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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명작 해석(7)

[밍후이왕] ‘홍루몽’의 원래 이름은 ‘석두기(石頭記)’다. 독자들은 작가의 참인 듯 거짓인 듯한 필법에서 대황산(大荒山) 무계애(無稽崖) 청경봉(青埂峰) 절벽의 그 돌을 주의하지 않을 수 있는데 모두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귀주(貴州) 평당(平塘)현 장포(掌布)향에서 2002년에 한 개의 돌이 발견되었다. 돌 위에는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라는 여섯 개의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돌이 천연적으로 형성된 것임은 중국 과학원 전문가들의 현지조사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중공 중앙 텔레비전(CCTV)에서도 이 기이한 돌을 보도한 적이 있다. 단, 마지막 글자 ‘망(亡)’자를 일부로 빼놓고 보도했다. ‘홍루몽’에 나오는 ‘통령보옥(通靈寶玉)’에 대해 그것을 진실로 여기는 사람이 없으니 청경봉 아래의 그 돌을 고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귀주의 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교묘한 일치인가? 하늘이 내린 경고가 아닌가! 절대 대수롭게 여겨서는 안 된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절대로 견강부회(牽強附會)하는 것이 아니고 긴밀한 내재적 연관이 있는 것이다. 작가 조설근 선생은 천기(天機)를 알고 ‘보옥’을 빌려 ‘통령’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조설근은 돌을 화두로 꺼내 이야기를 연역(演繹)하지 않아도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돌은 책에서 단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 돌이 없어도 주제를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돌’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가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세간의 만물에 대해 속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식이 있다. 그의 의도는 직접 오늘날 세상을 놀라게 한 ‘장자석(藏字石)’을 향한 것이며 아울러 작가의 세간 만상(萬象)에 대한 견해를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완곡한 예술 기법으로 ‘말법’시기에 세인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석두기’에서 기록한 내용은 바로 ‘중국공산당망’ 이 여섯 개의 큰 글자다.

조설근은 문장의 대가라 만약 큰 붓을 휘둘러 돌을 썼다면 과거와 미래를 두루 관통할 수 있다. 여와(女媧)가 하늘을 기운 것 곧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오늘날 ‘장자석’, 즉 인류가 직면한 큰 재난을 쓴 것이다. 그의 필법에는 허와 실이 있는데 여와가 하늘을 기울 때 남은 그 돌에 문자가 있는 것이 실(實)이고 오늘날 나타난 이것을 책에서는 언급할 수 없는 것이 허(虛)이다. 오직 전 인류의 원래 면모를 아주 진실하게 압축한 한 부의 명품만이 이런 걸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한 글자도 사용하지 않고 풍류를 다 담았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이 감당한 역사적 사명은 바로 이런 결함이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책이 파룬따파(法輪大法) 경서다. 이것 외에 ‘9평 공산당’은 중국공산당이 감히 제기하지도 못한다. 이 책에서 유발된 ‘삼퇴(三退-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큰 물결은 노도와 같은 장관이 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은 4대 명작의 작가들이 모두 학식이 깊고 천문과 지리에 능통하며 음양에 밝다는 것이다. 오승은은 고금 천하의 일들을 참고해 책에 한마디를 남겼다. 조설근은 말법의 현재 상황을 더욱 투철히 알고 책의 ‘결말’을 통해 세인을 각성하게 했다. 그의 의도는 오늘날 중국을 가리킨 것이다. ‘홍루(紅樓)’란 지금 중국공산당 사악의 빌딩을 비유한 것이고 ‘꿈(夢)’이란 모두 허망한 환상이란 의미다. 중국공산당의 역사와 현 상황을 보면 이 얼마나 합당하게 책속의 현기(玄機)를 표현한 것인가? ‘홍루’에 미혹되어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면 빌딩이 무너짐에 따라 같이 땅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억울하게 생명만 바친다.’ 홍루의 진상을 아는 사람은 자연히 홍루에서 벗어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꿈속에 있는 사람을 깨워줄 사명을 지닌 사람은 오직 수련자뿐이다. 책에 등장하는 한 명의 승려와 한 명의 도사가 시작과 끝을 관통하며 단지 구성의 필요성 때문이거나 작가가 주제를 전달하는 편리 때문만은 아니라 구도 방식을 명확하게 가리킨 것이다. 바로 사람들에게 홍루에 대한 미혹을 버리고 자연의 본성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오늘날 수련인만이,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임무다.

