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처리하기 어렵고 시어머니 노릇하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제 경우는 정반대로 며느리 노릇하기가 힘들고 시어머니가 너무 독선적이셨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시어머니는 가정에서 제가 수련하도록 도와주셨고, 대법은 제가 생명의 본원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했습니다. 아래에 저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써내어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위대함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1997년 3월, 저는 언니의 인도로 《전법륜(轉法輪)》 보서(寶書)를 봤지만 수련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제가 일하던 학교에 한 선생님도 대법을 배우셨는데, 그분이 저에게 말씀하시길 “당신들 농촌 사람들은 병원비가 없으니 파룬궁을 배우면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질 수 있어요.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그 선생님께 《전법륜》 보서를 한 권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언니가 두 오빠와 올케언니들도 배운다고 해서 우리는 오빠 집에서 법공부, 연공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점차 질병이 자신의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게 됐고, 병을 낫게 하려면 대법의 요구대로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일을 할 때 남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하기 전, 우리집은 7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시할아버지, 시부모님, 남편과 저, 그리고 두 아이였죠. 시어머니가 집안을 주관하셨고 모든 일은 시어머니 말씀대로 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낡은 집이었고 모두 새 집을 짓고 싶어 했지만 말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시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시면서 돈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을에서 회계를 맡아 연간 500위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께 “어머님, 제가 번 돈으로 벽돌을 사서 집을 지어도 될까요?”라고 여쭤봤고 친정 언니한테 2만 위안을 빌려 집을 짓자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동의하신 후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매우 부지런하고 능력 있어서 1992년, 우리 가족은 마침내 새 집에 살게 됐습니다. 여전히 시어머니가 집안을 주관하셨고 시어머니 말씀대로였습니다.
이후로 저는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은 50무(畝, 1무는 약 200평)의 땅을 경작했고 집에는 트랙터, 옥수수 탈곡기, 벼 베는 기계도 있어서 매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전부 시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여전히 우리에게 돈이 없고 빚을 내서 생활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께 “어머님, 저희끼리 살게 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따로 살고 싶으면 이 집에서 나가. 나가지 않으면 함께 살아야 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내년부터는 농사짓는 수입은 너희가 관리해. 하지만 매년 3천 위안은 나한테 줘야 해. 그리고 내가 딸한테 빌린 4천 위안도 갚지 못했으니 너희가 줘야 하고, 할아버지 장례식도 너희가 치러야 해. 집안의 모든 지출은 너희가 부담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밭에서 일했고, 첫해에는 곡식을 팔고 번 돈으로 시어머니께 7천 위안을 드리고 남은 돈으로 사륜차를 한 대 사고 논 30무와 밭 20무를 더 임대했습니다.
어느 날 밤 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방에서 TV를 보며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솥에서 밥과 반찬을 꺼내 제 방으로 가져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왔는지 모르고 방에서 나와 저를 심하게 욕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사부님 말씀대로 일이 생기면 참아야 하니까요. 시어머니는 솥뚜껑을 열어보시더니 밥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제 방문을 밀치고 들어와 “왜 왔다고 말도 안 해? 내가 욕하는 거 들었어?”라고 따지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어머님, 한 가족인데 욕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병이 나셨는데, 제가 마을 일 때문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어머님, 아드님이나 사위랑 병원에 가보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난 그들을 믿을 수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럼 내일 일요일에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저와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제4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대장암 진단이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형님(큰시누이)에게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곧이어 종양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같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종양병원에 입원하셔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의사가 “이제 힘드시니 퇴원하셔서 집에서 드시고 싶은 것을 드시면서 지내세요”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중병에 걸린 시어머니를 세심하게 보살피고 자주 맛있는 것을 사다 드렸지만, 시어머니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가시 돋친 말씀만 하셨습니다. 저와 시누이가 같은 구운 닭을 사다 드렸는데도 시어머니는 제 앞에서 딸에게 “네 올케가 산 게 맛있겠니? 난 안 먹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웃고 넘어갔습니다.
이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에는 소뇌위축증이 있는 시아버지가 계셨는데 제가 계속 보살펴 드려야 했습니다. 식사, 세탁 등 모든 것을 돌봐드려야 했고 시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귀찮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란을 피우셨죠. 시누이에게 가서 제가 나쁘다고 일러바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늘 참고 시아버지께 따뜻하게 대했고 오늘 식사가 입에 맞으셨는지 여쭤봤습니다. 시아버지가 불편해 보이시면 제가 어디서 법에 부합하지 않았나 생각해봤습니다.
수련한 이 몇 년 동안 저는 일이 생기면 냉정할 수 있었고 무슨 일이든 참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이 제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저를 잘 대해주지 않으실 때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저를 괴롭히실 때도 제가 어디서 시아버지의 화를 돋웠나 안으로 찾을 수 있었고 갈등도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으로 그분들을 대했습니다.
사부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도해주신 홍은(洪恩)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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