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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집착을 내려놓으니 가정의 시련이 꿈처럼 사라지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위진(衛眞)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노년 대법제자로서 올해 63세입니다. 제20회 명혜왕 중국법회를 맞이해 최근 몇 년간 정을 내려놓고, 사람에서 걸어 나오며, 가정 환경에서 자신을 닦은 과정을 얘기하려 합니다.

1. 수련의 신기함, 잘린 갈비뼈가 재생되다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고 또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시부모님과 저도 이전에 같은 부서 동료여서 두 집안은 서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착하고 겸손하며, 업무 능력도 좋아 인품과 평판이 다 좋았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저와 우리 가족에게 너무 잘해줬습니다. 그 시절 저는 행복한 삶에 빠져 그 온정을 즐겼습니다.

사람은 오곡을 먹고 살며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아들이 두 살 반이 될 무렵, 저는 흉벽 결핵에 걸렸고 병변은 가슴 왼쪽 뒤, 심장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병변이 부어오르고 염증이 생기면서 심장에 영향을 미쳐 기침, 발열, 통증, 가슴 답답함 등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입원을 하고 세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병든 갈비뼈 부위를 6cm 정도 제거했고 의사가 직접 제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퇴원하고 회복하던 중에 같은 쪽에서 또 흉막 결핵 진단을 받았고 약을 먹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장기간의 약물치료로 인해 위장과 간, 눈에 모두 염증이 생겼고, 신경쇠약에 시달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아이가 어려서 어머니가 돌봐주셨고, 나중에 남편이 타지로 발령받아 휴일이나 회사 회의가 있을 때만 집에 며칠 묵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들었고, 별로 무겁지 않은 물건도 들 수 없어서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왜 사는지 몰랐습니다.

1996년 8월, 교외 농장에 사시던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셔서 지금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파룬궁이 얼마나 좋은지 말씀하셨고 건강에도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신 ‘파룬궁’ 책을 단숨에 읽었고 책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공법은 정말 좋구나. 수련 성공하면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어 생명이 영원히 존재하고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저에게 가부좌하고 정공을 연마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저는 바로 입정(入靜)에 들어갔는데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연공을 마친 후 기분이 상쾌하고 온몸이 홀가분해졌으며 힘이 생겼습니다. 어느새 모든 질병이 사라지고 이때부터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좋아지고 활력이 넘쳐서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1998년 직장 정기 건강검진에서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고, 특히 잘라냈던 갈비뼈 부위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멀쩡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본 의사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2. 박해에도 내 편이 되어준 남편

남편은 제가 병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한 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기적을 목격했기에 제 수련을 무조건 지지해줬습니다. 나중에 남편은 타지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다른 성으로 발령을 받았고, 휴가 때나 회의가 있을 때만 며칠간 집에 돌아왔습니다. 비록 대법을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초기에 항상 저를 이해하고 지지해줬으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에서도 협조해줬습니다.

박해 초기에 대법제자들은 각종 방식으로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정의를 되찾기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고, 두려움에 빠진 중국공산당은 각지 대법제자들을 주시하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고 각 기관과 회사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 기관장이나 회사 책임자도 연루될 거라고 협박했습니다.

2000년 2월 2일 설날 직전, 저는 수련생 4~5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가던 중에 경찰에 납치돼 현지 파출소로 끌려갔고, 구치소에 55일간 불법 감금됐습니다. 제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또 제 가족에게서 4천 위안(한화 73만 원) 가까이 빼앗아 갔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후 직장 상사는 남편을 찾아가 그에게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저를 지키고 다시 베이징에 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지키지 못하면 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상사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위법이고 헌법은 신앙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이 혜택을 입은 것은 사실이고, 저 역시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는데 이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고, 아내의 수련도 이해하고 지지해줄 겁니다. 이건 아내의 자유입니다!” 이 말을 듣고 상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할 파출소 경찰은 여러 차례 남편을 찾아가 박해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모두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한 박해 상황에서 남편의 이런 행동은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어느 한번 수련생을 구출하고 있을 때 남편이 마침 휴가여서 집에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운전해줬지만 그때 우리 몇몇 수련생이 같이 납치되면서 그도 납치돼 20일간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습니다. 나온 후 남편은 외지로 출근했고, 저는 집에 돌아오자 그를 만나러 외지로 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우울해했고, 더 이상 대법제자의 일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보기에 기분이 좀 가라앉았을 뿐 별문제는 없어 보여서, 저는 남편의 감정을 소홀히 하고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바삐 보냈습니다.

3. 가정에 시련이 닥치고 남편이 이혼을 제기하다

저는 여러 차례 중공(중국공산당) 경찰에 납치돼 박해받았고, 불법 감금과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가족들은 경찰의 협박을 받아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저 때문에 불안에 떨었습니다. 남편도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저는 몸과 마음을 거의 다 수련생을 돕고 대법을 실증하며 세인을 구하는 데 쏟았지만, 가족과 생활은 소홀히 대했습니다.

