法輪)이 회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파룬을 넣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주 사부님께서 제게 관정(灌頂)해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제 수련 층차가 로켓처럼 위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고, 때로는 이삼일마다 새로운 층차에 이르는 것 같았습니다. 법공부를 몇 달 한 후, 생명과 우주에 대한 인식에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대법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료와 친구들이 연이어 제게 수련을 그만두라고 권했지만, 대법에 대한 저의 바른 믿음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2000년 7월, 저는 국무원 청원사무실에 편지를 써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진술했습니다. 그 편지를 가지고 혼자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떠났는데, 그것은 제 생애 처음으로 먼 길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베이징에서 이틀간 머물며 전국 각지에서 대법을 실증하러 온 수련생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이는 이미 두 번째, 어떤 이는 벌써 대여섯 번째 왔다고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법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대법을 수호하는 그 반석같이 견고한 마음은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7·20’ 전날, 우리가 단체로 국무원 청원사무실에 가려고 준비하던 중 순찰 경찰에게 납치돼 파출소로 끌려갔고, 이후 현지로 압송됐습니다. 저는 현지 구치소에서 37일간 불법 구금됐습니다. 직장 지도부는 저를 해고하려 했지만 직원대표대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이 젊은이는 평소에도 괜찮았고, 이번에 베이징에 가서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았으니 해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제게 2년간 유예 관찰이라는 불법 처분을 내리고 매달 180위안의 생활비만 지급했습니다.

2003년, 저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많은 진상자료를 가지고 한 진(鎭)에 진상을 알리러 갔습니다. 자료를 거의 다 배포했을 무렵,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저와 수련생은 구치소로 납치됐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명심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제가 심문에 응하지 않자 악질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플라스틱 신발로 제 얼굴을 마구 때리게 했습니다. 때리는 소리에 다른 재소자들까지 비명을 질렀습니다. 당시 기세가 무서워 매우 아팠지만 고통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을 사부님께서 감당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다음날 경찰은 또 일곱여덟 명의 죄수를 시켜 제게 사정없이 물을 끼얹게 했습니다. 두 죄수가 발로 제 가슴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쉴 새 없이 물을 끼얹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어 거의 질식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며 온 힘을 다해 빠져나와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을 하고 “법정건곤(法正乾坤), 사악전멸(邪惡全滅)”(정진요지2-발정념 두 가지 수인)이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거대한 외침이 구치소 상공을 뒤흔들자 그들은 순간 멍하니 굳어버렸고, 마치 사고가 멈춘 듯 즉시 박해를 중단했습니다.

저와 한 수련생이 경찰에 협조하지 않자 사흘 후 우리는 다른 구치소로 이송됐습니다. 그날 밤 감옥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제게 번갈아 박해를 가했습니다. 먼저 몇몇 간수와 우두머리가 저를 구타했습니다. 주먹으로 제 가슴과 머리를 때리고, 손으로 제 목을 조르며 만약 계속 협조하지 않으면 당장 목 졸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았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저는 아픈 것은 내가 아니라 업력과 후천적 관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감방의 20여 명이 돌아가며 저를 구타했는데, 한 사람당 열 번씩 때렸습니다. 마지막엔 저를 이불로 싸서 때리며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서너 시간 계속된 박해 끝에 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주위가 칠흑 같은 어둠이었으며, 주변 소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희미한 의식으로만 제가 대법제자임을 알 뿐이었습니다. 위층을 순찰하던 경찰이 급히 죄수들에게 저를 침대로 부축해 재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간신히 이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날 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절대 넘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튿날 몇몇 죄수가 저를 경찰 사무실로 끌고 갔습니다. 경찰이 무릎 꿇으라고 강요했지만, 저는 대법제자에게는 존엄이 있음을 알았기에 “저는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경찰을 똑바로 쳐다보자 그는 급히 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그 후 서너 명이 제게 뺨을 때리고 발로 마구 차며 제 주소, 이름, 진상자료 출처를 추궁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다!”라고 크게 외치며 ‘홍음’의 시를 큰 소리로 암송했고, 그들을 전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30여 분간 저를 괴롭혔지만 저는 아무것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중공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요원들이 와서 불법 심문을 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사악하게도 담뱃불로 제 얼굴을 지지고, 저를 맨발로 만든 뒤 구두 신은 발로 제 발을 세게 짓밟고 발등 위를 힘껏 비틀었습니다. 한 경찰이 제 뺨을 마구 때렸습니다. 저는 “파룬따파는 좋다!” “법정건곤, 사악전멸!”이라고 크게 외치며 대연화수인을 하고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시길 청하며 가장 빠른 속도로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청리했습니다. 30분쯤 지나자 그들의 사악한 기세가 제 정념에 눌려 점차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저는 계속 큰 소리로 사부님의 ‘홍음’을 암송했습니다. 그들이 한 시간 넘게 저를 괴롭혔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저를 감방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감방과 경찰 사무실을 지날 때, 저는 이것이 중생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방 사람들과 경찰이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크게 외쳤습니다.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한 경찰이 뒤에서 저를 발로 차 넘어뜨렸습니다. 저는 일어나 다시 “법정건곤, 사악전멸!”이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주먹으로 저를 다시 넘어뜨리고 발로 제 몸을 마구 찼습니다. 당시 매우 아팠지만, 저는 제가 대법제자이고 법을 실증하러 왔으며 제가 신(神)이니 괜찮다고 생각하자 곧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구세력의 안배를 깨뜨리기 위해 저는 단식과 단수로 박해에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식 7일째, 감옥경찰이 위장관을 삽입해 강제급식을 했습니다. 매번 복도로 끌려갈 때마다 저는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크게 외치고 ‘홍음’을 큰 소리로 암송했습니다. 몇 초의 시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제급식 과정에서 저는 줄곧 정념을 유지했고, 그들이 때로 화가 나서 마구 삽입했지만 매번 저를 다치지 않았습니다.

