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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부님의 은혜 회상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기회와 인연 (하)”

글/ 중국 대법제자 멍언(蒙恩)

[밍후이왕] (앞글에 이어)

4. 톈진 제2기 전공설법(傳法教功) 반에 참가한 경험

1) 사부님께서 말로 전하고 실천적 모범으로 가르치다

1994년 3월 중, 저는 사부님의 톈진 제2기 법 학습반에 참가하였는데, 노 수련생은 입장료를 25위안(한화 약4600 원)만 받았습니다. 당시 베이징에서 수업을 들으러 간 일부 수련생들은 톈진 제1기반이 끝나자마자 제2기반 표를 예약했고, 학습반 시작 직전에야 표를 받았습니다. 그날 입장권 좌석 번호가 분산돼 있고 비교적 뒤쪽 좌석이어서 마치 다른 사람이 고르고 남은 것처럼 몇 장은 2층이어서 연단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치대로라면 그렇게 일찍 예매한 표는 앞줄이어야 했고 어떤 수련생은 이 표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사부님의 학습반을 기다려 온 저는 사부님 가까이에서 들을 수 없자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순간 또 ‘이건 아니야 내가 한 번은 참가했었는데 그걸 따져서 뭐 해, 아무 데서나 다 들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진해서 2층 관람석의 맨 뒷줄 표를 받았습니다. 톈진 제2기 전공설법반에서 저는 줄곧 멀리서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설법반이 끝날 무렵, 바로 제5장 공법 동작을 배우며 눈을 감고 神通加持法(선퉁쟈츠파)를 배우고 있을 때,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는데 사부님께서 2층 우리 앞에 통로에 서 계셨습니다. 2층은 좌석이 몇 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와 아주 가까이 미소를 지으며 뒷줄의 수련생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당시 마음속으로 정말 기뻤습니다. 사부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려놓은” 후 뜻밖의 놀람과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그 번 학습반에서 하루는 일요일 낮 수업을 했는데 평일에는 저녁 수업을 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 은혜 회상’이라는 글을 읽고 낮에 출근하는 수련생들을 위해 저녁 수업을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일찌감치 강당 밖의 뜰에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사부님께서 자원봉사자 몇 명과 함께 마당에 멀지 않은 곳에 멈추어 서 계셨는데, 저는 그때도 사부님과 몇 미터 떨어진 대문 옆에 서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오시자 수련생들이 몰려들었고 그날 사부님은 제자들과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스태프들이 사부님께서 매일 매일 정말 힘드시며 휴식 시간도 매우 적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과 사진을 찍으려면 얼마나 힘드시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찍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또 ‘아마 나중에는 하늘에서 사부님을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한 줄기 힘이 저를 뒤로 밀치어 깜짝 놀랐는데 머리를 들어 보니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말을 듣고 계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서 있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나중에 수업 시간에 사부님께서는 나는 당신을 보지 않아도 공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는 또 좋은 에너지가 당신을 뒤로 밀어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로소 사부님께서 저에게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와 함께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그날 저는 어머니에게 사진을 찍지 말자고 했고 어머니도 제 말을 듣고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부러워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정년퇴직해 수업을 듣는 동안 현지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나중에 제가 수업하러 왔을 때 어머니는 사부님과 따로 사진을 찍으셨다고 하자 저는 급히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는 맨 뒤에 아는 수련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련생이 아직 사부님께서 안 나오셨을 거라며 무대 뒤로 사부님께서 가셨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부님께서 불쑥 나타나시더니 사진을 찍으려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다급히 “찍어도 됩니까?”라고 물었고 사부님은 유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카메라를 든 수련생이 와서 여러 장 찍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너무 좋았고, 몇 장은 촬영하는 수련생이 쪼그리고 앉아 찍은 것 같았는데 사부님의 장엄하고 거대한 모습이 마치 절에 있는 불상을 연상케 했습니다. 사부님 곁에 서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어머니와 수련생을 본 저도 자연스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1]였습니다.

