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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해 서약을 지키자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리위안(李園)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20여 년의 굴곡 많은 수련 과정에서 얻은 몇 가지 심득과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파룬따파에서 얻은 혜택

법을 얻기 전, 저는 류머티즘성 척추염, 부인과 질환 등 각종 질병이 있었고, 젊은 나이에 허리가 굽고 등이 구부정했으며, 여러 만성질환이 있어 늘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났습니다. 매일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의사를 찾아다니고 약을 구했으며, 여러 기공을 배우고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는 등 많은 돈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1998년 1월 어느 날, 저는 운 좋게도 보물 같은 책 《전법륜(轉法輪)》을 얻게 됐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멈출 수 없었고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새벽까지 단번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제 세계관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곧바로 연공 장소를 찾아가 연공을 배우고 사부님의 설법 녹화 영상을 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셨고 매일 설사를 했지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약 한 달 정도 지나자 제 온몸의 병이 다 나았고 허리도 곧게 펴졌으며, 정신도 좋아졌습니다. 병 없는 몸을 갖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법을 얻은 초기, 어느 날 밤에 고열이 났는데 독감 증상 같았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파룬(法輪)이 위에서 아래로 훅훅 돌아가는 것을 느꼈고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열이 전혀 나지 않고 다 나았습니다.

2003년 어느 날 밤, 저는 죽을 한 냄비 끓였는데 불에서 내리려고 할 때 손잡이가 갑자기 부러져서 뜨거운 죽이 맨발에 신은 슬리퍼 위로 쏟아졌습니다. 가족들이 재빨리 수돗물로 발에 묻은 죽을 씻어냈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피부도 붉어지거나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난을 없애주신 것입니다.

자료점을 20년간 운영하다

저는 기술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2003년부터 저희 집에 가정 자료점을 만들어 지금까지 20여 년간 중생 제도에 작용을 발휘해 왔습니다.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 외에도 현지 일부 수련생들의 자료를 공급해 주었고, 현지 및 시골 소규모 자료점 수련생들에게 기술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시스템 설치, 컴퓨터 사용 중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 해결, 간단한 장비 수리, 진상을 알리는 휴대폰 구매 및 음성전화 앱 설치 등입니다.

처음에는 낮에 출근하고 여가 시간을 이용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해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기에 시간이 너무 빠듯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회사에 조기 퇴직 신청서를 썼는데, 상사가 그러면 제가 일 년에 1만 위안(약 190만 원) 이상을 덜 받게 된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집을 꺾지 않고 퇴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겼고 수련생들의 성명 발표, 투고 등은 모두 제가 하게 됐습니다. 대법 일을 하는 데 있어 저는 원망도 후회도 없이 했습니다.

저는 자주 혼자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에 가서 소모품을 샀는데, 제가 시간 여유가 있고 급히 써야 할 때도 있어서 다른 수련생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큰 가방과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내립니다. 가끔 다른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행 버스를 타고 가는데, 때로는 CD, 토너, 잉크 등 무거운 물건을 우리 둘이 들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프린터에 문제가 생기면 버스를 타고 타지로 가서 수련생에게 수리를 부탁하고, 다시 들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는데, 안전에 주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당당하게 마치 집에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아파트 단지를 드나들었습니다. 온몸에 다 쓰지 못할 만큼 힘이 넘쳐서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수리하는 법을 배워서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직접 고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 후에도 사명을 잊지 않다

2008년 8월, 중공 악당이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현지 공안국은 1, 2월부터 파룬궁수련생들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경찰이 세 번이나 우리 집에 와서 컴퓨터를 찾아 뒤졌으며, 방마다 다 둘러보았습니다. 당시 공안 내부 사람의 말에 따르면 경찰이 납치하려고 준비한 블랙리스트에 제 이름도 있었습니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 5시경, 저는 과감히 기차를 타고 아이가 대학에 다니는 도시로 가서 아이와 함께 방을 얻어 살았습니다. 타지에서 낯선 환경에 있었지만 하루도 빈둥거리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노트북를 갖고 왔기에 인터넷에 접속해 명혜망 기사를 내려받아 진상 자료를 만들어 아파트 단지에서 배포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매일 오전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4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했으며, 돌아와서는 법을 배우고 외우며 연공을 했습니다. 동시에 5개월 동안 《전법륜》을 한 번 다 암기했습니다. 제가 표준어를 하니 현지 사람들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슈퍼마켓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가정사를 얘기하다가 나중에 대법 진상을 알렸더니 할머니는 잘 받아들이셨고, 저는 그분을 중공 소선대에서 탈퇴시켜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매우 감사해하셨습니다. 저는 소선대를 탈퇴하고 대법이 좋다는 걸 기억하면 안전할 거라고, 대법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한번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 입구로 걸어가다 한 부부를 만났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베이징 사람인 걸 알게 되어 두어 마디 주고받다가 파룬궁 진상을 알렸더니 그들은 매우 공감했고 재빨리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하는 표준어를 듣고선 매우 친근감을 느꼈고,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7월 1일이 되어 아이가 방학하자 아이는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가롭게 지낼 수 없고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며, 하지 못하면 중생 제도에 지장을 줄 테니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과감히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는데 그날은 7월 3일로, 사악이 미친 듯이 대법을 박해하던 시기였고, 바로 악당의 올림픽 개막 한 달 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파트 단지 입구 맞은편에 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걸 발견했는데, 옆에는 오토바이 두 대가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저를 감시한다는 걸 알아차렸고, 사악이 늘 제 행방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지만 그들은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두려운 마음이 없고 오로지 대법만 생각하며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았기 때문인지, 그들도 악해질 수 없었고 저를 잡으려던 기도가 무산된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사악이 절 건드리지 못하게 도와주신 겁니다.