구치소에서 저는 매일 아침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시간이 나면 입장(立掌)해서 발정념을 하며, 대법이 좋다고 외치고, 죄수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환경이 점차 개척되자 죄수들은 더 이상 저를 박해하지 않았고 때로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마도 중생의 명백한 일면이 대법에 동화되고 구원받기를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죄수 우두머리가 제게 “당신들이 배우는 법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능합니다. 다만 제 목소리가 좀 클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문제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임을 알고 ‘논어(論語)’와 ‘홍음’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 다른 감방 사람들도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파룬따파는 좋다!”라고 크게 외치며 동시에 발정념을 했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그들 배후에서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파룬따파는 좋다’를 그들 생명의 미시적인 곳에 넣어 오랫동안 봉인된 정념을 일깨웠습니다. 제 목소리가 점점 커져 구치소 전체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억제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대략 한 시간가량, 수백 번을 외쳤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며칠간 단식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힘차게 외쳤습니다. 당직 경찰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전화로 소장, 부소장, 지도원 등 여섯 명의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제 앞까지 왔는데도 저는 여전히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은 채 온 마음을 다해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화를 내지 않고 제 이름을 부르며 “이미 이렇게 오래 외쳤으니 그만 외치세요. 다른 감방 사람들에게 방해가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죄수들에게 제가 학대받았는지 물었고, 모두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이 여섯 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떠났습니다.

당시 감방의 재소자들은 모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누군가는 구경거리나 웃음거리를 보려 했는데, 위험한 박해가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질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가짐이 매우 순정(純正)했기에 다시 한번 파룬따파의 신성함과 신기함을 진실로 증명했습니다.

단식 단수 3주째 되던 날, 감방의 한 재소자가 사무실에서 나와 제게 “당신은 이미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통지서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다른 몇 명의 강제노동 처분자 이름도 말했습니다. 다음날 그 몇 명은 정말로 강제노동에 보내졌습니다. 저는 당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구세력의 박해로, 내 마음을 흔들고 반(反)박해를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절대 가상에 미혹되면 안 된다. 어쩌면 강제노동 통지는 아예 내려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설령 정말 왔다 해도 내가 사부님과 법을 믿고 반박해를 견지하며 확고히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을 걸으면 정념으로 뚫고 나갈 수 있다.’ 저는 계속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습니다.