2) 설법 전수반 참가에 참가하는 것을 교란하다

제2기 전공설법반에 참가할 때, 베이징의 일부 수련생들은 임대 버스로 오후에는 뎬진으로 가서 수업을 듣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틀간 차가 고장이 났는데 운전기사가 한참을 수리하다 보니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도중에 차가 또 고장이 나서 오랫동안 수리하다 보니 우리는 수업에 늦었습니다.

다들 임대차가 나쁘다거니 운전기사의 문제니 하며 원망했고, 또 우리 중에는 수업을 받으러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는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런 상황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날 우리가 조용히 사부님의 수업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괴성이 들리더니 이어서 와와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고 사부님께서는 강의를 중단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그녀를 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위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자리에서 몸을 뒤틀며 울고 있는 그녀가 바로 우리와 같은 차로 온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학습반에서 말씀하시기를 베이징 수련생들은 왜 차가 고장이 나고 수업에 늦었는지 반드시 깨달아야 하며 이것이 바로 교란이다…. 사부님의 지시를 듣고, 저는 정말로 부체의 존재와 마의 교란을 느꼈습니다. 설령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못 보았더라도 저는 실제로 존재함을 완전히 믿었습니다.

직장에서 신문을 접할 수 있는 저는 그날 OO 신문의 부면에 뜻밖에 파룬궁을 비판하는 작은 토막글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글쓴이는 사부님의 반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자칭하면서 파룬궁은 과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공법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중에 또 이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서 믿지 않으면 연마하지 않으면 될 걸 왜 글을 써서 남을 헐뜯는가? 이것이 바로 교란이다. 법 전수반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저는 그 글을 잘라서 한 자원봉사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사람은 학습반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런 저능한 글은 이미 저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한 자짜리 방망이는 매일 반으로 잘라도 영원히 다 자를 수 없다고 한 이 문제가 생각납니다. 저는 한 책에서 중국 옛사람의 일척지추(一尺之棰), 일취기반(日取其半), 만세불갈(万世不竭)이란 이 말을 인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으나 알지 못했고 과학도 설명하지 못했지만, 사부님의 설명을 듣고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를 곤혹스럽게 했던 많은 질문,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사부님께서는 한마디로 진상을 밝혔습니다. 그 학습반 마지막에 중국과학원 물리 연구소 사람들이 현장에서 사부님의 공을 측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사부님께 강당에 의기를 놓고 측정한 결과 사부님의 공에 여러 가지 성분이 들어 있다는 메모를 써 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법을 전수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5. 지난(濟南) 제2기 법 전수반에서 겪은 신기한 일

1994년 5월, 저는 사부님께서 공안 강당에서 하신 기공 강좌에 참가하였는데, 그 기공 강좌의 일부 영상이 공법을 가르쳐주는 비디오에 수록되었습니다.

1994년 6월 21일, 저는 사부님의 지난 제2기 전공설법반에 참가하여, 다시 사부님을 뵙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마음속으로 정말 기뻤습니다.

