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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고생 끝에 낙, 햇빛 가득한 내 인생

글/ 후베이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1946년에 태어나 고달픈 인생으로 여러 번 죽으려 했지만 죽지 못해 살던 나는 1998년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게 됐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내 인생이 칠흑 같은 어둠이라면, 수련 후 나는 햇빛이 찬란한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

1. 살길이 없던 비극적인 인생

80년대, 나는 작은 도시에서 직원 한 명을 데리고 미용실을 운영했다. 하루 매출이 공무원 한 달 월급 정도 될 때도 있어서 돈은 많이 벌었다. 그때 나는 건강이 안 좋아 수입은 모두 남편이 관리했다. 남편은 일자리가 있었지만 춤과 포커 게임을 좋아했고 우리는 두 아들을 키웠다.

1987년 6월 19일, 친정집 동네 애들과 같이 물놀이 나간 큰아들은 물에 빠져 숨져 주검을 돌아왔다. 16살 어린 아들을 잃은 나는 너무 비통해 정신이 멍해졌다. 남편은 남동생을 탓하면서 칼을 들고 남동생을 죽이겠다고 야단법석이었고 나는 매일 두려움과 고통에 쌓여 온종일 눈물만 흘렸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또 폭력을 가했다.

이듬해 남편은 아이를 하나 더 낳겠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는 42세이고 아들 둘을 낳은 후 네 번 유산해 온몸이 병밖에 없었다. 자궁근종, 담낭염, 류머티즘, 기관지염, 간염, 위장병, 요추 변형, 큰 혹, 내치질, 외치질, 백혈병, 체온저하, 출혈성 치은염, 다크서클, 누런 안색에는 청색이 비쳤고, 160cm 넘는 키에 체중은 25~30kg밖에 안 됐다. 나는 남편에게 나이도 많고 몸도 안 좋아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자 남편은 나와 이혼하고 집과 작은아들은 자기가 갖겠다고 했다. 이 몇 년간 내가 번 돈은 다 써버렸다며 빈털터리로 내쫓았다.

나는 이렇게 넋을 잃고 빈털터리로 집을 나와 미용실에 묵었다. 남편은 놀기 좋아하고 작은아들을 챙기지 않아서 작은아들도 나와 같이 미용실에서 살았다. 맞은편 가게 안주인은 나를 불쌍히 여겨 작은아들이 있으니 아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라고 했다. 나는 인생의 괴로움을 모두 맛보고 업신여김도 많이 당했다. 어떤 남자 손님은 집적거리고, 불량배들은 계산을 안 하고, 이혼한 남편은 돈이 떨어지면 가게로 와 돈을 요구하고 먹고 자며 뻔뻔스럽게 행동했다. 직원도 날 속이고 가게 매출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12월 어느 날 저녁, 큰아들의 친구가 미용실에 왔는데 나는 죽은 큰아들이 생각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큰아들의 친구가 나간 후 나는 넋을 잃고 그를 따라나섰다. 앞에서 걸어가던 아들 친구가 보이지 않자 나는 길을 따라 걷고 걸어 눈에 신발이 젖고 머리가 젖는 것도 모르고 날이 밝아서야 제정신이 들어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 문은 열려있고 불은 켜 있었으며 작은아들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가끔 정신을 놓고 살아서 가게도 열 수 없었다. 전 남편의 소란을 피해 집을 다시 짓기로 했다. 이웃들이 날 업신여겨 우리 집 마당을 침범해도, 우리 집 건축자재를 도둑질해도 나는 그들과 싸우지 않았다. 집이 완공되자 나는 벽돌로 창문을 막아 놓고, 대문을 만들고, 인테리어도 하지 않고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벽돌을 쌓아 널빤지를 놓고 침대로 사용했다. 비록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집이 생겼다. 전 남편은 집에 들어올 수 없어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나는 광주리를 메고 채소를 팔아 작은아들을 키웠다.

1998년 6월 19일 오전, 작은아들은 남동생 집에 심부름을 갔다. 남동생 집 앞 연못에 오리가 한 마리 날아왔는데, 동네 아이들은 보고 잡으려 했고 작은아들도 오리를 잡으려고 연못에 뛰어 들었다. 작은아들이 연못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남동생과 마을 젊은이들이 연못에 들어가 작은아들을 건져 내고 동네병원 의사도 왔지만 작은아들은 이미 호흡이 멈췄다. 그때 작은아들은 16살이었는데 11년 전 큰아들이 죽을 때도 16살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이다. 나는 너무 울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시력도 나빠져 1m 앞 사람도 그림자밖에 안 보였다. 나는 살길이 안 보여 빨리 죽고 싶었다. 담낭염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침대에 누워 48일간 쌀 한 알도 먹지 않았지만 죽지 않았다. 쥐약을 죽에 넣고 먹어도 모두 구토해 죽지 못했다. 밭에 있는 우물에 사람이 빠져 죽은 적이 있어 어두운 밤에 우물에 뛰어 내렸지만 죽지 못했다.