단식 단수 30일째, 경찰이 제 옆 감방의 한 아주머니 수련생에게 폭력적으로 강제급식을 했습니다. 여러 명이 그녀를 바닥에 눌러 넘어뜨렸습니다. 저는 문 밖을 향해 큰 소리로 그들의 행위를 제지했습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강제급식하면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은 역사에 기록되고, 대법 수련생을 박해하면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경찰은 체면이 깎였다고 느꼈는지 화가 나서 이것은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저를 감방에서 끌어내 죄수들을 시켜 플라스틱 신발로 제 얼굴과 입을 10여 차례 마구 때리게 했습니다. 저는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부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자신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도 다른 수련생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제지하려 한 그 사심 없는 일념이 저의 석방을 앞당긴 것 같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가 면회를 왔는데, 구치소의 다른 경찰들이 제 모습을 보고, 게다가 제가 한 달간 단식 단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여겨 어머니와 함께 관련 부서에 가서 석방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31일간 단식 단수를 했고, 20여 차례 폭력적 강제급식을 당했으며, 체중은 원래 50여 kg에서 30여 kg으로 줄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어머니가 면회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는 정념으로 구치소를 나왔습니다. 저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된 수련생도 같은 날 석방됐고, 폭력적 강제급식을 당한 아주머니 수련생도 더 이상 강제급식을 당하지 않고 우리보다 하루 먼저 석방됐습니다.

이번 사악한 박해로 제 몸은 일정한 상해를 입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매일 유동식만 먹을 수 있었고, 대변은 모두 검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강제급식할 때 음식에 다른 약물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석 달 후에야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제가 악인들이 저를 박해한 경과를 명혜망에 폭로한 후, ‘610사무실’은 제 직장 직원을 파견해 저를 불법 감시하게 했습니다. 제가 평소처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밖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두 달 후 사악한 무리들이 또 직장으로 와서 저를 납치했습니다. 이유는 지난번에 저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한 수련생이 또 납치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우리 둘을 체포한다는 명목이었고, 우리의 소위 ‘사건’이 이미 검찰원에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한 경찰이 위선적으로 “이번에 형을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마 그리 오래는 아닐 것이고, 나중에 또 나올 날이 있을 테니 이번엔 마음 편히 가지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의연히 “당신들 말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불쾌해하며 “우리 말로 안 되더라도 검찰원, 법원은 확실히 결정권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구세력이 저를 박해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건적 순간에 절대 구세력의 사유에 부합해선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동요해선 안 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입니다. 수련인의 길은 사부님이 안배하시고, 제 사부님 말씀대로 결정됩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한 것이지만 사실 그들 배후의 구세력 조종 요소에게 직접 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관건적 순간에 사부님과 법을 믿는 것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다시 구치소로 끌려갔습니다. 이번엔 구치소에서 아무도 저를 구타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고 저를 매우 존중했습니다. 그는 “지난번 당신이 석방된 지 얼마 안 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의 한 여기자가 당신이 구타와 학대를 당한 상황을 알고 구치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파룬궁수련생을 선하게 대하라고 경고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다시는 당신을 그렇게 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석방된 후 수련생들이 잘 협력했고, 인터넷 담당 수련생이 제가 박해받은 심각한 상황을 적시에 해외에 알렸으며, 박해 상황을 매우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써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켜 세인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구치소 첫날 밤, 저는 선명한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거대한 산이 제 앞에 우뚝 서 있었는데, 위로는 정상이 보이지 않았고 거의 90도의 절벽이어서 올라갈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사악이 충분히 준비해서 제게 불법으로 형을 선고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부님과 법을 믿고 정념정행하기만 하면 넘지 못할 고비는 없습니다. 저는 고밀도로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고,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느꼈으며, 제가 내보내는 정념의 에너지가 매우 크고 순정했습니다.

저는 단식 단수로 박해에 반대했습니다. 단식 7일째 정오, 경찰이 위장관을 삽입해 강제급식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론 사부님의 법을 외우고 한편으론 극력 그들이 넣지 못하게 했는데, 정말로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9일째 오전, 경찰이 감방 사람들을 찾아와 제가 9일 동안 음식을 먹었는지, 물을 마셨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제가 줄곧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와 대법의 홍대한 위력 아래, 9일째 저는 당당히 구치소를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마중 왔을 때 저는 스스로 걸어서 구치소를 나왔고, 현장의 모든 사람이 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우리가 잘하고 심성이 제자리에 도달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의 수련 중에서 제자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올 때 사부님의 얼마나 많은 고심이 스며들었는지, 매 한 걸음의 제고는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산과 바다 같은 업력을 감당하시고 제자를 한 걸음 한 걸음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정법수련에서 저는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을 걸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더 많은 중생을 구하여 위대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상은 개인 수련 중의 약간의 경험과 체득이며,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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