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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을 선천적인 본성으로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 수련자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속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각종 사회관계가 발생할 때, 개인 이익을 위해 나쁜 일을 하는데, 빚진 것은 곧 감당하고 갚아야 한다.”(전법륜) 오늘 이 단락 법을 외우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96년 어느 날, 상사로부터 저를 포함한 직원 3명에게 어느 한 대학에 가서 특정한 주제로 강의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전공에 따라 강의 준비를 한 후, 3일간 연속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모두 끝난 후 학교 측은 만족해했는데, 특히 제 강의에 대해 좋게 평가했습니다. 사실 저는 고급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사용해 일부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청중이 서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도록 쉽게 말했을 뿐입니다.

몇 개월 후 그 대학은 저에게만 같은 주제의 강의를 다시 한번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다른 두 동료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으므로 그 분야까지 강의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저는 좀 당황했지만, 상사는 이미 승낙했으니 강의 준비를 차질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두 동료를 찾아가 강의 자료를 협조해달라고 했고, 평소 사이가 좋았던 그들은 흔쾌히 관련 자료를 제공해줬으므로 저의 두 번째 강의도 매우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제 강의 내용을 전부 녹화해서 다음부터는 학생들에게 녹화 영상을 틀어주기만 하면 된다면서 매우 만족해했습니다. 강의 때 학교 측은 저의 식사, 숙박, 교통편 등 모든 일정을 세심하게 신경 써줬고, 돌아올 때 강의비로 500위안을 주었는데 당시는 상당히 큰 액수였습니다.

강의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융숭한 대접까지 받은 터라 저는 뿌듯한 심정으로 직장에 복귀했습니다. 처음에는 강의비를 자료를 제공해 준 두 명의 동료와 나누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준 자료를 강의에 활용하긴 했어도 많은 시간을 들여 정리하고 강의했으며, 저 혼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니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돈을 혼자 가지려고 하자 좀 찜찜했지만 며칠 후 다 잊어버렸습니다. 당시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법 인식이 깊지 못했으므로 자신에게 요구하는 심성도 높지 않았습니다.

어느 일요일,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700위안을 지갑에 넣고 상업 중심지에 있는 한 상가에 갔습니다. 2층 신발가게에서 신발 두 켤레를 사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할인 코너에서 상품을 살피다가 지갑이 없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2층에서 신발을 살 때 안 주머니에 있던 700위안이 들은 지갑에서 200위안을 꺼내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 70위안을 작은 지갑에 넣고, 큰 지갑은 역시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겉주머니에 넣은 작은 지갑만 있었을 뿐, 안주머니에 단단히 넣어두었던 큰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시 2층 신발가게로 가서 여러 곳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돈을 잃어버려 낙담한 저는 즉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습니다. 평소 늘 모든 일에 신경 쓰면서 꼼꼼하게 챙겼으므로 지금까지 뭘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깥 주머니에 있는 작은 지갑은 그대로 있는데, 안주머니에 안전하게 넣어뒀던 큰 지갑이 없어진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잃어버린 지갑의 돈이 500위안이고, 받은 강의비도 500위안이라는 걸 떠올리자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돈을 혼자 갖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여기라고 하셨는데, 왜 깨닫지 못했을까? 속인 중의 군자는 돈을 좋아해도 도리에 맞지 않는 돈은 취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수련자인 나는 돈에 그렇게 집착했으니 속인만도 못한 게 아닌가? 동료들의 학술적 업적을 이용해 번 돈을 혼자 가지려 했으니 그게 표절이고 착취 아닌가? 어찌 수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깊이 자책했습니다. 저는 또 ‘만약 사부님께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었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로 날 깨우쳐 주시지 않았다면 이후 빚을 갚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수련 과정에서 늘 명예와 이익을 닦는 문제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직장에서 승진이나 수상 기회를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으며, 이익을 담담히 보고 모든 일은 순리대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도 부지불식간에 드러나곤 해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마음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때때로 크고 작은 일에서 반영되곤 합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연근을 살 때 진흙물이 묻어있어서 좋은 것으로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젊은 여자도 연근을 고르면서 큰 연근을 들고 “어떤 게 좋은 거죠?”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먹을 거냐에 따라 다르다고 하자 무쳐 먹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럼 앞부분이 좋은 것으로 골라야 해요. 뒷부분은 퍽퍽해서 찜용으로 사용하죠.” 그녀는 제 말을 듣고 들고 있던 길고 큰 연근을 놓고 다시 골랐습니다.

저는 한참 고르다가 한쪽은 막혀있고 다른 한쪽은 구멍 부분이 하얗게 보이는 좋은 것을 고른 다음,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이런 연근이 좋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그녀에게 필요한 연근이 바로 이런 건데 양보할까?’라고 생각하다가, ‘어렵게 고른 건데 굳이 양보할 게 뭐야’라는 생각에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곧바로 후회했습니다. 밖에서 만나는 모든 낯선 사람, 특히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우리와 인연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녀와 우연히 만난 것 같지만 아마 단순한 만남이 아닌 배치였을 것입니다. 그때 그녀에게 좋은 연근을 양보하면서 ‘지금 젊은이들은 직접 요리하는 게 귀찮아 배달을 많이 시키는데, 직접 장을 보아 요리하면 깨끗하고 저렴해서 좋아요’라고 말했다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도 시킬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주위에는 사람도 많지 않아 말하기도 좋았습니다. 저는 조그마한 이익만 생각하고 사람을 구할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는 사부님과의 서약을 어긴 것으로 죄와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수련했어도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속인 마음이라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부님께서 모든 일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지만, 제 행동은 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므로 사부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면 반드시 이기심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제가 이기심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하는 것은 배후에 그것을 지지하는 구(舊)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특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구우주에 오염되어 이기적인 특성이 있는 생명은 환골탈태해 ‘사(私)’의 속박에서 벗어나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되어야만 하고, 신우주의 각자(覺者)가 되려면 오직 대법에 동화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멀고 어렵다고 해도 저는 그 목표를 향해 꿋꿋하게 걸어 나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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