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부터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어른께 “사람은 왜 살아요?”라고 물었을 때, 어른은 웃으며 저를 바보라고 하시고 “먹기 위해 사는 거고,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뭔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에 나가 일하면서 동료들이 작은 이익을 두고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모습을 보고는 매우 우스꽝스럽다고 느꼈습니다. 막연히 생명의 존재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하고 신성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읽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로 제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생명의 의미 –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이었습니다. 이로써 생명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은 제 생명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워주셨습니다. 생명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이 기쁨, 생명의 본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갈망이 제 표면의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억눌렀습니다. 그래서 1999년 7·20 이전 개인수련 단계에서는 제 표면의 인간적인 면이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고, 오직 생명이 명백한 그 면만이 끊임없이 법에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심성이나 병업의 시험도 거의 없었고, 매일 즐겁게 법을 배우기만 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역사의 오랜 시간 속에서 이미 대법제자의 수련을 안배하셨고, 그것은 원만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구세력은 정법을 좌우하려 하며, 대법제자들의 생생세세 윤회 과정에서도 수많은 안배를 해놨습니다.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원만의 길을 걷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과 관념으로 법을 이해한다면 구세력이 안배한 파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즉, 정법수련에서 시련을 만났을 때 수련자의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못하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이 진정한 자아의 본래 소원이 아니라 구세력의 안배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안배는 우리를 성취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정법수련에 진입한 후 느슨한 수련환경이 사라지면서 억눌렸던 관념들이 다시 강해졌습니다. 사부님이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근본집착을 안고 수련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법에서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근본집착을 구세력이 틈탔고, 제 가정환경을 매우 열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역시 수련생인 시어머니는 경제적 기반을 잃었습니다. 이어서 제가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했고, 남편은 수입을 늘려 생계를 유지하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듬해 만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시련을 마주하며 친척과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을 때 저는 매우 자책하고 낙담했습니다. 업력이 너무 크고 깨달음이 부족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증명하지 못하며, 사부님의 제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수련에 대한 신심을 거의 잃을 뻔했습니다.
2019년 시어머니와 남편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청난 충격 앞에서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수련을 반성했습니다. ‘왜 스스로 정념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며 시어머니와 법에서 교류했지만 시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을까? 왜 남편을 세심하게 돌봤지만 그는 대법을 인정하지 못하고 수련에 들어서지 못해 회복하지 못했을까?’ 수련생이 쓴 글에서 집안 가족이 불치병에 걸렸다가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또는 정성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해서 신기하게 회복되어 친지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 수련생의 정념정행에 깊이 감동받곤 했습니다. 같은 대법에서 수련하는데 저는 도대체 어디가 부족했던 걸까요?
어느 날 《정진요지》를 공부하다가 ‘경고하는 말’ 편에 이르렀을 때, 사부님의 법이 한번에 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알았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줄곧 사람의 기점에서 법을 배워왔던 것입니다. 열심히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은 것은 남편이 법에서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무조건 법에 동화되려 한 것이 아니라 속인 중에서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였고, 대법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 저를 파멸시키려고 정교하게 안배한 것인데, 저는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고 그런 관념을 안고 법을 배웠으니 어떻게 구세력의 박해를 해체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깨달았습니다. 생명은 생생세세 윤회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갖가지 관념을 형성하게 되는데, 사람 중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모두 이기적입니다. 수련 중에는 바로 법을 사용해 이런 관념들을 바로잡고 제거해야 하며, 그래야 선천적인 선량한 본성으로 돌아갈 수 있고 최초에 우리 생명이 만들어진 곳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관념’은 단순한 두 글자가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는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련자를 조종해 그것의 기준으로 법을 이해하게 하고 수련자를 잘못된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법을 배울 때 오직 백분의 백 사부님과 법을 믿고, 경건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을 배워야만 법의 내포를 깨달을 수 있고, 후천적 관념을 바로잡고 제거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몇 년간 수련에서 바로 관념을 자신으로 여겨 수련에서 많은 굽은 길을 걸었고, 마땅히 구원했어야 할 많은 중생을 잃었으니, 진정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죄송할 뿐입니다.
사람의 관념이 제 수련에 미치는 장애를 인식한 후, 저는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생겨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 생각이 사람의 생각인지 정념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면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마음이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숨어있던 많은 사람마음을 발견했고, 이후 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했습니다. 어느새 좋지 않던 상태들도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고,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상호작용은 매우 적었고, 대부분 시간은 제가 말하다가 마지막에 상대방이 동의해서 탈퇴하는 식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탈퇴하는 것 같았고, 마음으로 승복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서였습니다. 지금은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많은 사람이 웃으며 저와 교류하고, 마지막에 기쁘게 탈퇴하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줍니다. 제가 결과를 추구하고 제고를 추구하는 사람마음을 내려놓은 후, 사부님께서 많은 법리를 깨닫게 해주셨고, 수련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있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진상을 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 건너편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는 아저씨를 보고 그에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주저하는 사이 자전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법 “그대는 이 말을 들으려 천년을 기다렸네”(홍음3-연을 말하다)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이 아저씨가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 바로 진상을 듣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그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그가 받아들이든 말든 기회를 잃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돌려 아저씨 곁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고 아저씨는 기쁘게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마지막에 사부님의 새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꺼내며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인데, 구절구절이 모두 자비롭습니다. 보세요.” 아저씨는 경문을 받고 아직 말하기도 전에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제 마음도 한 번 떨렸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날 저는 사부님께 감사하는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제게 자비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셨고, 제가 사람의 추구와 사람의 인식을 내려놓았을 때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수련생의 교류 글을 볼 때 수련생들이 법을 배우면서 대법 법리의 전개와 사부님의 일깨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법을 외우고 베껴 쓰며 그런 느낌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항상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제 얻으려 하고 제고하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경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법을 배우자 대법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홍대함과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느꼈습니다.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영광과 짊어진 책임의 중대함을 체득했으며, 사부님과 법을 믿는 정념이 더욱 증가했습니다.
20여 년의 수련 여정을 돌이켜보면 풍파와 많은 곡절과 유감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것은 사부님에 대한 감사입니다. 한 생명이 사부님께서 친히 전하신 우주대법을 들을 수 있고 직접 사부님의 제도를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제가 자신의 수련 여정을 조용히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항상 이런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리석고 나쁜 장난꾸러기 아이를 아버지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데, 아이는 항상 길가의 독이 있는 꽃들, 독이 든 사탕에 이끌려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그런 유혹들로 달려갑니다. 욕망의 마귀가 그를 절벽 가장자리로 이끌었을 때 발밑의 뒤집히는 검은 파도를 바라보며 절망하고 무력하며 극도로 놀라는데, 이때 항상 가벼운 부름 소리를 듣게 됩니다. 문득 돌아보니 자비로운 아버지가 바로 그의 뒤에 서서 그의 놀란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에 오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찾는 과정에서 이미 옷은 누더기가 되고 온몸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도대체 어떤 희생과 감당을 하셨는지, 이것은 우주 중생들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우리 마음이 영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에게는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형용할 언어가 없고, 중생들이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언어도 없습니다. 제자는 생명의 전부와 영원으로 사부님의 은혜를 찬양하고자 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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