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그해 사악한 베이징 감옥에서 박해에 항의했던 경험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제자가 고난당할 때 사부님께서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가장 사악한 환경에서도 신사신법(信師信法)을 굳게 견지할 수만 있다면 난을 뚫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1. 납치당하다
2005년, 저희 몇 명이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파출소에서 저희를 차례로 납치해 구치소에서 박해했습니다. 당시 20여 명의 사복경찰이 우리집에 들이닥쳐 저를 납치했는데, 몇 명이 저를 바닥에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검은 차에 태웠습니다. 당시 저는 한 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직 사부님 말씀만 듣는다. 결코 대법에 먹칠할 수 없다. 나는 죄가 없으며 대법이 가장 좋다.’ 그래서 계속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 가장 좋습니다! 전 지구가 장쩌민(江澤民)을 공개심판하자!”
가는 내내 가부좌를 하고 입장하며 쉬지 않고 외쳤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외치자, 몇 명이 와서 저를 들어 구치소 안으로 옮겼습니다. 불법구금된 한 달여 동안 바람 쐬러 나갈 때마다 매일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리훙쯔 사부님이 가장 좋습니다! 전 지구가 장쩌민을 공개심판하자!”라고 외쳤습니다. 목청껏 외쳤는데 정말 천지를 놀라게 하는 듯했습니다. 어느 날 바람 쐬러 나갔을 때 아직 구호를 외치기 전에 간수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왜 안 외치지? 빨리 외쳐.”
2. 정념정행으로 불법 판결에 맞서다
나중에 저를 검은 차로 베이징 제2구치소, 소위 ‘7처’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여전히 마음을 굳게 견지하며 가부좌를 하고 입장하여 계속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리훙쯔 사부님이 가장 좋습니다! 전 지구가 장쩌민을 공개심판하자!” 7처에서 불법구금된 두 달 동안 경찰이 불법으로 심문했는데, 심문실로 데려가면 저는 상대방이 뭘 묻기도 전에 이전에 외쳤던 그 네 마디를 계속 말했고, 결국 심문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원래 구치소로 보내려고 할 때 네 명의 경찰이 있었는데, 그중 한 경찰이 저를 밀어 넘어뜨린 후 물었습니다. “왜 안 외치지? 계속 외쳐.” 제가 그에게 “뭘 외치라는 거죠?”라고 묻자 경찰이 말했습니다. “뭘 외치는지 모르겠나? 계속 외쳐!” 그때 저는 갑자기 깨달아 다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리훙쯔 사부님이 가장 좋습니다! 전 지구가 장쩌민을 공개심판하자!” 나중에 밖으로 나가 차에 타고 원래 구치소로 보내져 1년여간 불법구금 됐습니다.
불법구금 기간에 저는 계속 연공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가짜 사건이라고 알렸으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이 아홉 글자를 주변의 모든 인연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바람 쐬는 기간에도 계속 구호를 외쳐 현장의 모든 사람이 제 외침을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사악한 곳에 가더라도 저는 여전히 마음을 굳게 견지하며 가부좌를 하고 입장하여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리훙쯔 사부님이 가장 좋습니다! 전 지구가 장쩌민을 공개심판하자!”
이렇게 1년여가 지난 후 법원에서 불법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톈진(天津) 첸진(前進)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구호를 크게 외쳤고, 그들은 오토바이 헬멧으로 제 머리를 씌워 독방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감옥 1대대의 대대장 류광후이(劉光輝, 이미 사망)가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이름이 뭐고 어디 사람이냐?” 당시 저는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그를 인정할 수 없고 협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저를 박해하는 것이야말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대법관이어야 합니다.” 그는 멍한 표정을 짓고는 나가버렸습니다.
