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리자, 황위성 기자) 2025년 7월 19일 오후, 타이베이·타오위안(桃園)·신주(新竹)·먀오리(苗栗)의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이 비바람을 뚫고 박해 반대 26주년 퍼레이드를 개최했다.
최근 다큐멘터리 ‘국유장기(國有器官)’로 인해 생체 장기적출 이슈가 여론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파룬궁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다. 민중당 입법위원이 직접 퍼레이드 대열에 들어가 함께 걸었으며, 퍼레이드가 가장 번화한 신이(信義)구 백화점가를 지날 때는 시민들이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쳤고, 차를 운전하던 시민들이 창문을 내리고 “화이팅!”을 외치거나,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길을 따라가며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이번 퍼레이드 대열은 ‘대법이 널리 전해지다’, ‘천고의 누명’, ‘삼퇴 물결’, ‘박해 종식’이라는 4개 대열로 나뉘어, 타이베이 시정부 시민광장에서 출발해 이셴로(逸仙路), 쑹가오로(松高路), 쑹런로(松仁路), 쑹서우로(松壽路), 지룽로(基隆路)를 거쳐 다시 시정부 앞으로 돌아왔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중국공산당(중공)의 진선인(眞·善·忍) 박해, 천리가 용납하지 않아’, ‘선량한 이들을 구하자, 박해를 끝내자’, ‘중공을 해체해야 박해를 멈출 수 있다’ 등의 대형 현수막을 들고, 26년간 박해에 맞서며 신앙을 견지해온 중국 대법제자들을 성원했다. 동시에 박해로 사망한 수련자들의 사진을 든 대열도 있어 깊은 애도를 표했으며, 중공의 각종 박해 수단의 잔혹함을 폭로했다.


비바람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대열
19일은 공교롭게도 태풍의 영향을 받아 대열이 한때 강풍과 폭우에 직면했다. 당시 대열에 있던 파룬궁수련자 정(鄭) 씨는 “비바람이 정말 거셌고, 현수막도 거의 날아갈 뻔했지만, 아무도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은퇴 전 언론업에 종사했던 추(褚) 씨는 쑹런로 옆에서 퍼레이드를 지켜보았는데, 파룬궁수련자들이 갑작스러운 강풍과 폭우 앞에서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대열이 여전히 질서정연하고 조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파룬궁이 박해받는 일을 알고 있는데, 퍼레이드 대열을 보니 그들이 매우 진지하고 끝까지 해낸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대만에는 파룬궁의 ‘진선인’이라는 긍정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큰비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매우 굳건하더군요.” 장(張) 씨와 부인도 누각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파룬궁수련자들의 대열을 보고 깊은 감탄을 했으며, 특히 26년간 평화적인 반(反)박해를 견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보기 드문 일입니다”라고 전했다.
장 씨는 중공의 독재 체제 하에서는 어떤 신앙 단체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퍼레이드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 대법제자들이 박해받는 정보에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했으며, 동시에 대만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얻기 어려운 자유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파룬궁 진상을 이해하고 반박해를 지지하는 시민들
자이(嘉義)시 신강(新港)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북상한 천(陳) 씨가 동생과 함께 휠체어를 탄 아버지를 모시고 인도에서 퍼레이드 대열의 출발을 지켜보았다. 천 씨는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도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고, 파룬궁이 박해받는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천 씨는 대만에 800여 개의 연공 장소가 있어 모두 자유롭게 배우고 익힐 수 있으며, 선물도 받지 않고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고, 퍼레이드를 통해 파룬궁수련자들이 26년간 평화적 소원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좋은 신앙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파룬궁의 진선인 정신이 사회와 국가에 유익하다고 여기고, 오늘의 반박해 소원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창작에 종사하는 양(楊) 씨는 국부기념관(國父紀念館)의 이셴로 옆에서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퍼레이드 대열을 촬영했다. 그녀는 대열이 매우 질서가 있고, 경찰차가 앞에서 인도하는 등 준비가 잘 돼 있다고 했다. 그녀는 대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곳에 진선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곳에 진선인이 필요하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잘하여 오늘이 어제보다 좋고, 내일이 오늘보다 좋으면 사회 전체가 더 좋아질 것입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6년이 지속된 것에 대해 양 씨는 “신앙에 대해 정말로 더 많은 존중과 포용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신앙에는 다 그 이유가 있고, 그를 지탱해주는 힘을 찾았으며, 신앙이 그를 더 좋게 만든다면, 그럼 왜 지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푸(傅) 씨는 진상 전단지를 들고 누각에서 퍼레이드 대열을 지켜보았다. 그는 파룬궁이 박해받는 일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파룬궁수련자들이 퍼레이드 방식으로 중공의 잔혹한 박해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방식이 아주 좋다고 여겼다. 그는 ‘진선인’이라는 세 글자가 사회를 더욱 평화롭게 할 것이며, 현재 사회와 국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퍼레이드 대열이 유명 백화점을 지나갈 때, 판매 직원 천(陳) 씨와 동료들이 나와서 퍼레이드 대열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파룬궁의 인권 이슈를 알고 있고, 파룬궁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졌으며 한때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했으나, 나중에 인원수가 당시 공산당원을 초과해서 탄압을 받게 됐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퍼레이드 대열이 평화롭고 격정적이거나 시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대만은 신앙 자유가 있는 곳이며, 이 박해가 하루빨리 멈추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홍콩에서 온 어우(歐) 씨는 대만에 정착한 지 반년이 됐다. 버스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눈앞의 퍼레이드 대열을 보았는데, 그는 파룬궁이 잔혹하게 박해받는 진상을 알고 있고,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을 당하는 일까지 안다고 했다. 그는 퍼레이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고 여기며, 동시에 대만에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중공이 끔찍한 악행으로 인권을 짓밟는 사실에 관심을 갖기를 희망했다.
파룬궁수련자 가족들이 현장에서 성원
베트남에서 온 응우엣 씨는 대만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퍼레이드 대열 옆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한 지 반년이 됐고, 퍼레이드 대열에도 있었다. 응우엣 씨는 베트남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고, 어머니는 인터넷을 통해 파룬궁을 알게 되어 수련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응우엣 씨는 “지금 어머니가 수련한 지 반년이 되셨는데, 기분이 즐거워지고 성격도 좋아지셨습니다. 가족들도 어머니의 연공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들도 함께 배우고 연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도 활동 현장에 와서 파룬궁수련자들의 활동에 직접 지지를 표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강행했다. 오늘까지 파룬궁수련자들의 끊임없는 반박해가 이미 26년이 됐으니, 4분의 1세기를 넘는다. 파룬궁수련자들은 끈질기게 견지하며, 평화롭고 이성적인 정신으로 진상을 전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이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여 선악을 분별하고 진상을 이해하게 하고 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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