밤에 저는 가족과 함께 밖에서 산책하다가 그 두 사람 앞을 지나갔는데, 그들은 험악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지만 저는 전혀 동요되지 않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선의로 그들을 바라보며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하루 종일 거기 있다가 나중에는 가끔 왔는데, 아마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태도가 바뀐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큰 장터에 가서 한 수련생과 연락하려 했는데, 막 도착하자마자 예전에 자료를 가져가던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수련생은 오랫동안 명혜주간과 진상 자료를 보지 못했다고 하길래, 당시 저는 그 수련생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당시 어떤 수련생은 그 기간에는 하지 말고 악당의 올림픽이 끝나면 그때 다시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생 제도를 멈출 수 없고, 수련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법을 믿고 평소처럼 수련생들이 필요로 하는 사부님의 경문, 명혜주간과 전단지, 소책자 등을 만들어 수련생 손에 전해주었습니다. 그 후 이른바 ‘민감한 시기’에도 저는 한 번도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박해당할 때 안으로 원인 찾기

2014년 3월 어느 날 밤, 저희는 외지 수련생 세 명과 함께 농촌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파출소에 끌려갔습니다. 다음 날 오전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당했는데, 경찰은 다른 두 수련생 집에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우리집 2층과 지하실에서 컴퓨터, 프린터, 복사기, CD, 종이, 잉크 등을 가져갔습니다. 공안국 부국장은 우리집에서 세 차 분량의 물건을 실어 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좀 멍해졌는데 정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건 박해를 인정한 것이고 구세력의 배치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외지의 한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반년 후, 3년 형에 5년 집행유예라는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법률에 대해 전혀 접해본 적이 없어서 악당이 파룬궁에 대해 법률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운이 나빴다고 여겼습니다. 이후에 대량으로 법을 배우고 명혜망에 발표된 법률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한 많은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모두 합법적이고 헌법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대법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자들이야말로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그들에게 이 진상을 알리지 않고 이런 것들을 증거로 인정함으로써 박해를 승인한 결과, 엄중한 박해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구치소에 들어간 당일 밤, 시멘트 온돌 위에 얇은 요를 깔고 잠을 잤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이런 귀신 같은 곳에 온 건 분명 제 수련에 큰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해당하기 전 제 상태를 돌이켜보면 기진맥진하고 매우 피곤했으며,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고, 정념을 발해야 할 때도 손에 든 일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연공할 시간이 되어도 늦게 자서 일어나지 못하고는 마음속으로 내일 하자고 계속 미뤘습니다. 법공부는 매주 한 번 외지에 가서 반나절 동안 단체로 법공부하고, 현지에서 매주 한 번 반나절 동안 단체로 법공부하는 것뿐이었고, 다른 시간에는 늘 견지하지 못하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루 또 하루 일만 하고 또 일만 했으며,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습니다. 사실 명혜망에는 이런 식으로 박해당한 수련생들의 사례가 많이 있었지만 제가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겁니다.

또 2013년 하반기에 명혜망에서 윈도우XP를 윈도우7 시스템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던 게 생각났는데, 수련생들이 저에게 와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제 기술이 숙련되지 않았고 조작도 느렸기에 수련생들이 맡긴 컴퓨터가 쌓여서 저는 멈추지 않고 하나씩 날마다 작업했고,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태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건 박해당하기 며칠 전 외지의 한 기술 수련생 집에 갔을 때 이런 상태에 대해 말했는데, 그 수련생도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 일들만 끝내면 더 많이 법공부하고 더 많이 연공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 며칠 후 저는 끌려갔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하지 않아서 사악에게 빈틈을 보였던 겁니다.

시련 속에서 중생제도 잊지 않기

그 후 저는 구치소에서 할 일 없을 때마다 법을 암송했는데, 기억나는 만큼 외웠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방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명단을 적어서 변호사에게 전해 수련생들에게 전달하게 했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에겐 단독으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밖에서는 늘 파룬궁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고 보니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 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후난성 마약범이 있었는데 그녀 사건은 당시 허베이성 제1호 대형 사건이었고, 내부적으로 그녀는 ‘마약의 여왕’이라 불렸으며, 그녀 집에서 10kg의 메스암페타민과 600g의 헤로인이 압수됐습니다. 그녀는 매일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약을 많이 해서 그녀 몸에는 여러 질병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게 했는데, 그녀는 매일 염했고 몸에 호전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형량이 내려졌을 때 그녀는 사형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헤로인 400g만 소지해도 사형이었는데, 몇 달 전 현지에서 헤로인 400g을 판매한 마약상도 총살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생명을 구하는 보배를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법 사부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대법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사람을 구원하라고 하셨다고 말해줬습니다.

구치소에서 나온 지 8년 넘게 됐는데, 저는 사부님께서 거듭 강조하신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과 세 가지 일을 잘하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법공부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저는 이제 엄격히 자신에게 요구하게 됐습니다. 매일 《전법륜》을 두 번 통독하는데, 아침에 발정념 후 한 강의를 배우고, 저녁밥을 먹은 후 한 강의를 배웁니다. 오전에는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매일 오후에는 두 시간 동안 각지 설법을 배웁니다. 두 번째 책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책까지 배우고, 그다음엔 또 처음부터 배웁니다. 이렇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매일 각지 설법을 두 시간씩 배웁니다. 법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기 위해 저는 암기를 시작했고 아무리 어려워도 견지합니다. 매일 아침 연공을 견지하는데 그중 포륜(抱輪) 한 시간을 거의 매일 견지합니다.

현재 저는 진상 자료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수련생들과 함께 현지에서 깐징월드(干淨世界) 홍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 길을 잘 걸어가서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발맞춰 착실하게 수련하고 정진하며,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잘 해내어 제 사전(史前)의 서약을 이행할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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