3. 광적인 박해,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시다
감옥에서 저는 5kg이 넘는 족쇄와 수갑을 강제로 차고 이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 내내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독방에서 저는 장기간 마음속으로 법을 외웠습니다. 독방은 2평방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 낡은 판자 하나가 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낡은 판자에 앉아 있어야 했고 주변에는 네 명의 감시자가 있어 움직일 수도 연공을 할 수도 없었으며, 화장실 가기와 목욕도 그들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저는 절대 보고를 외치지 않았고, 차라리 단식하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지언정 그들에게 보고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감시자들이 저를 의무실로 데려가 야만적으로 고농도 소금가루를 주입했습니다. 당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 이런 박해는 모두 나에게 효과가 없다.’ 당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매우 굳건했습니다. 주입할 때 저는 외쳤습니다. “나는 리훙쯔의 제자다. 다른 안배는 모두 원하지 않고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는 감히 계속하지 못했고, 나중에 허둥지둥 급히 마무리했습니다. 소금가루를 주입한 후에도 저는 목마르다고 느끼지 않았고, 이런 것들이 모두 저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듯했습니다. 사악한 박해가 이렇게 해체됐습니다. 저는 여전히 단식과 단수로 박해에 항의했습니다. 이후에도 자주 야만적인 강제급식을 당했지만, 비록 제게 뭘 주입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주입된 것들이 저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를 데리고 온 감시자들이 계속 저를 박해하려고 하면 저는 계속 외쳤고, 감시자들은 손을 멈췄으며 사악한 박해가 또 해체돼 저는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시자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모두 이해해 더는 저를 박해하지 않았습니다. 감시자가 바뀐 후에도 저는 계속 진상을 알렸고 그들도 모두 대법 진상을 이해했습니다.
장기간의 독방 감금으로 몸에 많은 욕창이 생겼습니다. 무거운 족쇄와 수갑이 살 속에 파고들어 발목과 손목이 모두 짓물렀는데, 지금도 매우 뚜렷한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저는 두려움이 없이 오직 굳건한 일념만 있었고, 사부님의 장기간 자비로운 가지(加持)로 상처가 매우 아프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감당하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사부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시며 제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해 주시다
독방에 갇힌 지 한 달여, 감시자들과 간수들이 저를 ‘전향’시키지 못하자 집훈대(集訓隊)로 보내 엄격히 관리하려고 했습니다. 그곳이 더 무서운 곳이라는 걸 알았기에 마음에도 동요가 일어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구했더니 갑자기 눈앞에 노란색의 한 척 크기 작은 금불(金佛)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제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어떤 기적도 보지 못하고 꿈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람인데, 그날 사부님께서 제가 느끼기에 가장 힘든 때에 기적을 보여주시며 제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마음속으로 한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감동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간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 남았습니다. ‘나는 대법을 위해 온 사람이다. 가장 사악한 곳에서 대법을 실증하겠다!’
그 후 그들이 저를 집훈대로 압송해 박해했지만 저는 여전히 구호를 크게 외쳤습니다. 대대장이 저를 맞으며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만 좀 외쳐라.” 그들은 저를 다섯 명이 한 방을 쓰는 감방에 넣었는데, 원래 독방보다 오히려 좀 더 편했습니다. 감시자도 없고 세뇌 ‘전향’도 없었으며, 가끔 목욕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6개월 후 다시 전진감옥 1대대로 보내져 또다시 독방에 갇혔습니다. 다시 감시자가 붙었고 때때로 세뇌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분신자살’ 영상을 보며 그 영상의 허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결국 그들도 제 말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제가 너무 많은 진상을 말하는 것이 두려워 더는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 가짜 경문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사부님의 신경문과 가짜를 함께 섞어 하나의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짜 부분만 골라 공부하고 가짜는 부정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저에게 도움이 됐습니다. 독방에서 저는 또 단수,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며 굳건하게 큰 소리로 법을 외웠습니다. 특히 사부님의 시 《일월담을 거닐며(遊日月潭)》를 외울 때 간수 경찰도 저를 따라 배우며 몇 번 더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마지막에 저는 당당하게 감옥 문을 나섰습니다. 돌아온 후 진지한 법공부를 통해 갈등에 부딪힐 때마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실제로 수련(實修)했습니다. 수련생들과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며 이전보다 크게 제고됐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당시 불법구금됐던 4년을 돌이켜보면, 저는 한 가지 진리를 실천했습니다.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기만 하면 뚫고 지나가지 못할 관문은 없다는 것입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당시 많은 집착심을 수련으로 제거하지 못했고 일부는 매우 강렬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쟁투심, 색욕심, 원망심 등이 있었고, 또 사부님의 법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명확하지 못했으며, 수련도 충분히 견실하지 못해 일부는 표면에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제자를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감당하시며 가장 사악한 환경에서 제가 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저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제자는 보답할 길이 없어 오직 용맹정진하여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할 뿐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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