70세 넘은 아버지와 임신 중인 여동생이 돌아가면서 날 지켰다. 나는 아버지에게 나를 죽게 하지 못하면 절로 보내라고 했다. 아버지는 답답하고 마음이 너무 괴로워 집에 돌아와 농약을 먹고 자살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라고 생각했다. 여동생은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밤낮 나를 따라다녔다. 내 인생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다.

2. 사부님의 제도로 광명을 찾다

뒷집에 사는 할머니가 파룬궁만이 날 구할 수 있다며 파룬궁을 소개해주셨다. 여동생에게 등을 떠밀려 이웃과 함께 파룬궁을 배웠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파룬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선량해 시간이 나면 날 위로해 줬다. 강당에서 사부님 설법 동영상을 하룻저녁 들었지만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수련생들의 교류내용을 들을 때도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때 나는 쓰라린 내 인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수련생들은 나와 함께 보도원 집에서 연공동작을 배웠다. 하루에 한 장씩 배웠고 나는 동작을 잘 배우고 집에 와 구결도 적어놨다. 연공 동작을 자주 연습해 1~5장 연공 동작을 5일 만에 모두 배웠다. 수련생들은 나와 같이 법공부도 했으며 모든 것을 생각해 주고 방석도 나에게 주고, 제일 밝은 탁상등도 나에게 주는 착하고 온화한 에너지장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지? 난 지난 인생에서 업신여김만 당했지만 여기는 아주 깨끗한 세상이구나. 내 인생에 이제야 밝은 날이 찾아왔구나.’ 나는 수련하기로 마음먹고 수련생들과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하자고 요청했다.

우리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할 때 한 사람당 두 페이지를 돌아가면서 읽었다. 몇 명 혹은 몇십 명 수련생들이 둘러앉아 법공부를 할 때 순방향으로 돌아도, 역방향으로 돌아도 ‘전법륜’ 제6강 204페이지와 205페이지를 읽는 차례는 늘 나에게 왔다. 그 부분 내용을 보고 매번 나는 눈물이 나 읽을 수 없었다. 수련생들은 나를 건너뛰어 순서대로 읽었고 이렇게 ‘전법륜’을 9번 읽자 또 내 차례가 왔다. 다음 차례 수련생이 나를 도와 읽으려고 할 때 나는 ‘난 수련하겠다, 난 법을 읽겠다’라고 깨달았다. 나는 ‘전법륜’을 들고 큰 소리로 사부님의 이 부분 법을 읽었다.

“자심생마는 또 기타 정황이 있다. 세상을 떠난 친인(親人)이 교란함을 보게 되는바, 울며불며 당신에게 이런 일ㆍ저런 일을 하라고 하는데, 어떤 일이든 다 나타난다. 당신이 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이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사랑한다. 당신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지만……, 모두 할 수 없는 그런 일들로서 당신이 한다면 잘못되는데, 연공인(煉功人)은 바로 이렇게 어렵다. 사람들은 불교가 혼란하다고 한다. 유교의 것도 불교 중에 들어갔고, 무슨 부모 효도ㆍ자식 정 같은 것조차 들어갔는데, 불교 중에는 이런 내포(內涵)가 없다. 무슨 뜻인가?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왠선)이기 때문에, 당신의 元神(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 하게 한다.”[1]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내 정마(情魔)를 제거해주셨고 내 마음의 열쇠를 열어주셨다. 불법(佛法)이 내 암흑세계를 밝혀줬고 나는 마침내 광명을 봤다.

사부님께서는 ‘진선인(真·善·忍)’을 가르치시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좋은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확 트였다. 법을 얻은 지 며칠 되니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셨다. 나는 구토가 심해지고 사지가 굳어졌다. 나는 ‘사부님, 저는 이 관을 넘을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하며 수련생 집으로 걸어가 녹음 강의를 듣는 것을 견지하자 이틀 만에 호전됐다.