어느 해 명절 휴가 때 남편이 돌아와 갑자기 저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다른 여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고 더 이상 저와 함께 이렇게 불안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많이 놀라긴 했지만 마음은 놀랄 정도로 차분했고, 난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남편과 대화하고 이치를 얘기했으며 그도 조용히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혼할 수 없어요. 우리 부부는 여태껏 매우 화목했는데 어떻게 단번에 이혼할 수 있어요? 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이지도 못해요.” 남편은 알았다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타지로 일하러 갔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 이 일만 생각하면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으며, 분노가 치밀면서 그와 불륜을 저지른 여자를 원망했습니다. 남편은 중공의 박해에 연루돼 오랫동안 우울함과 불안 속에서 살았기에 모두 이해됐습니다. 하지만 그가 외도하고 게다가 이혼까지 제기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겪었던 우여곡절을 돌이켜보며 저는 우리의 부부 관계를 소중히 여기게 됐고 이 가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감정을 조절하고 진정시켰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이혼은 인생에서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친구와 가족들이 어떻게 보고, 동료와 이웃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법을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했고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여전히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련생과 함께 꾸준히 법공부와 교류를 하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공산당 조직 탈퇴를 권했으며,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 협조하고, 타지 성(省) 감옥에 갇힌 수련생을 만나러 갔습니다. 당시 아이가 두 번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모두 제가 지켰고, 병업 상태에 처한 어머니 수련생도 돌봐야 했기에 누군가 좀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집에 돌아가 혼자 있으면 가정의 시련에 직면해야 했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고생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아서 심장을 도려내듯 괴로웠습니다. 고난은 오랫동안 지속됐고 그사이에 남편은 여러 번 집에 돌아와 이혼을 제기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얘기하면 이혼하지 않는 데 동의했지만 타지 직장으로 복귀하면 또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 사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남편이 집에 오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몇 년간 끊임없이 정념으로 질투심, 원망심, 쟁투심, 색욕심 등을 제거하고 반복해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그 중의 이해관계를 설명해줬습니다. 또한 그 여자에게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심신이 힘들면 가끔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혼하자면 그냥 하자. 뭐가 대수야!’

한번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저는 현지 부부 수련생과 약속을 잡고 남편과 함께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부부 수련생은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돌아온 후 좀 언짢아했습니다. 그 뒤로 집에 거의 오지 않고 이혼 얘기도 꺼내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그가 일하는 곳에 가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저는 며칠 같이 있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은 제가 법을 얻은 곳이고, 여기에 익숙한 수련생들이 있으며 제가 구해야 할 인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잠결에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른 시공간에서 저는 남자였고 집에 아내가 있지만 집을 떠나 아내를 버렸습니다. 결국 아내는 애처로운 기다림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의 원신(元神)은 이미 떠나간 지 오래됐고, 다가가 얼굴을 가린 흰 천을 벗기자 이번 생의 남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단번에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제야 제가 맞닥뜨린 부부의 난은 구세력이 이미 배치한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단순한 개인 수련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법 수련이고 저는 조사정법, 중생제도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배치는 대법이 승인하지 않고, 대법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는 것입니다. 꼭 법을 스승으로 삼아 사람마음을 닦아버리고 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 가정의 시련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세력은 제 사람마음을 붙잡고 시험이라는 명의로 수련인의 명성을 더럽히고, 더 나아가 일부 중생을 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 부정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더 이상 남편이 집에 오는지에 관해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 대한 정을 담담히, 또 담담히 내려놨습니다.

제가 이 일을 내려놓은 뒤 새해에 남편이 갑자기 돌아왔고, 그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장도 보고 요리도 했습니다. 제 마음은 아주 평온했고 그가 돌아온 것이 정상이고 모든 것이 꿈처럼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4. 관계를 바로잡고 가정 환경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남편이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저는 몇 년간 거의 혼자 살았습니다. 새벽 3시 10분에 연공을 시작해 6시 10분에 발정념까지 마쳤고, 오전에 여러 법공부 팀에 참가했습니다. 한 법공부 팀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해서 오전 시간이 매우 촉박했습니다. 점심 12시 발정념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식사했고, 오후에는 밖에 나가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하거나 중생을 구하는 항목과 관련된 일을 협조하러 나갔습니다. 저녁에도 팀 법공부에 참여해서 보통 9시가 넘어 돌아오지만 가끔 교류가 있으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거의 매일 이러했습니다.

혼자 살 때는 간단히 식사하고 쉽게 집안 청소를 마쳤지만, 남편이 돌아오니 반찬을 너무 간단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위해 여러 음식을 만들어야 했고, 방이 세 개인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방 하나만 청소했지만 이제는 모든 방을 청소해야 했습니다. 집안 환경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도 법을 실증하는 것이기에 매일 하루 세끼를 준비하고 집안일도 다 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가끔 수련생이 오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저녁 법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기도 했고, 늘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낮에 법공부 팀에 참가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불규칙해서 우리 둘은 만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남편은 가끔 불평했습니다. “당신은 총리보다 더 바쁘고 집이 거의 숙소가 됐네. 왜 이렇게 살아? 한밤중에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달가닥거리는 설거지 소리가 이웃을 방해하지 않겠어? 조금 늦게 가면 안 돼? 설거지하는 그 몇 분 시간도 낼 수 없어? 아니면 아예 가지 마!” 저는 대꾸했습니다. “제가 꼴 보기 싫으면 당신이 하고, 하지 않을 거면 아무 말도 마세요. 당신이 수저를 사용하는 데 지장 주진 않았잖아요.” 말하고 나서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남이 날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원망심, 쟁투심이 있었습니다.