1) 더위가 시원해지다

지난 제2기 학습반은 산둥성(山東省)의 지난 황팅(皇亭)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전국 각지에서 4천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수련생이 이번 법 전수반에서 부채질 얘기를 쓴 것을 보았는데 저 역시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난의 6월 하순의 날씨는 확실히 비교적 더웠는데 마치 베이징의 7월은 사우나 날씨 같았습니다. 그때의 체육관에는 냉방장치가 별로 없었습니다. 체육관의 관람석은 계단식이었고 저의 좌석은 사부님의 연단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 있어 저의 쪽에서 사부님의 강의하는 모습을 보려면 무수한 사람을 넘어서 보아야 했습니다. 시작부터 사부님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던 저는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서 위아래로 흔들리는 부채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는 속으로 평상시에 일반 회의에 참여해도 무대 아래에서 장난을 칠 수 없는데, 사부님께서 이렇게 더운 날 여러분에게 강의하시는데, 어떻게 듣는 사람이 부채질할 수 있지? 사부님께 정말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왼쪽에 앉은 어머니와 오른쪽에 앉은 한 여인이 부채질하는 것을 보고 있는 저의 주의력이 분산되어 있음에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부님께서 부채는 내려놔도 좋으니 그 더위가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잠시 후 부채를 내려놓은 어머니 쪽이 시원해졌고, 오른쪽 팔뚝은 여전히 찜통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른쪽 그 여인이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부채질하고 있었는데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저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낮에 수업을 들은 후, 우리는 지난 청년 과학 기술센터에 마련된 기숙사에서 휴식했습니다. 지난은 밤에도 유난히 덥고 모기도 많았습니다. 묵묵히 여러분을 위해 숙소마다 물을 뿌려 열을 식히고 모기약을 놓는 등 봉사하는 노 수련생도 많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저는 그날 어쩐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생각났는데 그 당시 손오공이 가장 능력이 있다고 알고 있던 저는 사부님께서 손오공처럼 신통을 발휘하셔서 비바람을 불러와 지난의 온도를 낮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저는 의외로 우레 소리를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의 기온이 뚝 떨어지자 이전 무덥던 날씨가 아닌 학습반이 끝날 때까지 서늘하였습니다. 저는 경탄한 나머지 사부님은 못 하는 것이 없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2) 환희심이 생기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이렇게 훌륭한 사부님을 만나고 이렇게 대단한 대법을 배우게 돼 정말 매일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부님의 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저는 어떻게 속인 상태에서 맞게 수련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교적 젊었고, 수련 전에는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막상 법을 배우니 문예 작품에서 수도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저도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기 시작했고, 동료에게 비범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동료는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며 연공을 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며 저와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절에 가면 되겠네.”라고 했습니다.

지난 학습반에서 어느 쉬는 날 수련생과 이 일을 나누었는데 사부님께서 강의하실 때 매우 엄숙하게 한 단락의 법을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이 기뻐함으로 하여 불필요한 환희심이 생겨나서, 그는 형식상에서, 속인사회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 중에서, 속인사회 환경 중에서 비정상적인 표현을 야기하는데, 나는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2]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의 기타 방면과 과정 중에서도 환희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아주 쉽다.”[2]

나중에는 자신의 비이성적인 처신과 속인의 상태에 맞지 않는 수련으로 인해 많은 교란과 메우기 힘든 손실을 초래한 그 교훈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3) 느낌과 체험

지난 제2기 학습반에서 한 가지 문제가 계속 마음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사부님은 누구실까? 다른 수련생들도 아마 생각했을 겁니다. 사부님께서는 지난에서 강의하실 때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다.”[3]

제가 본 한정된 불교 설화에서 이 시기에 미래불 미륵이 법을 전하며 사람을 구하러 온다고 하는데 아마도 사부님이 아닐까? 그러나 머릿속에서 노래 가사 한 마디가 “종래로 구세주가 없다.”(나중에서야 그것은 사당의 노래 가사임을 알았음) 떠 올랐는데 ‘구세주’라는 세 글자가 떠오르자 마치 마음이 확 트이는 듯이 누가 구세주가 없다고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구세주가 오신 것이 아닌가? 사부님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런 큰일을 할 수 없다.

