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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벚꽃축제에서 박해사진전을 마친 후

글/ 경기 수련생

문: 진상을 알리는 것은 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이므로 전면적이고 또 심도 있게 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法輪功(파룬궁) 수련생이 집단학살박해를 받은 실제사건을 기록한 전시관(紀實館)을 설립하여 정부관원, 중국에 있는 투자자, 학생, 매스컴으로 하여금 모두 심도 있게 진상을 이해하게 하여 광범위하게 중생을 구도하려고 합니다.

사부: 이 생각은 아주 좋다. 그 곳에 대법제자가 박해당하고 법을 실증하는 실물 전시가 있으면, 중생을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는 장소로 된다.
(‘애틀랜타법회에서의 설법’ 中)

위 내용을 보고 박해 모형관이나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형은 여러모로 구상 중이긴 하나 어려운 점이 많아 우선 손쉽게 할 수 있는 사진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전은 과거 다른 동수들이 이미 해본 경험이 있고 효과가 좋다는 점도 알고 있기에 날이 따뜻해지자 곧바로 추진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대법제자가 사진 전시관을 설립하거나 대여해도 좋지만 사람을 끌어 모으는 점이나 대여료 등등의 난제로 직접 인파가 많은 곳에 전시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가 좋을 것 같아 이동식 전시관을 만들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상하니 사실 간단한데 사진을 실을 수 있는 차량 한대와 사진 액자, 진상자료, 몇 개의 현수막이나 배너만 갖추면 되었습니다. 사진은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설명을 첨부하여 누가 보아도 쉽게 진상을 알 수 있도록 제작하였고 동시에 운전면허 준비를 하였습니다. 사진이나 차량준비는 무난하였고 운전면허도 의외로 쉽게 딸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후 가까운 지역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바야흐로 봄철이 되고 행락객들이 붐비는 시절이라 같이 동참할 수 있는 동수들과 가까운 산을 찾아 해보았습니다. 막상 노점상 등의 방해로 쉽지 않고 마찰이 잦아 좋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TV에서 여의도 벚꽃축제에 인파가 많이 몰린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쉽지만 축제의 마지막 주말로 3일밖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벚꽃축제장소는 구청의 집중단속으로 노점상들이 없어 사진전시를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무척 많은 사람들이 벚꽃축제에 찾아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은 하루에 50만에서 10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진전시대를 당당히 입구 쪽에 설치하였는데 벚꽃축제에 참여하러 온 사람들은 누구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묘한 공간이 배치되었지요. 역시 사부님의 자비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에는 한국인들 뿐 아니라 많은 조선족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역시 많은 독해가 되어 있었고 사진전을 통해 어느 정도 독해가 해소될 수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조선족들은 말이 통하여 진상을 대부분 알릴 수 있었지만 중국인들은 역시 구체적인 설명까지는 역시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만관광객들도 있었는데 자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의 사진을 보고 놀라면서 “타이완!”이라고 외치며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또한 많은 기타 외국인들도 관심 있게 사진을 지켜보았습니다.

가장 감명 깊었던 순간은 직접 중국에서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가 오셔서 “사람들에게 꼭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울다시피 하며 호소할 때입니다. 제 마음은 무척 무거워졌고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파룬궁 전단지를 직접 주위사람들에게 뛰어다니며 건네주고 사람들이 이러한 박해를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순간 제 마음은 그 아주머니에 비하여 훨씬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지요.

인파의 대부분인 한국인들은 근처 등산로에서 파룬궁을 접할 비율이 가장 많았습니다. 수고하신 동수들의 노고를 치하 드립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역시 파룬궁이 무엇이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기공인지 종교인지도 분간도 하지 못하여 그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대한 홍보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비율은 대법 홍전 사진이 8, 박해가 2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파는 박해사진 앞에 멈추어 있었고 박해받은 동수들의 사진과 각종 고문형구 그림을 유심히 보고 설명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박해사진 앞에서 진상설명을 하니 가장 효과가 좋음을 느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파룬궁 탄압에 대한 이해와 탄압의 잔혹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박해사진전할 때 들었었던 평가와 달리 의외로 사람들은 박해사진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표현보다 동정심이 많음을 느꼈는데 그만큼 사람들의 두뇌 속에 대법에 대한 적대감와 사악함이 많이 사라졌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오후가 되자 인파가 너무 많아져 사진전시대 앞을 사람들이 꽉 메우자 뒤에서 서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웠는데 그들에게는 대신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때마침 수련생이 바삐 가져온 ‘보도, 제세’ 음악을 틀자 주위가 상화로운 분위기에 휩싸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전을 둘러보고 스스로 자료를 가져갔습니다. 사진 앞에서 놀라는 사람, 혀를 차는 사람, 중국정부를 욕하는 사람,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박해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스스로 진상을 설명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같이 보며 진상을 꼼꼼히 알려주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같이 진상을 하던 수련생은 진상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는 속으로 환희심을 억제하고 있었지요.

오후가 되고 날이 져도 인파가 끊임없자 동수와 고민을 하다가 예상시간보다 늦게까지 있기로 하였습니다. 몸이 힘들고 춥고 배가 고파져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려고 하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습니다. 오후 6시 철수예정이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마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차후에도 각종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사진전을 열면 효과가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짧은 경험이나마 박해사진전의 대한 약간의 느낀 점이 있어 정리하니 혹시 사진전을 개최하는 동수들은 참조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사진전은 소수의 인원으로 대량의 사람들에게 진상이 가능하다.
사진진상은 차량과 초기비용만 있으면 소수의 인원으로 대부분의 장소에서 손쉽게 대량의 사람들에게 진상이 가능합니다.

둘째, 박해사진이 가장 효과가 좋다.
처음 사진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박해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파룬궁과 탄압의 연관성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 때 그들의 궁금증을 옆에서 조금씩 해소시켜주면 쉽게 진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주위에서 듣는 사람들도 더불어 진상을 알게 됩니다. 최근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지적하셨다시피 주위에서 설명하는 사람이 전혀 없으면 그들의 각종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주위 노점상이나 공직자들과 마찰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최근 경제 불황으로 인파가 많은 어느 곳이나 노점상들이 많이 늘었고 그들은 생계문제로 무척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입니다. 가장 좋기로는 신고를 하고 하는 것이 좋으나 피치 못한 사정이나 시간제약이 있을 경우에는 노점이 있다하더라도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정념을 갖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넷째,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장소에서 전시해야.
지하철 입구 등 유동인구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대부분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되도록 사람들의 마음이 한가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에 전시하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유심히 지켜보고 진상을 이해시키기에 좋습니다. 더불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대법음악을 곁들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다섯째. 정념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자신의 정념이 흐트러지면 사진전 앞에 다른 노점이 와서 차리거나 사진이 바람에 불어 넘어가는 등 틀림없이 여러가지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너지마당부터 순정히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