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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갑시다, 우리 함께 사람을 구하러 갑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올해 62세로 2001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습니다. A수련생은 66세 가정주부이고 남편은 69세 수련생입니다. 정념이 강한 A는 위험한 일에 부딪혀도 놀라지 않고 진상을 잘 알립니다. 저는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그녀를 만나 함께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린 지 이미 2년이 됐습니다. B수련생은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주면서 가끔 길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전염병이 발생해 각지에서 핵산검사, QR코드 검사 등을 요구하는 등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길에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농촌에 주로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하면서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2~3km 정도의 밭길을 따라가면서 농민이나 공사현장 근로자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오가는 길이 멀어 중간에 배터리 충전이 필요했기에 수련생의 도움으로 수련생 집, 또는 수련생이 관리하는 간이주택 등 충전할 수 있는 장소를 몇 군데를 선정하고, 그곳에서 물을 마시거나 챙겨온 도시락을 먹었으며, 시간이 늦으면 그곳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말, 우리는 B의 고향 집에 가서 밍후이 달력을 나눠주며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45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매주 화, 목요일 A와 함께 아침 발정념을 마치고 2시간 후 B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우리는 타고 간 오토바이를 B에게 맡겨 충전하라고 한 후 B의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달력을 나눠주며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달력 배포는 11시면 끝나는데 탈퇴 인원은 매번 30~40명 정도 됩니다.

안개 속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찾다

그날 우리가 진상을 알리러 밖으로 나갔을 때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져 B의 고향 집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몇 미터 앞 사람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우리는 달력을 들고 길을 걸으며 사부님께 “인연 있는 사람들을 우리 곁으로 안내해주십시오”라고 청을 드렸습니다.

한 마을에 도착하자 목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소리를 따라가 보니 몇몇 사람들이 밀밭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형님들, 새해 달력을 드릴게요”라고 하자 “무슨 달력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 진상 달력이에요,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선(善)을 가르치는 불가(佛家)의 대법 수련이에요. 지금 전염병이 이렇게 심한데 전염병을 피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 없잖아요. 하지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껏 염하기만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고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요. 파룬궁은 바로 사람을 구하러 온 거예요. 공산당은 우리가 좋은 사람으로 되는 것을 방해하면서 우리가 사람들을 구하지 못 하게 하고 있어요. 이제 하늘이 공산당을 소멸하려 해요. 공산당의 사악한 조직을 탈퇴해야만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 여러분 학교에 다닌 적 있으신가요? 붉은 스카프를 맨 적 있으신가요? 공산주의 청년단과 공산당에 가입한 적 있으신가요?”

그들은 모두 학교에 다닌 적이 있고 붉은 스카프를 맨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가명을 지어주고 소선대를 탈퇴시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해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마을에 도착해서도 사부님께 인연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달력을 받도록 해달라고 청을 드렸습니다. 잠깐 사이에 많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달력을 나눠주고 진상을 알렸으며 모두 삼퇴를 시켜줬습니다.

마을에서 나와 한참 길을 걸었습니다. 안개가 너무 짙어 어딘지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또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가 보니 7명이 담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진상을 알렸고 달력을 나눠줬으며 모두 삼퇴를 시켰습니다. 잠시 후 또 다른 목소리를 따라 5명을 발견하고 또 삼퇴시켰습니다.

이때 우리가 가져간 달력은 동이 났고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았습니다. 큰길로 나와 나무를 베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진상을 알리고 호신부를 나눠주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안개가 짙은 날에도 많은 달력을 나눠줄 수 있고 많은 사람을 삼퇴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자비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우리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공사장 주차장의 인연 있는 사람

어느 날 오후, 우리는 공사장 주차장에서 차를 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중 한 사람에게 “퇴근 무렵이네요. 평안을 위한 ‘호신부’를 하나 드릴까요?”라고 말하자 그는 받아 본 후 “파룬궁이군요. USB 있어요? 있으면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상이 담긴 USB 하나를 주면서 “지금 전염병이 이렇게 심하므로 우리 사부님께서 사람들을 구하라고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어요. 이 USB에 담긴 것은 목숨을 지키라고 알려주는 내용이에요” 등등을 말해줬습니다. 그는 “알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전염병은 좋은 사람들에게는 무관하므로 걱정 없어요. 전염병은 나쁜 사람들을 도태시키기 위해 온 거예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세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저는 그에게 “공산당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국가와 사람들에게 재앙을 주고 있어요. 이제 하늘은 중공을 소멸하려고 해요. 삼퇴해 목숨을 보장받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소선대에서 탈퇴했습니다.