어느 날 수업 중간 휴식 시간에 저는 회의장 가운데 가드레일 밖으로 나갔고, 그 사이에 서 계시던 사부님께서 이제 막 몸을 돌려 우리 앞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관람석에 있는 보도원 같아 보이는 수련생에게 물었습니다. “녹음했어요?” 그 사람은 녹음했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녹음했으면 가져가 들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사부님과 유난히 가까이 있었는데, 사부님 곁에 있을 때 무언가에 억눌린 듯이 합장 예의로 인사하는 것을 또 잊었고 사부님께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은 맴돌기만 하고 말이 나오지 않아 그렇게 멍하니 사부님을 쳐다만 보았습니다. 사부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가셨습니다. 나중에 그 “녹음했으면 가져가다 들어도 된다.”라고 하신 말씀은 저에게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베이징으로 돌아간 후, 저는 바로 녹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부님 지난 설법 녹음테이프 한 세트를 청한 저는 매일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어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인생에는 ‘가뭄에 단비, 타향에서 만난 옛 친구, 신혼 초야, 급제했을 때’란 네 가지 희사가 있다는 말은 흔히 듣지만, 대법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수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도를 얻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도사는 그 사람에게 물 한 통을 가져오라 했고, 그 사람이 물통을 내려놓자 도사는 갑자기 그 사람의 머리를 물통에 눌러 넣었습니다. 그 사람이 거의 숨이 막혀 할 때 도사는 갑자기 그 사람의 머리를 놔 주면서 물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공기를 마셨다고 하자 도사는 “물속에서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수련하면 도를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새로운 생명과 더없이 소중한 모든 것을 주셨음을 알았기에, 대법을 소중히 존중하며 자신의 생명보다 더 높이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대법은 가장 아름다운 것과 보잘것없는 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마치 생명이 호흡하지 않을 수 없듯이 대법을 떠날 수 없습니다.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 굉장히 빨리 향상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학습반이 끝났을 때 사부님께서는 체육장 전체에 큰 파룬을 돌렸습니다. 천목이 닫혀 있는 저는 수승(殊勝)한 광경을 볼 수 없지만, 그 당시 더없는 감동으로 힘껏 손뼉을 쳤고,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높은 층차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저에게 전 세계와 이 법을 바꾸려 해도 저는 안 바꿀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법 전수반이 끝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사부님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그때 늘 사부님을 따라다니며 법을 듣던 정년 퇴직한 수련생이 부러웠습니다.

세 번 사부님의 전공설법반에 참가하였는데, 매번 사부님께서는 여러분이 체험을 쓰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의 기초가 부족하고 잘 쓰지 못할 것 같아 쓰지 않았는데 지난 학습반은 어쨌든 쓰려고 했습니다. 체득의 시작은 사부님께 자신의 기구한 경험을 하소연한 거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고생이 바로 저에게 이번 생에 파룬따파를 만나게 한 것이라면 저는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셨고, 또 금빛으로 빛나는 파룬을 주셨으며, 우리에게 설법해 주셨고 마치 하늘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사부님은 바로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 줄 수 있는 구세주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착한 사람들이 사부님의 법을 얻기를 바랍니다.

지난 설법반이 끝난 후 저는 다시는 사부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6.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 성취하다

1999년 ‘7·20’ 사악한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은 파룬따파와 사부님에 대한 유언비어 먹칠 운동을 발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공 사당(邪黨)을 싫어한 지 오래됩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는 신념이 있는 부유한 유산자였는데, 중공은 정권을 잡자마자 재산을 몰수했고 조부, 외조부는 모두 국민정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수감, 송환되었고, 아버지 세대 중에는 더욱 운동으로 죽었거나, 사상 단련을 위한 하방을 했었고, ‘6.4’를 겪은 후 저는 이 위선적이고 포악한 당을 멀리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모든 개인의 은혜와 원한을 풀었습니다. 사악한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이 대법과 사부님에게 지어낸 악의적 거짓말로 죄를 들씌운 것에 대해서도 대법제자는 중국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가 진상을 알리며 권력자(장쩌민 마귀 두목 포함)가 대법의 진상을 알고, 사부님의 명예와 대법의 결백을 바로잡기를 바랐습니다. 얼른 방향을 바꾸어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동안 저는 특히 사부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매우 아팠는데 왜냐하면 더는 말씀하지 않으신 사부님은 어떠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때 매일 각종 압력에 직면하던 당시 직장에서 전문 일당을 조직해 매일 저에게 소위 대법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세계 각국 영사관의 소위 성토 비디오를 가지고 와서, 마치 전 세계가 우리를 반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연마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연마할 것입니다!” 직장의 일당들은 제가 계속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뭘 하려 하는지 물었고, 저는 대법의 진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의 생각을 말하면 직접 반영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도 어쨌든 국무원 산하의 정부 급 단위이니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함을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실제로 최고위층에 반영했고 저에게 당신이 말한 상황을 위에서는 다 알고 있으나 중국은 ‘활불(活佛)’의 존재를 허용할 수 없다는 대답을 전했습니다. 대법제자의 마음은 모두 비교적 착하고 단순했는데, 저는 그때만 해도 “중국은 활불의 존재를 허용할 수 없다.”라는 말에 담긴 장쩌민의 배후 살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장쩌민 깡패 집단은 2000년 3월 베이징 군사박물관에서 사악한 ‘과학 문명 숭상, 미신 우매 반대’라는 대형 사진전을 하면서 대법과 사부님을 공격했습니다. 저는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어 군사박물관에 가서 법을 실증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저와 함께 가기로 약속한 수련생이 군사박물관 문 앞에 가보니 오지 않았습니다. 어떡하지? 혼자인데 가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꼭 가야만 해. 사부님께서 몰매에 조소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칼산이라도 오르고 불바다도 뛰어들어야 해. 이 몸은 그렇게 강하지 않을 수 있으나 사부님에 대한 헛소문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전람회를 주최한 두목을 찾아서 미리 써 놓은 대법을 실증한 한 통의 편지를 그들에게 직접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새까맣게 느껴졌는데 저는 그 사악한 날조 물들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최자 두목을 찾으려 할 때, 한 직원이 제 앞에 나타나자 그를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 직원이 저를 안내하듯이 곧장 홀 다른 쪽에 있는 임시로 지은 집 앞에 다다르자 그 문에 ‘OO 지휘부’라고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바로 들어갔습니다.

