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온라인 채팅방 개설 문제에 대한 견해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망은 7월 25일 ‘인터넷 문제에 숨겨진 더 큰 위험’과 ‘온라인 소셜 그룹을 만들어 난법하는 사건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두 편의 교류 글을 발표했고, 31일에는 ‘인터넷 채팅방의 수렁에서 벗어난 후’를 발표했다. 이에 우리도 채팅방 개설 문제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온라인에 채팅방을 만드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안에서 단체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깨달음을 교류하며 함께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방식과 방법을 교류하고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럴듯한 명분 이면의 실질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기에는 아래 두 가지 경우일 것이다.

1. 특무가 아닌 특무

정법수련 이래로 인터넷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며 사악을 폭로하고 박해에 반대하는 것은 확실히 큰 작용을 했다. 하지만 ‘청심논단(淸心論壇)’ 같은 문제도 나타났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인터넷에 집착하는 일부 수련생들이 인터넷으로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대한 자신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좋아하는 데 집착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계속 방식을 바꿔가며 온라인에 채팅방을 만들어 똑같이 집착하고 좋아하는 수련생과 신수련생을 끌어들여 가입시키며 그들의 시장을 확대하고 부각시킨다.

앞서 명혜망이 발표한 세 편의 교류 글에서 언급한 것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2~3백 명 규모의 대형 채팅방을 만든 방장이 대법수련생이라 해도 그 채팅방 안에 특무(스파이)가 없을까? 명혜망이 7월 25일 위의 두 글을 발표한 후, 채팅방 내 토론에서 명혜망을 향해 함부로 비난하고 반박하며 깎아내리는 발언들이 줄을 이어 주도권을 차지했다. 비록 일부 수련생이 이 때문에 채팅방을 탈퇴했지만, 이 채팅방의 복잡한 정도와 특무 유무, 특무가 얼마나 많은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일도 있다. 채팅방 안에서 진상을 알리는 방식과 방법을 전파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물자 배치가 필요한데, 이런 물자는 온라인에서 스스로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채팅방에서 이 방면을 담당하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한다”, “수련생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며 택배와 은행 송금 방식을 채택한다. 이런 물자 발송과 자금 왕래는 즉시 당사자까지 추적할 수 있어 본래 온라인상의 익명성을 오프라인의 실명으로 바꿔버린다. 사실 이것도 특무 수법 중 하나다. 결국 당사자가 납치되고 채팅방 내 10여 명의 수련생이 연루돼 납치됐다.

비슷한 상황이 거의 모든 채팅방에 존재한다. 매번 사고가 날 때마다 그 ‘책임자’는 안으로 찾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초래한 손실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과 이른바 강한 정념을 과시한다. 어떤 이는 격앙된 어조로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만 관리하시고, 박해는 나와 무관하며,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다른 수련생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와! 수련이 정말 잘됐네,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고 정념이 너무 강해. 침착하게 지휘하며 즉시 기존 채팅방을 해산하고 새 채팅방을 만들다니, 처리가 적절하네”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정을 선동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기는 ‘공산당 당문화’ 수법은 수련생을 미혹시키고 오도해 계속 위험에 빠뜨리는데, 기뻐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중공)과 그 특무들이다. 이런 자아를 실증하고 수련생 안전을 돌보지 않는 행태는 특무가 아니어도 특무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자신은 마치 ‘괜찮은’ 것 같지만 그와 연관된 수련생들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사고를 당한다. 그의 ‘무사함’ 뒤에는 원인이 있다. 진정으로 정념이 강한 사람은 법으로 자신에게 요구하지, 법을 도용해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지 않는다.

온갖 그럴듯한 말들이 왜 일부 사람을 미혹시키고 오도할 수 있을까? 오도당한 사람들 역시 법으로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0-더 정진하자’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수련생에 대해 져야 하고, 사회에 대해 져야 하고, 대법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차분히 법으로 대조해 생각해보자.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행위를 정념이라 할 수 있는가?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을 정념이라 할 수 있는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왜 중공이 아직 그를 건드리지 않을까? 사악이 그에게 아직 이용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뿐이다!

2. 사악한 깨달음과 오도되기를 좋아함

채팅방을 만들어 이른바 법공부와 연공, 깨달음을 교류한다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본다.

먼저, 그것은 사부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 아니다.

“제자: 최근 동수들이 자주 전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이를 통하여 교류하고 법 공부하며, 심지어 극력 보급합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교류하고 법 공부할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사부: 안 되는바, 꼬마 제자 이외에 이렇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한 여러분이 아주 바쁠 때 사용함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습관화되면 안 되며 이는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 준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단체로 법 공부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법 공부하고 문제를 탐구하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당신들이 바쁠 때 한번 이용할 수 있지만, 모두 다 이렇게 하면 안 되며 또한 자주 이렇게 하면 안 된다.”(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제자: 저는 재빨리 세인을 구도하자면, 우선 국내에서 걸어 나오지 않은 수련생들이 되도록 빨리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국내의 일부 지방에서 조직한 소규모 법 공부 거점은, 여러 사람들이 서로 도와,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명혜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소규모 법 공부 거점을 조직하도록 격려하며, 안전에 주의하는 동시에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 돕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법 공부 소조ㆍ연공장ㆍ법회, 이는 내가 여러분에게 남겨놓은 것으로, 나는 줄곧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지지해 왔다.”([각지 설법10-명혜망(明慧網) 10주년 법회 설법)]

이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 이미 매우 명확히 말씀하셨으니 깨달을 것도 없고, 오직 법에 따라 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집착과 기호 때문에 대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오직 대법을 원용할 수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중국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수련생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심득(心得)을 교류하는 이런 형식은 좋습니까?