제가 삼퇴 명단을 적을 때 “또 왔어요, 서둘러요!”라는 말소리가 들렸고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차량이 우측에 멈춘 후 기사가 창을 열고 “집에 가서 볼 수 있게 USB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차 안에 있던 노동자 4명도 하나씩 달라고 해서 진상을 알려준 뒤 모두 삼퇴를 시켰습니다.

또 한 편에 노동자 6명이 있는 걸 보고 다가가서 진상을 알리고 호신부를 주자 그중 한 사람이 A에게 “이리로 와요. 사진 한 장 찍게”라고 말했습니다. A가 “당신은 선량한 사람이니 이런 일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자 그는 웃기만 했습니다. A는 그들 4명에게 진상을 알렸고 저는 반대쪽에서 알렸습니다. 진상 알리기를 마치자 그 사진을 찍으려던 사람이 다가와 “저도 호신부 하나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진상을 말해준 뒤 호신부를 줬습니다. 그는 좋다고 했고 삼퇴도 했습니다. 그날 이 공사현장에서 18명에게 진상을 알려 중공 조직에서 탈퇴시켰습니다.

엄동설한에 고향에 내려가 진상을 알리다

연초는 유난히 추웠지만 우리 세 사람은 진상을 알리려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사부님, 저희는 추위나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사람이 없는 것이 두렵습니다.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들이 진상을 들을 수 있도록 안배해주십시오!”

한 마을을 지나자 삼륜차 한 대가 보였습니다. 다가가 보니 두 노인이 찬바람을 피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A가 “여러분께 평안을 보장할 수 있는 호신부를 하나씩 드릴게요”라고 말한 후 진상을 알린 뒤 ‘길상(吉祥)’, ‘여의(如意)’라는 가명으로 두 사람에게 탈당을 권했고 ‘금종자(金種子)’, ‘삼퇴수첩(三退手冊)’ 등 진상 책자를 줬습니다.

‘여의(如意)’라는 가명을 쓴 사람은 책자를 받아 한 번 보더니 “난 50년이나 된 공산당원이에요. 탈퇴하죠. 어디 가서 탈퇴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탈퇴에 동의하시기만 하면 저희가 도와서 탈퇴시켜드립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좋아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저희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져 얼마쯤 가다가 토지 관개시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모두 삼퇴를 시켜줬습니다.

우리는 또 한 시장을 찾아갔습니다. A가 한 아주머니에게 진상을 알리고 장식 소품 하나를 주자 매우 기뻐하며 하나를 더 달라고 했습니다. A가 “하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옆 그녀는 노점을 가리키며 “그에게도 하나 주세요”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도 진상 걸이 소품과 책자를 주었고 두 사람 모두 삼퇴를 시켜줬습니다. 그날 날씨는 무척 추웠지만 사부님의 인도로 20명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놀라움은 있었으나 위험은 없었다

일 년 내내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 보면 경찰관이나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로 놀라움은 있었어도 위험은 없었습니다. 그날 우리 세 사람은 시장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한 사람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책자를 나눠주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시장 입구를 나왔을 때 수박을 실은 차 서쪽 편에 세 명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A와 함께 다가가 진상을 알렸는데 진상 알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수박을 실은 차 동쪽 편에 경찰차가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우리 수련생과 수박 상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A가 수박 상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얼른 작은 소리로 “빨리 가요”라고 말해줬는데도 알아듣지 못해 “빨리 갑시다!”라고 말하면서 잡아끌어 얼른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경찰은 우리를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만약 사부님께서 막아주지 않으셨다면 번거로움을 만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고향에 가서 A는 저쪽에서, 저는 반대쪽에서 진상을 알릴 때였습니다. 제가 한 남자에게 “평안을 보장받는 호신부 하나를 드릴게요”라고 말하자 한번 보고 갖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안 가져도 괜찮아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내 말은 들은 그는 순간 안색을 바꾸며 말했습니다.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 대대에 연락해 당신을 잡아가게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선량하니 그런 일을 하면 절대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걸려 했지만 전화를 찾지 못했고 계속 “당신을 붙잡겠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한다고 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A가 저쪽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빨리 가라는 손짓을 하고 함께 그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심성을 닦는 기회

