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법을 얻은 지 27년 된 청년 대법제자다. 어느덧 현재 직장에서 일한 지 꼭 10년이 됐다. 10년 동안 나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했으며 이익을 두고 다투지 않았고 동료들과도 매우 원만하게 지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가 온화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선량하다고 말한다. 매우 긍정적인 환경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수련생들도 내가 이런 환경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쉽지 않고 매우 귀한 일이라고 했다.
비록 내 일은 가볍고 자유롭지만 휴가는 매우 적다. 게다가 반복되는 업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근무 환경에 대해 싫증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직장을 옮기려고 계획했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도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임을 알고 있다. 직장을 바꾸지 못한 이상 당연히 바꾸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가 어떤 환경에서든 잘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다. 비록 일이 지겹긴 하지만 하루라도 출근하는 이상 반드시 잘해야 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예전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주위 동료들을 선하게 대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줄곧 근무 환경을 바꾸기를 묵묵히 기대하고 있었다.
약 3년 전, 나는 스스로를 격려했다. ‘조금 더 견뎌서 8년째 되면 직장을 바꾸자. 우선 현재의 하루하루를 잘 보내자.’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착실하게 매일을 보내며 매일 가장 기본적인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잘 견지했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해가 지났다. 나는 계속해서 자신을 격려했다. ‘환경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므로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리는 착실하게 잘해낼 것이다. 자신의 싫증과 초조함을 닦아내고 조금 더 견지하면 내년이면 꼬박 9년이 된다. 구구귀일(九九歸一)이니 어떻게든 새로운 환경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일한 지 9년이 지난 후, 나는 사부님께 간청하며 직장을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외지에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면접 준비를 했지만 결국 성과가 없었다. 나는 역시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순리에 맡겨야 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지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다. 사람 중에서의 표면적인 형식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계속 견지했다. ‘9년도 지났는데 1년을 못 채우겠는가. 마침 내년이면 일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10년을 채우고 나면 뭐라 해도 그만둘 것이다. 대법제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바르게 잘 나아갈 수 있다. 이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잘해낼 수 있다. 기왕에 지금 떠나서는 안 된다면 계속 착실하고 안정되게 매일을 잘해나가고, 더 이상 근무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며 주변의 중생을 선하게 대하고 자신이 어렵게 개척한 정법 환경을 소중히 여기자.’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올해 4월이 됐고, 바로 내가 직장에서 일한 지 1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나의 집착과 부족함이 다시 드러났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마치 회사에 하루도 머물 수 없는 것 같았다. 매일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며 마음도 고요해지지 않았고, 계속 사부님께 간청했다. ‘빨리 자신의 사람 마음의 허점을 닦아내야 하고, 구체적인 일에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너무 깊이 몰입해서는 안 된다.’
나의 상태는 정말 좋았다 나빴다 하며 반복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했으며, 한 달 넘게 고민했다. 매일 어떻게 상사에게 사직할지 망설이고, 어떻게 업무를 인수인계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새로운 일을 준비할지 계획하고, 임대 정보를 찾는 등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고민스러운 점은 현재의 근무 환경이 아직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면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개척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가치가 있을까? 만약 새 직장이 현재 직장만큼 가볍고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인위적으로 번거로움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다른 환경의 사명이 없다면 우리가 억지로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손실을 조성하는 게 아닌가? 주변 사람들도 신중히 생각하고 후회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래서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왜 환경을 바꾸려고만 할까? 목적이 무엇일까?’ 말을 하면 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바로 현재의 근무 환경이 너무 안일해서 안일하다 보니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하는 기술 업무 때문에 몸매가 가로로만 발달해서 처음 출근했을 때보다 체중이 10여 킬로그램 늘었다. 동시에 싫증과 초조한 사람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계속 나에게 배우자를 찾으라고 재촉하셨다. “곧 서른이 될 텐데 서둘러라.” 저녁 퇴근 후 나는 항상 외할머니(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한 후 집에 돌아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도 아버지께 시끄럽게 할까 봐 걱정돼 세수할 때도 유난히 조심스럽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해졌다. 그래서 수련생들에게 외지에서 일하면 틀림없이 더 발전할 수 있고, 퇴근 후 집에 가면 틀림없이 더 분발해서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깊이 생각했다. 정법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직장에서는 더 많은 중생을 접할 수 있고, 개인 수련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직장은 더 많은 휴가가 있어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데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왜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수련생들이 나에게 권했다. “새로운 환경으로 바꾸려면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셔야 하고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셔야 할까요. 그리고 깊은 층차의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들을 우리는 모두 볼 수 없는데,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착실하게, 시종일관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잘 나아가고 더 이상 집착하지 마세요.” 사실 큰 이치는 다 아는데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부님께 간청했다. ‘제자가 매일 이렇게 고민하며 내려놓지 못하면 어떻게 바른 길을 걷고 어떻게 중생을 더 잘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생각하고, 하려고 한 것이 우주 정법에 대한 교란을 조성했다.”(2003년 워싱턴DC법회 설법)
그렇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구우주의 신은 자신이 옳게 했다고 생각하고 사부님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정법의 진정한 장애가 됐다는 것을. 그것들은 그들의 경지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신이 더 높고 더 좋은 안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의 관념으로 정법을 가늠한 것이다. 내가 집착한 것은 나의 수요이지 정법의 진정한 수요가 아니다. 나는 항상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안배하고 싶어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쉽지 않고 어떻게 고생스러운지, 나는 마땅히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선, 싫증, 짜증이라는 정(情)은 결국 사(私)적인 요소이며 구우주의 근본이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나는 갑자기 홀가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불안하거나 압력을 느끼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벗어났다. 일은 단지 우리가 세간에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표면적인 형식일 뿐, 그 속에 빠져 너무 깊이 몰입해서는 안 된다. 계속 근무 시간에 집착하고 자신이 일한 연수가 많아서 싫증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것이니, 사람의 것을 내려놓아야만 신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근무 환경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서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고 무사무아(無私無我)해야만 진정으로 대법에 원용(圓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은 개인적인 인식으로, 부적절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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