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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이 작지 않고 모든 것이 수련이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중국에서 캐나다로 온 후로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 제가 하는 일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일에 심성 제고와 업력을 제거하는 일이 포함되고, 수련 경지가 반영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 미디어에서 수련하면서 안일심을 제거하다

사부님의 배치 아래 저는 RTC 구출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거는 데로 옮겨갔습니다. 같은 시기 저는 매체 프로그램에서 자막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시차가 있어 보통 밤 11~12시나 새벽 1~2시에 프로그램을 보내주다 보니 매일 서너 시가 돼서 취침했습니다. 특히 처음에는 이 일이 처음이라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데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했고, 원래 일하고 쉬던 시간이 다 틀어졌습니다.

저는 매일 밤 7시에 법공부를 시작해 ‘전법륜(轉法輪)’ 한 강을 배운 뒤 발정념하고 플랫폼에서 진상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11시 55분에 발정념을 하고 나서는 프로그램이 오면 자막을 제작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문을 봅니다. 프로그램이 올 때까지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매일 밤 7시부터 익일 새벽 3~4시까지 일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무척 애를 먹었고 많은 집착심이 나왔습니다. 우선 속인 중에서 형성된 고정적인 수면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늘 새벽 3, 4시에 잠을 자고 때로 더욱 늦게 잠을 자니 잠을 많이 자지 못하고 일어나 연공해야 합니다. 그런 후 낮에 플랫폼에 들어가 ‘전법륜’ 한 강의를 배우고 또 경문을 배우고 집안일도 해야 합니다. 매일 긴장돼 시간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피곤한 듯하고 정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잠을 더 자기 위해 매일 연공을 제1장부터 4장까지만 하거나 제5장만 합니다. 그래도 자고 나도 졸려서 낮에 자주 책상에 엎드려 또 자곤 했습니다.

나중에 ‘전법륜’ 제7강을 배우는데 이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술을 마시면 틀림없이 인(癮) 이 박이는데, 그것은 욕망으로서 사람의 은호신경(癮 好神經)을 자극하기에 마실수록 인은 더욱 커진다.”[1] 사부님께서 이 단락에서 점화해 주셔서 저는 잠도 중독이라 잘 수록 인이 크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게으름이 당신을 시달리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 사람마다 모두 그것에 부딪힐 수 있는데 그것은 때로는 강렬하며 때로는 좀 온화하게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연공을 가로막고 수련에 정진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돌파하라! 그것을 타파하라. 아마 그것의 자물쇠, 그 장애의 관건이 당신이 집착하는 것일 터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연다면 아마 단번에 밀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돌파할 것이다.”[2]

중독 같은 안일심을 제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또 고정적인 속인 관념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수면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다시 자도 보충되지 않고 피곤하고 졸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할 때 늘 침대에 누워서 좀 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알람을 설정할 때 5시간을 잘 수 있도록 맞춥니다. 하지만 4시간이 되면 깨곤 했습니다. 깨어서도 졸려서 계속 누워 잡니다. 어쨌든 1시간 더 자면 좋다고 느꼈습니다. 다음날에는 알람을 4시간 반 뒤로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4시간 후 알람이 울렸습니다. 저는 짜증이 나면서 속으로 4시간은 너무 적고 좀 더 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집착하며 깨닫지 못한 것을 보시고, 제가 (누워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볼 때 두 번이나 휴대폰을 머리에 떨어뜨리게 해주셨습니다. 꽤 아프고 이마 부위가 자줏빛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잠자려는 마음을 점화(點化)해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니 머리를 두드려 아프게 해 깨닫게 하셨습니다.

때로 낮에 졸리면 사람 생각은 또 자려 합니다. 한 생각이 또 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너는 수련인이고 속인이 아니다. 사람의 것은 나를 제약하지 못한다.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 이렇게 비틀거리며 이 뿌리 깊은 잠을 자는 마음을 제거한 후 저는 매일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합니다. 비록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해야 할 일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포륜(抱輪)을 하는데 은백색 옷을 입은 선녀가 피리를 불며 저를 에워싸고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파룬쩌우톈파(法輪周天法)를 할 때 제 두 팔에 각각 금룡이 한 마리씩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점화해 주신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신성하니 게으르지 말고 정진해야 합니다. 지금 저는 이미 사부님의 가지 아래 이 잠자는 안일심을 제거했습니다. 매일 에너지가 넘칩니다.

2. 사부님의 호탕한 은혜, 죄업을 없애주시다

한동안 수련에서 비교적 정진했습니다. 일사일념은 모두 자신을 닦고 어떤 일에 부딪혀도 안으로 자신을 찾고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잘하고 심성을 제고했습니다. 사부님은 제가 생생세세 빚진 원한, 죄업을 풀어주었습니다.

