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경축 5.13]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

글/ 중국 청두시 대법제자 헝신(恒信)

[명혜망] 오늘 이 글은 어쩌면 일부 수련생들이 평소 인터넷에서 보던 교류글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상태는 어쩌면 일부 수련생들의 상황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5.13’ 교류회에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믿음의 동요

제 개인적인 상황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여 년 전에 파룬궁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그때 저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박해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수련해 흥미를 느껴 잠시 접했었지만 정말로 수련에 들어선 건 몇 년 후였고, 그때는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이 공개적으로 가장 심하게 파룬궁을 박해하던 시기였습니다.

수련인들은 모두 알다시피 수련의 초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이유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는지 말입니다. 합법적으로 공개 연공할 수 있었던 짧은 기간, 그때는 기공 붐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제가 가장 많이 들은 건 ‘병’ 때문에 수련하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건강한 젊은 대법제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단순히 대법이 좋다고 느꼈지요.

저는 그때 20대 초반이었고 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이 두려워서 도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수련 과정에서 저에게 좀 ‘성가신’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제 양쪽 허벅지 안쪽 뿌리에 아주 큰 백반이 생겼는데, 가려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긁으면 하얀 가루가 떨어졌고, 피부가 벗겨지면 고름이 흘러나왔고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공공장소에서도 참지 못하고 긁곤 했는데 매우 경박스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수련인이라고 생각하고 관리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모님은 제가 자주 긁는 걸 보시고는 종종 경박스럽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이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3년 동안 제 수련 상태가 좋았건 나빴건 이 ‘병’은 계속 그 상태였고, 시간이 오래 지나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공법이 정말 맞는 걸까? 보통 수련생들은 파룬궁이 건강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다른 사람은 이 병도 나았고 저 병도 나았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만 낫지 않는 걸까?’

이후로는 정말 반신반의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공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걸 저는 늘 확신했고, 대법 수련을 점점 기공 연마로 여기게 됐습니다. 물론 견고한 믿음이 없어서 이런 기간도 길지는 않았고, 결국 나중에 바빠지자 점차 연공도 적게 했습니다. 어느 날 너무 가려워서 결국 성(省)의 가장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2주치 약을 처방해준 후 완전히 나았고, 그 후로는 기본적으로 파룬궁을 믿지 않았습니다.

혼란한 세상에서 마음의 청정함을 되찾다

이미 몇 년간 연공하지 않았지만 앞선 몇 년의 경험을 통해 인생에 위기가 닥치면 대법 수련이 사람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은 계속 있었습니다. 인생길에는 고비가 많습니다. 특히 저희같이 학력도, 배경도 없이 대도시를 홀로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힘들고 억울할 때 대법 법리를 자주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대부분 고상한 도덕으로 상대해왔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으로 파룬궁이 어떤 조직이든 간에 사람의 도덕성 향상에는 확실히 의미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생존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저는 필사적으로 일했습니다. 제 전문 분야의 재능도 많은 상사와 동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책상 앞 업무로 인해 심각한 경추병과 견주염에 걸렸는데, 가장 심할 때는 팔을 어깨 위로 들 수 없었고, 경추가 신경을 압박해 현기증과 구토가 일어나 이틀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또 대법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연마하면 작은 병은 치료할 수 있으나 난치병에는 소용없어’라는 생각에서 맴돌았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저 혼자 있었는데 어깨 통증이 정말 견딜 수 없어서 ‘그냥 해보자, 혹시 연공이 이 병에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 근육운동으로 치고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15분 정도 연공을 하고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렇게 저는 다시 연공을 시작했지만 제 몸에 다른 각종 좋지 않은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창업을 했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 몸이 좋지 않으면 창업이고 뭐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 계속 연마하자!’ 그리고 일부 수련교류 글을 보았는데, 대부분 누군가가 중병에 걸렸지만 법 몇 단락만 보거나 연공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셔서 금세 나았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확신했습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업을 없애는 데도 시간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그러나 꽤 오랫동안 다시 연공했는데 ‘경추병’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통증 때문에 연공할 때 기본적으로 입정(入定)할 수 없었는데, 앞서 몇 년간에는 상태가 가장 좋을 때는 한동안 깊이 입정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달걀 껍데기 안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고 1시간 반 동안 앉아도 다리가 그리 아프지 않았으며 시간도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수련에 정진하지 못한 탓은 아닌지 등,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법공부 강도를 높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그때는 종이책이 없어서 컴퓨터로 전자책을 보았음). 책 베끼기 등을 통해 법공부를 강화하고 잡념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한동안 견지했는데 어깨와 목이 더 아팠고, 일부 수련교류 글에서 말한 것처럼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다시 좀 흔들렸지만 저는 재빨리 그 생각을 멈췄습니다. 저는 늘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한 구절을 마음에 떠올렸습니다. “쉽게 얻었다고 쉽게 잃어서는 안 된다.”(전법륜)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음에도 내면 깊숙이에는 연공으로 병이 낫지 않는 것에 대한 한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른 제 신체 기능은 전반적으로 매우 좋았다는 점입니다. 몇 년간 별로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저는 병에 걸려 약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업무 강도가 매우 커서 경추가 자주 아프고 불편했으며, 머리는 혈액 공급이 부족해 늘 어지러웠습니다. 연공해도 별로 완화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완화를 위해 저는 ‘어쩔 수 없이’ 마사지와 추나요법을 받으러 갔고 다소 효과를 보았습니다. 비록 그때까지도 계속 대법 수련을 견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소중히 여기는 정도가 우주대법을 우러러보며 지극히 높고 무한히 경앙하는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가끔 저는 연공 중 기적적인 반응이 있는 수련생들이 특별히 부러웠습니다. 온몸에 병이 있다가 연공하자마자 낫거나, 어떤 신기한 장면을 보거나 들은 것 등등, 그런 분들의 수련 인연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때론 소위 ‘걸어 나오지 못하는’ 수련생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신 몸에 있던 병이 연공으로 나았는데 그건 큰 은혜야.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어? 당신은 원래 어리석고 둔했는데 수련 후 총명해지고 능력이 있어졌어. 당신의 원래 가정과 직장 환경도 수련으로 인해 크게 달라졌어. 그런 일이 있다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게 당연한 거야. 어떻게 걸어 나오지 못한다는 거지?’ 그렇지만 저야말로 ‘걸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연공으로 ‘병’조차 낫지 않았고 다른 방면도 그리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연공 후 신체가 전반적으로 매우 건강해져서 감기 같은 외감성 질환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있으면 이런 경험이라도 반드시 친척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는 드문드문 알렸지만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결심하는데 곧 상상도 못한 더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당신의 눈과 심장을 아끼듯이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하라