“안 가면 안 돼? 늦게 가면 안 돼?”라는 남편의 의문에 저는 똑똑히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사과했고 이유를 설명해줬습니다.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늦게 집안일을 하면 이웃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 당신 말이 맞아요. 앞으로는 제때 끝내도록 노력할게요. 하지만 늦게 가선 안 돼요. 전 세계 대법제자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발정념을 하기에 그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고, 늦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줘요. 또 저녁 법공부 팀은 거의 다 노년 수련생들이어서 매일 제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게다가 노년 수련생들이 각각 다른 병업 상태가 나타났어요. 예를 들어 A 수련생은 고혈압과 심장병 증상이 나타나 보름간 집에서 나가지 못했고, B 수련생은 뇌졸중 상태가 나타나 걸으면 바로 넘어졌어요. C 수련생은 아래로 내려가거나 걸을 때 숨이 차고 기침이 나며, 때로는 숨을 쉬지도 못해요. 박해 환경에서 다들 기분이 답답해 제가 돌아가면서 그녀들 집을 찾아가 법공부를 하고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서로 잘 수련하려고 하고 있어요. 열흘 정도 지나자 그녀들의 상태는 점차 호전됐고, 정상적으로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어요. 대법은 이렇게 신기해요.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정말 시급해요!”

남편에게 원인을 똑똑히 설명하면서 남편 역시 대법을 위해 온 생명이라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아직 수련하지 않지만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대법제자의 시간은 너무나 급박하고 소중하기에 만약 가족들이 대법제자의 일과 집안일을 분담한다면 이것 역시 그들이 서약을 지키고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수련하는 동시에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남편이 일부 수련생을 알고 있기에 안전에 주의했고,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 수련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차츰 남편은 제가 하는 일과 그 이유, 그리고 어떻게 저를 협조해야 하는지 이해했습니다. 저는 법공부하거나 일을 보러 나갈 때 남편이 안심할 수 있도록 대략적인 위치와 귀가 시간을 알려줬습니다. 예전에는 집안일, 장보기와 요리를 모두 제가 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할 수 있는 만큼 해줘서 부담이 줄었습니다. 가끔 외출하기 전에 남편에게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남편은 “괜찮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언제 돌아와도 상관없어. 식사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당신은 안전에만 신경 써”라고 말합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저는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고 그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단지에서 낡은 건물을 개조하면서 지붕을 수리하려 했습니다. 우리집 신탕런 위성 안테나가 옥탑 굴뚝 벽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저는 남편에게 떼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붕을 수리하면 안테나가 파손될 수 있기에 그 전에 떼어내야 해요.” 어느 날 오후 집에 돌아와 보니 크레인이 이미 우리 건물 앞에 있었지만 안테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를 내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왜 아직도 안테나를 떼어내지 않았어요? 이제 곧 공사를 시작하려고 해요.” 남편은 말했습니다. “오늘은 공사를 안 한다고 했어.” 저는 “크레인이 다 올라갔는데 왜 안 하겠어요?”라고 말했고 우리 둘은 말하면서 안테나를 떼어냈습니다. 저는 곧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돌아와서 남편에게 사과했습니다. “방금 말투가 좋지 않았는데 제가 잘못했어요. 20년 넘게 수련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러네요.” 그러자 남편은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련을 잘했어!”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늘 짜증을 냈기에 오늘 이렇게 차분하게 대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남편이 진심으로 대법제자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많이 있었고, 이러한 일들을 통해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닦았습니다. 그런 제 변화를 보고 남편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 남편은 진심으로 저와 협조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어떤 일이 생기거나 집에 수련생이 와서 법공부 팀에 갈 수 없게 되면 남편은 법공부 팀에 가서 알려줬고, 수련생에게 물건을 갖다주기도 합니다. 어떤 수련생 집은 제가 가본 적이 없어 길이 익숙하지 않으면 저와 함께 갔고, 제대로 찾은 것을 확인하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제 일을 협조해준 건 저를 도와주고 부부의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와 협력해 일을 하고 있고, 대법이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누구의 일이든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남편은 대법제자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고, 조사정법과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대법 수련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몸과 마음은 어느 정도 대법제자의 환경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금 저는 온 마음을 다해 법을 실증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시간제한도 없고 정신적 부담도 없이 매우 편안합니다. 저는 수련 환경과 마지막 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이고, 더욱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자신을 잘 닦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사부님께서 걱정을 덜고 기쁨을 좀 더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2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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