그 한동안 저는 매일 밤늦게 막 잠이 들면 다른 공간에 진입합니다. 그 공간에 많은 생명이 있고 모두 저와 큰 원한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저를 위협하고 놀렸고 갖은 수단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꿈에서 저는 너무 놀라 곳곳으로 숨어다녔고 끊임없이 사부님께 구원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 생명을 해치려 하면 스스로 하늘에서 뛰어내렸는데 그때 저는 지구상의 모든 것이 저와 갈수록 가까워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후 한순간 육신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깨어난 후 아직도 마음이 두근거리곤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왜 상관하지 않으시지? 이때 머릿속에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명백히 알면서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1]

이후 연속적으로 밤에 자기만 하면 이런 두려운 정경으로 진입합니다. 꿈에서 저는 똑똑히 그런 생명의 마음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를 미워하거나 혹은 저에게 연연해서 헤어지려 하지 않거나 각종 복잡한 감정 상태입니다. 저는 제가 어딘가 누락이 있어 틈을 타게 해 마와 구세력의 교란을 불러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체에 거르듯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련에 큰 문제가 없어 큰 교란을 불러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곤혹스러워할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좋은 일이고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하루 새벽 2시에 막 자려는데 프로그램을 받았습니다. 수련생은 자막을 넣어야 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수련인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든 무사무아 선타후아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묵묵히 자막을 해서 보냈습니다.

이때 저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누웠습니다. 저는 또 다른 공간에 진입했습니다. 그 공간은 희뿌옇고 바닥은 더러웠습니다. 제가 그 공간에서 걸어가는데 어딘가에서 옛 옷을 입은 사람이 대거 왔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저에게로 다가와 저를 에워싸고 돌더니 손을 내밀어 저를 잡았습니다. 저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제가 9자진언을 외우면 그들은 손을 빼고 더는 저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저를 에워싸고 돌았습니다. 그런 후 저는 몸을 위로 날려 가버렸습니다. 막 공중에 날아오르자 뒤에서 어떤 사람이 저의 옷깃을 잡고 말했습니다. “빛나는 것을 보러 왔다.” 그녀들은 저를 붙잡아 지면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이때 저는 그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두 옛 옷을 입은 궁녀입니다. 그들은 저를 아주 미워했습니다. 그 둘은 저를 에워싸고 제 몸을 마구 잡고 꼬집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아주 괴로웠습니다. 마치 전기 충격을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생명을 해치려 할 때 단번에 깨어났습니다.

깨어났더니 방안의 커튼, 가구, 기물이 모두 옮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눈이 침침해져 잘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았습니다. 모두 움직여져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사부님께 물었습니다. ‘사부님, 이게 왜 이럴까요?’ 손이 가는 대로 ‘전법륜’을 펼쳤습니다. 한 마디 구절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으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아갈 것이다”[1]

나중에 저는 그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빛나는 것을 보러 왔다.” 어떤 뜻일까? 제가 9자진언을 외워 저를 에워싼 사람은 감히 저를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부러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이런 간단한 방식으로 제가 진 빚을 빨리 갚게 하시고 저와 많은 생명의 원한을 선해(善解)해주셨습니다.

늘 이런 상태가 나타나자 저는 점차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자기 전에 저는 그들이 또 온 것을 똑똑히 느꼈습니다. 몸이 힘든데도 겁이 나서 잠들지를 못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울 게 뭔가. 속인이야말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미래의 각자인데, 신은 두려움이 없다. 빚을 지면 갚아야지. 어서들 오세요!’ 그러자 그날부터 그런 상태는 사라졌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한 후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수련하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늘 고생이 오면 원망하고 힘들다 하고 각종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난(魔難)에 부딪혀 안으로 찾기 싫어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의 업력입니다.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으로 선해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도 빚을 갚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늘 자신에게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정진하라고 일깨워줍니다.

3. 자잘한 일에서 집착심을 제거하다

저는 속인 식 표현으로, 주견과 결단력이 있고 일을 빨리하고 질질 끌지 않지만, 조바심을 잘 내고 참을성이 없고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합니다. 총과 칼은 잡을 수 있어도 자수 바늘은 못 잡는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일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단련합니다.

구출 전화를 걸 때 대상은 공안부, 검찰원, 법원, 사법, 국보, ‘610’ 사무실 등 직접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곳들은 받을 확률이 적고 온밤을 걸어도 받는 사람이 없기도 합니다. 통화가 됐다 해도 몇 초 혹은 30초를 넘지 못합니다. 간혹 좀 길어도 대꾸가 없고 혼자 말하는 식이기도 합니다.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도 효과가 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너무 괴로워서 심지어 이 항목에 참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매번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셔서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자막 작업도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잘하려면 세심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그 조바심이나 참기 싫어하는 집착심을 단련합니다. 신속히 제고하기 위해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했고 일사일념에서 자신을 닦는 데 주의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한 것처럼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3]를 해내려 했습니다. 점차 진상 전화를 받는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듣는 시간이 짧아도, 마음 조용히 전화를 걸 수 있게 됐습니다. 더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원래 경박했던 제 세계는 고요해지고 청량해졌습니다.