최근 저는 자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는 구절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전에 이해한 것이 모두 글자 표면에만 머물렀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오늘 보니 의미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이 어려운 것일까요? 연공 중의 고통?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 이런 어려움은 직시할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마치 앉은 채로 큰 산을 짊어진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그것에 닿을 수 없지만 그것은 당신을 사납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천목으로 무언가를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연공으로 낫는 ‘난치병’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상태였기에 믿을 것인지, 믿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가 늘 제 앞에 놓여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중병에 걸렸다가 연공을 통해 신속히 회복된 수련생 여러분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는 더는 약간의 의혹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생사의 순간에 당신이 구원됐고 게다가 당신 스스로 경험했으니까요!

다시 시련을 겪고 ‘업(業)’을 밟으며 전진하다

장기간 별다른 호전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 ‘병업’에 대해 저는 계속 이런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믿음이 크게 손상됐습니다. 누군가 연공으로 병이 나았다거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니 어떻게 됐다고 하면, 우연이나 오진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사실 줄곧 저는 대법을 지극히 높은 위치에 놓고 싶었고 계속 노력해왔지만 외재적인 노력으로는 이 점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1년 전, 사부님께서 중국 내 신종 코로나 사망자 수에 대해 개시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해 원래 많지 않았던 믿음이 더 무너졌고 더는 법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연공은 견지했습니다. 그 기간 속인이나 할 법한 일과 계율을 어기는 일을 적지 않게 저질렀습니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으면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수련하지 않게 되면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 업력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갑자기 이명이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한쪽 귀에서 양쪽 귀로 바뀌었으며 오래지 않아 제 수면을 심각하게 망가뜨렸습니다. 8개월 동안 거의 90%의 나날을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9개월째 되어서야 약간 호전됐습니다. 오랜 시간 이명으로 인해 저는 이미 왼쪽 귀의 청력이 다소 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도 많이 호전됐던 경추 통증이 흉추 부위로 옮겨간 것 같았고, 목구멍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면서 ‘호흡 정지’ 현상이 나타났으며, 밤에 여러 번 숨이 막혀 잠에서 깼고 이는 원래 좋지 않았던 수면의 질을 더욱 망쳤습니다. 매우 오랜 시간 저는 고통에 시달려 살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몇 번이나 자살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다시 수련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시시각각 일사일념일행(一思一念一行)에서 제가 이해한 수련의 표준에 부합하도록 힘썼습니다. 다시 거의 1년이 지났고 『전법륜』을 거의 두 번 배웠지만 이명은 낫지 않고 수면만 약간 호전됐습니다.

한번은 제가 수련을 간신히 권유했었던 아내에게 농담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매일 2시간씩 연공을 견지하고, 1~2시간 법공부까지 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으면 계속 견지할 수 있겠어?”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적어도 자신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거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연공의 복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무리 잘하지 못한다 해도 속인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연공하지 않는 친척과 친구들, 제 또래 중에 저처럼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고 밤을 새우는데도 몸에 별 큰 문제가 없는데,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 매일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공을 견지하는 저는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떻게 대법을 실증해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비관적인 마음이 저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대법제자 가족들이 20여 년간 약 한 알도 먹지 않은 걸 보았고,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나 무의미하다고 진정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의 문을 열고 내면의 진실한 생각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고 싶고 수련하고 싶다.’ 생각 속에는 하나하나 수련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안으로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진선인에 따르며, 성명쌍수(性命雙修)하는 것…. 저는 여전히 수련이 좋고, 수련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련이 닥치든 저는 계속해서 제 내심을 성찰할 것이고, 여전히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층차가 제한적입니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5/3/47591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5/3/4759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