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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 중에서 제고하다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내가 해외에 온 지도 어느덧 5년이 다 되어가고, 구출 플랫폼에 가입한 지도 2년이 가까워진다. 이 정체(整體) 속에서 모두가 함께 수련하고 교류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활동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해주신 플랫폼의 모든 수련생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최근 나의 수련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다른 수련생들과도 공유하고자 한다.

가정에서 착실히 수련하기

나는 어릴 적부터 결혼생활에 대해 아름다운 동경을 품고 있었다. 많은 동화 속 왕자와 공주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당문화(공산당 문화) 속에서 형성된 사고방식, 과도한 자아 강조 등 현대적 관념들이 모두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수련 중에 가족 간의 갈등은 내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처음의 원망과 비난에서 지금의 감사와 포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변화는 대법 덕분이었다.

갈등이 생기고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사부님의 법은 내 마음속 응어리를 하나씩 풀어줬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자로서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나는 남편과 지내면서 과연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그것도 조건 없이 그렇게 했는지 반성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와 남편 사이의 격차를 발견했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냈다. 쟁투심, 질투심, 원망,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 자만심, 남녀 간의 정에 대한 집착 등이 모두 드러났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은 집착심이 생기는 근본이다.”[전법륜법해-광저우(廣州) 설법 문답풀이]

나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다스리려면 정을 담담히 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갈등이 생겨 억울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때도 ‘진선인’을 떠올리며 조건 없이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면 마음이 환해지고 홀가분해졌다. 점차 나는 경청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게 됐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도 인내심을 갖고 대하는 법을 익혔다. 내 마음가짐이 점점 더 평화로워지자 남편의 장점과 가치 있는 면들이 더욱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사람을 대할 때 늘 너그럽고 선량했으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 인내심과 포용력이 강했다. 어려움에 부딪혀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편협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며 수많은 사람마음과 집착에 빠져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음을 자각하게 됐다.

해외에 와서 아이와 가정을 위해 나는 고학력의 커리어우먼에서 가정주부로 변신했다. 빨래, 요리, 살림, 남편 돌보기, 아이 키우기 등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면을 다스리는 한편, 현모양처가 되는 법도 배웠다. 그러면서 그간 내가 갖고 있던 잘못된 관념들도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나 유학을 갔을 때, 남편의 피곤하고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종종 이런저런 걱정을 내비쳤다. “부인이 직장에 다니지 않아 경제적 압박이 큰 게 아닐까?” 처음에는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화까지 냈다.

사건이 지나간 후 나는 안으로 찾았다. 왜 그런 말들에 그토록 마음이 동요되고 심지어 참지 못했던 걸까?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는 남녀평등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가진 직무 능력과 학력이 결코 남자에 뒤지지 않는데, 누군가는 나를 짐스러운 존재, 공짜로 밥 먹는 사람쯤으로 여기며 내 자립 능력을 깎아내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왜 이 현상,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무슨 여성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선전함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가? 지금의 사람은 늘 현대인의 부패한 관념으로 고대인을 가늠하며 옛날에는 여성이 억압당했다고 여기는데, 사실 현대인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전혀 아니다. 중국 고대에는, 전 세계를 포함하여 서양사회 역시 이러한 것으로 남자 그는 어떻게 자신의 아내를 대하며 자신의 아내를 보살피고 애호해야 하는지 알고, 그 아내 역시 남편을 보살필 줄 아는데, 음양은 바로 이렇게 병존하는 것이다. 두 양(陽)이 함께 만나면 곧바로 싸움하며, 두 음(陰)이 만나도 안 된다. 음양은 바로 이렇게 서로 보완하고 서로 이루어지며 서로 의존하는 것이다.”(미국법회 설법-뉴욕좌담회 설법)

사부님의 법을 통해 내가 어떤 여성이 되어야 할지 깨닫게 됐다. 나는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사과하고 그간의 헌신과 보살핌에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기꺼이 남편을 내조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남편은 내가 구출 플랫폼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늘 지지해주었다. 나는 가정으로 돌아온 후, 가정 내 남녀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실감했다. 여성의 관심과 보살핌, 다정다감함은 아이의 성장과 남편의 사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整體)와 원융하다

구출 플랫폼에 합류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 한 협조인 수련생이 대규모 교류 모임의 사회자 역할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사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 어떤 일도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이 방면에서 내가 수련하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기에 승낙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막연했다. 일반 직장에서 나는 이미 정해진 규칙과 틀에 익숙해져 있었다. 가령 직무 내용이 무엇이고,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이며, 금기 사항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그러나 사회를 보는 일에서는 이처럼 참고할 만한 규칙이 없었다.

1999년 박해 전, 우리는 모두 둥글게 앉아 법공부를 했고 공부가 끝나면 서로 교류를 나누었다. 그 평화롭고 조화로운 광경이 내게 더욱 정진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교류 모임의 사회자로서 그 역할을 잘 해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자각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을 볼 수 없고 오로지 목소리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수련생들이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을까? 내가 현지의 대규모 교류 모임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바로는, 진실하고 솔직할수록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를 볼 때 반드시 진실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하고 진정성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도전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예전에는 위축되곤 했다. 하지만 좋은 교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만 했다.

교류 중 가끔 어색한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난처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안으로 찾아보니 그건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이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이야기를 나눌 내용이 없었거나, 어떤 이유로 말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남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준비해 적절한 때 주제를 공유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조화를 이뤄야 함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성찰해보니, 어려움에 부딪혀 외부 탓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고 제고하는 데는 힘쓰지 않았다. 또 상처받을까 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 명예욕 등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짐을 버리기로 했다. 거기에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정체(整體)와 더욱 조화롭게 원융하는 데 집중하리라 결심했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을 때는 낙담하지 말라며 스스로를 격려했고, 잘했을 때는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건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를 보는 과정을 통해 내가 제거해야 할 사람마음의 집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 교류에서 어떤 일에 관해 내 견해를 밝혔을 때, 한 수련생이 좀 더 포용적인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교류가 끝나고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이성적으로는 그 수련생의 말이 옳다고 여겼지만 왜 그런 감정이 들었던 걸까? 깊이 찾아보니 그건 명예욕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을 범해 누군가의 지적을 받아 바로잡는다면, 그 자체로 다른 이들에게 교훈과 경험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그로부터 배우고 제고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류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나에게는 많은 부족함이 있다. 나 자신을 잘 수련해 여러 수련생과 더 잘 협력하고 정체적으로 더욱 원만해졌으면 좋겠다.

이상은 내가 최근에 수련한 경험이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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