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선악은 각기 보응이 있다

글/ 윈하오(雲浩)

[밍후이왕] 명나라 왕서(王恕)는 절개와 심성 수양을 중시하고 ‘천리(天理)에 순응하고 선량한 것이 본성의 근본’이라고 언급했다. 그가 양주(揚州)의 지부(知府: 명청 시기의 지방 장관)로 있을 때 각지에서 수해가 발생했다. 그는 사람을 급히 구하기 위해 상부에 알리지 않고 좁쌀로 기근을 해결했고 나랏돈을 빌려주어 피해 지역 주민을 구제했다. 그는 이로써 200만 명을 구했다. 그 후 궁중에 들어가 이부상서(吏部尙書: 관리의 선발을 맡는 이부의 으뜸 벼슬)를 역임했다. 그는 인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과 정인군자를 모두 임명했다.

왕서는 대련을 써서 이부대당(吏部大堂)에 걸어 놓았다. “관리로 임명되면 궤유(饋遺)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관리가 아닌 사람도 포저(苞苴)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궤유’와 ‘포저’는 모두 뇌물을 준다는 뜻으로 뇌물로 관직을 매매하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자신도 스스로 단속했다. 그는 백성을 위해 감히 황제에게 하명을 청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다. 조정에서 논의할 때 서로 다른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왕공(왕서)께서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라고 하거나 “왕공의 상소문이 곧 도착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당시 전하는 민요에서는 “남경 20부(部)에서 단지 왕서만 있다. (감히 황제에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태의(太醫) 류문태(劉文泰)는 예부시랑(禮部侍郎) 구준(邱浚)과 자주 왕래했는데 구준에게 자신을 추천해 관직을 올려달라고 했다. 왕서가 알고 이를 가로막자 류문태는 왕서에게 원한을 품고 구준과 상의해 왕서 저작에서 구절을 뽑아내 당시 황제 효종(明孝宗)에게 상소문을 올려 왕서가 신하의 예의가 없다고 모함했다. 왕서가 황제에게 진실을 알리자 황제는 류문태를 감옥에 가두고 강등해 내정어의를 담당하게 했다.

이후에 구준이 사망하고 류문태가 제사를 지내려 찾아가니 구준의 부인은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 때문에 남편이 왕서에게 피해를 줬고 남편도 불의의 죄명을 당해야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라고 말했다. 이후 왕서는 예부 상서와 태자태보 등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5명과 자손 13명은 모두 어질고 높은 지위를 갖게 됐다.

왕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백성을 위했고 공정 무사하며 일생 부귀와 장수를 누렸으며 집안 자손이 번성했다. 이를 통해 평생 선한 덕을 많이 쌓아 큰 복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류문태는 높은 벼슬에 집착해 오히려 승진 길이 막히게 되고 바른 사람을 모함하다가 결국 감옥살이까지 하게 됐다. 이것은 마음이 바르지 않아 생긴 결과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26일

문장분류: 천인지간>문사만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6/3128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