어느 날 우리 세 사람이 D수련생 집에서 나와 진상을 알리러 가다가 B와 헤어지게 되어 30분 정도 찾았지만 찾지 못해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러자 A가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시켰다며 책망하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A에게 “전 오늘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 그만 돌아가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는 길에서 B를 만났는데 그도 우리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A는 “당신은 왜 따라오지 않고 혼자 행동하나요?”라고 말하자 B는 “저도 혼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에요. 진상 스티커 30장을 붙이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원망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 A에게 “우리도 진상은 알리지 말고 진상 스티커나 붙여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A는 저에게 “당신의 그런 말은 화풀이로 하는 말이에요”라고 책망했습니다.

저는 원래 치아가 흔들리며 부실했는데 다음 날 잇몸이 단번에 부어올라 식사하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밥을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수구(修口)하지 못한 등등을 안으로 찾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다시 B를 보아도 동작이 느리거나 굼뜨지 않았습니다. 그의 경사경법(敬師敬法)의 모습은 성실해서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69세 나이인데도 매번 오토바이 충전을 도맡아 했고 매일 밤 오토바이를 건물 안으로 밀고 올라갔다가 아침이면 다시 건물 아래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에 대한 저의 불만은 정말 마땅하지 않았기에 B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찾아낸 다음 날 진상을 알리자 단번에 30명을 탈당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B도 심한 병업관을 겪었습니다. 그는 그날 45km 길을 달려 달력을 갖고 고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식사 때 갑자기 반신불수 상태가 나타나 밥을 입 밖으로 흘렸고 말도 분명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단순히 사레가 들어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손짓만 하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행동과 일념은 ‘사부님, 저를 살려주세요. 저는 대법제자입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고 약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웃이나 지인은 모두 제가 파룬궁수련자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절대로 대법에 먹칠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일 두 사람이 달력을 배포하러 올 것이고 저는 그녀들에게 달력을 갖다줘야 합니다’라는 일념이었습니다. 그런 일념이 있은 잠시 후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다음날 그는 우리에게 어김없이 달력을 전해줬고 오토바이를 충전해줬으며 함께 출발했다가 오후에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B가 고향 집에서 4장 공법을 연마할 때 갑자기 팔다리가 또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부좌를 하려고 침대 위에 올라가다가 침대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즉시 사부님께 청을 드린 후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럴 수 없다. 내일 그녀들이 진상을 알리러 오는데 달력을 전해줘야 하며 어떤 일이든지 지체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이 사부님께 청을 드리자 잠시 후 또 서서히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우리에게 달력을 가져다주려다가 도중에 또 그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오토바이가 계속 길가 도랑 쪽으로 빠졌으며 오른쪽 다리가 줄곧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구세력의 박해임을 알고 속으로 ‘나는 구세력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손발이 제대로 되도록 하겠다. 수련생들과 사람 구하는 일에 잘 협력하겠다. 네가 내 다리를 끌어내리면 나는 다시 올려놓을 것이고 정상적으로 걷겠다’는 일념을 보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정상으로 회복돼 무사히 우리에게 달력을 전해줬습니다.

그 후에도 두 차례 그런 증상이 나타났지만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아직 제 사명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행동이 자유롭고 기쁜 듯 뛰어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B는 진지하게 안으로 찾은 결과 연로하신 아버지와 딸에 대한 정이 비교적 심했으며, 특히 고향 집에서 아버지를 돌본다는 핑계로 법공부를 적게 했고 연공도 입정에 도달하지 못해 심성이 요구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악한 공산당 문화의 요소가 남아있어서 다른 수련생에게 말을 해도 선하지 않는 등등,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한 것입니다.

그 후 B는 고향 아버지 곁을 떠나 매일 우리와 함께 사람을 구하는 일만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진상 자료, 호신부, 진상 USB, 충전, 오토바이 관리 외에 틈나는 대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진상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20~30장을 붙이다가 차츰 50~60장을 붙였으며 많을 때는 하루 90여 장을 붙였습니다.