3. 조사정법(助師正法), 마굴에서 도망치다

행복한 시간은 항상 빨리 지나간다.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우리 지역에도 많은 수련생이 베이징에 가 대법을 수호했다. 나도 가려 했고 ‘전법륜’과 옷 두 벌을 챙기고 수련생들과 베이징에 갈 것을 약속했다. 나는 여동생 아이를 돌보고 있어 아이 옷도 챙겼다. 남동생에게 베이징에 간다고 얘기하니 그는 너무 놀랐고 사당(邪黨: 공산당)은 어떤 나쁜 일도 할 수 있다면서 날 말렸다.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청원할 거야!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못 하게 하지? 법을 얻기 전에 나는 16가지 병에 시달렸어. 저녁마다 잠이 안 와 밖에서 맴돌고 살고 싶지 않고 살길이 안 보여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 넌 몰라? 이런 날 사부님께서 구해주셨어. 파룬따파가 나를 살렸어. 내가 청원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 죄송하고 양심도 없는 거야. 나는 아이랑 같이 베이징에 갈 거야.” 남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수련생들은 하나둘씩 모두 베이징으로 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날 부르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베이징에 가기 불가능하자 나는 집에서 조사정법을 하자고 생각했다.

베이징에 대법을 수호하러 간 수련생들은 하나둘씩 경찰에 잡혀 돌아와 구치소나 유치장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도시에 사는 수련생도 있었고 시골에 사는 수련생도 있었으며 안면이 있는 수련생도 있었고 안면이 없는 수련생도 있었다. 5일, 10일 ‘면회일’이 되면 나는 계란과 건두부를 만들어 구치소 문 앞에서 수련생 가족을 기다렸다. 사부님 경문을 음식에 넣고 휴지에 넣어 불법 감금된 수련생들에게 사부님의 법을 보여줬다.

이렇게 주변 지역 수련생과 가족들은 날 알게 됐고 시내와 시골 수련생들은 정체(整體)를 이루고 공동정진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해 각종 진상자료, 현수막, 접착식 홍법자료 등을 제작해 중생을 구했다.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어 우리는 자료점을 설치했다. 우리가 만든 자료는 주변의 몇 개 성(省)에도 전달됐다. 이후 사악의 박해로 나는 납치돼 세뇌반과 구치소에서 엄격하게 관리당했다. 독방에 감금되고 돌아가면서 심문을 당했고 다른 사람과 대화가 금지됐다. 사악은 나에게 9년 이하 판결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니 날 감옥에 넣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 법공부를 하고 조사정법을 하며 사악이 날 박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심이 없고 법공부와 중생을 구하는 것만 생각했다.

나는 단식하기로 마음먹고 사부님께 도움을 구했다. ‘여기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단식 8일 후 내 심장은 거의 뛰지 못하고 호흡도 정지되는 것 같았으며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는 아주 명석했다. 구치소장은 한편으로는 응급조치로 링거를 놓고 한편으로는 공안국에 보고했다. 감옥 의사, 공안국, 감찰원, 법원, ‘610(파룬궁 탄압기구)’ 5곳에서 사람이 왔으며 구치소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집으로 돌려보내겠다 하고 610은 안 된다고 했다. 또 하루 시간이 흘러 610은 남동생을 불러 돈을 요구했다. “우리 누님은 올해 60세고 시집간 지 몇십 년이 됐어. 그런데 나보고 돈을 내라고? 나는 농민이고 돈이 없어. 오늘 누님이 숨이 붙어 있어 다른 말은 안 하겠지만 누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610’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목숨이 한 가닥 남은 나는 자기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수련생이 해준 음식을 먹고 체력을 회복했다. 그날 저녁 다른 수련생이 날 보러 와 단식으로 나온 것을 알고 사악이 또 찾아올 수 있으니 바로 집을 떠나라고 했다. 수련생들은 여기저기로 알아보고 당일 저녁으로 날 다른 곳으로 가게 했다. 여동생이 소식을 듣고 날 안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 봐 통곡하며 울었다. 나는 여동생을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어. 수련생들도 모두 친형제처럼 나를 잘 대해 줄 거야.” 이렇게 나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4. 신사신법을 하니 기적이 나타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남방 도시로 가서 여동생의 아이들을 돌봤다. 한동안 내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봉사하는 의사가 혈압을 측정해줬다. 측정이 끝나 길을 가려는데 갑자기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가지 마세요. 뇌혈관이 막혀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내가 돈이 없다고 하자 의사는 돈을 받지 않을 테니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도우미를 하고 있고 집에는 두 아이가 밥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들만 집에 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의사는 내 손을 놓아줬다.

나는 어떻게 집으로 걸어왔는지 기억이 없다. 집에 도착하자 하늘땅이 돌아가고 구역질이 나서 아이에게 사과를 주고 침대에 누운 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법을 계속 외우면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는 죽으면 안 된다. 나는 대법을 파괴하면 안 된다.’ 오후 내내 이렇게 누워 있었고 침이 흘러 베개가 모두 젖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여동생은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제부를 불러왔다. 제부는 뇌출혈이라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니 안 간다고 했다.

