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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양소의 한 피해자가, 중국당국에 압력을 가하여 중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해주기를 희망했다

[명혜망] 아일랜드 2002년 3월 26일자 신문, 키티 홀랜(Kitty Holland)이 이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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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노동교양소에서 석방되어 나온 삼성학원 연구생 조명은, 정부에서 계속 중국당국에 압력을 가하여 중국의 인권상황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하였다.

컴퓨터 과학도인 조명은 어제 더블린에서, 그가 아일랜드에 돌아온 데 대하여 기자회견을 갖고 위의 내용을 밝혔다. 그는 중국 수도 북경의 북부 단하농장 노동교양소에서 22개월 동안 줄곧 감금당했다가 11일 전에야 석방되었다. 그가 “노교”를 받은 것은 그가 금지 된 법륜공 정신운동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중국 정부는 법륜공을 xx와 국가안전에 위협을 준다고 모함하고 있다.

조명은 “그간의 감금생활에 대해서는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꼭 ‘노교소의 진상’을 말해야겠다고 했다. 그는 “한 동안 우리에게 허용된 수면 시간은 하루에 한 두 시간이 고작이었읍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강제로 쭈그리고 엎드려 있게 한 시간이 길게는 하루에 열시간이나 되었으며,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의 종아리는 여전히 감각이 없고 잠 잘 때 가끔 발이 매우 아픕니다.”라고 했다.

그는 “석방되기 두 주일 전 5명의 경찰에 의해 6개의 전기 몽둥이로 전기고문을 당했으며, 전압이 3만볼트나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비록, 그 스스로는 이러한 일들이 자신에게 영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의 석방을 위하여 각계에 호소하며 노력을 이끼지 않았던 戴冬雪여사는 ”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두고두고 그에게 미친 영향은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였다.

아일랜드 버티.애헝 총리는 일찍이 (작년 9월) 중국 총리가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조명의 신병 처리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외교부장 코원선생은 2월에 중국을 방문 할 때도 중국 외교부장에게 조명의 문제를 제출하였다. 그때 담화 중 중국측에서는 코원선생에게 조명을 석방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조명의 동료학우들도 같이 조명을 구원하는 활동을 일으켰다, 그들의 노력은 공당 당수인 래리.쿤룬선생, 마리.뤄빈선여사, 참이원 대위.눠리스와 아일랜드 대통령 매커애리스여사의 지지를 받았다.

조명선생은 이에 ” 아일랜드 국민들이 저의 자유를 위하여 한 일체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보충하여 말하기를, 그의 경우처럼 이렇게 성공한 예는 “아주 아주 드물다”고 하였다. 조명은 “나는 양호한 교육 배경 및 지지가 있었습니다. 나의 상황은 중국의 많은 법륜공수련자의 경우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이 나라 국민들이 계속 법륜공수련자들을 지원해 주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시(戰時) 인권기구’주임, 전 아일랜드 ‘국제 사면위원회’주임 마리.뤄러여사는 “중국이 체계적으로 인권을 침범하는 것은, 법륜공 수련자들뿐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 사회에 “아주 공정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공정을 되찾아라!.”고 호소하였다.

조명선생은 1999년 12월 성탄절기간 북경으로 돌아가 친척방문을 할 때 체포되었다. 그는 연금을 당했고 또 여권을 압수 당하여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학업을 계속하는 길이 막혔다. 그는 연금을 뿌리치고 감시를 피해 천안문의 한 집회에 참가하고, 그 후로부터 행방불명이 되었다. 2000년 5월 보도에 의해 그가 이미 구류당했고, 재판을 거치지도 않고 단하노교소에 감금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현재 삼성학원에서 연구생으로 학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를 물어봤을 때, 그는 학업을 끝마친 후의 계획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하지만 나는 (중국)그곳의 상황이 곧 개변되기를 희망합니다.”고 말했다.

문장분류[媒體報道]
2002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