난장판이 된 방안에서 몇 명의 남성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담배 연기 속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곁에 ‘부 총지휘자’라는 패를 달고 있는 한 여인에게 직접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파룬따파 수련자입니다. 파룬궁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데 당신들이 그런 전시를 하는 것은 아마도 파룬궁을 알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파룬궁은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제가 지도자에게 쓴 편지를 당신들이 보길 바랍니다. 제가 말한 후에 그 사람들은 모두 나무토막처럼 반응하지 않고, 그 여인만이 턱으로 탁자 하나를 가리키자 저는 편지를 그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사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는데 마치 정지된 화면 같이 눈꺼풀이 축 처져 있었고 저는 방에서 나왔습니다. 돌아보니 앞에 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나를 잡으러 온 것인가? 그들의 옆을 지날 때 그들은 반응하지 않는데 역시 나무토막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홀에 커다란 텔레비전의 화면에 사부님의 모습을 보고 걸어갔습니다.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꾸릴 때 손을 휘두르며 모든 수련생에게 치료해 주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사부님께서 손을 휘두르실 때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만약 인체가 작은 우주라면 사부님은 얼마나 많은 우주 공간을 위해 패물을 제거해 주시어 청정하고 밝아졌을지 모릅니다. 그런 위대한 사부님을 악랄한 거짓말로 공격하고 있는 TV 앞에 늙은이와 어린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 바퀴쯤 에워싼 채 멍한 눈빛으로 중공의 거짓말에 짓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전하신 ‘진선인(真·善·忍)’ 대법은 모든 생명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러한 거짓말을 믿으면 그들의 생명은 끝나지 않을까요? 그날 저는 어떻게 군사박물관에서 나왔는지 몰랐고, 버스에 탔을 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한 후 다시 한번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가지 해 주셨기에 제자가 무사히 군사박물관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법의 무량한 자비를 깨달은 점은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얼마간, 저는 사람을 만나면 단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한 생명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 생명의 근원을 지킬 수 있고 구원될 수 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지 28년이 되었고 그동안 사악 때문에 10년 넘게 불법적으로 갇히어 있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진정한 대법제자처럼 행하지 못한 것에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법을 볼 면목이 없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붓으로 자기 경험을 쓰지 못하다가 이기적인 생명에서 남을 생각하는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로운 구도와 대법의 홍은호탕(洪恩浩蕩)이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약간의 교란을 뚫고 이 글을 써서 대법이 널리 전해지며 생명에게 가져다준 보람찬 변화를 기록하였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사부님에 대한 제자의 끝없는 감사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진 30주년에 즈음하여 사부님께 다시 정진하려는 초심을 바칩니다. 사부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허스(合十)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법해(轉法輪法解)’

(끝)

 

원문발표: 2022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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