올해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기간에 그는 대법의 날을 경축하는 포스터 150장을 이틀도 안 되는 기간에 모두 붙였으며 또 수련생에게 100장을 만들게 해서 다시 붙였습니다. 그는 걸어가면서 전봇대, 수직으로 세워진 파이프, 매끈한 나무, 시멘트벽, 수직으로 세워진 석판 등 붙이기 적합한 곳이면 어디라도 붙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수많은 곳에 수많은 아름다운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붙인 범위가 넓고 밀도도 높아 사악의 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날 우리 세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문득 멀지 않은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 사람 3명이 차에서 내렸는데 살펴보니 사복경찰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컨테이너 화물차 한 대가 다가와 그들의 시선을 가리는 사이에 재빨리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고개를 넘어 계속 사람을 구하러 갔습니다.

누락을 발견하면 신속히 바로 잡다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지자 각지에서 빈번하게 핵산검사, QR코드 검사, 신분증 검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경찰, 지역사회 관계자들의 교란을 피해 지난 5월 이사했습니다. 새로운 거처는 D가 1년간 임대한 곳인데 반년도 살지 않은 채 짐을 그대로 두고 이사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임대 기간은 아직 4개월이 더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남은 임대 기간과 수도, 전기, 가스 등 비용을 D에게 주려 했지만 D는 한사코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으로 D에게 대신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습니다.

7월 어느 날, 큰 거위 한 마리를 사서 요리를 장만해 D 부부를 초대했으며 다음 날은 인사차 산에 있는 D의 집을 방문한 다음, M 수련생 집에서 천을 마련해 함께 옷을 만들어 다음 날 밤 임대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태양열 에너지 온수 파이프가 파열돼 물이 새 목재 바닥이 전부 잠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밤새도록 물을 빼고 닦아서야 겨우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닥 아래에 고인 물은 빼낼 방법이 없었기에 그 집에서 계속 기거할 수 없었습니다.

낙담한 우리 세 사람은 수련에 무슨 누락이 있어서 조성된 것임을 깨닫고 안으로 찾아봤습니다. 첫째, 저는 퇴직금으로 임대료를 대고 생활을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밖에서 활동하므로 삶이 조금 여유로워도 괜찮다고 생각함에 따라 전보다 시간을 낭비하게 됐고 먹는 것도 집착하게 됐습니다. 둘째, 원래 옷이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비싸지 않고 보기 좋은 옷감을 보면 사려는 마음이 동해 혼자서 몇 벌씩 만들었는데 보기 좋고 입기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수련생에 대한 정이었습니다. D나 다른 수련생이 도와주는 것이 모두 사부님의 안배로 이뤄지는 것임을 잊은 채 지나치게 사람의 정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 외 깨닫지 못한 다른 집착까지 더해져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초래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집착을 찾은 다음 번거롭게 했던 것들이 모두 신속하고 적절히 해결됐습니다. 아파트 관리원이 현장을 조사한 후 수도 파이프가 자연적으로 파열된 것을 확인했고, 집주인도 기본 임대료 외에 돈을 더 요구하지 않았기에 번거로움이 깨끗이 사라진 것입니다. 수련생은 우리에게 적합한 집을 다시 찾아줬습니다. 좀 낡았지만 출입이 매우 편하고 번거로운 관리나 통제가 없는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비록 길이 비교적 멀고 더위가 빠르게 찾아와 우리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땀이 흘러 눈에 들어가 아렸고 옷은 몇 번씩 갈아입어도 온통 땀으로 젖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샤워한 후 차를 몇 컵 마시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맺음말

우리는 이렇게 1년을 보내면서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탈당시켰고 사람들에게 진상 책자, 탁상용 달력, 호신부, 장식 소품, USB 등을 씨앗처럼 세인들 손에 남겨주어 수많은 생명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줬습니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잘 수련하는 외에 인간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오직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신성한 사명이자 우리의 책임이므로 남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몇 년간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 나타나든지 우리는 모두 심성의 경지를 높일 수 있는 좋은 일로 간주했고, 어떤 날씨라도 개의치 않고 확고하게 ‘갑시다, 우리 함께 사람을 구하러 갑시다!’라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려 인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15/4513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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