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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적인 순간에 사부님을 부른다는 데서 생각한 것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교류문장 한 편을 보았다. 사악한 경찰에게 잔혹한 고문을 받고 있던 한 수련생이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사부님!” 하고 외쳤다. 그 순간 사악한 경찰은 깜짝 놀라며 박해를 멈추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내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을 수련생들과 교류한다.

나는 관건적인 순간에 사부님을 부르는 것 자체가 수련이고 경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최소한 3중 장애를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속인의 관념과 무신론을 타파해야 한다.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이것이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사람을 이용해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이것이 이미 정념정오(正念正悟)의 표현이다.

둘째로,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는데, 법리적으로 사부님에 대한 믿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깨달음이다. 한번은 기차 안에서 이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이윽고 치아에서 ‘딱’하고 소리가 나더니 아픔이 사라졌다. 나는 놀랍고 기뻐서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그 기차 안에서 꼴이 정말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 하고 소리를 내서 구원을 청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여태껏 이렇게는 하지 못했다. 그러려면 ‘부끄럽다’, ‘효과가 있을까, 없을까?’, ‘속인이 이해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등의 나쁜 심리를 돌파해야 한다. 이제 나는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1] 라는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됐다.

왜 어떤 수련생은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완전히 바른 믿음이 표현되어 나온 것이다. 순수한 일념이 없다면 ‘효과가 있을까, 없을까?’ 하는 등의 사람마음을 돌파할 수 없으므로 소리 내서 외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수련이 아닌가? 어느 정도의 경지와 층차에 이르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론도 아니고 입에 발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때에 일사일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당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것일 수 있다. 어떤 일이 발생했다면, 예를 들어 구세력이 병업으로 박해할 때 그것을 가상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가상이지만, 병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로 마난(魔難)일 수 있다. 중요한 순간에 일념이 아주 순정(純正)하고 법에 부합한다면 어떤 기적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염병이 유행할 때 어떤 마을은 봉쇄되어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한 수련생이 ‘나는 신이며 가장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경비원은 정말 막을 수 없었고, 수련생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표현 형식은 다를 수 있다. 어떤 경비원은 봐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했고, 어떤 경비원은 수련생이 지나갈 때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기도 했다.

좀 더 크게 보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다른 공간에서 볼 때 인간 세상은 다양한 분자 무더기다. 온 우주가 사부님의 손안에 있는데, 우리 속인 사회의 이런 분자 무더기는 사부님의 크나큰 법력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래서 나는 속인 사회에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이른바 ‘현실’이라는 것도 더 높은 층차에서 보면 모두 ‘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지(加持) 하시기에, 우리가 정념으로 신적(神跡)을 나타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신(神)이 사람 가운데 있는 것이며, 우리가 정말 신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니 참고로 삼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23/4315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