나는 대법제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어디에 가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여동생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날 병원에 데리고 가면 한 사람은 집에서 아이들을 봐야 하고, 한 사람은 집과 병원에 다녀야 하며, 한 사람은 병원에서 날 간호해야 해. 세 명이 필요한데 할 수 있겠니? 나는 MP3 하나면 돼. 사부님 설법을 들으면 돼.” 제부는 반신반의하면서 나에게 MP3를 건네주고 동생은 내가 편하게 앉게 이불을 등에 받쳐줬다. 나는 4일간 사부님 설법을 듣고 약 한 알 먹지 않고 회복했다. 여동생과 제부는 대법의 기적을 목격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2018년 겨울 어느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같이 4시에 일어나 연공했다. 갑자기 흑색물질이 나에게 몰려와 내 몸을 감쌌는데 심장 부위 밥그릇 크기만큼을 제외하고 전부 흑색 물질로 덮였다.

‘사부님, 절 구해주세요!’ 나는 속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고 ‘홍음’을 외웠다. “만 리를 질주하며 요괴 진 쳐부수나니 흑수(黑手) 모조리 자르고 악한 신을 제거하노라 자욱한 안개 광풍 일 테면 일어라 한 줄기 산비(山雨)는 원정의 먼지를 씻어내네”[2].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정진하며 멈추지 않노라 법을 어지럽히는 귀신 없애고 중생을 선하게 대하노라”[3].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4]. 이렇게 법을 외우면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오른손에 뱀 머리를 잡고 있는 느낌이 들어 속으로 그 뱀을 죽인다고 염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됐고 12시간 정도 흑색물질과 싸웠다.

오후 2시에 단체 법공부가 있어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솜옷을 걸치고 법공부하러 갔다. 수련생들은 내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소파에 앉게 하고 법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내가 읽을 순서가 왔으나 나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고, 두 번째 나는 두세 글자를 읽을 수 있었으며, 세 번째는 한 구절을 읽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한 장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법공부에 참가하는 것을 견지했다. 피를 토하고 있었지만 다른 수련생들을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피를 토한 휴지는 빨간색 비닐봉지에 넣어 버렸다. 이렇게 2주 정도 고생 끝에 정상으로 회복됐으며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다녀 그 누구도 내가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다.

2019년 6월, 내 가슴에 큰 농포창이 생겨 간지럽고 아프고 냄새도 독했다. 얼마 안 되어 이 농포창은 온몸으로 퍼져 정상적인 피부가 전혀 없었다. 나는 매일 연공을 견지했다. 고름이 나와 옷과 피부가 달라붙어 옷을 갈아입을 때도, 연공할 때 몸을 펴는 ‘천[抻]’ 동작을 할 때도 관절 피부가 모두 갈라져 찢어졌다. 나는 너무 괴로워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괴로울수록 나는 연공과 발정념을 많이 했다. 매일 연공을 2세트 했다. 상황이 심할 때는 옷을 입을 수 없어 낡은 침대보를 걸쳤다. 보이는 현상은 아주 심각했지만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자 정신상태는 아주 좋았다. 나는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계속 안으로 찾았다.

어느 날 한 모녀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왔다.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았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외로움, 아들에 대한 그리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강아지가 어미 곁에 의지해 있는 것을 보면 내 불쌍한 두 아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외롭지 않아요. 당신은 그렇게 많은 중생을 구했는데 그들도 당신 가족이 아닌가요?” 내 매듭은 한순간에 풀렸다. 나는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다. 왜 아직도 이러한 것을 놓지 못하는가?

병업관을 넘고 정(情)의 고비를 넘는 이 기간에 관할구역 공무원들이 날 찾아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핑계로 사진을 찍고 서명을 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줬지만 당신들은 날 세뇌반에 감금하고 물컵에 독약을 타 날 죽이려 했어요. 당신들이 날 이렇게 대하면 벌을 받을 겁니다.” 며칠 후 그들은 또 우리 집에 와서 으름장을 놨다. 내가 미신을 믿고 약을 먹지 않으며 죽으면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죽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독약은 당신들이 넣은 것이고 사부님께서 그 독을 제 체내에서 빼주셨습니다. 저는 좋아질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해 설날 후 완치됐다. 전신의 피부는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고 피부결은 더욱 좋아졌으며 공무원들도 내 변화에 매우 놀라며 우리 집에 와 날 교란하지 못했다.

나는 매번 관을 넘을 때마다 꼭 신사신법, 정념정행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병업으로 생사의 순간에 처할 때도, 사악이 난폭하게 박해하고 있을 때도, 사부님에 대한 정신(正信)하는 정도가 제자의 정념의 강도를 나타내며 표준에 도달하면 순조롭게 관을 넘을 수 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무궁한 지혜가 기적을 나타낸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정벌’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정신’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정념정행’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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