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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 체험: 우주 특성과 소통하다

글/ 우크라이나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랫동안 나는 사유가 타성적이었다. 무슨 일을 할지 늘 습관적으로 자문했다. 왜 하는 것일까? 그리고는 이해득실을 따져서 취사선택했다.

올해 5월, 항목 팀에서 최근 가부좌 체험을 교류했다. 4월에 접어들면서, 가부좌하면 시작할 때 몇 분, 끝날 때 몇 분간 심한 통증이 왔는데, 나는 마치 형장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부좌할 때가 되면 마음이 몹시 위축됐다. 그래서 4월은 가부좌 기록을 보니 딱 한 번만 1시간을 다 했고 대개 30분이었다. 이 기록을 보니 자신을 개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교류 문장을 많이 봤지만, 내가 실제로 수련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효과가 미미했다.

5월이 되면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날, 가부좌할 때 의외로 1시간을 다 하고 흔들림도 없었다. 가부좌 상태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생겨 한 시간 정공(靜功) 동작이 몹시 홀가분해졌다. 이후 매일 가부좌 할 생각을 하며 착실하게 정공을 연마했다. 그때는 내가 안으로 찾고, 정념(正念)을 발하고, 법학습을 강화해서 이루어진 변화인 줄 알았다.

매체 법회가 열린 뒤, 수련생들은 사부님께서 법회에 오신 것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한 수련생이, 2년 넘게 사부님을 뵙지 못했는데 이번에 사부님의 말씀에서 그 2년간 제자들과 중생들을 위해 아주 많이 감당하셨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무척 감동되어 내 상태에 대해 홀연 깨달았다. 나는 정념을 발하든 법을 배우든 모두 사람이 되는 이 층에서 노력했을 뿐이었다. 내가 가부좌 상태가 갑자기 개선된 큰 변화를 맞은 것은, 그 실질적 고통, 마치 형장에 가는 것 같은 감각의 고통을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감당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가부좌할 때 다시 심한 통증이 왔을 때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그 고통스러운 5분으로 정말 중생을 구할 수 있다면 너는 앉아 있을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있는가? 답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내가 자신을 격려한다는 것이란, 이 일념을 가지고 중생구도를 위해 자신에게 가부좌 시간을 연장하라고 압박하는 것이었다. 줄곧 이 사상이 아주 좋고 맞다고 여겨왔는데, 오늘 가부좌할 때 나는 이것에 대해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

오늘 아침 가부좌를 하자 곧 입정(入靜)에 들어갔는데 무의식중에 태평천국의 익왕(翼王) 석달개(石達開)가 떠올랐다. 그는 청군에게 잡혀 능지처참 되었는데, 백성들이 말하는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 죽은 것이다. 사람이 고통을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칼로 베면 고통이 극에 달하는데, 그는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는 비분을 왜 표현하지 않았을까? 공훈이 무너진 후의 분노를 왜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렇게 침묵하고 그렇게 꾹 참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에는 단순히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영웅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 그가 무엇을 위해서였겠나?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칼의 고통을 똑똑히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였나?

‘무엇을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내 사유에서 타성을 보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일하고 사람을 구하며 항목에 참여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항목을 하는 것이라면 원용(圓容)에 맞추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또 석달개로 돌아왔다. 그는 형장에 서 있었다. 사람 중의 모든 이익이 사라졌다. 권세, 공명, 그가 가졌던 모든 것, 위세등등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러면 그가 무엇이겠나? 그때 그의 생각은 이미 구름과 연기처럼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 설마 엄청난 감당 속에서 그가 여전히 ‘내가 인간을 위해 본보기를 남겨야 할까?’를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까?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이 우주 특성과 소통할 수 있을 때,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며, 어떤 경지의 생명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이해했다. 그가 이 육신을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것을 버렸을 때, 어쩌면 그 순간 그는 이미 우주 특성과 소통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주 특성이 그를 육신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고, 특히 고통에 대한 절실한 느낌은 그를 완전히 벗어나게 했다. 이 역사 연역(演繹)이 남긴 의미를 이해하자 작년에 외웠던 법이 떠올랐다.

작년에 ‘전법륜(轉法輪)’에서 이 구절을 외웠다 “근기가 좋은 사람은 백색물질이 많은데, 이런 백색물질은 우리 우주와 용흡(溶洽)된 것이며, 真(쩐)・善(싼)・忍(런) 특성에 용흡되기에 간격이 없다. 우주의 특성이 직접 당신의 신체에서 반영되어 나오며, 직접 당신 신체와 통한다.”[1]

내 마음은 진감(震撼)했다. 나는 법리의 모든 세부 사항을 똑똑히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았다. 법에 몰두하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대한 세상이었다. 눈을 감고 이 법을 여러 번 반복해서 외웠다. 아무리 외워도 부족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법 중에 완전히 몰입해, 마치 주위의 모든 것이 나를 떠나고, 모든 것이 정(定)해진 것 같았다.

오늘 가부좌하고서야 그 법리가 보여준 세부 사항을 느낄 수 있었다. 신(身), 신(神)이 우주 특성과 소통할 때, 평범한 생명은 육신이 그에게 준 고통을 초월하여 그의 생명의 경지를 이룰 수 있다. 수련하는 사람은 마난(魔難)의 속박을 넘어서 부동한 경지를 주재(主宰)할 수 있다. 사유에 타성이 없으면 더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펼쳐 보이는데, 법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이 제자의 신체상에 펼쳐 드러나는 것이다. 그 순간의 느낌은 이렇게 진실한데, 아름답고 아주 진실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2/4293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