꿈에서 깨는 데는 시기를 따져야 하는가? ‘홍루몽’ 문장이 중단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홍루몽’은 동서고금에서 가장 큰 예언서다. 특수한 시기가 도래하지 않으면 진면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홍루몽’이 각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도 ‘홍루’속에 미혹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천상의 변화에 순응하고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각종조직에서 탈퇴해야만 절망에서 걸어나올 수 있다.

최근에 4대 명작이 모두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4대 명작이 함축하고 있는 천기 역시 확실히 ‘누설’할 시기가 된 것이다. 단지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현상과 인민의 생존위기만을 말한다 해도 중국공산당이란 빌딩은 이미 기울어졌다. 여기에 뒤따를 ‘천벌’은 아직도 그 속에 미혹된 사람들에겐 정말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전반 인류 문명 발전의 과정에서부터 볼 때 4대 명작의 탄생은 그 필연성이 있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예술적인 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마음의 양식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중화 민족 특유의 조성 부문이고 전체 중화민족의 민족성을 형성하고 충실하게 하는데 대해, 중국인의 도덕관념, 가치관, 지향과 품행 그리고 생활정취를 양성하는 방면에서 모두 적극적인 인도와 교화 작용을 했다. 종합해 보자면 4대 명작은 이런 기능이 있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보면 두 가지 큰 방면의 표현인데 그것은 바로 ‘의(義)’, ‘수련(修煉)’이다. ‘의(義)’의 표현에서는 ‘삼국연의’와 ‘수호지’에 각기 중점이 있고 서로 대조를 이룬다. ‘수련’의 표현 방면에선 겉으로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곡이나 가사만 다른 작품이다. ‘서유기’는 신화이야기로 ‘수련’을 묘사한 것으로 형상이 있고 생동감이 있으며 구체적인 느낌을 준다. ‘홍루몽’도 ‘수련’인데 이를 이해하자면 아주 높은 ‘오성’이 필요하다. 수련인이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바로 ‘정(情)’이다. 육친정(親情), 남녀 간의 정, 친구간의 정, 부모와의 정, 일을 하면서도 정을 말하며, 사랑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등이 모두 정이다. ‘홍루몽’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정승록(情僧錄)’이 있다. ‘석두기’를 베껴 쓸 때 공공도인(空空道人)이 “공(空)으로 인해 색(色)이 드러나니 색에서 정이 생기고 정으로 색에 입문하니 색에서부터 공(空)을 깨닫는다”라고 한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홍루몽’의 주제는 또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춘(春)’색을 간파하면 자연히 ‘공’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4대 명작의 찬란한 명성은 인류가 부흥에서 쇠퇴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일정 정도 인류를 규범하고 인류 문명의 방향을 인도했으며 대법의 넓은 전파를 위해 특별한 공헌을 했다. ‘삼국연의’의 ‘의’는 이미 사람 특유의 내재적인 특징이 되었고 ‘수호전’ ‘호걸’들은 부정적인 방면에서 사람 내심의 잠재의식을 표현함과 아울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고를 준다. ‘서유기’는 수련과 ‘정법(正法)’의 전달에 일정한 인도작용을 했고 ‘홍루몽’은 예술적으로 인류사회의 현실과 그 필연적인 방향을 재현했다.

4대 명작은 역사의 깊은 곳에서부터 걸어 나와 마치 4개의 찬란한 별과 같이 역사의 하늘에서 빛을 뿌리며 세인들에게 찬란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생생하고 선명한 계시를 준다.

(끝)

문장발표: 2013년 8월 14일
문장분류: 천인지간(天人之間)>신전문화(神傳文化)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14/277733.html