자막 작업에 참여하면서 저는 무조건 협조하며 요구를 제기하지도 이름을 구하지도 이익을 바라지도 않고 묵묵히 잘 해왔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제게 프로그램 수량을 기록해두라고, 보수를 좀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제작기록을 보면서 내가 몇 편을 했는지 세어보며 보수가 얼마일지 계산했는데, 이때 갑자기 코피가 터졌습니다. 제가 누락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을 구한 것입니다. 바라지 않고 얻는다는 것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 한 구절이 들어왔습니다. “좀 지나 개광이 끝나면 나에게 돈을 얼마나 줄 것인가”[1] 사부님의 점화였습니다. 제가 기록하는 행위와 화상의 마음은 같은 것이었는데, 이와 유사한 작은 일이 많았습니다. 법에 대조해 집착심을 찾고 닦아버렸습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한 정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통배추에서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베껴 삶자 잎이 다들 말랑말랑하게 잘 익었습니다. 단지 중간 속대만 남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었는데, 제가 전에 한 일들은 딱딱했지만 경솔하고 참지 못하는 마음이 요 한동안 수련에서 제거됐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줄곧 자신이 하는 일이 보잘것없고 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작업한 자막을 보는데 사부님께 저에게 글자마다 부드럽고 깨끗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에너지가 시청자의 나쁜 사상과 후천적인 관념을 억제하고 제거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청자는 좋은 상태에서 진상을 볼 수 있고 중공의 사악함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심성 표준과 수련 상태가 어우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련은 작은 일이 아니고 곳곳에서 모두 착실히 수련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있는 일도 수련 제고와 관통됩니다. 미국 대선 이후 어느 날 저는 딸에게 말하길, 이 의원은 압력을 무릅쓰고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잘생기고 정직해. 아주 좋은 사람이야.” 말하고 나서도 무슨 잘못된 것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 제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는 여전히 몰랐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저는 지금 세간의 미추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이것은 색욕심입니다. 사람을 보면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때 머릿속에 한 정경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전에 밖에서 키가 큰 서양인을 보고는 “와, 키도 크고 진짜 멋있게 생겼네!”라고 했는데 그때 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부님의 점화로 저는 법에 대조해 이런 언행이 수련인의 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입만 열면 ‘핸섬보이(미남이라는 뜻)’, ‘정말 멋있다’는 말을 합니다. 교양 없이 행동이 경박하고 도덕 수준이 낮은 표현입니다.

색욕, 이 색이 있기에 욕망이 있습니다. 눈에 아직 색이 보이면 욕망이 생깁니다. 보기에 평범한 작은 일 같지만 사실 더러운 사람 마음이 깊이 숨어 있습니다. 신의 눈에 중생은 평등하고 생명은 선과 악의 구분이 있습니다. 법리를 깨닫고 개인 생활 속에서 형성된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한 후 다시 사람을 보니 누가 좋고 누가 좋지 않다는 것이 보이지 않고 누구를 봐도 다 똑같았습니다.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해야 무엇이 진정 옳고 그릇된지 변별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잡담할 때 딸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집을 빌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저도 딸과 함께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한 화면이 나타났습니다. 소박한 방장의 선방이었는데, 선방에 단출한 침대와 책상과 의자가 있고 어떤 불필요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저는 즉시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 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거 수련인은 출가 후 세간의 모든 것을 끊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지만, 수련의 표준은 같습니다. 속인의 물질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수련인은 정상적이고 간단한 생활이 있으면 됩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면 다 집착심이며, 마음을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써야 합니다.

한번은 딸이 아빠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보태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아이 아빠는 주기는커녕 반대로 말했습니다. “너 학교 그만두고 중국으로 돌아와. 내가 일자리를 찾아줄게.” 저는 알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지난 몇 년간 딸에게 돈 한 푼 보내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돼서 딸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원한심(怨恨心)이 생겼습니다.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마음이 아니라고 의식은 했지만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밤에 법공부를 할 때 이 구절이 있었습니다. “화상이 수련하든 누가 수련하든, 이런 에너지는 확산되는 것이며 정해진 방향이 없는 것으로서, 마땅히 온 불당(佛堂)의 바닥ㆍ천장ㆍ벽에 모두 균등한 장이 있어야 한다.”[1]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습니다. 신불의 선은 모든 중생에 대해 같고 분별심이 없으며 어떤 생명에게든 자비롭습니다. 나쁜 사람, 자신을 해친 사람에게도 모두 순선(純善)해 자비심이 있는데 무사(無私)는 위타(爲他)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법리를 깨달으니 자연히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그런 집착심과 원한심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그도 어려울 수 있으며, 남이 잘 대해줘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잘 대해주지 않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인연 관계입니다. 원망하지도 한을 품지도 않으며 고생을 낙으로 삼아야 수련인의 상태입니다.

맺음말

매 한걸음의 제고 속에는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습니다. 저는 자주 속으로 사부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사실 감사드린다고 하건 보답하겠다고 하건 다 아무 의미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사부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열심히 법공부를 잘하고 착실하게 진수(眞修)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야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고도(慈悲苦度)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수련한 얕은 체험이며 법에 있지 않은 점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동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2021년 캐나다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1/4298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