사부: 중국 대륙 이외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한 법을 실증하는 그러한 구체적인 정황을 말하지 말라. 만약 중국 대륙에서라면 제일 좋기는 아직도 당신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구세력에게 빈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두려워하고 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악이 빈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채팅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익명이라 각자의 내막을 알기 어렵고, 특무와 특무가 아닌 특무가 대량으로 뒤섞여 있다. 그들이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기는 매우 쉽고, 한 특무가 여러 가명을 쓰는 것도 아주 편리하고 마음대로다. 일단 빈틈이 생기면 수련생이 손실을 입는다. 앞서 말한 17명 수련생 납치는 그중 한 명이 먼저 납치된 후 연이어 납치된 것이다. 이런 손실의 교훈을 명혜망에서도 많이 폭로했으니 여기서 일일이 되풀이하지 않겠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위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도 중국 대륙에서 안 된다고 명확히 단정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여긴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은 “만약 중국 대륙에서라면 제일 좋기는 아직도 당신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인터넷 사용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뜻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만약 사부님께서 단정적으로 중국에서 그렇게 하면 안전 문제가 있고 구세력과 사악이 빈틈을 타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이 일은 정해진 것이 됐을 것이다. 사부님 말씀은 법이므로 구세력과 사악이 대놓고 법의 빈틈을 타서 박해할 것이고, 박해받는 대법제자 수련생이 더 많아지고 손실이 더 커질 것이다.

사실 문법적으로 보면 ‘제일 좋기는(最好)’이 부사로 쓰일 때 영어의 ‘had better do something’와 비슷한 의미로, 어느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명확히 제시하는 권고다. 어투는 정중하고 한 발 물러서서 말해 마치 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고 속에 담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어조는 분명하다. 이 문장 문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국어 교과서를 찾아보라.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은 그런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길로 가는 것으로, 매우 현명하지 못하고 매우 오만한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마굴이며 그 속에 휘말리면 사오(邪悟)하게 된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그 사이트는 이미 무슨 좋지 못한 것들이 다 거기에 뒤섞여서 그야말로 마귀처럼 돌아가고 있으며, 어떤 것이든 들어가면 모두 그 안에 뒤섞이고 그 안에서 혼합되어 사회, 인심, 도덕, 전통을 교란하고 사람의 생활 상태를 개변하고 있다. 물고기와 용이 뒤섞여 있다. 나는 이 신성한 것을 그 마귀굴 안에 놓고 싶지 않다.”(각지 설법14-2016년 뉴욕법회 설법)

우리가 보기에 사부님께서 이미 그 인터넷이 바로 마굴이라고 명확히 개괄하여 말씀하셨는데, 법공부와 연공이라는 이렇게 신성한 일을 마굴 안에서 하는 것이 합당한가?(사부님께서 동의하신 것은 제외)

이 2~3백 명의 대형 채팅방에서 이른바 교류란, 한 사람당 3분으로 계산해도 백 명이 발언하면 300분(5시간)이다. 가능한가? 사실상 그 몇몇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명혜망을 비방하고, 명혜망 교류 글을 시험으로 여긴다는 등 수련할 줄 모르고 속인 마음이 무거운 수련생을 오도한다. 이른바 교류는 흔히 개별 사람이 연설하며 난법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그 방장을 숭배하며 그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도 강하고 저것도 강해서 표준이고 모범이며, 심지어 자신이 높은 가지에 올라탔다고 여기며 그룹에 늦게 가입한 것을 매우 한탄한다. 이것이 바로 오도당하고 미혼탕에 취한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사오한 발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쫓아낸다고 말한다. 쫓아낼지 말지는 차치하고, 설령 쫓아냈더라도 가명을 바꿔 또 나타난다. 이런 특무와 특무가 아닌 특무는 하루 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는데, 그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쫓아냈더라도 그런 사오의 발언을 보고 들으면 이미 들어간 것이니, 또다시 오염을 증가시킨 것이 아닌가? 언제 어떻게 해야 그것을 제거할 수 있을까?

오도되기를 좋아하는 것은 오도를 불러들이는 것이고, 오도당한 후 사오가 생기는 것도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 자신이 장래에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상의 견해와 토론은 수련하고자 하는 수련생에게 쓴 것이다. 박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박해당하는 사람은 늘 자아가 강하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강렬한 상태에 있을 때, 사악이 목표로 삼고 기회를 엿보아 손을 쓰는 것이다. 박해 초기의 많은 교훈을 보고 우리도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 하루빨리 법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을 배워, 다른 사람이 범한 잘못과 교훈을 모두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8/11/498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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